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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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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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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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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4)

DUMMY

“그러고 보니 고고학자라는 말 빼고는 제대로 된 소개를 안 했구나. 내 이름은 랄프...”


문이 열렸다. 작은 틈 사이로 갖가지 처음 보는 이상한 물건들과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크가 놀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절대 생각지 못한 사람이 창가 앞의 침대에 앉아있었다.


“...나타샤란다.”


지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랄프라 자칭한 남자를 쳐다보다 다시 침대에 앉아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최소한 그가 어떻게 티나를 알고 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침대에 앉은 금발의 남자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 놀라지 않고 지크를 반겼다.


“오랜만이군요.”

“디엘씨!”


지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쳤다. 그런 사이 디엘은 침대에서 나와 일어서려했으나, 두발을 바닥에 대자마자 휘청거렸다. 다행이 랄프가 그를 바로 부추겨줘서 쓰러지는 일은 없었지만 디엘은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그러길래 가만히 앉아 있지 뭐 하러 일어서려는 거냐.”

“하지만 손님이...”

“내 손님이니 넌 그냥 앉거라.”


랄프가 타이르며 디엘이 다시 침대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크는 입이 쫙 벌어졌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 떠오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설마 티나의...”

“할아버지란다.”


랄프가 어렵지 않게 대답해줬다. 지크는 할 말을 잃었다. 티나는 혼혈이었던 거야! 할아버지가 타메르이잖아! 그럼 여태껏 보여줬던 마력은 엘레마가 아니라 엘타인이어서 가능했구나! 그런 거였어!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 아닌가. 엘레마에겐 마력이 없는데. 타메르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이지 않았으면 그녀가 무슨 수로 마법을 쓰겠는가. 역시 그런 거야. 그럼 티나는 여태껏 자기를 속이고 있던 건가. 아니야. 티나가 자신을 속였을 리 없어. 그럼?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타메르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어. 드레이커 저택을 나와본 적이 없을 테니까. 이렇게 할아버지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몰라. 드레이커 공작이 그녀의 할아버지가 타메르란 걸 말해 줬을 리 없으니까. 그녀는 할아버지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아니, 그보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타메르인 것을 알면...


가면 갈수록 자신의 엉뚱한 세상 속에 빠져버리는 지크를 본 랄프는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네 아비는 양아버지 아니더냐.”

“아.”


지크는 그의 짧은 지적에 생각을 멈추었다. 양할아버지였구나. 그러고 보니 티나의 할아버지로 보기엔 나이가 좀 젊어보였다. 한 십년은 말이다. 순수 엘레마가 맞았구나. 역시 티나는 특별해.


랄프는 디엘을 다시 침대 위에 앉히자 잠시 기다리라면서 집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에 지크는 집안을 둘러보는 척하면서 디엘을 슬쩍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두 달 전 수도에서였나. 그때도 마른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살색도 이젠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핏기가 전혀 없어보였다. 눈 아래가 검은 게 게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청한 것 같았다. 거기다 왼팔에 심한 부상을 입었는지 깁스를 하고 있었다. 팔의 부상만으로 저렇게 건강이 나빠질 수 있나?


“보기 안 좋죠?”


디엘이 그의 시선을 눈치 채며 물었다. 그러자 지크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외면했다.


“많이 아프신가 봐요.”

“아픈 게 폭주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괜찮습니다.”

“폭주라뇨?”


지크가 대화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하자 물었다. 디엘은 아차 했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은 다시 주울 수 없었다. 역시 몸이 건강하지 않다보니 머리도 제대로 돌지 않는 게 분명했다. 디엘은 다음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산 위에 자리한 백작의 저택을 볼 수 있었다.


“티나가...위험하거든요.”

“조카를 굉장히 아끼시나 봐요.”


디엘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뭔가에 맞은 표정으로 지크를 바라보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그에 지크는 말을 잘못했나 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쿡. 죄송합니다. 아무리 순진하다 그래도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티나와는 너무 대조적이군요. 잘 어울립니다.”


마지막 말에 지크의 얼굴에는 홍조 빛이 떠올랐다. 디엘은 빙긋 웃었다. 그러다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어느 누구도 조카밖에 되지 않는 존재를 위해 폭주하진 않습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지크가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데까지 걸린 시간만큼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을 때 지크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예에?!”


