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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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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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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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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1)

DUMMY

티나는 그날따라 산책을 하고 싶었다. 때문에 그녀는 밤을 샌 나머지 낮에 자고 있는 지크를 두고 홀로 거리를 나섰다. 역시 창녀촌이라 낮에는 거리를 나다니는 사람들이 적었다.


“어이~아가씨 혼자야? 좀 이르긴 해도 나랑...”

“슬리프.”


물론 완전히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지크와 관련되지 않은 이상 마법을 사용하길 꺼리는 그녀였으나, 지금 같은 경우는 예외라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땐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사용했던 그녀였지만, 그동안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져 이젠 단순한 슬리프 마법으로 상대방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루스리아가 처음이 아니었다. 4년 전에도 이곳에 온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막 돌아가시고, 보호자를 잃은 그녀를 어떻게 할 건지 고려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함께 그를 만나려고 이곳으로 왔었다.

왜 그때 꼭 이곳이었어야 했는지 모를 일이다. 분명 그가 설명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4년 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왜 그는 이곳으로 오자고 했었는지. 그도 결국엔 남자여서 그랬나.


마틴도 그때 처음 만났다. 당시의 마틴은 거리의 남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열셋밖에 안 되던 그녀에게까지 손을 뻗으려 했으니,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마틴의 변명에 의하면 그때가 최고 반항기라고 했으니, 어쩌면 캐서린이 말한 그때와 같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기억이 맞는다면 저 길목이 마틴과 처음 만났던 장소였다. 한 여자와 놀다가 발각된 마틴을. 발각이라는 표현보다는 그저 지나가다 우연히 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마틴을 버려두고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다음 큰길에서 바로 꺾었다. 그리고...


티나는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4년 전의 재연이라도 되는 걸까? 눈앞에 그가 서있었다.

4년이란 세월이 흘러 예전보다 더욱 성숙해진 그가. 하지만 눈동자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천년의 세월을 한곳에 담아둔 듯 더 이상 속을 알 수 없는 핏빛의 붉은 눈동자.


“삼촌.”


서늘한 가을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흘러 지나갔다.






티나는 말없이 자몽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연주황색 차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걸 바라만 볼뿐 마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루스리아 같은 곳에서 홀로 산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의심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혼자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애초에 나오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어쩌다 이런 상황에 또 빠지게 되었을까.


“너무 그렇게 속상해 하지 않아도 돼, 오늘은 차 한 잔으로 끝낼 테니까.”


디엘이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말하자 티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다 안다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다고 생각해 보지 않으셨나요?”

“그보다 내가 네 왕에게 어떠한 위험이라도 가하지 않을까 걱정되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엔 휴가 차 나왔으니까.”

“그만 읽으세요.”

“굳이 읽지 않아도 알아.”


티나는 다시 울컥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에겐 자신의 속이 훤히 다 드러난다. 선한 감정도, 추한 감정도, 거짓 없이 다.

일부러 딴 생각을 하더라도 결국엔 읽히게 된다. 그래서 싫다. 감추고 싶은 것조차, 스스로를 속이고 싶은 생각조차 다 읽을 수 있으니까.


“세드릭 경이라면 내가 수도를 떠나기 며칠 전에 바나하임으로 떠났어.”


이렇게 말이다. 잔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이 조금 떨렸다.


“묻지 않았어요.”

“하지만 궁금은 했지.”


그녀는 심장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건 그녀도, 그도 속이지 못한다.


그래도 속아줬으면 한다. 다 알고 있더라도 모르는 척 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굳이 저렇게까지 솔직할 필요가 없는데. 그저 모르고 있는 게 나을 일이라면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그가 그녀를 아는 만큼, 그도 그녀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공평하다고.

그게 아무리 그녀를 힘들게 하더라도, 그게 속이는 것보다 나은 행동아리고 생각한다. 그녀가 그를 싫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원하는 게 뭐지요?”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며 물었다. 빨리 일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한 멀리 그의 곁에서 떠나고 싶었다.


“마치 내가 볼일 있을 때만 너를 찾는다는 듯이 얘기하는구나.”

“아닌가요?”


티나가 차갑게 묻자 디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닌 적도 있었지.”


그리고 디엘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무덤덤한 그 말 뒤에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지 궁금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건 가르쳐주지 않는다.


“카일 왕자, 어디에 있지?”


티나는 잠시 눈을 크게 뜨다 다시 진정했다.


“여관에 계세요. 만나실 건가요?”

“아니.”


티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정말 만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럼 왜 물어봤을까? 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오고 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째서 삼촌의 왕은 자신의 동반자를 바나하임의 왕자 곁에 두고 있는 거죠?”

