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평 님의 서재입니다.

고금지 천하쟁패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방만호
작품등록일 :
2015.04.08 13:30
최근연재일 :
2015.05.13 15:1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15,515
추천수 :
155
글자수 :
145,993

작성
15.04.13 13:12
조회
653
추천
5
글자
19쪽

제10화 도탕군(跳蕩軍)

高金志




DUMMY

죄수들의 긴 행렬이었다. 족히 100명은 돼 보이지 않은가? 죄수들은 굴비 엮이듯 한 줄에 매여 정주 성을 나와 동쪽으로 걷고 있었다. 긴 창을 든 병졸 수십이 창끝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죄수들을 감시하며 따랐다. 대체 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사형장일까?

한편에서는 나라의 화평을 기원하는 장대한 팔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만 명의 중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불경을 외우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왕국모를 위시해 동계의 장수와 군졸들이 모두 합장을 하며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사형수들의 행렬 가운데 누군가가 구성진 목소리로 선창을 했다. 그러자 음산한 상여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어허 어어허.......”

“그리도 무정하게 말도 없이 가시는가 이왕지사 가시는 길 꽃길이나 밝고 가고 은하수길 밟고 가소.......”

“어어허 어어허.......”

사형수들의 절망적인 행렬 가운데 척준경과 인점이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준경에게서 예전 불같던 화마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그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있었다. 인점이는 눈을 치켜뜨고 계속 욕지거리를 해댔다.


죄수들의 음산한 행렬이 멈춘 곳은 동해의 검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해안가 절벽 위였다. 거친 파도가 천인단애(千仞斷崖)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꼭 마른하늘에 천둥소리 같았다.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목을 벨 것이면 정주에서 할 것이지 왜 반나절을 걸어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때.......

저쪽에서 군관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 자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굳이 한 마디로 하자면 첫눈에 보는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그런 자였다. 번쾌(樊噲)나 장비(張飛)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으하하하.......”

이 번쾌 같은 군관은 다짜고짜 하늘을 보며 시끄럽게 웃었다. 그 목소리는 천인단애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압도했다.

“나는 네놈들을 저승으로 데려갈 저승자사 고려군 산원(散員)....... 최홍정 군관님이시다!”

최홍정(崔洪正)...... 앞으로 있을 고금대전에서 척준경 못지않은 용맹을 떨치는 고려군의 선봉장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품계는 오늘날 대위에 해당하는 산원이었다.

“네놈들은 하나 같이 인간 망종들이다. 사람을 죽였거나 상해를 가했고, 부녀자를 겁탈했거나 재물을 강탈했다. 한 마디로 사람이 아니라 인 두껍을 쓴 짐승이라는 것이다!”

최홍정은 호랑이 같은 눈으로 죄수들을 쏘아보았다. 그 눈빛이 얼마나 사나운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조정에서 네놈들에게 큰 은혜를 내리셨다. 네놈들의 목숨을 보존할 뿐 아니라 우리 고려군의 일원으로서 나라에 공을 세울 기회를 준 것이니라!”

대체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목숨을 살려주고 나라에 공을 세울 기회라니? 그러자 군졸들이 나오더니 죄수들의 손을 묶고 있던 오라를 끊어주었다. 퀭한 눈으로 먼 바다만 바라보던 죄수들의 눈빛이 순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 네놈들 목숨을 건 훈련을 하나 할 것이다. 여기서 발버둥 쳐서 살아남는 놈들은 사람으로 살 것이나 포기하는 놈들은 짐승으로 죽을 것이다!”

순간 절벽 위에 깊은 침묵이 잠시 흘렀다.

“살고 싶으면 이를 악물고 발버둥 쳐라. 살아서 사람으로 살든지 물고기 밥이 돼 죽든지 네놈들 하기 나름이다. 훈련을 시작하라!”

최홍정이 절벽이 무너질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군졸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창대를 휘둘러 죄수들을 절벽 끝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꼭 소떼를 모는 것 같았다.

목숨을 건 훈련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떤 자들은 절벽과 바다가 무서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매질이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절벽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뛰어 내렸다.

“준경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 가지다.”

