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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 님의 서재입니다.

고금지 천하쟁패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방만호
작품등록일 :
2015.04.08 13:30
최근연재일 :
2015.05.13 15:1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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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3
추천수 :
155
글자수 :
145,993

작성
15.04.1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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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제11화 계림공(鷄林公) 왕희(王熙)는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하다

高金志




DUMMY

두두두두.......


벌써 세 번째 전령을 실은 말이 쏜살처럼 용호군(龍虎軍) 군영으로 들어왔다. 전령은 쉬지 않고 달려온 듯했다. 장계를 전하자마자 혼절하고 말았다.

백발이 성성한 한 노장(老將)이 묵묵히 장계를 읽어 내려갔다. 눈썹마저 백설(白雪)을 맞았으나, 눈빛은 날선 칼날처럼 예리하다. 이 노장의 이름은 염한(廉漢), 벼슬은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용호군 상장군이다. 오늘날로 치면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하고 있는 셈이다.

염한 옆에 재추의 관복을 입고 앉아있는 또 한 사람....... 중추원사(中樞院事) 류홍(柳洪)이다. 중추원은 군사기밀을 관장하는 부서였으니 오늘로 치면 국가정보원에 해당된다.

“아무래도....... 출병하여 장성을 넘어야할 듯하외다.”

염한은 왕국모가 올린 장계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류홍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확실하게 대군을 몰고 들어가 연개위 그 놈의 목을 베어야지요. 그래야 다시는 오랑캐들이 망동을 하지 않을 것이외다.”

“우리 군의 준비는 끝이 났소이다. 폐하의 명이 떨어진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출병할 것이오.”

백전노장 염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초경이 지난 시각....... 일단의 중신들이 굳은 얼굴로 내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보니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문정(文正), 중추원사 류홍, 병부상서 염한, 좌승선(左承宣) 이의(李顗)다. 신료들 중에 신료요, 중신들 중의 중신이 아닌가? 지난해에 문하시중 이정(李靖)이 죽었기에 재상 자리는 아직 공석이었다.

문종은 담담한 얼굴로 중신들을 맞았다. 황위에 오른 지 벌써 34년째가 아닌가? 세월로 용안은 부쩍 수척해졌지만 총기는 여전했다.

“변방의 사정은 어떻소?”

문종은 중추원사 류홍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성 너머 동번 오랑캐의 우두머리는 연개위와 부내로라는 자가 합세하여 난을 일으켰다하옵니다. 3만이 거병했다고 떠들고는 있으나 실제 병장기를 드는 자들은 많아 봐야 1만을 겨우 넘을 것이옵니다.”

“병부상서, 우리 군은 어떠하오?”

문종은 염한에게 물었다.

“폐하, 우리 군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쳤사옵니다. 출정의 명이 떨어진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정예 군사들이 동계로 진격할 것이옵니다. 하여 5만의 대병이 장성을 넘는다면 십중팔구 적은 지레 겁을 집어 먹고 도주하기 바쁠 것이옵니다.”

염한의 목소리는 기개가 넘쳤다. 문종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물었다.

“이번 출병은 5만의 대군이 거병하는 국가의 중차대한 일이요. 왕자들 가운데 하나를 동행케 한다면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오를 것이요. 누가 합당하겠소?”

순간 내전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황제를 대신한다면 마땅히 장자인 태자가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태자는 병약했다. 전장의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었다. 그 다음은 둘째 국원공(國原公) 왕운(王運)이다. 그러나 그 역시 군사의 일보다는 시문을 더 좋아했다. 그렇다면 셋째 계림공(鷄林公) 왕희(王熙)가 있다. 제격이었다. 왕희는 어려서부터 호방했고 무예도 남달랐다. 특히 활솜씨는 신궁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났다. 허나........

문제는 그가 셋째 왕자라는 것이다. 황위를 이을 형들보다 뛰어난 왕자의 운명이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이 무거운 침묵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었다.

