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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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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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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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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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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나중에 며늘아기한테 좋은 소리 못 들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신년인사회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작년 연말에 대한상의 회장이 교체되는 일이 있었다.

BS그룹 회장으로 바뀌면서 인사차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롭게 대한상의 회장이 된 손 회장은 오성그룹에서 백설제당이 분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해결사로 활약했다.

오성그룹이란 우산 아래서 떨어져 나온 백설그룹이 큰 위기를 겪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손 회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회장이 공공연하게 경영 스승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고, 그룹의 주요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조언을 구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가온그룹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일단은 류지호에게 매우 호의적인 인상을 풍겼다.

손 회장은 오성그룹의 핵심 멤버였던 이력 덕분에 인맥이 상당했다.

이번에 대한상의 회장을 맡게 된 것은 물론이고 온갖 단체장을 다 맡고 있어서 마당발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재계에서도 대표적인 친미성향의 인사다.

미국 인맥과 관련해서는 류지호와 겹치는 부분도 꽤 많아서 신년인사회에서 다양한 부문에서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다.


“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콩을 재료로 하는 음식이 우리나라만큼 발달한 나라가 없어요. 콩을 나물로 무쳐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걸요. 육류 섭취가 부족했던 우리 조상들에게 콩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죠.”


류지호가 파릇파릇한 새내기 사원들과 오찬을 하며 신나게 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룹 신년인사회 참석 대신에 신입사원들과 조촐한 간담회를 가졌다.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는 사업 분야를 주로 찾아갔다.

그 중에 하나가 아네모네 프랜차이즈였다.

신입사원 한 명이 이건 몰랐지 하는 표정으로 당차게 말했다.


“우리나라가 콩 원산지입니다. 의장님.”

“맞아요. 원산지이지만, 미국에서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고 있죠. 내가 알기로 파커 필드에서도 한국에 꽤 많은 콩을 수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콩의 최대 생산 및 수출 국가는 미국이다.

그 다음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순이다.

한국은 주로 미국에서 수입하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콩요리가 발달한 중국은 남미 생산량의 절반을 수입해 가고 있다.


“제가 사람들에게 콩의 원산지가 우리나라라고 하면 다들 놀랍니다. 의장님.”

“하하. 사실 주요 콩 종자특허를 죄다 미국 농업기업들이 가지고 있어요.”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콩(대두)의 원산지를 한반도와 만주 남부(간도)로 보고 있다.

약 5000년 전에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는 미래 중요 자원이 될 수도 있는 콩 종자를 지키지 못했다.

1920년대 미국은 세계 식량종자 확보를 위해 세계 각지의 야생 작물 채취에 나섰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전 세계 야생 콩 종자의 절반이 넘는 3,379종에 달하는 한반도 야생 콩을 채취해갔다.

그걸 토대로 꾸준한 개량을 거쳐 수 천종의 종자특허를 보유하게 됐다.


“한반도에는 미국탐사팀이 채취해 가고도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종자도 많고, 천 종이 넘는 한반도 남부의 고유 콩 종자를 모아서 보호한 식물학자의 헌신도 있어서 미국 기업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며 콩농사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서 콩농사를 대규모로 경작할 수 없어 매년 120만 톤 이상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우리 김형민 사원은 콩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 보군요?”

“제가 농대를 나왔습니다.”


콩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한 신입사원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콩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서구권에서 중요한 식품 원료입니다. 일례로 비건의 재료가 되겠죠. 신문용 잉크도 만들고 섬유는 물론이고 바이오 에너지로도 주목을 받고 있죠. 나는 최근에 Biodegradable plastics(생분해 플라스틱) 분야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어요. 가령 동물의 사료로 쓰고 남은 대두피, 옥수수대나 껍질 같은 것들을 활용하는 것이죠.”


신인사원들이 진짜로 감탄한 것인지 기계적인 반응인지 알 수 없는 탄성을 흘렸다.


“...아~”


류지호는 신입사원들에게 프랜차이즈와 식품사업으로 한정 짓지 말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해 사내벤처를 통해서든 그룹 연구소와 함께 연구개발을 하든, 진취적인 자세로 기업과 스스로의 앞날을 개척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밀레니엄 힐턴 서울에서 진행한 오찬간담회를 마무리하고 나서 류지호는 신입사원들에게 <지구가 정말 이상하다>라는 책을 선물했다.

