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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 님의 서재입니다.

고금지 천하쟁패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방만호
작품등록일 :
2015.04.08 13:30
최근연재일 :
2015.05.13 15:1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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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글자수 :
145,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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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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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3화 왈패

高金志




DUMMY

5일에 한 번씩 곡주에 장이 섰다. 그러면 곡주장터는 인근의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모여들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특히 매달 첫 장에는 천리장성 너머의 야인(野人)들까지 온갖 들짐승들의 가죽을 가지고 장터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시장이 별의 별 사람들로 넘쳐나다 보니 종종 여러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흥정하다가 말다툼이 생기고, 말다툼하다보면 종종 주먹이 오가기 마련이다. 또 좋은 목을 차지하고 그 자리를 지키려면 제법 주먹 좀 쓰는 왈패가 필요했다. 물론 관아가 있기는 했으나 백성들에게 관아는 더 크고 더 지독한 왈패일 뿐이었다. 또 왈패들이라고 해야 한 다리 건너고 두 다리 건너면 다 안면이 있는 이웃사촌이었다.

곡주에도 왈패가 있었다. 곡주 가운데를 꿰뚫고 흐르는 대각천(大覺川)을 경계로 그 남쪽의 왈패는 화마(火魔)패로, 그 북쪽의 왈패는 갖바치패로 불렸다.

곡주 북쪽 대각산 변두리에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와 소 돼지를 잡는 백정들이 모여 사는 제법 큰 천민 부락 하나가 있었다. 이 천민부락의 촌장은 갖바치 노점인데, 가죽다루는 솜씨로는 천하에 으뜸이었다. 그 귀신같은 솜씨가 조정에까지 들려 조정은 노점이에게 황실에 쓰는 신을 만들어 받치게 했다. 아무리 천것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황실에서 쓰는 물건을 만들어 공물로 바치니 아무도 노점이를 함부로 대해지 못했다.

갖바치 노점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을 인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놈은 제 아비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성질이 사냥개 모양 거칠었다. 턱밑에 잔털이 나기 시작하자 인점이는 힘깨나 쓰는 아이들을 모아 왈패를 만들어 꼭두가 되었다. 하여 사람들 이 왈패를 갖바치패로 부르는 것이다.

천것으로 살아야한다는 슬픈 숙명 때문인지 갖바치패는 겁이라는 것을 몰랐다. 한번은 사납기로 소문이 난 서경 왈패가 멋모르고 곡주에 왔다가 갖바치패와 한판 붙었다. 그런데 서경 왈패는 패거리 중 제대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 놈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아주 큰 낭패를 보고 말았다. 인점이는 혼자서 곰 같은 서경 왈패 대여섯의 다리를 분질러 놓았다고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요사이 곡주 저잣거리의 최대의 관심은 화마패 꼭두 화마였다. 나이는 이제 갓 열일곱인데, 얼마 전 수년간 왕초 노릇을 하던 꼭두를 한 주먹에 때려눕히고 새로 꼭두 자리에 올랐다 했다. 이놈은 싸울 때 눈에서 시퍼런 불이 나온다고 해서 화마로 불렸다. 들리는 말로는 옛날 여포 같은 놈이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몹시 궁금했다. 대체 이 화마라는 놈은 어디서 나타났고 또 어떻게 하고 다니기에 여포 소리를 듣는 것일까? 또 갖바치패 인점이와 붙으면 누가 이길 것인가?


화마패가 저마다 손에 몽둥이를 들고 대각천 모래밭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니 갖바치패가 강을 넘어온 것임에 분명했다. 마침내 곡주의 모든 사람들이 은근히 바라던 갖바치패와 화마패의 한판 패싸움이 벌어질 모양이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구경거리였다. 소문은 순식간에 장터로 퍼져나갔고, 대각천 모래밭으로 구경꾼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이야기 거리는 단연 화마였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제 겨우 열일곱 어린 것이 꼭두가 됐을꼬?”

“별명을 들으면 모르는가? 오죽하면 그 거친 왈패들이 그놈을 불귀신, 화마라고 불렀겠는가?”

“불귀신뿐인가? 누구는 여포가 살아 돌아왔다고도 하더군.”

“뭐야? 여포가 살아 돌아와?”

“아무리 불귀신이이니 여포니 불려도 갖바치 인점이한테는 안되겠지?”

“길고 짧은 것이야 대 봐야 아는 것이지.”

흉흉하고 힘든 세상이 되었다. 백성들은 왈패들 이야기를 떠벌리며 세상살이의 버거움을 잊으려했다.

드디어 대각천 모래밭에 갖바치패와 화마패가 자리를 잡았다. 두 패거리는 금방이라도 맞붙을 모양으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강가의 구경꾼들은 숨을 죽였다. 그 순간.......

화마패에서 기골이 장대한 소년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화마였다! 별명 그대로였다. 놈의 온 몸에서는 금방이라도 시뻘건 불길이 치솟을 것 같다. 그러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직 앳되다.

