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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의 서재입니다.

프레이야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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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3
최근연재일 :
2020.09.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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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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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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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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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9)

DUMMY

그리고 마틴은 돌아왔어요. 피투성이의 만시창이가 되어서요.


“마틴! 마틴!”


저는 마틴 곁에 다가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맬컴 오빠가 허락하지 않았어요. 처음엔 마틴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몸에 성한 곳은 없고 옷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으니까요.


의사를 데려와 수 시간 동안 진찰에 들어갔어요. 의사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며 경고까지 했었죠. 저는 고향을 나온 이후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했어요.

제발 마틴을 데려가지 말라고. 이런 식으로 보낼 수 없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암살자라도 이번만큼은 죽을 수 없다고.

진찰이 무사히 끝나길 기다리면서 쉬지 않고 기도했어요.


다행이 마틴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오늘 저희 곁에 있을 수 없겠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몸에 있는 흉터들 중 대부분은 그때 생긴 거예요.


저는 마틴이 회복하는 동안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어요. 식사도 챙겨주고 붕대도 다 제가 갈았어요.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겠다 나서기라도 하면 내쫓다시피 하였죠. 그런데 그게 마틴에겐 더 부담되었나 봐요.


:자, 사과.:

:이만 가봐.:

:또 그런다. 일단 사과부터 먹어.:

:꺼지라니까!:


갑자기 고함을 질러 제가 놀란 표정을 짓자 마틴은 애써 고개를 외면하며 나지막하게 말했어요.


:당분간 날 찾아오지 마. 나한테도 모든 걸 납득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저는 그 후로 한동안 마틴을 보러가지 않았어요. 그가 완쾌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축하하러 가지 않았죠.

그리고 그 나쁜 자식도 다 나았으면서 절 찾으러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오기까지 생겨 더 안 만나게 되더라고요.

아마 저희 둘 사이에 생긴 가장 큰 냉전이었을 거예요.


결국 먼저 찾아간 건 저였어요. 그가 요즘 들어 루스리아 창녀들을 가리지 않고 만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뭐가?:

:네가 왜 창녀촌을 제 방처럼 들락날락하는 거냐고!:

:그야 우리가 사는 곳이 루스리아니까.:

:내 질문을 외면하는 거야?!:

:네가 하는 짓이랑 전혀 다르지 않잖아!:


그가 짜증을 내며 외치자 저는 말문이 막혔어요.


:넌 단 한 번이라도 내 기분 같은 거 생각해 본 적 있어?! 항상 지 멋대로고, 사람 마음만 이리저리 휘저어 놓고! 그래놓고 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건데? 네게 그런 자격이 있기나 해?“


왜 그때 손이 먼저 올라갔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죠.

그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순간으로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다 날 정도로 화가 나서 제가 뭘 했는지 깨닫기도 전에 마틴의 뺨은 이미 벌게져있었어요.


하지만 마틴은 그대로 있었어요. 그렇게 지고 못 사는 성격이면서, 저에게 손 한 번 올리지 않았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데.:


그가 나지막하게 물었어요.


:대체 어떻게 해야 만족 할 건데. 이러지 않고선 널 잊을 자신조차 없는 난데.:


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을 나갔어요.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이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갈필조차 잡지 못했죠.

그저 너무 끈적끈적하게 뒤엉킨 현실에 눈물만 계속 흘렀어요. 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서러워 계속 울었어요.

누군가 잘 될 거라고 빈말이라도 해주길 바랬어요. 이렇게 엉망진창인 인생에도 언젠간 빛이 찾아올 거라고 속삭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지요. 현실은 여전히 어지러웠고, 문제는 어느 하나 해결되지 않아있었어요.


결국 저는 우는 것을 멈추고 다시 마틴의 방을 찾아갔어요.


:미안.:


제 사과에 마틴은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키스해주었어요. 그리고 그 날 밤, 우리는 마치 다음날 세상의 종말이라도 오는 듯 서로를 안았어요.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그리고 해 뜨는 것을 보고야 잠이 들었어요.


마틴은 그 후로 다시는 예전의 마틴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예전처럼 방황도 하지 않았지만, 어렸을 적에 보이던 그 순진한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어요.