영화 <투모로우>를 예로 드는 등 쉽게 쓴 글이다.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아 선정했다.

단순한 선물 아니다.

오너가 그룹에 전하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즉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비전이 담겨 있다.

이후로도 나래안전 시스템과 CA미디어를 차례로 방문했다.

임원들과 신입사원이 모인 자리에서 조직 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해소하고자 자유로운 토론문화와 수평적인 회의문화를 강조했다.

그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주의 WaW종합촬영소에서 보냈다.

<군계> 포스트프로덕션에 집중했다.


✻ ✻ ✻


류지호는 매 영화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포스트프로덕션을 진행해 왔다.

이번에는 그럴 수 없게 됐다.

2월 초순에 열리는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WaW와 도쿄다카라는 비경쟁 부문이라도 칸 영화제에 보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베를린 영화제가 류지호를 모시기 위해 지극정성을 보였다.

집행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해 류지호를 만나고 갔을 정도다.

류지호의 위상, 칸 영화제에 좋은 영화를 빼앗기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지난 베니스 영화제의 레드카펫 깜짝 쇼로 인한 흥행성공에 큰 자극을 받았던 모양이다.

한국의 여성 영화인 세 명을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키는 파격도 제시했다.

<군계>는 디지털 영화다.

그를 위해 공식상영관에 D-Cinema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일주일 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음향 전문 스튜디오 Blue Cave의 사운드 디자이너 김정혁이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에서 작업할 때마다 류지호는 사운드 작업만 최소 3개월 보장해 주었다.

할리우드에서 작업할 때는 보통 6개월이다.

이번에는 베를린 영화제 출품을 위해 1개월 만에 뚝딱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

류지호가 엔지니어들을 다독였다.


“배급용 믹싱은 다시 하기로 했으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요.”


일단은 베를린 영화제에 보내는 DCP만 먼저 작업해 놓고, 극장용 프린트와 DCP용 사운드 믹싱을 다시 하기로 했다.

영화의 전반적인 톤까지 바꿀 정도로 획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미진한 부분 위주로 손을 볼 예정이다.


“그냥 칸으로 보내시지 그러셨습니까? 칸 영화제 프로그래머도 초청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집행위원장까지 직접 설득하기 위해 한국까지 왔어요. <복수의 꽃> 인연도 있고 해서.... 베를린을 모른척하는 것이 좀 그래요.”


겸사겸사 JHO와 가온그룹 동유럽 지역 사업도 점검할 계획이다.

독일은 동유럽 진출의 후방 거점 국가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라고 할 수 있다.

JHO Company group 영화사업 부문은 동유럽 국가에서도 합작이나 투자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번 베를린 영화제 초청작 가운데도 합작영화가 두 편 들어가 있다.

여담으로 JHO/Working Title 제작 영화마다 한국인 캐릭터가 은근슬쩍 들어가 있다.

폴 베숑의 유로파 영화에서 한국인 단역들이 종종 등장한다.

기존 전형적인 아시아계 캐릭터가 아니다.

화이트칼라, 유학생, 간호사, 직장인, 예술가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등장하고 있다.

주인공이 아니면 어떤가.

서구인들이 가진 편견을 허물만한 일상적인 캐릭터로 서서히 적시면 된다.

특히 폴 베숑 감독은 툭하면 류지호에게 카메오 출연을 부탁하고 있다.

그 중 미스터 빈 캐릭터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가장 성화다.


“칸에서 수상하시면 그랜드 슬램 아닌가요?”

“최고상도 아니고 주로 감독상만 받았어요. 그랜드 슬램은 아니에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한 것을 두고 그랜드 슬램이라고 칭했다.

한국에서만 따지는 성과다.

국제영화제는 대체로 인맥으로 돌아간다.

칸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으면 꾸준히 칸 영화제로 가고, 베니스가 키웠으면 베니스 영화제와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맺는다.

베를린은 정치색이 강한 편이라, 사회파 감독들이 주로 향한다.

교묘하게 군국주의를 암시하고 있는 <군계>는 베를린 영화제 입맛에 부합하는 영화다.

