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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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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3
최근연재일 :
2020.09.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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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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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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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5)

DUMMY

저녁시간이 되자 거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창녀들은 거리로 나와 손님들을 불려들었고, 남자들은 얼굴을 붉히며 그녀들의 부드러운 손길에 이끌려 여곽에 하나둘씩 들어갔다. 식당에서 왁자지껄 수다 떠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막 시작한 밤을 즐기고 있을 때, 지크와 마틴은 이미 취해 뻗어버린 케이를 양팔로 부축이며 여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한참 동안 조용히 있던 지크가 입을 열며 물었다. 그는 이 말을 꺼내기까지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해온 표정이었다.


“형이 바나하임의...”

“상관없잖아.”


마틴이 지크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이제 와서 그가 누구든 상관없잖아. 아무도 네가 라이하트라는 걸 상관 안 하는 것처럼.”


마틴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말하자 지크는 피식 웃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케이의 존재가 훗날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를 일이었으나, 그건 후에 상관할 일이었다.

지금은 그저 하나의 소중한 동료일 뿐이었다. 항상 친형처럼 어른스럽고 다정해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문제로 고뇌하고 방황하는 소중한 동료.


“엘시아양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그래?”


마틴이 앞을 바라보며 대답하자 지크도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도착한 여관 앞엔 엘시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타상으로 기절한 남자들이 몇 널려있었다.


“이렇게 밖에서 낭군님을 다 기다리고, 화는 많이 가라앉았나보지?”


마틴의 비아냥거림에 엘시아가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꼴을 보아하니 화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케이의 상황을 살폈다.


“완전히 갔잖아. 뭘 먹인 거야?”

“스틱산 20년.”


엘시아는 답을 듣자 혀를 찼다. 그저 취하기 위해 용을 썼구먼.


“화는 풀리시고요?”


지크의 질문에 엘시아는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케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부터 심기가 좋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지 나라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고 왜 그렇게까지 저기압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지크는 그녀의 대답에 그저 씁쓸히 웃었다.


“티나는요?”

“방에 있어. 여기 남자들이 하나 같이 워낙 저질이라 저녁도 방에서 먹었지.”

“그럼 저는 티나 보러...”


지크가 케이를 맡기려는 순간 마틴이 옷깃 뒤쪽을 잡았다. 그러고 엘시아를 향해 말했다.


“네 마법이라면 이 녀석을 방으로 옮길 수 있겠지?”

“응. 그런데?”

“그럼 맡아.”


마틴은 간단히 대답하며 케이를 엘시아에게 건넸다. 남자 둘이 겨우 부추기고 온 케이였으나 엘시아는 아무 어려움 없이 받았다.

그 순간에도 마동술을 쓰는 게 분명했다. 한결 몸이 가벼워진 마틴은 지크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며 발길을 돌렸다.


“어이, 어디가?”

“2차.”


마틴은 그 말만 남기며 지크와 함께 거리로 사라졌다. 그에 엘시아는 곯아떨어진 케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더니 그를 물방울에 가두었고, 바로 2층의 방까지지 옮겨주었다.


“덩치에 지보다 어린 애들에게 실려 오고, 아주 잘 하는 짓이다.”


엘시아가 케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중얼거렸다.

처음에야 무작정 화가 났었지만, 나중엔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바나하임 여왕의 연세가 자기네들 또래 어머니의 연세 정도였으니 아주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케이가 비록 가족에 대해선 좀처럼 얘기하지 않는다 해도, 가족이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녀가 가끔 아스카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보고 싶은 것처럼.


“나중에 바나하임에 같이 가자고 할까.”


나쁜 계획은 아니다. 티나는 탈출노예인데다 마틴과 지크의 목엔 현상금이 걸려 있다.

비록 국경을 넘긴 어렵겠지만, 넘을 수만 있다면 모두에게 나쁠 것이 없었다. 거기다 케이는 7년 만에 가족과 상봉할 기회가 생기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녀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왕궁으로 보내지면 더 이상 나오지 못할 테니.

그러니 그 전에 행복해하는 케이를 보고 싶다. 홀로 외로워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힘차게 내일을 달리는 케이를.


뚝.


어느덧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자 그녀는 급히 눈물을 훔쳤다.