“그냥 꼭두끼리 맞붙어서 결판을 내지. 내가 지면 우리 패는 깨끗이 손 털고 장터에서 물러나겠다. 허나 네가 진다면 다시는 이 강을 넘어와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떠냐?”

화마의 음성은 서늘했다. 그러자 인점이도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네가 새로 꼭두가 된 화마라는 놈이냐? 듣던 대로 배짱은 좋구나. 헌데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가 버릇이 아주 막돼먹었구나.”

“시시껄렁하게 입씨름 하지 말고 시작하지.”

화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제법 긴 목봉(木棒) 하나를 머리 위에서 빙빙 돌렸다. 그런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다! 그것을 본 인점이는 일부러 코웃음을 쳤다.

“하하하....... 하는 꼴이 꼭 전쟁놀이하는 코흘리개구나.”

그러더니 뒤를 보고 외쳤다.

“차돌이 뭐하냐? 나가서 저 코흘리개랑 좀 놀아줘라.”

그러자 갖바치 패거리 중에서 제법 날쌔게 생긴 녀석 하나가 두툼한 몽둥이 하나를 붕붕 휘두르며 앞으로 나왔다.

“너 이놈! 갖바치패의 차돌이 형님이라고 들어봤겠지?”

차돌이는 화마 앞에서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화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얼씨구? 역시 코흘리개 놈은 한 번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차돌이는 몽둥이를 붕붕 휘두르며 화마에게 달려들었다.


딱!


무엇인가 둔탁한 소리가 한 번 나더니 차돌이 녀석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모래 바닥으로 쓰러졌다.

“자네 지금 봤는가?”

구경꾼 하나가 친구에 물었다.

“글쎄....... 화마가 작대기를 휘두르는 것 같았는데 워낙 재빨라서.......”

그랬다. 화마의 솜씨는 말 그대로 전광석화(電光石火)였다. 차돌이는 번개보다 빠른 화마의 봉에 제대로 맞아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사납고 겁 없는 인점이라고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차돌이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슬쩍 놀라는 눈치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아무래도 오늘 이 형님이 네놈 버릇을 제대로 한 번 고쳐줘야겠구나.”

인점이는 쓴웃음을 짓더니 오동나무로 만든 목검(木劒)을 붕붕 휘둘렀다. 그러자 뒤에서 패거리들이 요란한 함성을 지르며 꼭두의 기를 북돋우었다. 마침내 구경꾼들이 가장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 갖바치패의 꼭두 겁 없는 사냥개 인점이와 화마패의 꼭두 불귀신 화마가 정면대결을 벌이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인점이는 사나운 눈으로 화마의 자세를 살피다 틈을 발견했는지 고함을 내지르며 잽싸게 목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화마는 슬쩍 피하면서 봉으로 인점이의 오른쪽 다리를 후려쳤다.


퍼퍽!


인점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모래밭에 무릎을 꿇었다. 화마패들은 신이 나서 함성을 질러댔다.

그러자 인점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일어섰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목검을 휘두르며 화마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또 다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인점이는 다시 모래밭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번개보다 빠른 화마의 목봉이 이번에는 인점이의 왼쪽 다리를 후려친 것이다.

구경꾼들은 탄성을 질러댔다.

“허어, 서경 패들도 벌벌 떨게 한 인점이가 아예 상대가 안 되는구먼.”

“역시 불귀신이야. 여포도 울고 가겠어!”

“이런....... 이리 싱겁게 싸움이 끝나나.”

그러나 그렇게 쉽게 쓰러질 인점이가 아니었다. 요상한 미소와 함께 인점이는 또 다시 일어섰다. 소문대로 지독한 놈이었다. 인점이는 절뚝거리면서도 화마에게 또 달려들었다.

그 순간 화마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모두의 눈이 허공으로 향했다. 잠시 후.......


따닥닥!


둔탁한 소리가 이번에는 여러 번 울렸다. 그리고 인점이는 코피를 흘리며 모래바닥으로 꼬꾸라졌다. 화마는 숨 한 번을 헐떡이지 않았다. 이렇게 승부는 싱겁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 화마패는 함성을 지르며 좋다고 난리법석이었다. 반면 갖바치패는 발만 동동 구른다.

화마가 피식 웃음을 잠깐 보이며 등을 돌리려는 찰나.......

“이놈아! 내가 꼭두가 된 것이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다. 맞고 또 맞아도 죽기 살기로 덤벼들기에 꼭두가 된 것이다. 내가 죽어야 이 싸움은 끝난다.”

인점이는 독한 눈빛을 흘기며 또 일어섰다. 그 눈빛에 화마도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 역역했다.

“허어, 과연 인점이는 지독한 놈이구먼. 저리 맞고도 또 덤벼드니.”

“그러게 말이야. 저 화마 얼굴을 보라고. 질려버린 얼굴이야.”

여기저기서 구경꾼들의 감탄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는 꼭두가 아니라 물귀신이구나. 지금껏 내 목봉에 맞고도 너처럼 그렇게 질기게 나오는 놈은 처음 본다.”