게다가 류지호를 서로 자기들이 발굴하고 키웠다고 다투고 있는 토론토 영화제와의 경쟁에서 한 발 앞설 수도 있고.


“한국영화로 수상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일본영화로 수상하시는 겁니까?”

“계약상 해외 배급 로고는 WaW 픽처스가 먼저 나가게 되니까. 한국영화이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죠. 합작영화니까 한국과 일본 동시 표기가 될 것도 같고.”


류지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실제 유럽에서는 합작영화가 워낙 많아서 국가 표시는 중요하지 않았다.


“출품 국가가 한국이라서 한국영화 아닐까요?”

“글쎄요. 도쿄다카라는 내 영화에 그렇게 큰 기대가 없는 것 같던데요?”


믹싱 룸에 모여 있는 엔지니어들이 황당하다는 듯 류지호를 쳐다보았다.

매 작품마다 고른 완성도를 뽑아내는 것도 연출력이다.

스타일, 비주얼, 주제의식까지.

류지호가 연출한 영화들 사이에 편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영화가 <군계>다.

BlueCave 곽기윤 대표가 내심 중얼거렸다.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절제를 아는 감독이란 말이야.’


수많은 감독과 작업해 봤다.

그의 경험에 따르며 뭔가를 자꾸 넣는 감독보다 잘 뺄 줄 아는 감독의 영화가 대체로 좋았다.

감독이 자신이 없으면 후반작업에서 요구하는 것이 많아진다.

지금까지 세 편의 한국영화를 하는 동안 류지호는 부족한 걸 채워달라고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확신이 서 있기 때문이다.


“암튼, 혹시나 영화제에서 성과가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도쿄다카라는 내 영화보다 다른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

“다케시 말고 일본 영화가 최근 몇 년간 유럽에서 크게 주목을 못 받고 있어요.”

“아~”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중국 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일본은 애니메이션을 외에 극영화는 예전 같지 못했다.


“혹시 미스터 할리우드 이미지 마케팅입니까?”


류지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일본합작 영화를 안 하셔야 하는 건 아닌지....”

“트라이-스텔라도 단독으로는 일본 시장 쉽게 안착 못해요. WaW는 말 할 것도 없고.”

“성동격서 뭐 그런 겁니까?”

“자리 잡기 전까지 도쿄다카라와 푸지TV에 업혀 가려고요. 하하.”


WaW만 일방적으로 일본에서 돈을 벌어 가면 안 된다.

도쿄다카라와 제작위원회도 돈을 벌 수 있게 해줘야 파트너십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서 언제든지 쓰고 버릴 패가 WaW니까.

더럽고 치사해 할 필요 없다.

WaW는 한국에서나 최고다.

세계적으로 보면 도쿄다카라가 훨씬 우위에 있다.

오늘은 도쿄다카라에 업혀가겠지만, 내일은 도쿄다카라가 WaW에 업힐 수도 있는 법.


“야근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요.”

“회식하러 갑시다.”


BlueCave 전 직원이 미니버스를 타고 종합촬영소타운으로 향했다.

뒤풀이 파티가 종종 열리는 고깃집에서 소고기 파티를 벌였다.

종합촬영소 직원 일부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주변을 배회하다 우연히 합류한 스태프도 있었다.

모두 환영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즐겨요.”


결국 고깃집을 통째로 빌려 신나게 먹고 마셨다.


❉ ❉ ❉


종합촬영소 배후주거지, 즉 여주와 이천에서는 ‘와우타운’이라 불리는 지역은 한때 반짝 주목을 받은 이후로 매스컴에 잘 노출되지 않고 있다.

보도통제를 따로 하진 않지만, 굳이 외부에 떠벌리지도 않았다.

그런 타운의 산자락에 셀럽들이 선호할 만한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넓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들로 그 중 가장 평수가 넓은 주택에 류지호의 부모님이 거주하고 있다.

나래안전 시스템에서 관리하는 이 단지에는 가온그룹에서 은퇴한 전직 고위임원과 고우찬·김민아 부부 그리고 매니지먼트 CHAN 소속 연예인 몇 명이 살고 있다.

초창기 건설된 직원아파트를 제외하고 타운 내 거의 대부분이 주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도 녹지비율이 높은 타운하우스 타입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종합촬영소를 포함해 일대 수백 만평이 모두 가온그룹 사유지다.

