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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의 서재

초급던전에 들어간 SS급 내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날꺽새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7
최근연재일 :
2021.08.18 18:40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18,456
추천수 :
746
글자수 :
447,712

작성
21.08.09 08:30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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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안진태

DUMMY

이 순간을 처음 계획했던 건 언제였더라?


송국. 그를 죽이고자 했던 마음은 실험실 안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힘이 없었을 뿐이지, 가능하다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그를 죽이고 싶었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 말에 학대받던 아이들이 몇 명이었던가?


'갈급함이 부족해서 그래.'

그딴 말에 굶어 죽었던 아이가 몇인가?


'배고프면 옆에 있는 녀석이라도 잡아먹게 돼 있는 거야.'


어젯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안진태는 두 눈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마모되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살아남아야지?'


하지만 그 얼굴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을 하찮게 내려다보는 눈, 비릿하게 올라가는 입술, 우월감에 젖어있는 표정.


실험실은 우월반과 열등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퇴원'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이 대부분 사라졌을 때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으나. 처음에는 확실히 구분되어 아이들이 섞일 일도 없었다.


의사들에게 있어서는 함구해야 하는 사항이었기에. 그 구분에 대해서 아는 아이는 많지 않았다.

정확히는 말하자면, 우월반 아이들은 알지 못했다.


열등반 아이들은 우월반에 대해 알고 있었다. 송국이라는 남자가 매일 떠들어 댔으니까.


'너희는 낙오자다. 우월반과는 다르지. 재능도 없는 것들이 살고 싶으면 이를 악물어라.'


우월반이 나름 규칙적인 생활과 실험이 진행되는 학교 같은 이미지였다면. 열등반은 스파르타식이었다.


때리고, 뒹굴고, 서로 죽일 듯 심리적으로 몰아붙이는 게 열등반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퇴원은 주로 우월반보다 열등반에서 먼저 치러졌다. 그들에게 있어 퇴원은 곧 시체 덩어리였으니까.


열등반 아이들의 숨통이 조금 틜 수 있게 된 건, 송국의 부재 덕이었다.


'나머진 너희가 알아서 해라.'


장난감에 질린 것처럼. 그는 그 말과 함께 실험실을 떠났다.

이유가 뭐였을까? 다른 일이 생겨서? 더 중요한 관심거리가 나타나서? 아니면 정말 흥미가 떨어졌을 뿐일까?

후에 생각하기엔 다른 실험실로 간 게 아닐까 추측되기도 했다.


이유야 어쨌든, 결국 타인의 손에 걸려있는 운명이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안진태는 독종이었다. 우월반이 퇴원하는 사이에도 끝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어쩌면 그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도 함께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남은 네 사람. 그중 셋은 열등반이었다. 단, 한 명만이 우월반이었다.


장은미, 안진태. 그리고 그가 의지하던 형.

송채린을 제외한 세 명은 열등반 출신이었다.


연구 결과를 놓고 보면, 송채린은 신체 구조상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어떠한 기프트를 들이밀어도 거부반응이 적었다.


반면, 나머지 열등반 셋은 천부적 재능과 거리가 먼. 오롯이 후천적으로 발현된 적성 덕에 살아남았다.

기프트는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어쩌면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강했던 셋일지도 모른다.


송채린은 실험실에서도 송채린이었지만. 열등반 출신들은 이름 대신 숫자로 불렸다.

그렇기에 '안진태'나 '장은미'는 실험실을 벗어나며 스스로 지은 것이다. 다시 말해, 안진태가 의지하던 형에겐 이름이 없었다.


번호는 기억한다. 넘버 88.


탈출 계획도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계획을 실행할 당시, 안진태는 송채린까지 챙기려는 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셋과 달리 우월반 출신이니까.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지 '선생님, 선생님' 하며 의사들을 따르니까.


하지만 그런 반대에도 형은 고개를 저었다.


'포기는 한번 시작하는 순간부터 계속되는 거야.'


형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허망하게 떠나버리는 녀석들을 보면서도. 시체를 가만히 지켜보며 형은 그렇게 말했다.


결국 누군가 죽을지언정. 형은 끝까지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았다.

참 바보 같은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언젠가 형을 죽이게 되는 칼이 될 거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안진태는 그게 참 후회스러웠다. 자신의 말이 이루어져 버린 것 같아서. 자기가 매일 그런 소리만 지껄여대서 형이 진짜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탈출하는 순간 안진태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두 명은 끝까지 책임지겠노라고. 형이 했던 것처럼.


그렇게 흘러온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안진태는 송채린이 무슨 짓을 하든 보살폈고. 장은미가 스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칼을 들이밀지 않았다.


조용히 계획을 짜맞출 뿐이었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타개할 방법.


장은미가 송국의 딸이라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제시카' 그녀를 만났던 시절이니까. 지금으로부터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스파이 짓을 한다고 눈치챈 건 2년 전이었다. 배신감이 말도 아니었다. 당시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모든 게 거짓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실험실에서 훈련받던 안진태라면 그렇게 결론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적지 않았고. 안진태 또한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분명 이유가 있다.'


그 목적을 알기 위해 조사했다. 누구라도 배신자일 수 있다고 의심했고. 필요에 따라 그룹원들을 언제든 버릴 준비도 했다. 최근에는 죽음을 위장해 자취를 감추기도 했었다.


그렇게 활동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안진태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송국을 바라보았다.