“계림공 마마가....... 적격일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문정이 깊은 침묵을 깼다. 그런데 묘하지 않은가? 연로한 황제는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이다. 문정이라고 황제가 주저하는 그 연유를 모를 리 없었다. 아무리 병약하다고 해도 엄연히 태자가 있는데 셋째 왕자가 황제를 대신해 정벌군과 동행한다는 것은 실로 미묘했다. 그럼에도 문정은 재차 주청했다.

“폐하, 정벌군에 계림공 마마를 동행하게 하신다면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것이옵니다.”

“승지는 들으라.”

문종은 작심한 듯 좌승선 이의를 바라봤다.

“계림공 왕희를 원수로 삼고, 평장사 문정을 병마사로 삼아 여진을 칠 것이니라!”

마침내 여진정벌의 황명이 떨어졌다.


다음 날 모든 문무백관이 선정전(善政展)에 모인 가운데 승지가 나와 큰 소리로 황명을 전했다.

“천리장성 너머의 땅과 그 백성들은 본래 우리의 고려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동번의 추장들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켜 변방을 어지럽게 하니 짐은 더 이상 이를 묵과할 수 없도다. 하여 대병을 일으켜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노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승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정벌군의 지휘부를 호명했다.

“중서시랑평장사 문정을 판행영병마사(判行營兵馬事)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최석(崔奭)과 병부상서 염한을 병마사(兵馬使)로, 좌승선(左承宣) 이의(李顗)를 병마부사(兵馬副使)로 제수하노니 부디 큰 공을 세워 짐과 만백성의 염려를 씻도록 하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문정이 나와 국궁배례 했다.

“또한 계림공 왕희를 원수에 제수하노니 짐을 대신하여 오랑캐를 섬멸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하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젊은 귀공자 하나가 나와 허리를 조아렸다. 모두의 눈이 이 사람에게 쏠렸다. 문종의 셋째 아들 계림공 왕희........ 장차 어린 조카를 밀어내고 황위에 올라 숙종(肅宗)이 되는 인물이다.

이리하여 거란과의 마지막 전쟁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여진정벌이 시작되었으니, 때는 문종 34년 경신년, 서기 1080년 12월이었다.


둥.......둥.......두둥........


북소리에 맞추어 고려 전국 각지에서 모인 1만의 정예병들이 도열했다. 창검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형형색색의 각종 군기는 바람에 춤을 춘다.

이윽고 붉은 갑옷을 갖추어 입은 정벌군의 총사령관 문정이 제장들을 거느리고 상단에 올랐다. 문정은 엄숙한 표정으로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황제가 친히 내린 부월을 높이 들었다.

“전군....... 출정하라!”


뿌우웅....... 뿌우웅........


출정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울리자 정벌에 오르는 장수와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잔뜩 찌푸려있던 하늘은 어느새 진눈개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1만의 정벌군은 잔뜩 기세를 울리며 서서히 개경을 빠져나와 동계의 천리장성을 바라보며 진군해나갔다. 이를 보며 백성들은 울기도하고 웃기도 했다.

“우리 아들 둘이 전쟁터로 갑니다. 천지신명이여, 제발 살아 돌아오게 하소서.”

“그 무슨 소린가? 사내가 전쟁터에 나가면 죽기로 싸워야지.”

“암 그렇지. 이번에야말로 오랑캐놈들 아주 씨를 말려야해.”


이번 출정의 최고 지휘관은 행영병마사 문관이다. 그러나 세인의 눈길을 단번에 끄는 이는 단연 계림공 왕희였다. 은색 갑옷을 갖추어 입고 백마에 오른 그의 풍채는 그 자체로 영웅호걸이었다. 비록 지휘권은 없었으나 황제를 대신하는 정벌군의 구심점이었다. 이렇게 왕희는 영웅의 기상을 만천하에 내뿜고 있었으니 그때 그의 나이 한참 혈기 방장한 26세였다.

개경을 출발한 정벌군은 5일을 행군하여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드디어 정주(定州) 영내에 당도했다. 대장군 왕국모가 철기 1천기를 이끌고 나와 영접했다.