인점이는 겉옷을 벗어 자신의 몸과 준경의 몸을 단단히 묶었다.

“제발 살아서 또 보자!”

인점이는 준경의 몸을 얼싸안고 천인단애에서 푸른 바다로 몸을 날렸다.


풍-덩........

척준경의 몸은 차가운 바다 밑으로 한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일까? 그때 무각사에서 들었던 법문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으며, 아무런 생각도 없고 아무런 욕망도 없는 이 물심일여(物心一如) 무념무상(無念無想)...... 이것이 도이니라.”

그러나 척준경의 운명은 해탈의 경지에 오르려는 수도승이 아니었다. 고요한 적막을 깨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못난 놈! 우리를 데리러 온다고 약조하지 않았느냐?”

분명 달래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척준경은 두 눈을 부릅떴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아니 꼭 살아야만 한다.

심장에서 다시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쉬고 있던 화마의 본성이 폭발했다. 척준경은 혼절해서 축 늘어져있는 인점이의 머리채를 잡고 위로 솟구쳤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미니 저 멀리 육지가 어른어른 보였다. 준경은 어려서부터 곡주 대각천에서 물놀이를 하며 자랐다. 물질 하나는 자신 있었다. 그렇게 한 참을 헤엄치고 나니 발이 땅에 닿았다.

준경은 숨을 헐떡이며 뭍으로 올라왔다. 겨울의 끝자락인지라 살을 에는 추위가 몰려왔다. 무심한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보니 스무 명 남짓한 죄수들이 해변 자갈밭에 큰대자로 누워 오뉴월 개처럼 헐떡거리고 있다. 그래도 운이 좋은 놈들이다. 나머지 죄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때였다!

갑자기 와 하는 함성 소리가 들리더니 시꺼먼 복장을 한 한 떼의 사내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다짜고짜 자갈밭에 널브러져있는 죄수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욕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뒤섞여 터져 나왔다. 몇몇 건장한 죄수들은 욕을 하며 저항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척준경은 달랐다. 정신을 가다듬고 한 주먹에 한 놈을 쓰러트리고 검을 뺐었다. 그런데 보니 진검이 아니라 목검이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준경은 목검을 휘두르며 한 놈 한 놈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대각봉에서 무열에게 태극창검술 육바라밀을 익힌 척준경이다. 그의 칼솜씨는 스승 무열을 능가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해변 자갈밭 위에 두 발로 서있는 사람은 오직 척준경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으하하하....... 과연 듣던 대로 귀신같은 솜씨구나!”

빈 항아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호랑이 같은 군관이 나타났다. 최홍정이다.

“놀랍다! 단 20합 만에 살수 스무 명을 골로 보냈구나. 네놈의 이름이 척준경이렸다?”

준경은 흠칫 놀랐다.

“이놈 이름을....... 어찌 군관님이 아시우?”

“넌 이제부터 죄수가 아니라 우리 고려의 도탕군이다!”

도탕군?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 무슨 말씀이신지.......”

최홍정은 솥뚜껑만한 손을 준경의 어깨에 얹었다.

“도탕군....... 이 나라 고려에서 최고의 살수(殺手)들이 모인 악귀들의 부대니라. 으하하하......”

그제야 준경의 목검에 급소를 맞고 쓰러졌던 시꺼먼 복장을 한 사내들이 하나 둘 앓는 소리를 하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최홍정은 이를 보고 불같이 역정을 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 그러고도 네놈들이 이 나라의 최고 살수 도탕군이란 말이냐?”


한편 천리장성에는 전쟁의 짙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만 명의 중이 모여 팔관회를 했건만 평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대장군 왕국모는 두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백팔번뇌에서 벗어나려 정념 하는 수도승 같지 않은가? 이일숙은 무슨 말을 꺼내려 하다가 그만 두었다. 그때 고문개가 들어와 절간 같은 분위기를 깼다.

“대장군, 도탕군의 모든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그런가....... 그 척준경이라는 놈은?”