아무 업자나 개발을 할 수가 없다.

캘리포니아의 계획도시 어바인의 콘셉트를 한국에 도입한 최초의 시도였다.

새만금간척지에 들어서 계획도시 아리울에도 일부가 적용될 예정이다.


“후우. 후웁.”


류지호와 고우찬이 와우타운 외곽의 산책 코스를 달리고 있다.

이른 시간인데다가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제법 많은 주민들이 새벽 조깅을 즐기고 있다.

주민들과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이 산책 코스를 달렸다.


하아....


달리던 속도를 줄인 류지호가 어깨를 나란히 걷고 있는 고우찬에게 물었다.


“여주군 인구가 10만을 넘겼다고?”

“11만인가 그럴걸?”


여주군 면적의 거의 대부분은 산과 농경지가 차지하고 있다.

여주읍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나가면 바로 농경지가 펼쳐진다.

농사 외에 다른 산업이라고는 종합촬영소가 유일했다.

종합촬영소 대각선 남한강 건너 지역은 모 종교가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여주 읍내를 중심으로 종교 단체 자본의 영향력이 강하다.

여주 읍내는 여는 농촌지역처럼 규모가 작다.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터미널에서 군청까지 걸어서 15분이다.

그럼에도 인구수나 각종 여건상으로 시로 승격되는데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시 승격 이야기는 없어?”

“왜 없어? 그 문제로 여주가 아주 시끄러워.”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

“대부분의 지역민이 바라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농어촌 혜택을 못 받는다고 반대하나봐.”

“작년에 뉴월드와 아울렛 첼시의 합작이 성사되지 않았나?”

“여주유통단지에 대형 아울렛 단지 공사를 시작했다나봐.”

“2007년 상반기 개장?”

“그럴걸?”


북쪽은 세종대왕릉을 중심으로 관광이, 동쪽은 종교가, 남쪽은 종합촬영소와 아울렛이 자리함으로써 여주군은 더 이상 농업지역이 아니라 농업·서비스 복합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타운에는 몇 명이나 살고 있냐?”

“대략 3,000명... 유동인구는 하루 5,000명이 훌쩍 넘는다더라.”

“주요 행정기관과 근린시설은 다 들어와 있지?”

“치안센터, 면사무소, 보건소, 은행, 마트... 다 들어와 있어.”


걸음을 멈춘 류지호가 고우찬을 돌아봤다.

고우찬이 부모님 집으로 들어왔다.


“왜 계속 따라와. 집에 안 가?”

“VVIP 밀착 마크 중.”

“장모님 계시는 게 불편해?”

“애도 봐주시고, 반찬도 해주시는데, 왜 불편하겠냐?”

“처가살이 하는 기분은 안 들고?”

“주말에는 아버지도 오고, 대가족 같아 북적거려서 좋아.”

“아저씨는 여주로 안 오신대?”

“회사가 인천에 있으니까. 출퇴근이 어렵잖아, 여주는.”


고급 전원주택 단지에서도 가장 넓고 전망도 좋고 건물도 많은 대저택.

류지호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주택은 방이 정말 많았다.

독립된 게스트 하우스도 따로 존재했다.

부자가 소탈하고 털털하면 만만하게 여기는 이들이 꼭 있다.

그래서 일부러 크고 웅장하고 넓게 저택을 지어 드렸다.

과시를 위해서.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부모님 앞에서 언행을 조심하도록 기를 죽여 놓기 위해서.

그런데 류지호의 바람과 달리 저택의 문턱이 매우 낮았다.

부모님은 인근 농가 주민들을 초대해 자주 잔치를 벌이거나, 다울재단이 후원하는 저소득층 가족들을 수시로 초대해 주말에 쉬다갈 수 있게 하고 있다.


“수영장은 왜 안 만들었어?”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야외 수영장은 실효성이 전혀 없으니까. 나중에 애들 생겨서 수영을 가르치거나 일상이 되도록 해주려면 가까운 센터에서 시키는 게 나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웃들과 교류할 수도 있고.”


돈 아끼려고 안 만든 것이 아니란 소리다.

그리고 실내외 바비큐 파티장를 널찍하게 만들어 두었다.