하지만 마틴은 여전히 마틴이었어요. 비록 고향 사람들이 그를 못 알아볼지언정, 그는 리플하임 시절부터 항상 제 곁에 있어주던 소중한 마틴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더욱 강해졌어요. 열여덟이 되자 맬컴 오빠를 뛰어넘어 조직에서 가장 강한 암살자가 되었죠.

케절시 노예무역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조직에게 있어서 더 이상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거죠.


그러면서 어느덧 루스리아 여자들 사이엔 가장 인기 많은 남자가 되어있더라고요.

하지만 막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때부터 더 이상 관심 없다며 밤이면 꼬박 제 방으로 돌아왔어요. 해서 여자들에겐 여전히 인기가 많지만 건드린 지는 꽤 됐을 거예요.






“그리고 케절시를 무너뜨리는 게 성공가면서 조직은 절정에 다다랐어요. 어느 무엇도 무서울 게 없었죠. 하지만 그 엄청나던 조직도 반년 전에 무너지고 말았지만요. 한순간에 무너진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한 반년간 이상할 정도로 임무에 실패하는 일이 잦아지더니 결국엔...”


캐서린은 그리고 말을 멈췄다. 그녀의 서글픈 미소엔 지난 세월 동안 그들이 겪어야 했던 추억들이 하나 둘씩 세어나오는 듯 했다.






“여기서 뭐하냐?”


마틴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그를 찾기 위해 여관 지붕까지 올라온 지크가 서있었다.


“뭐라 그래?”


마틴이 무표정한 얼굴로 묻자 지크는 그의 옆에 앉았다.


“글쎄다. 네가 어떻게 루스리아 최고의 인기남이 되었는지 정도?”


그에 마틴이 미간을 좁히며 그를 노려보았으나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녀석의 말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아. 정말 잔인한 녀석이야. 아무리 곁에 있어도 돌아봐주는 일이 결코 없지. 단 한번이라도 돌아봐줬으면 창녀고 뭐고 다 때려치우게 만들었을 텐데, 기회조차 안 주더라.”


마틴이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마데리스가 그리웠다. 조금만 피더라도 기분이 좀 풀릴 테니 말이다.


지크는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마찬가지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꼬박 돌아온 거 아니야? 돌아봐주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 곁에 있어줬던 거 아니냐고.”


그에 마틴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형이 했던 말이야. 내가 아무리 열이 받고, 죽고 싶다고 생각해도 난 결국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그리고 정말 짜증날 정도로 돌아가게 되더라고.”


죽을 작정이었다. 그녀가 그 상태가 되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서.

하지만 자살은 할 수 없으니 형에게 임무를 부탁했다. 도중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임무를. 그리고 형은 개의치 않고 그에게 임무를 주었다.


[하긴. 너라면 살아 돌아오겠지. 여기엔 그 아이가 있으니까.]


그는 기적처럼 임무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수많은 날과 활이 그를 베고 뚫었다.

너무나 당연히 죽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한 사람조차 못 지키는 인생, 죽어도 상관없었다.


그때 흐려진 시야 속에서 그녀가 보였다. 죽지 말라고 울부짖는 그녀가. 제발 살아달라고, 살아서 자기 곁에 있어달라고 울부짖는 그녀가.


결국 형이 옳았다. 그는 그녀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게 아무리 비참한 모습이라 해도, 그는 그녀 곁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살았다. 그 후에도 매번 살아서 그녀 곁으로 돌아갔다.


“좋았어.”


지크가 갑자기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발길을 돌려 지붕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에 마틴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딜 가려는 건데?”

“캐서린양에게 같이 리플하임에 가자고 말하게. 이런 곳에 계속 있어봐야 좋을 것도 없잖아. ‘X’가 아직 있는 것도 아니고. 가출한 것도 한두 번 혼나면 용서받을 거고.”


그에 마틴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던 말을 저 바보가 만난 지 이틀 만에 하겠다하자 뭔가 핀트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한편, 지크의 표정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뭐해, 안 갈 거야?”


순간 마틴은 그가 부르자 생각이고 뭐고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이제 됐어요.”


캐서린은 배가 차자 티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티나는 그녀에게 먹여주던 오트밀을 옆으로 치웠다.