왕국모는 나직이 물었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습니다. 20합 만에 살수 수십을 일격에 모두 쓰러트렸다 합니다. 신공(神功)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생각보다 운이 좋은 놈이구나. 무열을 만나더니 이번에는 전시(戰時)를 만났어. 지금이 전시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무열이 간곡히 부탁을 했어도 나는 놈의 목을 베었을 것이다.”

왕국모는 미려한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고문개가 한 마디 거든다.

“그래도....... 현령을 살해한 놈입니다. 국법에 따라.......”

“그냥 죽이기에는....... 아까운 놈이 아니냐? 일단 덮어 두었다가 잘 쓴 후에 죽여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이일숙이 정색을 했다.

“대장군, 이제 도탕군을 한 번 써보시지요.”

“써야지. 쓰지 않을 바에야 무엇 하러 공 들여 키운단 말인가?”

“지금....... 쓰시지요.”

“지금?”

왕국모는 부리부리한 눈을 떴다. 이일숙은 동번, 곧 동쪽 오랑캐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갈라전 여진의 가장 큰 약점은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기술이 현격하게 떨어지다 보니 늘 군량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그래서 놈들이 틈만 나면 해적질에 산적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고문개가 시큰둥하게 끼어들었다.

“그걸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지요.”

“역으로 이용하다니?”

왕국모의 눈이 빛났다.

“전에 포로로 잡은 여진 군관에게 슬쩍 정보를 흘려 도망치게 하는 것이지요. 무슨 날 몇 시에 군량을 가득 실은 군량선이 도련포에 도착할 것이라는 정보를 주면 연개위는 반드시 크게 기뻐하면서 해적들을 보낼 것입니다.”

“거 좋은 생각이구먼!”

왕국모는 크게 기뻐했다.

“도탕군은 최정예 살수들입니다. 굳이 정병을 움직이지 않고도 적의 예기를 단번에 꺾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되면 아무리 연개위가 흉포한 산적놈이라해도 쉽사리 대군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렇지! 그리되면 부내로 그 자 또한 단번에 연개위와 손을 잡지는 못할 것이야.”

왕국모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동해에 고려의 군선(軍船) 열 척이 순풍을 맞으며 북으로 향했다. 마침 물길도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으니 군선들은 제법 속도를 냈다. 첫눈에 봐도 군량을 싣고 도련포(都連浦)로 향하는 군량선임에 분명했다. 이제 막 해가 머리 바로 위에서 비추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북쪽 수평선에서 빠르게 남으로 움직이는 작은 점들이 포착되었다. 무엇일까? 어느새 이 점들은 앞선 군량선의 지척으로 들어왔다.

“오랑캐 해적선이다!”

탐망을 하던 수군(水軍) 하나가 날카롭게 외쳤다. 화들짝 놀란 수군 장수가 급하게 명을 내렸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그러나 다급한 고려 수군들이 미처 전투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시꺼먼 해적들이 어느새 사다리를 걸고 갑판으로 기어 올라왔다. 해적들은 다람쥐처럼 재빨랐다. 손 쓸 사이도 없이 해적 20명 정도가 벌써 갑판 한쪽을 장악했다.

고려 수군들은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창과 활을 버리고 앞 다투어 갑판 밑 선실로 쏟아져 들어갔다.

“으하하하........ 저런 머저리 같은 놈들!”

우악스럽게 생긴 해적 두목은 이를 보더니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허공에서 무엇인가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해적들은 찔끔했다.

“고려 도탕군 척준경이 네 놈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채 서늘한 눈빛으로 해적들을 노려보고 우뚝 서있는 자는 척준경이었다.

“뭐야? 저 미친놈은?”

해적 두목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껄였다. 그러나 그것이 놈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쉬이잉!

준경이 쌍용대도를 빼니 사나운 삵이 울부짖는 듯한 울음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동해보다 더 푸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슈-욱....... 퍽.......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짧은 두 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이어 해적들의 놀란 눈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두 공포에 질려있었다. 쌍용대도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해적 두목의 목은 몸에서 분리된 채 갑판 위를 나뒹군다.

졸지에 두목의 횡사를 목격한 졸개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눈만 껌뻑였다. 준경의 쌍용대도가 다시 시퍼런 빛을 내뿜으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 마다 가엾은 목들이 주인을 잃고 갑판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해적 10명이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도 못한 채 저승으로 떠나고 말았다.