화마는 질린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자기 패거리를 보며 번쩍 봉을 들어 신호를 했다. 돌격하라는 것이다.

그러자 와 하는 함성 소리와 함께 화마패가 갖바치패에게 달려들었다. 꼭두 인점이가 화마에게 된통 당한 것을 본 갖바치패는 이미 기가 꺾여있었다. 제대로 주먹 한번, 발길질 한번을 못해보고 화마패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얼마 못가서 갖바치 패거리들은 모두 대각천 모래밭에 나뒹굴었다. 보니 얼굴이 성한 놈이 하나도 없다. 끝까지 악다구니를 쓰던 인점이도 결국 뭇매를 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저편에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런, 진짜 왈패놈들이 오는구먼.”

“그러게 말이야. 좋은 구경했는데 저놈들이 다 망치는 군.”

구경꾼들은 수군거렸다. 호각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관아의 나졸들이었다. 순식간에 나졸들은 왈패들을 둘러쌓다. 아속(衙屬) 하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저 왈패 꼭두 두 놈을 잡아라!”

나졸들이 달려들어 먼저 화마를 포박했다. 화마와 그 패거리에게 제대로 맞은 인점이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졸들은 거칠게 인점이를 포박했다.

저들 꼭두가 포박을 당하는데 가만히 있을 왈패가 아니다. 저마다 욕지거리를 하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졸들에게 대들었다. 아속은 이맛살을 찡그렸다.

“어린놈들이라 봐주려 했건만....... 안되겠다. 따끔한 맛을 보여줘라!”

그 소리에 나졸들은 곤봉과 창대를 휘두르며 대드는 왈패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왈패라고 해봐야 대부분 열여섯에서 스물의 소년들이었다. 갖바치패, 화마패 할 것 없이 왈패들은 나졸들에게 얻어맞아 머리통이 깨지고 팔다리에 피멍이 들었다. 보다 못해 화마가 아속을 쏘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무들끼리 싸움질 좀 한 게 그리 큰 죄가 되우?”

아속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게 어디 동무들끼리 싸움이냐? 너희 두 꼭두놈을 잡아들이라는 호장의 명이시다.”

그렇게 화마와 인점이는 포박당해서 곡주 관아로 쪽으로 사라졌다. 구경꾼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

“하여튼 저놈들은 아무 도움이 안 돼.”

“관아에 붙잡혀 갔으니 또 물볼기를 맞아야 나오겠어.”

“헌데 자네들 저 화마 소식 들었나?”

“소식이라니?”

“저 화마가 글쎄....... 곡주 관아 호장 어른의....... 아들이라 하더군.”

“뭐야? 그게 정말인가?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호장님의 아들이라고?”

“그렇다니까. 내 이종사촌 형님이 호장 어르신 댁 근처에 사시는데....... 화마가 그 어른 아들이라 하더구먼.”

“허어, 아비가 아들 볼기를 치게 생겼구먼.”

“워낙 꼬장꼬장한 양반이니 아들이라고 사정 봐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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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高金志 천하쟁패 시즌 2!! 15.05.13 458 2 6쪽
20 제20화 왕희는 척준경을 호위무사로 거두고 15.05.11 560 2 16쪽
19 제19화 전투는 무사가 하지만, 전쟁은 선비가 한다. 15.05.07 752 3 17쪽
18 제18화 흑수(黑水) 기병이 얼어붙은 도문수를 넘어오다 15.05.03 571 1 14쪽
17 제17화 연개위는 개마산으로 도망치고 15.05.02 516 4 16쪽
16 제16화 왕국모는 병목에서 석적환의 복병에 당하다 15.04.28 539 4 13쪽
15 제15화 고려군은 사면(四面)에서 여진을 공격하다 15.04.22 507 5 15쪽
14 제14화 반간지계(反間之計) 15.04.21 864 5 16쪽
13 제13화 아! ‘밝은 해’ 발해(渤海)여! 15.04.15 588 6 15쪽
12 제12화 윤관(尹瓘)은 단기(單騎)로 적진으로 향하다 15.04.15 510 6 14쪽
11 제11화 계림공(鷄林公) 왕희(王熙)는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하다 15.04.13 673 7 17쪽
10 제10화 도탕군(跳蕩軍) 15.04.13 654 5 19쪽
9 제9화 대장군 왕국모(王國髦) 15.04.13 512 8 14쪽
8 제8화 여한(餘恨)을 칼에 묻고 15.04.13 670 7 15쪽
7 제7화 쌍용대도(雙龍大刀) 15.04.11 639 9 13쪽
6 제6화 척준경(拓俊京) +3 15.04.11 783 11 18쪽
5 제5화 파국(破局) +2 15.04.11 658 7 15쪽
4 제4화 호장(戶長) +4 15.04.08 736 13 16쪽
» 제3화 왈패 +4 15.04.08 900 11 12쪽
2 제2화 이자겸(李資謙) +4 15.04.08 943 14 14쪽
1 제1화 천하 난봉꾼 +4 15.04.08 1,219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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