“장도에 오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소장 왕국모가 행영병마사 장군께 문후 올리옵니다.”

문정은 병부상서 염한을 통해 이미 왕국모의 용맹과 지략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정은 왕국모의 두 손을 잡았다.

“내 그동안 장군의 무용에 대한 말은 많이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직접 보니 내 마음이 과연 든든하구먼.”

“과찬이시옵니다. 소장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왕국모는 왕희를 보고 다시 공손히 군례를 올렸다.

“소장 왕국모 계림공 마마께 문후 올리옵니다.”

왕희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장군의 명성은 내 익히 들었소이다. 이리 직접 고려의 제일 가는 용장을 보니 기쁘기 한량없소.”

“황공하옵니다.”

왕국모는 다시 허리를 숙였다.


정주는 이미 전생상태에 돌입해있었다. 장성 너머에서 장사를 하던 고려 백성들은 모두 장성 안으로 철수했고, 갈라전과 통하는 대화문은 굳게 닫혔다. 벌써 피난 갈 짐을 꾸리는 성급한 백성들도 적지 않았다.

행영병마사 문정은 모든 장수들과 참모들을 현청으로 불러 모았다.

“우리는 황제폐하의 영으로 변방을 어지럽히고 있는 오랑캐들을 진압하고자 여기에 왔다. 지난 백년 이래 우리 고려가 이렇게 수만의 군사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장들은 오로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서 반드시 승리를 얻어야 할 것이다. 알겠는가?”

“예! 장군.”

제장들은 큰 소리로 총사령관에게 군례를 올렸다.

“병법에 이르기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다. 적의 군세는 어떠한가?”

문정이 묻자, 왕국모가 앞으로 나와 커다란 지도를 가리켰다.

“적의 주력은 부내로가 이끄는 파지촌(巴支村)의 병력 5천과 연개위가 이끄는 궁한촌(弓漢村)의 병력 1만입니다. 여기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부족들이 합세하는 바람에 도합 3만은 되는 듯합니다.”

“3만이라고 해봐야 결국 오합지졸이 아닌가? 우리에게는 개경에서 온 1만의 정병과 동계의 주진군 5만, 도합 6만의 강병이 있으니 일시에 쳐들어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을 진멸할 수 있을 것이외다.”

병마사 최석이 큰소리치며 나섰다. 그러자 백전노장 염한이 고개를 흔든다.

“모르는 소리요. 여진족은 기마술에는 아주 귀신같은 자들이외다. 부내로와 연개위가 이끄는 적의 주력은 분명 기병일 것이오. 여기에 대한 철저한 방책 없이 무작정 진격했다가는 우리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외다.”

최석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문정이 신중하게 물었다.

“그 연개위란 자는 대체 어떤 자이기에 이토록 강대한 세력을 얻었단 말인가?”

왕국모는 지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연개위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곳 궁한촌은 갈라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옵니다. 과거 발해는 바로 여기에 남경 용천부를 세웠지요. 연개위는 본래 산적질을 하던 도적놈이었는데 스스로를 연개소문의 후예라고 자처하면서 세력을 모으더니 2년 전에 결국 궁한촌 전체를 제 손에 넣고 말았습니다.”

“뭐라? 연개소문의 후예? 세상에 그런 미친 소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최석이 이맛살을 구기며 혀를 끌끌 찼다. 문정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허면 적의 전력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겠구먼. 어허, 어쩌다 장성 너머 오랑캐의 세력이 저토록 강성해졌을꼬.”

왕국모가 심각하게 말을 이었다.

“더욱 염려되는 것이 있사옵니다.”

“더 염려되다니? 어허, 왕 장군 답답하이. 어서 속 시원히 말 좀 해보시게.”

최석이 답답한 듯 재촉했다.

“연개위란 놈이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사옵니다. 도문수 너머의 여진 부족에 격문을 보내 함께 고려를 치자 선동하고 있는데....... 몇몇 부족이 이에 호응하여 군사를 보낸다 하옵니다.”

