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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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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3
최근연재일 :
2020.09.16 13:52
연재수 :
1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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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509
글자수 :
66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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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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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외전. 티나는 열다섯 살 (5)

DUMMY

트리샤가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손을 올리자 한 건전한 청년이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검붉은 머리칼을 가진 그 청년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표정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닌데.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웃어보였다.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예, 어머니.”


청년은 이제 더 이상 참기 힘든지 눈물을 흘렸다.

불쌍한 나의 아들. 어미로서 못 해 준 게 너무 많구나.

그래도 아버지를 원망해서는 안 된단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그도 너를 사랑하니까.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아...버...”


순간 말이 끊기면서 잡고 있던 손에 생기가 빠졌다. 그에 세드릭은 눈을 크게 뜬 채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 어머니!”

“여보!”

“마님!”


트리샤 드레이커. 평민으로 태어나 아스가르드 제일의 공작부인이 된 그녀는 아스가르드력 826년 4월 28일, 사랑하는 가족과 신하들을 두고 마흔다섯이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터너는 열심히 밭을 가로지르며 저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마님께서 돌아가셨단 이유로 오늘은 노예고 하인이고 상관없이 집에서 통곡하고 있으라는 명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터너는 이 틈을 타 티나를 찾고 있었다.


드레이커 영지에 팔려온 지 1년이 조금 지난 터너는 잘 몰랐지만 어지간히 존경받는 마님인 듯 했다.

본래 평민이었던 그녀는 노예들에게도 친절했으며, 건강했을 땐 자주 밭으로 와서 그들의 노동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다 모성애가 강해 드레이커 영지에선 티나처럼 어지간히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성인이 되기 전에 팔리는 노예가 매우 드물었다.

실제로 이 영지엔 터너가 팔려본 그 어느 영지보다 태어나고 자란 노예의 비율이 높았다.

이게 다 마님의 덕택이었다고, 노예들에겐 성모나 다름없다는 거였다.

그런 분이 돌아가셨으니 저택은 둘째 치고, 밭도 눈물바다였다.


뭐, 앞서 말한 대로 터너가 왔을 때 마님은 이미 병으로 누워계신 상태였고, 주인과는 교감을 잘 못 느끼는 그였기에 그는 그저 티나를 찾느라 바빴다.

마님 돌아가신 건 어쩔 수 없다할지라도, 티나가 슬퍼하고 있으면 안 되지 않는가.

어쨌든 1년 전 티나가 그러고 있을 때 마님이 나서줄 정도였으니, 티나에겐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겠는가. 한시라도 빨리 티나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티나는 집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저택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티나는 부엌 밖에 있는 벤치에서 얼굴까지 파묻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디를 가는 게냐?”


세드릭이 문손잡이를 돌리자 에릭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세드릭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차가워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설마 오늘 같은 날 그 아이를 보러 가려는 게냐?”


에릭이 냉정하다 못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두 분만의 시간을 드리죠.”


세드릭은 그 말만을 남기며 방밖으로 나갔다.






“티나?”


티나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올렸다. 그곳엔 터너가 걱정스런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터너?”

“왜 여기 있어? 오늘은 다 집으로 가서...”

“누군가 주인님의 식사를 챙겨야 하잖아. 그래서 자청했어.”


티나가 울음을 겨우 진정하며 설명했다. 터너는 이미 탈진에 가까이 울어버린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 위로해야 된다는 생각에 마구 둘러대기 시작했다.


“너, 너무 걱정하지마. 좋은 분이셨다며. 그럼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그게 아니야.”


티나가 터너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마님은 좋은 분이셔. 길거리에 임신한 채 쓰러져있던 어머니를 걷어 주시고, 살 곳을 마련해 주셨어. 내가 곤경에 처해있을 때도 항상 멀리서 도와주셨어. 하지만 그게 아니야.”


티나는 점점 자책하는 목소리로 변하면서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분께서 돌아오셨어. 마님께서 얼마 남지 않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2년 만에 돌아오셨는데, 난 그분을 위해 아무 것도 해 드릴 수가 없어. 그분의 아이조차 잃어버렸는데. 차마 얼굴을 볼 용기도 안 나는데. 분명 슬퍼하고 계실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몰래 식사를 차려 드리는 것뿐이야.”