“바보. 너 때문에 괜히 나쁜 생각에 빠졌잖아.”


그녀는 들을 리 없는 케이에게 투덜거렸다. 후치가 떠날 때 깨달았다.

그녀도 언젠간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 여행에도 끝은 찾아온다.

그녀는 케이와 다르다. 반드시 돌아가기로 약속한 곳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케이를 데려 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케이를 상급사회에 묶어둘 수 없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가둘 수 없으니까. 가두려는 순간 불은 꺼지고 만다. 때문에 멀지 않은 미래에 이별을 고해야만 한다.

그녀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벌써부터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 날이 언젠지 모르지만 오늘은 아니니까. 그러니 그때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싶다.


“난 이만 가봐야겠다. 티나가 걱정되네.”


엘시아가 거기까지 말하며 문 앞으로 다가갈 때였다.


“어...”


그녀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케이는 가위 눌린 사람처럼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어...어마마마.”

“!”


엘시아는 자신이 하려던 일도 잊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캐서린은 정성스레 마지막 향을 켰다. 방 전체에 라벤더 향이 잔잔하게 퍼졌다.

자신의 방보다 몇 배는 더 큰 방이었기에 냄새가 퍼지는 데까지 많은 향이 필요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늘 밤을 위해서라면, 갖고 있는 모든 향을 다 사용해도 괜찮았다.


창가를 통해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안 될 일이다. 그녀는 창문을 닫기 위해 창가로 걸어갔다.

4층에 있는 방이다보니 아래를 내려다보면 떨어질까 아찔했다. 창밖으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늘 일만 무사히 끝나면 모든 게 끝이니까.


[암살단도 사라진 지금, 네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도 없잖아.]


맞는 말이다. 오늘 일만 끝나면, 그녀는 자유다. 오늘 일만 끝나면.


“바깥의 시선이 그렇게 부담스러웠나? 엄연히 4층인데 말이야.”


캐서린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검은 곱슬머리를 뒤로 간단하게 묶은, 한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있었다.

가슴팍 다 들어나는 느슨한 하얀 블라우스와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는 음흉한 미소가 사람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저 밤바람이 차가웠을 뿐입니다. 위로엔 남작님.”


캐서린이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위로엔이라 불린 남자는 그녀를 향해 걸어오더니 그녀의 턱을 가볍게 올렸다.


“네가 ‘밤의 라벤더’인가? 생각보다 어리군. 나는 최소한 20대 중반은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질문에 캐서린은 미소를 지었다.


“루스리아란 실력만 있으면 나이를 따지지 않는 곳이죠.”

“하긴, 실력만 있으면 인종도 차별하지 않는 곳이지.”


순간, 그녀의 턱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났다.


“하지만 더 이상 안 될 거야. 누가 위고, 누가 아랜지 똑똑히 가르쳐 주겠어. 너 따위 엘레마가 나돌아 다니지 않게 말이야.”

“그래서...X를 팔아넘기신 건가요?”


그녀의 나지막한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턱을 잡고 있던 손이 떨렸다. 아니, 손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온 몸이 강한 경련을 일으켰다. 마치 스스로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얼굴이 흙빛으로 일그러지면서 주저앉았다.


“이년!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남자가 붉게 충혈 된 눈동자로 그녀에게 외쳤으나 그녀의 눈은 차갑기만 했다. 그녀의 손엔 어느덧 소매에 숨기고 있던 단검이 쥐어있었다.


“위로엔 남작, 이만 죽어줘야겠어.”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단검을 높이 올렸다. 이제 끝이다.


그때, 남작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게 X의 일원으로 네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거냐.”


순간, 그는 빠른 몸짓으로 단검을 든 캐서린의 손을 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몸도 제대로 겨루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그에 방심한 캐서린은 단검을 놓쳐버렸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두 손이 머리 위로 봉인된 채 바닥에 눕혀있었다.


“라벤더 향에 마비약을 섞는다라. 생각은 기발하지만 너무 약했어. 날 죽이고 싶으면 좀 더 그럴싸한 독을 풀었어야지. 어차피 너도 날 죽이면 죽을 생각 아니었나?”


위로엔이 낮게 웃으며 하는 말에 캐서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안 거지?

살아있는 자들 중 라벤더 향이 갖가지 독을 숨기기 위한 매개체라는 사실을 아는 건 마틴뿐이다.