외가친척들과 친목계 회원들을 초청해 즐기시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본래 의도와 다르게 다양한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는 곳이 되었지만.


“3,000평이었지? 재산세 만만치 않겠어?”


넓은 정원과 네 채의 건물이 있다.

담장도 그리 높지 않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수도 있지만, 조경수가 잘 배치되어 있어 외부에서 내부 전경을 자세히 볼 수는 없다.

뒤뜰에는 작은 연못과 물레방아가 있는 소박한 정자가 있다.

가을에는 코스모스 꽃길이 조성된다.

따스한 봄이 되면 봄꽃들로 장식되고.

부모님이 손수 꽃을 심고 가꾼다.

류지호가 살고 있는 벨에어 저택처럼 건물이 크고 웅장하진 않았다.

본관이라고 할 수 있는 3층 건물만 조금 컸다.

한편에는 한옥도 한 채 지어놓았다.

전통 구들장으로 만들어놓았다.

자식들이 결혼해 식구가 늘 것으로 고려해 프라이빗한 공간을 많이 구성해 두었다.

고우찬의 아버지 고성재가 운영하는 중소건설사가 시공했다.

참고로 외환위기는 고성재의 건설회사도 피해가지 못했다.

공사대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자금압박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 류지호가 외가 어른들의 집을 새로 지어주었다.

여주 WaW종합촬영소 타운의 전원주택 단지도 모두 고성재 회사의 작품들이다.


“얼마야? 아빠는 그렇게 비싸진 않다고만 하던데.”

“17억 정도....”

“겨우?”

“깡촌이잖아.”

“그런가?”

“뉴월드 아울렛 개장하면 좀 오르려나?”


이 저택에는 모두 6명의 가사도우미가 일하고 있다.

두 명의 입주 도우미는 JHO Security 소속의 외국인이다.

부모님의 영어 울렁증 극복을 겸해 거주(F-2) 비자를 가지고 있는 필리핀 여성 두 명을 고용했다.

한 명은 한국인과 결혼한 여성이었는데, 추후 영주권을 받게 해줄 계획이다.


“온 김에 밥 먹고 가.“

“땡큐 서얼~”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류지호와 고우찬이 식탁에 자리 잡았다.

류민상이 국을 뜨는 걸 확인하자마자, 고우찬이 우렁차게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어머니의 집밥이다.

항상 그립기만 하고.

류지호 곁에 찰싹 붙어 앉아 있는 심영숙이 손으로 묵은지를 쭈욱 찢었다.


“오늘 서울 올라가?”

“예.”

“결혼식 전에나 보는 거니?”

“뉴욕에서 지내실래요?”

“얘는.... 니들 깨 볶는 걸 어떻게 보고 있겠니. 눈치 보여서.”


류민상이 입을 열었다.


“신혼여행은 영화 촬영 끝나고 갈 계획이라고?”

“영화 한편 더 끝내놓고 일 년 쉬려고요.”

“잘 생각 했다. 회장에게 듣기로는 가온도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하던데, 장기 휴가 내서 푹 쉬는 것도 좋은 생각 같구나.”

“온 가족이 반 년 정도 크루즈 여행이라도 다닐까요?”


심영숙이 굴비를 발라 류지호 밥공기에 올려주며 말했다.


“신혼여행은 부부가 오붓하게 다녀야지. 나중에 며늘아기한테 좋은 소리 못 들어.”

“일 주일짜리도 있고, 이주짜리도 있어요.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비싸잖아.”

“1박에 1천 2백 정도라고 얼핏 들은 것 같네요.”


심영숙이 깜짝 놀라 물었다.


“....배에서 지내는데 하루 천만 원?”


고우찬이 입안에 넣고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스위트에서 지내셔야죠.”


심영숙이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그저 묵묵히 식사만 할 뿐.


“미국 동부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크루즈가 있을 거예요. 예약이 다 차있을지도 모르니까. 함께 가시려거든 출국 전까지 말씀해 주세요.”


고우찬이 알기로 류지호는 초호화 유람선을 아예 사버릴 수도 있다.

일 년 내내 레오나와 세계일주를 다닐 수도 있다.

자신이 알기로 도널드 제이콥이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유람선 사업을 궁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알아본 초호화 유람선 가격이 대략 11억~15억 달러 사이였다.

