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계림등천(鷄林登天)
高金志
이자의(李資義)가 모반하다가 복주(伏誅)되었다. 처음에 선종(宣宗)이 상서 이석(李碩)의 딸을 맞아들여 후(后)를 삼아 왕을 낳았고, 또 시중 이정(李頲)의 딸을 맞아들여 원신 궁주(元信宮主)로 삼아 한산후(漢山侯) 윤(昀)을 낳았다. 왕이 유약하고 질병이 있어 정사를 청결(聽決)하지 못하고 모후가 국사를 전담하자, 좌우 신하들은 그 사이에서 우물쭈물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금중(禁中)에 군사들을 모아 장차 거사하려고 하였는데, 계림공(雞林公) 희(熙)가 명복궁(明福宮)에 있다가 몰래 알아내어 소태보(邵台輔)에게 말하기를, “국가의 안위가 재상에게 달려 있는데, 지금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공은 도모하라.”
하니, 소태보가 상장군 왕국모(王國髦)로 하여금 군병을 이끌고 들어와 호위하게 한 다음, 장사 고의화(高義和)를 시켜 이자의 및 그의 당여인 합문 지후(閤門祗候) 장중(張仲)과 중추원 당후관(中樞院堂後官) 최충백(崔忠伯)을 선정문(宣政門)에서 참하고, 군사를 나누어 이자의의 아들 주부(主簿) 이작(李綽) 및 장군 숭렬(崇列)·택춘(澤春) 등 17인을 잡아 모두 죽였으며,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 헌종 원년, 을해년(乙亥年), 1095년 (국역 동국통감, 1996.11.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天下爭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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