하물며 마틴이라도 독은 알아도 해독제는 모르는데, 이 자는 어떻게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그녀는 발버둥 치며 손을 풀어보려 했지만 그의 억센 왼손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아, 너무 발버둥치지 말라고. 이미 진 게임인데 즐기게라도 해줘야지, 안 그래?”


위로엔은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가슴에서부터 옷을 쫙 찢었다. 그러자 그녀의 상아빛 피부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흡족한 듯 씨익 웃었다.


“좋은 피부야. 도저히 암살자의 피부론 보이지 않는걸.”


그가 자신의 검지로 그녀의 몸 중간을 내려가며 말했다. 캐서린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그는 그것조차 즐겼다.


“마음에 들어. 이 부드러운 살결도, 그 살기어린 눈동자도. 하지만 그걸 일그러트리는 건 더 재미있지. 가르쳐 주겠어. 너도, 너의 민족도 결국 다 내 밑에 있다는 것을.”


그는 거기까지 얘기하며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캐서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아직 포기하기엔 너무 일렀다. 그저 손이 풀릴 기회를 노릴 뿐이다.


지금이다.


푹.


“크아아악!”


순간으로 일어난 일에 남작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캐서린으로부터 물러났다. 그의 왼팔 위엔 어느덧 단검이 박혀있었다. 팔을 따라 흐르는 피에 그의 왼쪽 소매가 붉게 물들어갔다.


한편, 캐서린은 재빨리 놓쳤던 단검을 손에 쥐며 일어섰다.


“이런 미친년이!”


위로엔이 충혈 된 눈동자로 외쳤으나 캐서린은 눈만 가늘게 뜨며 검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길래 붙잡거든 소매부터 찢으라고 제가 당부하지 않았습니까.”


어디선가 제 3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캐서린은 그 자를 찾기도 전에 목이 뜨끔했다.

순간으로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겨우 되찾은 단검조차 다시 놓치며 그녀는 바닥에 쓰려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다. 뿌예지는 시야 속으로 한 남자가 남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캐서린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단순히 힘이 빠져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가 그 남자일 리 없다. 아마 정신이 몽롱해져 상대방을 정확히 알아 볼 수 없는 것이리라.

그녀는 흐려져 가는 정신 속에서도 그를 부정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잃어가는 정신 속에서 한 소년이 떠올랐다.

자기도 나이를 먹는 지금 치사하게 혼자 십대 중반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

오기 직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게 후회되었다. 항상 떠나기 직전에 그에게 인사를 하곤 했는데.

이번엔 그러지도 못하고 돌려보낸 게 이제와 후회되었다. 겨우 다시 만났는데...


‘마틴...’


그녀는 그것을 끝으로 정신이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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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8) 20.09.13 14 0 12쪽
133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7) +1 20.09.13 18 0 9쪽
132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6) +1 20.09.12 24 1 17쪽
131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5) 20.09.09 16 0 16쪽
130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4) 20.09.08 14 0 8쪽
129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3) 20.09.07 24 0 8쪽
128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2) 20.09.04 19 0 14쪽
127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1) 20.09.04 17 0 8쪽
126 탈출기 - 외전 루스리아에서 있던 이야기 - (2) 20.09.02 43 0 7쪽
125 탈출기 - 외전 루스리아에서 있던 이야기 - (1) 20.09.02 13 0 13쪽
124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6) 20.09.01 19 0 11쪽
123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5) 20.09.01 17 0 8쪽
122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4) 20.09.01 14 0 8쪽
121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3) 20.07.16 18 0 10쪽
12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2) 20.07.16 12 0 8쪽
11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1) 20.07.15 13 0 11쪽
118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0) 20.07.14 16 0 10쪽
117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9) 20.07.14 15 0 12쪽
116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8) 20.07.13 12 0 10쪽
115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7) 20.07.13 20 0 13쪽
114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6) 20.07.11 16 0 7쪽
»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5) 20.07.09 60 0 12쪽
112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4) 20.07.08 13 0 10쪽
111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3) 20.07.07 19 0 10쪽
11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2) 20.07.06 22 0 10쪽
10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 20.07.05 25 1 10쪽
108 외전. 티나는 열다섯 살 (5) 20.07.03 2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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