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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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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3
최근연재일 :
2020.09.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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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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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9)

DUMMY

핏빛의 붉은 하늘 아래 길거리는 혼돈이나 다름없다.


온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외치는 고함소리엔 공포가 가득 차있다.


그들은 유령에게라도 쫓기듯 도망치느라 바쁘다. 도중에 넘어져도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칫 도망치는 일행에 밟혀죽는다 하여도 그건 그 사람의 운명일 뿐, 어느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다. 부모를 잃은 아이가 길 한 구석에서 울고 있어도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 그것 또한 그 아이의 운명이다.


그들을 쫓는 거대한 괴물들. 집채보다 큰 괴물들은 손에 든 검으로 미처 도망가지 못한 시민들을 도륙하고 있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다. 그저 도망을 치지 못했다는 죄로 시민들은 어떻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어나간다. 거기엔 한 치의 자비도, 용서도 없다.


괴물들 중 선봉에 선 괴물이 유난히 시선을 끈다. 피에 물들인 거리와는 달리 백색을 자랑하는 그 괴물은 그 어느 괴물보다 더 매섭고 차갑다. 검은 이미 피로 적셔 날 끝으로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발 아래로 피가 튀겨져 있다. 그것이야말로 지옥에서 올라온 저승사자.


장면은 바뀌었다.


여전히 피로 물든 하늘 아랜 거리가 아닌 넓은 들판이 펼쳐있다. 변하지 않은 건 그 하얗던 괴물. 하지만 본래의 순결한 백색은 이제 무색할 정도로 군데군데 붉은 피가 묻어있다. 깨끗하던 망토마저 누더기가 되었다. 피에 굶주린 짐승. 그것을 보면 이런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옆에는 괴물의 키만한 산이 있다. 시체로 만들어진 산. 살과 피가 서로 엉기고 섞여 본래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간혹 가다 보이는 얼굴은 절망과 공포에 눈조차 감지 못했다. 들리지 않는 시체들의 고함소리가 귓속을 맴돈다.


그 위로 한 사람이 서있다. 짧은 검은 머리를 찰랑거리는 한 남자가. 갑옷과 얼굴은 피로 얼룩졌지만 그는 웃고 있다. 얼음보다 차갑고 죽음보다 무서운 미소를.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그만 둬, 헬바스터!-


케이가 목청껏 외쳤다. 그러자 눈앞에 있던 영상마저 사라지고 주위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대신, 검은 곱슬머리를 가진 한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참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네 눈엔 저들의 죽음이 보이지 않느냐. 네 귀엔 저들의 처절한 외침이 들리지 않느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헬바스터를 올려보는 순간에도 공포에 시달리던 눈동자가 보이고, 도움을 애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이미 다 지난 일이야! 이제 와서 이런 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그래 분명 달라지는 건 없을지도 몰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죽은 자들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헬바스터도 눈을 감고 인정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은 얼음보다 차가웠다.


-그럼 묻지. 왜 나를 깨운 것이냐.-


케이는 흠칫했다. 3년 전, 후치가 처음으로 헬바스터에 대한 얘기를 해줬을 때, 그리고 같이 헬바스터를 찾으러가자 그랬을 때, 자신은 왜 승낙했었던가. 그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기는 영혼을 잡아먹는다 전해지는 악마의 검을 원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유는 지금도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닥치게 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어차피 막을 수 없는 미래라면 최소한 그것이 빨리 스쳐지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그 미래를 막아보기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다.


헬바스터는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표정으로. 그의 과거도, 미래도, 그리고 그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 모두 다 안다는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항상 이랬던 건 아니야. 안 그래? 본래 나약하기는 했어도, 내가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케이는 당당하려 했지만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헬바스터는 놓치지 않았다.


-아주 멋지게 놀아 다니고 있구나. 정말 한심해.-

-어느 쪽이든 놀아 다녔던 건 마찬가지야.-


케이의 말에 헬바스터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하지만 적어도 한쪽은 네 운명에 걸맞은 거였지.-

-어차피 난...선택받지 않았어.-


케이가 멈칫거리며 하는 말에 이번엔 헬바스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매서운 눈길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흐르는 피가 바뀌진 않지. 선택받지 않은 건 그 녀석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너는 어째서 녀석보다 못하는 거지?-

-날 그녀석이랑 비교하지 마.-


케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을 들었으니 기분이 나쁠만도 했지만 헬바스터는 상관하지 않았다.