그녀는 이제 더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 나쁜 아이야. 마님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상냥하시던 마님께서 돌아가셨는데...지금도 도련님 생각만 하고 있어. 꼭 돌아가셨어야 했냐고, 도련님을 슬퍼하게 하면서까지 꼭 돌아가셨어야 했냐고 원망하고 있어. 난 나쁜 아이야. 천벌을 받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다시 얼굴을 무릎사이로 파묻혔다. 어깨가 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은 터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그는 펼쳐있던 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티나.”


티나는 그가 그녀를 부르자 고개를 올렸다. 다음에 느낀 건 포개진 입술이었다.






삐비비비비.


막상 만나서 무슨 예기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귀걸이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생각 없이 걸어가고 있을 뿐. 그저...그녀가 보고 싶었다.


삐-


“!”


너무나 당혹스러운 장면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반사적으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이내 주먹에 쥔 힘을 풀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자리에서 조용히 빠져나갔다.






“터너?”


무엇보다 놀라는 표정으로 티나가 물었다. 덕분에 눈물이 멈췄다. 그만큼 놀랐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가 다음에 한 말은 더 가관이었다.


“우리 결혼하자.”

“뭐?”

“결혼하자고. 같이 살고, 생활하면서 애도 몇 낳고, 같이 늙자고. 넌 어때?”


터너가 얼굴을 붉히며 가능한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갑자기가 아니야. 한동안 계속 생각해왔던 거야. 전에 같이 생활해 본적도 있으니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잖아. 아니면, 내가 싫은 거야?”


터너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티나는 다시 당황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어. 하지만 나... 널 행복하게 해줄 자신 있어.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자.”


티나는 그제야 터너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 말을 꺼내고 있는지 깨달았다. 생각도 해 본적 없는 일이었다. 그저 그날부터 곁에 있어준 터너가 언젠가부터 공기처럼 너무 당연한 존재가 되어줬을 뿐.


티나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날 티나가 입은 옷은 평상시와 조금 달랐다. 순백색의 드레스였는데 보통 때처럼 펑퍼짐한 게 아닌 어느 정도 달라붙는 옷이라 그녀의 날씬한 몸매가 잘 표현됐다.

머리도 마냥 풀어진 모습이 아니라 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손에는 계절에 어울리는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있었다.


“어, 어때? 포포 아주머니께서 도와주셨는데.”


티나가 쑥스러워하며 물었다. 그에 터너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아름다워.”






“유산이라니요?!”


터너가 문을 부수다시피 열며 외쳤다. 일하는 도중 들은 소리라 밭에서부터 뛰어온 그였다. 집에는 요에 누워서 울고 있는 티나와 그런 그녀를 옆에서 위로하는 포포가 앉아있었다.


“나도 모르겠단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저앉으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겉보기엔 괜찮은데 유산이라고만...”


아마 티나의 말이 사실일 것이다. 같이 있으면서 깨달은 거지만 티나에겐 특별한 힘이 있다.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도 티나만 알 수 힘. 때문에 그녀가 유산이라면 유산일 것이다.


터너는 포포에게 단둘이 있게 해달라며 부탁하고 티나 곁에 가 앉았다.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티나?”


그녀가 움찔하며 고개를 올렸다. 그때까지 자기가 왔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그를 잠시 보더니 고개를 외면하며 얼굴을 다시 요에 파묻혔다.


“미안해!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아이가...!”


터너는 흐느끼며 사과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에 키스해주었다. 뭐가 잘못 된 것일까. 지난 2년간 그렇게 노력을 해왔는데. 잊으려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그녀에겐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티나, 탈출하자. 이곳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야.”


터너가 작게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만일 이곳이 안 된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새로운 미래가 그녀를 기다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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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 20.07.05 26 1 10쪽
» 외전. 티나는 열다섯 살 (5) 20.07.03 2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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