“고작 산적두목놈의 머리에서 어찌 그런 기묘한 용병술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병마사 최석이 또 목소리를 높였다.

“장군, 무엇을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는 도합 6만의 정병이 있지를 않습니까? 일시에 치고 들어가면 그깟 도적놈의 무리들은 모두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 무슨 소리요? 덮어놓고 진격했다가는 우리 군사들의 피해 또한 매우 클 것이외다. 어찌 그것을 모르시는 게요?”

염한이 또 눈을 부릅떴다.

“어차피 전쟁이 아니오? 적을 죽이다보면 아군의 피해도 감수해야하는 법이지요.”

최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잠자코 있던 왕희가 나섰다.

“내가 나설 자리는 아니지만....... 한 마디 해도 되겠소?”

문정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마마께서는 황상폐하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계신 곳이옵니다.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나이까?”

“좋소. 장성 밖의 땅은 본래 고구려의 것이었고, 우리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소이다. 허면 저 땅과 백성은 결국 우리의 것이 아니요?”

“그렇긴....... 하옵니다만.”

문정은 말끝을 흐렸다.

“또한 저 여진 오랑캐의 일부는 해마다 우리에게 조공을 하며 때로는 귀순하여 우리의 영내에 들어와 살기도 했소. 하니 무슨 연유에서 저들이 반란을 일으켰는지 한 번 저들의 추장들을 이리로 불러와 물어보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니겠소?”

왕희의 말에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좌중에 잠시 적막이 흐른다. 염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마의 말씀이 틀리지는 않사옵니다만....... 우리가 부른다고 저들이 과연 올는지.......”

“해보지도 않고 먼저 포기하는 것은 병법의 도리가 아니요. 더군다나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승리라고 하지 않았소?”

그러자 적의 정세를 가장 잘 아는 왕국모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장의 생각으로 계림공 마마의 말씀이 백번 지당합니다. 한 번 해볼 만한 계책이라 사료되옵니다. 담력이 있고 제법 말 잘 하는 자를 뽑아 적진에 보내 적장을 설득해본다면 우리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승리를 거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고 지휘관 문정이 결단을 내렸다.

“좋다! 한 번 해볼 만한 계책이다. 허면....... 누가 적진으로 가 적장을 설득해보겠는가?”

좌중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인면수심의 오랑캐 진영으로 가 적장을 설득하라니? 쥐에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라는 격이다. 아무도 감히 나서는 자가 없다. 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이 가서 적장의 목을 베어오겠나이다!”

보니 키는 8척이요, 얼굴은 표범처럼 사납게 생긴 장수다. 그러나 왕국모가 문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 장수는 최홍정이라 하는데, 담력과 용력은 있지만 지략이 부족한 장수입니다. 지금 일은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이 아니라 달래는 것이니 적임자가 아닙니다.”

“허어, 우리 고려에 그 만한 담력과 지략이 있는 자가 이리도 없단 말인가?”

문정은 혀를 끌끌 찼다. 인면수심의 오랑캐 추장을 설득하는 일이다. 용기와 힘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소관이 한 번 대임을 맡아보고자 합니다!”

누군가가 일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모든 이의 눈이 이 자에게 쏠렸다. 보니 키는 8척이요 어깨는 떡 벌어졌고 눈빛은 밝게 빛나고 있다.

“귀관은....... 누군가?”

문정은 꽤나 궁금한 표정이었다.

“소관은....... 습유(拾遺)로 있는 윤관(尹瓘)이라 하옵니다.”

윤관....... 장차 고려의 20만 대병을 이끌고 갈라전을 통과해 두만강 너머까지 진격하는 고금대전의 영웅, 그가 그 첫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습유라면....... 종7품의 말직 아니가? 습유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나서는가!”

최석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윤관은 추호도 거리낌 없이 당당하다.

“소관 비록 미관말직에 있는 문관이나 어려서부터 역서와 병법을 읽었고 미미하지만 무예도 좀 익혔사옵니다. 소관을 적진으로 보내주신다면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대임을 완수할 것이옵니다.”