-왜,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그래, 녀석의 말대로다. 너는 약해.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 같은 놈이지. 지가 사랑하는 여자 하나 안아주지 못하는 그런 머저리 자식이란 말이다.-


헬바스터는 그 말을 끝으로 케이에게서 떨어져 등을 돌렸다.


-네가 움직이길 기다리는 것도 이제 지쳤다. 앞으론 내가 직접 움직이겠어.-

-잠깐 기다...!-


하지만 헬바스터는 이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 케이!”


케이는 계속 되는 흔들림에 눈을 떴다. 눈앞엔 진한 분홍색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엘...시아.”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엘시아는 눈시울을 적시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케이는 몸이 덜덜 떨렸다.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엄청난 추위가 그를 감쌌다. 뼛속을 찌르듯이 아프면서도,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감각조차 오지 않았다. 귀가 아픈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너무 추워 두통까지 밀려왔다. 아까도 이렇게 추웠던가. 이 추위 속에 입김이 나오지 않는 게 신기했다.


“추, 추워.”

“아 미안.”


케이가 애써 말로 표현하자 엘시아가 급히 주변의 온도를 높여주었다. 주위가 더욱 따뜻해지자 케이는 겨우 떠는 것을 멈추고 고르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됐을 때 천천히 앉은 자세를 취했다. 엘시아는 그런 그에게 따스하게 마실 것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틴은 모든 관경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게 괜히 온도를 낮춰서 사람 하나 잡고.”

“효과는 있었잖아.”


엘시아가 변명하듯 말했다. 케이를 깨우기 위해 그의 주변 온도를 급격히 낮춘 건 그녀의 계획이었다. 추우면 아무리 졸려도 자다 깨겠지, 라는 게 엘시아의 주장이었다. 효과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반작용도 좀 있는 듯 했다.


케이는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직 몸이 다 녹지 않아 생각도 그리 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누가 없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지크는 어디 있어?”

“티나양을 구하겠다고 먼저 갔어.”


케이는 마틴의 대답에 흠칫했다.


[네가 움직이길 기다리는 것도 이제 지쳤다. 앞으론 내가 직접 움직이겠어.]


헬바스터는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다.


“크윽.”


케이가 벌떡 일어서려 하자 추위에 경직된 근육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무리하지 마.”


엘시아가 그를 부추겨주며 얘기했다. 하지만 케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저택을 바라보았다. 분명 쓰러지기 전까지 어둡기만 했던 저택 곳곳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케이는 이를 악물었다.


“얼른 가야돼. 늦기 전에 티나를 찾아야 돼.”


헬바스터가 먼저 손을 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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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9) 20.09.16 23 0 8쪽
134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8) 20.09.13 14 0 12쪽
133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7) +1 20.09.13 18 0 9쪽
132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6) +1 20.09.12 24 1 17쪽
131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5) 20.09.09 16 0 16쪽
130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4) 20.09.08 14 0 8쪽
129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3) 20.09.07 24 0 8쪽
128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2) 20.09.04 19 0 14쪽
127 제 9 장 저주를 푼 고고학자 (1) 20.09.04 17 0 8쪽
126 탈출기 - 외전 루스리아에서 있던 이야기 - (2) 20.09.02 43 0 7쪽
125 탈출기 - 외전 루스리아에서 있던 이야기 - (1) 20.09.02 13 0 13쪽
124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6) 20.09.01 19 0 11쪽
123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5) 20.09.01 17 0 8쪽
122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4) 20.09.01 14 0 8쪽
121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3) 20.07.16 18 0 10쪽
12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2) 20.07.16 12 0 8쪽
11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1) 20.07.15 13 0 11쪽
118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0) 20.07.14 17 0 10쪽
117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9) 20.07.14 15 0 12쪽
116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8) 20.07.13 12 0 10쪽
115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7) 20.07.13 20 0 13쪽
114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6) 20.07.11 16 0 7쪽
113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5) 20.07.09 60 0 12쪽
112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4) 20.07.08 13 0 10쪽
111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3) 20.07.07 19 0 10쪽
11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2) 20.07.06 22 0 10쪽
10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 20.07.05 25 1 10쪽
108 외전. 티나는 열다섯 살 (5) 20.07.03 2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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