나머지 10명 정도가 정신을 가다듬더니 저항이란 것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것이 코앞에 닥친 저승 행을 막지는 못했다. 갑판 위에 또 다시 목이 달아난 가련한 시신들이 쌓여갔다.

척준경은 목을 잃은 채 널브러져있는 한 해적의 헤진 옷으로 쌍용대도의 피를 닦았다.

“다행이우. 오랑캐의 피로 이 칼을 처음 적시게 되어.......”

준경은 나직이 속삭였다.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이날 최홍정은 도탕군 100명을 이끌고 해적 500의 목을 베고, 100명을 포로로 잡았다. 기분 좋게 도련포로 귀항하려는 찰나....... 뜻하지 않은 묘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군량선 한 척에서 여전히 격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뭐야, 저것은?”

최홍정은 소리부터 질렀다. 자세히 보니 예사롭지가 않다. 해적 한 놈이 긴 창을 휘두르며 갑판 위에서 이러 저리 날뛰는데 그 때마다 고려 수군의 목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우라질!”

최홍정은 솥뚜껑 같은 주먹으로 뱃전을 내리쳤다. 그러나 파도가 높아 배를 가까이 붙일 수가 없다.

“대체 저 배에 탄 도탕군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최홍정은 또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런데 자세히 갑판을 살피니 그 배에 있던 도탕군 10여명은 이미 시체가 되어있었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다. 선두에서 세 번째로 항해하던 군량선의 수군과 도탕군은 전멸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담한 현실이 아닌가?

“궁수들은 뭐하느냐? 저 염병할 놈을 쏴 죽여라!”

부하들의 전멸을 목격한 최홍정은 악귀 같이 울부짖었다. 수군들이 활을 겨누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 참담한 군량선으로 몸을 비호 같이 날렸다.

“척준경 저 놈이........”

최홍정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자못 장쾌한 광경이 아닌가? 오랑캐 해적 20명을 단 칼에 벤 척준경과 반대로 고려수군 20명과 최정예 살수 10명을 벤 저 무시무시한 해적 장수와의 일대일 싸움이 닥치고 만 것이다.

“대체 저 놈의 이름이 무엇이냐?”

최홍정은 포로로 잡은 비쩍 마른 해적에게 물었다.

“저 장수는 우리 궁한촌의 소년 대장군 사묘아리.......”

“염병.”

최홍정은 욕지거리를 하며 솥뚜껑 같은 손으로 해적의 면상을 후려쳤다.


사묘아리(斜卯阿里)....... 장차 고금대전에서 고려의 최고 맹장 척준경과 더불어 백합을 겨룬 여진의 최고 맹장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나이는 고작 18세였다.

척준경과 사묘아리는 갑판 위에서 천천히 상대를 탐색하고 있었다. 맹호(猛虎)는 본능적으로 맹호를 알아보는 법이다. 한칼에 적의 목을 잘도 베던 준경도 이번만큼은 신중했다. 사묘아리도 장창을 꼬나 잡고 솔개 같이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준경을 노려봤다. 이윽고.......


타핫!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사묘아리가 먼저 장창을 휘두르며 척준경에서 달려들었다.


이얍!

웅장한 소리와 함께 준경은 쌍용대도를 뽑아 아리의 창을 막았다.


째강........

칼과 창이 부딪히니 번개가 치며 천둥소리가 났다. 쌍용대도와 장창은 서로 엉켜서 무시무시한 힘을 발산한다. 어느 것 하나 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두 맹호는 다시 떨어졌다 다시 뒤엉켜 무시무시한 싸움을 벌였다.

“이런....... 장비와 여포가 만난 것인가?”