문관은 유심히 윤관을 살폈다. 오랜 세월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의 중심에 서있던 그이다. 거기서 얻은 것이라고는 사람 보는 눈이었다.

“좋다! 내 서찰을 써줄 것이니 내일 아침 적진으로 가거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제야 보니 윤관은 문관보다는 무인에 더 가깝지 않은가?

“행영병마사, 어찌 습유 따위에게 대임을 맡기려 하십니까?”

최석이 징징거리는 소리를 했다.

“허면 자네가 갈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고 나도 20년 전에는 관직이 습유였었네.”

그 말에 최석은 당장 꼬리를 내렸다.

“마마, 저 호방한 습유에게 친히 어주(御酒)를 하사하시옵소서.”

문정이 왕희에게 말했다.

“좋소! 습유는 이리 가까이 오라.”

윤관은 조심스럽지만 당당한 자태로 상단에 올랐다. 왕희는 부드러운 얼굴로 윤관에게 친히 술을 따랐다.

“부디 성공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기를 바라오.”

“망극하옵니다.”

윤관은 국궁배례하며 술잔을 받았다. 앞으로 어린 조카를 밀어내고 황위에 오르는 숙종과 숙종의 명으로 여진정벌에 나서는 고려의 대원수 윤관은 이렇게 처음으로 눈빛을 나누었다.




天下爭覇


작가의말

제2편 여진정벌



동여진이 반란을 일으키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문정(文正)을 판행영병마사(判行營兵馬事),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최석(崔奭)과 병부상서(兵部尙書) 염한(廉漢)을 병마사(兵馬使), 좌승선(左承宣) 이의(李顗)를 병마부사(兵馬副使)로 임명해 보병과 기병 3만을 거느리고 각 방면에서 공격해 적 4 31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 <고려사 세가 문종 34(1080) 경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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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3편 계림등천(鷄林登天) 15.05.13 502 4 2쪽
21 高金志 천하쟁패 시즌 2!! 15.05.13 458 2 6쪽
20 제20화 왕희는 척준경을 호위무사로 거두고 15.05.11 560 2 16쪽
19 제19화 전투는 무사가 하지만, 전쟁은 선비가 한다. 15.05.07 752 3 17쪽
18 제18화 흑수(黑水) 기병이 얼어붙은 도문수를 넘어오다 15.05.03 571 1 14쪽
17 제17화 연개위는 개마산으로 도망치고 15.05.02 516 4 16쪽
16 제16화 왕국모는 병목에서 석적환의 복병에 당하다 15.04.28 539 4 13쪽
15 제15화 고려군은 사면(四面)에서 여진을 공격하다 15.04.22 507 5 15쪽
14 제14화 반간지계(反間之計) 15.04.21 863 5 16쪽
13 제13화 아! ‘밝은 해’ 발해(渤海)여! 15.04.15 588 6 15쪽
12 제12화 윤관(尹瓘)은 단기(單騎)로 적진으로 향하다 15.04.15 510 6 14쪽
» 제11화 계림공(鷄林公) 왕희(王熙)는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하다 15.04.13 673 7 17쪽
10 제10화 도탕군(跳蕩軍) 15.04.13 653 5 19쪽
9 제9화 대장군 왕국모(王國髦) 15.04.13 512 8 14쪽
8 제8화 여한(餘恨)을 칼에 묻고 15.04.13 670 7 15쪽
7 제7화 쌍용대도(雙龍大刀) 15.04.11 639 9 13쪽
6 제6화 척준경(拓俊京) +3 15.04.11 783 11 18쪽
5 제5화 파국(破局) +2 15.04.11 658 7 15쪽
4 제4화 호장(戶長) +4 15.04.08 735 13 16쪽
3 제3화 왈패 +4 15.04.08 899 11 12쪽
2 제2화 이자겸(李資謙) +4 15.04.08 943 14 14쪽
1 제1화 천하 난봉꾼 +4 15.04.08 1,218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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