지크는 갑작스러운 발언에 정신이 아찔했다. 삼촌이랑 조카잖아! 멀어야 삼촌이라고!


“그, 그게 그러니까...그게...”

“저주입니다.”


디엘의 짤막한 대답에 지크는 허둥대는 것을 멈췄지만 여전히 휘둥그레진 눈으로 디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디엘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나타샤에게 걸린 두 개의 저주, 티나가 설명했을 리 없을 테니 게르세메가 설명해 준 적 있나요?”


디엘의 질문에 지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게르세메가 비슷한 말을 했었던 것 같다.


“분명 생이 짧다고...”

“말해준 적 있나보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나타샤는 길어야 서른이 한계입니다. 누님도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죠. 제 시간도 이제 길어야 2년이 한계입니다.”


디엘은 마치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가볍게 얘기했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지크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기도 그와 같은 입장이라면 저럴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디엘은 지크에게 깊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크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길게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플 테니, 시간도 아낄 겸 그냥 답을 듣기로 했다. 디엘은 다시 창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번엔 백작의 저택이라기보다는 산 전체였다.


“세상에 대한 고립입니다.”


디엘은 그리고 잠시 말이 없었다.


“나타샤는 지난 천 년간 인간문화와 단 한 번도 접한 적 없이 저 에데르 산맥에 살았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게 그저 서로와 서로를 의지하며 천 년을 보냈죠. 저희가 고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새로운 언어가 탄생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저주는 26년 전 아버지께서 푸셨습니다. 어쩌면 제가 태어나는 순간 풀렸을지도 모르지만, 처음으로 보이지 않던 결계를 뚫고 저희와 접한 ‘타인’은 아버지가 처음이었습니다.”


디엘은 거기까지 말한 후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난 천 년간 저희가 무슨 수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타인의 접촉도 없이, 무슨 수로 천 년이 넘도록 자손을 남겼는지 말입니다.”


지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수로...그러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서, 설마...”

“그 설마입니다. 티나의 부모님도 제 형과 누나죠.”


디엘은 설명하면서 한 치의 부끄러움을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아니, 처음부터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약속된 신관이 태어날 때까지. 그리고 그가 그들의 죗값을 치러줄 때까지. 그게 더한 죄를 낳더라도 말이다. 타인들이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그들은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지크는 아무 탓도 할 수 없었다. 천 년의 고통이라는 게 무엇인지 열아홉밖에 되지 않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에겐 나타샤를 심판할 자격조차 없으니까. 물론, 자기와 안이 그런 관계가 된다는 건 꿈에도 상상해 본 적 없지만 말이다.


“그럼 티나는...”

“제가 신관만 아니었으면 제 배필이 될 아이였겠지요.”


어딘가 찝찝한 지크였다. 디엘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어차피 신관이 되었던 순간 끝난 얘기입니다.”

“그, 그렇군요.”


위로하고자 해준 말이겠지만 여전히 찝찝한 지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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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9) 20.09.16 23 0 8쪽
134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8) 20.09.13 14 0 12쪽
133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7) +1 20.09.13 1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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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5) 20.09.09 17 0 16쪽
»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4) 20.09.08 15 0 8쪽
129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3) 20.09.07 25 0 8쪽
128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2) 20.09.04 19 0 14쪽
127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1) 20.09.04 17 0 8쪽
126 탈출기 - 외전 루스리아에서 있던 이야기 - (2) 20.09.02 44 0 7쪽
125 탈출기 - 외전 루스리아에서 있던 이야기 - (1) 20.09.02 14 0 13쪽
124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6) 20.09.01 19 0 11쪽
123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5) 20.09.01 17 0 8쪽
122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4) 20.09.01 14 0 8쪽
121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3) 20.07.16 19 0 10쪽
12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2) 20.07.16 13 0 8쪽
11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1) 20.07.15 13 0 11쪽
118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0) 20.07.14 17 0 10쪽
117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9) 20.07.14 15 0 12쪽
116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8) 20.07.13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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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3) 20.07.07 19 0 10쪽
11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2) 20.07.06 22 0 10쪽
10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 20.07.05 26 1 10쪽
108 외전. 티나는 열다섯 살 (5) 20.07.03 2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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