최홍정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땀이 흥건했다. 이렇게 척준경과 사묘아리가 겨룬 지 30합이 지났을 때 갑자기 앞에서 작은 해적선 하나가 빠르게 나타났다. 해적 하나가 사묘아리에게 급히 손짓을 했다. 그러자 사묘아리는 긴 창을 거두더니 훌쩍 그 배로 뛰어내렸다. 동시에 해적선은 쏜살 같이 북으로 내뺐다. 빠르게 달아나는 해적선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인가 허전하지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최홍정은 기세를 올리며 고려의 최북단 수군 기지 도련포로 개선했다. 해적의 수급과 포로들은 도탕군이 올린 승리의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사묘아리라는 무시무시한 놈에게 아군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최홍정은 정중하게 전사자들을 수습했다. 그래도 승리는 승리였다.

“오늘밤에는 밤새도록 마신다. 목숨을 내걸고 마시지 않는 놈은 내 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최홍정은 도탕군을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와아.......

도탕군의 함성 소리가 도련포를 뒤흔들었다. 인점이도 좋다고 깡충깡충 뛰었다. 그러나 가장 큰 공을 세운 척준경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때였다!

전령 하나가 다급하게 말을 몰아오더니 최홍정 앞으로 뛰어내렸다.

“급보이옵니다!”

전령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무슨 일이냐?”

“궁한촌의 연개위가 1만의 군사를 몰아 정주 성으로 진격하고 있다 하옵니다!”

“뭐라? 연개위 그 우라질 놈이?”

최홍정은 왕방울만한 눈알을 부라리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하여 대장군께서 급히 명을 전하셨습니다.”

전령은 서찰을 내밀었다. 최홍정은 이를 부드득 갈며 서찰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굳은 얼굴로 도탕군을 바라봤다.

“밤새 술 먹는 것은 다음으로 미룬다. 먼저 연개위 놈의 목을 벤 후에 죽을 때까지 마신다!”

최홍정은 눈알을 부라리며 허리에서 칼을 뽑았다.

드디어 고려와 여진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날 그해의 마지막 눈이 천리장성 위에 소복소복 쌓였다.




天下爭覇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금지 천하쟁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고금지 천하쟁패> 시즌1 종료와 시즌2 개시 15.05.20 457 0 -
23 제21화 태자비가 궁노와 간통하다 15.05.13 710 3 13쪽
22 제3편 계림등천(鷄林登天) 15.05.13 503 4 2쪽
21 高金志 천하쟁패 시즌 2!! 15.05.13 458 2 6쪽
20 제20화 왕희는 척준경을 호위무사로 거두고 15.05.11 560 2 16쪽
19 제19화 전투는 무사가 하지만, 전쟁은 선비가 한다. 15.05.07 752 3 17쪽
18 제18화 흑수(黑水) 기병이 얼어붙은 도문수를 넘어오다 15.05.03 571 1 14쪽
17 제17화 연개위는 개마산으로 도망치고 15.05.02 516 4 16쪽
16 제16화 왕국모는 병목에서 석적환의 복병에 당하다 15.04.28 539 4 13쪽
15 제15화 고려군은 사면(四面)에서 여진을 공격하다 15.04.22 507 5 15쪽
14 제14화 반간지계(反間之計) 15.04.21 863 5 16쪽
13 제13화 아! ‘밝은 해’ 발해(渤海)여! 15.04.15 588 6 15쪽
12 제12화 윤관(尹瓘)은 단기(單騎)로 적진으로 향하다 15.04.15 510 6 14쪽
11 제11화 계림공(鷄林公) 왕희(王熙)는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하다 15.04.13 673 7 17쪽
» 제10화 도탕군(跳蕩軍) 15.04.13 654 5 19쪽
9 제9화 대장군 왕국모(王國髦) 15.04.13 512 8 14쪽
8 제8화 여한(餘恨)을 칼에 묻고 15.04.13 670 7 15쪽
7 제7화 쌍용대도(雙龍大刀) 15.04.11 639 9 13쪽
6 제6화 척준경(拓俊京) +3 15.04.11 783 11 18쪽
5 제5화 파국(破局) +2 15.04.11 658 7 15쪽
4 제4화 호장(戶長) +4 15.04.08 735 13 16쪽
3 제3화 왈패 +4 15.04.08 899 11 12쪽
2 제2화 이자겸(李資謙) +4 15.04.08 943 14 14쪽
1 제1화 천하 난봉꾼 +4 15.04.08 1,218 18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