중급 유람선은 그 보다 더 쌌던 것으로 기억했다.

크루즈급 요트는 그 10/1 가격에 살 수 있고.

친구의 일 년 소득만 가지고도 메가요트 한 척은 우습게 구입할 수 있다.


“우찬아?”

“으, 응?”

“재정이 더 바빠지기 전에 우리 애들과 동반으로 보름짜리 유람선 여행 할까?”


류지호가 가족여행의 방향을 바꿨다.


“우린 스위트에서 못 지내는데?”

“꼭 최고 럭셔리 객실에서 지내야 맛이냐? 내가 비용은 다 책임질 테니까 애들하고 의논해봐.”

“좋았쓰! 휴가 한 번 맞춰볼게.”


성년이 되고 나서 친구들끼리 모두 함께 여행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류지호뿐만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 너무 바빴다.

마침 장기휴가를 낸다고 하니 오인방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호화 유람선이어야 할 이유도 없고.

가까운 제주도에서 며칠 지내다 와도 된다.

류민상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지호야.”

“예. 아버지.”

“유람선도 좋고, 세계 여행 다 좋은데.... 미국의 그... 그 목장 있지 않니? 그곳으로 가족들을 초대해 보면 어떠냐?”

“J&L Bell Ranch요?”

“그래. 네 엄마와 함께 가보니까, 한국 시골하고 다른 정취가 있더구나.”

“어른들은 몰라도 친구들은 지루할지도 모르는데.....”


심영숙이 끼어들었다.


“재욱이네, 재정이네는 미국에 한 번도 안 가본 것으로 알아.”


가까운 일본과 동남아시아 휴양지는 몇 번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과 유럽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해본 것이 사실이다.


“유람선을 타는 것도 좋지만, 미국에 한 번 초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심영숙이 반색했다.


“그래, 아들! 목장에서 지내는 게 심심하면 LA나 라스베가스 구경 가도 되고. 여행은 모름지기 구경하는 게 남는 거야.”


류지호가 고개를 돌려 고우찬을 쳐다봤다.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찬성! 바다 한 가운데 배 안에 처박혀 일주일 동안 좀 쑤셔서 어떻게 지낼지 막막하다. LA는 볼 것도 많고. 한국 돌아오기 전에 Bell Ranch에서 2박3일 정도 캠핑도 하고 낚시도 하고 카우보이도 구경하고.”

“나는 뭐든 상관없으니까, 어른들하고 의논해봐.”

“알겠어.”

“아버지도 따로 아저씨들과 의논해 보세요.”

“그러마.”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친구 부모들을 찾아뵙고 있긴 했다.

아무 인연도 없는 이들에게는 돈을 펑펑 써대면서, 정작 가까운 이들에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환갑잔치 안 하시는 거... 확실히 결정하신 거예요?”

“아빠도 안 했잖아. 요새 누가 환갑잔치를 하니?”

“마음 바뀌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그냥 아이들 불러서 미역국에 케잌에 촛불 끄면 되지 뭐. 아빠하고 여행이나 다녀 올란다.”

“두 분 다 건강하셔야 해요. 칠순 잔치는 성대하게 치러드릴게요.”

“그래. 우리 아들이 얼마나 성대하게 차려주는지 꼭 엄마가 봐야지.”


오인방 부모님들은 연배가 엇비슷했다.

몇 년 전부터 아버지들이 환갑을 맞았는데, 잔치 대신 해외여행을 다녀오셨다.

대신 칠순 잔치는 자식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받겠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단다.


작가의말

<잡설> : 오리지널에서는 여주와 무주에 주인공이 투자를 많이 하는 것으로 설정을 잡았었는데, 리메이크 되면서 새만금에 몰빵하는 분위기가 되는 분위기입니다. 오리지널 쓸 때 여주와 무주 구글 맵 켜 놓고 상상속에서 심시티를 했었는데 리메이크 하면서 해외 계획도시를 찾아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송도, 세종시... 솔직히 성냥갑 같은 멋대가리 없는 아파트만 빼곡하기만 하고. 친구가 그럽니다. 한국인이 저출산을 걱정하는 이유는 더이상 아파트를 짓지 못할까봐서라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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