“글쎄.”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란 눈으로 디엘을 바라보았다. 삼촌에게 모르는 것이 있다니. 그것도 자신의 왕에 대해!


“내가 생각을 읽을 줄 아는 건 전하가 아니거든.”


디엘이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티나도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외면했다.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왜 셰릴양을 네 왕 곁에 두고 있지? 아이러니하지 않나?”

“정말 몰라서 질문하시는 건가요?”

“글쎄.”


티나는 미간을 좁혔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그냥 질문으로 받아들일 일도 그가 물어보면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편견이라는 생각에 티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지크님께서 원하셨으니까요.”

“신관처럼 말하는 걸.”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디엘이 말했다. 저건 비아냥거림이 확실했다. 하지만 디엘의 표정엔 웃음기 하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어.”


티나의 찻잔이 조금 떨렸다. 저것도 자신의 생각을 읽은 걸까. 그렇다면 자신의 답 또한 알고 있겠지.


“어차피 누구든 언젠가 죽게 되어있어요. 다 언제 죽느냐 차이일 뿐이죠. 지크님께서 진정한 왕으로 일어서실 수만 있으면 제 역할은 끝날 테니 괜찮아요.”


티나는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디엘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티나가 카페 문을 나서며 물었다. 드디어 해방이었다. 이제 헤어지면 바로 여관으로 돌아가 다시는 안 나올 작정이었다.

이 생각을 디엘도 읽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신경 쓰고 안 쓰고의 문제도 아니었다.

디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니, 볼일 좀 더 보고...”


그가 대답하다가 멈췄다. 그들의 앞에 차를 마시러 왔는지 엘레마 한 쌍이 서있었다. 둘은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디엘을 바라보았다.


:신관 디엘...:


캐서린은 놀라다 못해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모든 것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디엘을 이제 와서 만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그녀였다.

때문에 처음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디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캐서린인가.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맬컴의 죽음은 그 정도의 충격이 되지 못 했나 보지?:

:오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


캐서린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하지만 디엘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못 할 것도 없지. 내가 재미있는 사실을 가르쳐 줄까?:


디엘이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 캐서린은 그의 얼음보다 차가운 시선에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그를 계속 노려보았다. 디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날 밤 맬컴 샤르레이트를 잡아 전하께 받친 건...나다.”

:이 자식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캐서린의 눈이 뒤집히며 그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티나양!:


캐서린이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으나 티나는 둘 사이에 팔을 크게 벌리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켜요!:

:못 비킵니다.:


티나는 더욱 당당히 서며 말했다.


:‘신관 디엘’은 나타샤가 기다려온 마지막 희망입니다. 캐서린 양의 심정을 못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삼촌을 다치게 한다면 그건 나타샤인 제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캐서린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티나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디엘에게 피해를 가한다면 그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공격할 기세였다.

캐서린이라고 저 모습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신관이 나타나길 기다려왔던 건 자신의 고향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신관이 눈을 떠 새로운 왕으로 선택하여 민족이 자유로워지길 기다렸으니까.


하지만 신관은 결국 ‘잘못된’ 왕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라이하트를, 아스가르드의 왕족을 왕으로 택하지 않았는가?

믿음을 깨버린 건 자신들이 아니다. 신관이다.

신관이 제대로 된 왕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X가 탄생했다. 신관이 자신의 책임만 제대로 해냈다면 자기들은 고향을 나오지 않았어도 될 거고, 맬컴 오빠도 그렇게 처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를 감싸겠다고?


그때, 마틴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디엘에게 향해져 있었다.


:왜 그걸 이제 와서 가르쳐 주는지 모르겠지만 사라져. 우린 너하고 볼 일 없어.:

:매우 침착하게 대답하는군.:

:우리가 선택한 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을 뿐이야. 형도 마찬가지고.:


마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디엘은 잠시 조용히 있다 입꼬리를 올렸다.


:훗. 닮은 건 외모만이 아닌가 보군.:


디엘은 그 말을 끝으로 발길을 돌려 거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고개만 돌렸다.


:다섯 명.:

:뭐?:


디엘의 말을 못 알아들은 마틴이 물었다.


:빅터와 같이 있는 암살자, 그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다. 아무리 너라도 혼자선 안 될 거야.:

:다섯...잠깐, 그걸 어떻게...?:


마틴이 놀라 물었으나 디엘은 고개를 돌린 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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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0) 20.07.14 17 0 10쪽
117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9) 20.07.14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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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2) 20.07.06 22 0 10쪽
109 제 8 장 유혹의 라벤더 (1) 20.07.05 26 1 10쪽
108 외전. 티나는 열다섯 살 (5) 20.07.03 2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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