지크씨는 지금쯤 마틴을 찾았을까? 그녀가 식사를 하기 시작할 때쯤 마틴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겠다면 떠난 그였다.

그 후로부터 시간이 좀 흘렀으니, 너무 멀리만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마틴을 찾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티나양은 왜 지크씨를 왕으로 선택하셨나요?”

“제가 선택한 게 아닌데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티나가 간단하게 대답하자 캐서린이 곤란해 하며 말했다. 티나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관은 어디까지나 신의 대행인일 뿐, 왕을 선택하는 것은 신이지 신관이 아니다. 신관이 가진 힘은 어디까지나 신이 선택한 왕을 알아보는 것뿐이다.


하지만 티나도 캐서린이 원하는 답이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크님은...독특해요.”

“독특이요?”

“예.”


캐서린이 부과설명을 원하는 눈치를 보이자 티나는 말을 이었다.


“지크님은 탈출노예인 절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받아주셨어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살던 고향을 떠나 같이 여행해 주셨어요.”

“하지만 그건 티나양이 특별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잖아요.”


캐서린이 설득되지 않은 채 반박하자 티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뿐만이 아니에요. 마틴씨 같은 경우만 해도 마찬가지인 걸요. 지크님은 마틴씨가 암살자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동료로 삼아주었어요. 엘레마라는 것도, 하룻밤에 쉰 명을 넘게 죽인 살인마라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시고, 그와 같이 여행하자는데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에게 작지만 살아갈 이유를 주셨어요. 그게 지크님이에요. 그분은 인종도, 과거도 신경 쓰지 않으세요.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대해줄 뿐이죠. 신이 무슨 기준으로 왕을 선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티나가 부드럽게 묻는 질문에 막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 방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지크가 들어와 캐서린 앞에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캐서린양, 같이 리플하임에 가지 않을래요?”

“예?”


눈을 반짝이며 묻는 그의 질문에 캐서린은 당황해 마틴이 들어왔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했다.


“캐서린양이라면 리플하임의 위치도 잘 아시죠? 마틴 녀석은 영 못 미더워서 말이죠.”

“하지만 전...”

“재미있을 거예요! 일행도 많고. 누군가 마틴 사고 치지 않나 봐주는 것도 좋을 거고. 그러니까 같이 가요.”


라이하트다운 검은 눈동자였다. 흑진주보다 더 진한 검은 눈동자. 하지만 그것은 또한 심야보다 깊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 그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눈동자. 왕의 눈동자였다.


캐서린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입술 끝이 올라갔다.


“좋아요.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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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9) 20.09.16 23 0 8쪽
134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8) 20.09.13 14 0 12쪽
133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7) +1 20.09.13 18 0 9쪽
132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6) +1 20.09.12 24 1 17쪽
131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5) 20.09.09 17 0 16쪽
130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4) 20.09.08 15 0 8쪽
129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3) 20.09.07 25 0 8쪽
128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2) 20.09.04 19 0 14쪽
127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1) 20.09.04 18 0 8쪽
126 탈출기 - 외전 루스리아에서 있던 이야기 - (2) 20.09.02 44 0 7쪽
125 탈출기 - 외전 루스리아에서 있던 이야기 - (1) 20.09.02 14 0 13쪽
124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6) 20.09.01 19 0 11쪽
123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5) 20.09.01 17 0 8쪽
122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4) 20.09.01 15 0 8쪽
121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3) 20.07.16 19 0 10쪽
12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2) 20.07.16 13 0 8쪽
11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1) 20.07.15 14 0 11쪽
118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0) 20.07.14 17 0 10쪽
»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9) 20.07.14 16 0 12쪽
116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8) 20.07.13 13 0 10쪽
115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7) 20.07.13 21 0 13쪽
114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6) 20.07.11 16 0 7쪽
113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5) 20.07.09 60 0 12쪽
112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4) 20.07.08 14 0 10쪽
111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3) 20.07.07 19 0 10쪽
11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2) 20.07.06 22 0 10쪽
10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 20.07.05 26 1 10쪽
108 외전. 티나는 열다섯 살 (5) 20.07.03 2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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