"당신, 요즘 상태 안 좋다며?"


장은미는 왜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까? 아니, 그들은 왜 이제 와서 장은미에게 접근했을까?


장은미도 결국 열등반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적합자라면 그녀보다 나은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


"당신 새로운 육체를 원한다며? 그래서 그렇게나 관심 없던 새끼들을 이제 와서 싸그리 찾고 다닌다던데."


결국 송국이 원하는 건 자신의 유전자였다. 그의 DNA를 가진 육체.

그는 혈육을 자신의 인공 신체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겠지. 자신이 사용해야 하니까. 자만으로 뇌가 찌들어 있는 주제에, 뒤에선 야비하게 꿍꿍이를 품고 있었다.


녀석이라면 장은미보다 우월반이었던 송채린을 원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장은미에게 뭐라 지껄였을지 상상이 갔다.


따르지 않으면 송채린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겁박했을까? 말만 잘 들으면 대신 희생하게 해주겠다고 자비를 베푸는 척했을까?


장은미는 송채린에게 죄책감을 품고 있다. 아니, 송국의 자식 모두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 이유를 안진태는 알고 있었다.


정작 잘못한 놈은 송국인데. 죄책감을 느껴야 할 쓰레기는 녀석인데.

장은미는 마치 자신이 죄를 저지른 것처럼 늪에 빠져 있었다. 극도의 상태까지 학대받았던 탓이겠지. 그녀는 열등반 시절.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세뇌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그 상처를, 놈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도 이용하고 있었다.


"당신도 죽는 게 무섭긴 한가 봐?"


「닥쳐라.」


"리더가 그러던데···"


오랫동안 조심스레 공을 들인 덕일까? 접촉까지가 까다로웠지, 막상 그를 꾀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자만은 질투를 부른다. 그리고 질투는 잘못된 판단을 저지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열등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는 리더를 상대하는 건, 안진태에게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죽을까 봐 무서워서 자기가 기생하는 던전을 못 떠난다 하더라고."

그 던전이 이곳이다.


'기생'이라는 단어에 검은 것들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자만으로 똘똘 뭉친 송국에겐 퍽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 모습이 안진태는 만족스러웠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럼 어디 한 번 도망가 봐."


안진태가 궐련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못 하잖아?"


씨익. 그의 입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도망치지 않는 게 아니라, 도망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검은 것들의 입에 다시금 에너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강대한 힘을 쉽게쉽게 쓰는 것 같지만. 송국에게도 연달아 쓰기엔 버거운 기술이다.


「좀 들어 줄랬더니, 정도가 없구나.」


그런데도 저 오만방자한 놈은 마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시간을 보낸 것마냥 굴었다.


짧은 도발에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송국은 치졸한 인간이었다. 비유하자면 총을 들고 있는 아이였다. 제 힘에 취해 전혀 성숙하지 못한 인간.


막상 그 총이 제 기능을 못 할 때가 되니, 불안한 거겠지.


한 편으로는 그 자만스러운 모습이 그대로라 다행이었다. 송국이 평소처럼 기프트를 쏘아냈다면 안진태는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쿠구구구구궁----!!!!!


하지만 녀석은 구태여 자신을 과신하기 위해, 또다시 브레스를 뿜을 준비를 했다.

녀석조차 상처 입힐 수 있을 만한 에너지 덩어리. 어마어마한 기백을 품은 것들이 그의 입에 빠르게 응축되어 갔다.


'무식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안진태는 일부로 가슴팍을 내밀어 비장의 수가 있다는 듯 보여주었다. 송국은 그런 것들을 전면 부인하듯 힘으로 찍어누르려 했다. 자기가 가장 잘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장치를 누가 만들었겠냐.'


리더. 열등의식 가득한 그는 모든 일에 조심스러웠다. 나쁘게 말하면 쫌생이었다. 확실한 것이 아니면 절대 배팅하지 않는 쫌생이.


그런 그가 송국을 죽이기 위해 만든 폭탄이다. 던전에서 비밀리에 사용하는 물건들은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친다. 효과는 믿을만할 것이다.


시전자의 목숨을 담보로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 공간 안에서 송국만큼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까드드드드득----!!!!!


기계에서나 날 듯한 소음이 온몸을 울렸다. 욱신대는 통증과 함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후우-"


마지막 흡입을 끝으로 안진태가 태우던 궐련을 털어냈다. 이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이다.

늘 죽음만큼은 간신히 빗겨내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힘들 것 같다.


천천히 눈을 감는다. 죽는 연습이라면 이미 해봤다.


죽음을 꾸며낼 당시. 돈으로 일궈낸 그룹원 중에 눈물짓는 이는 없었다.

장은미에게는 처음부터 꾸며낸 죽음이라고 알렸기에 반응을 보진 못했으나. 아마, 송국만 사라진다면 잘 지낼 것이다.


걱정되던 것은 송채린이었다.


'으흑, 흐윽.'


송채린이 눈물짓는 건 낯설었다. 자신의 죽음을 접한 녀석은 그렇게 온종일 눈물을 흘렸다.

감회가 새로웠다. 녀석도 나를 위해 이렇게 울어주는구나. 머쓱한 기분도 들었다.

그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걱정이었다.


'그냥 안 죽었다고 알려줄까?' 그런 생각이 들 때였다.


놀랍게도. 딱 하루가 지나니까 다시 일어나더라.

자리에서 일어난 송채린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매번 시킨 일도 제대로 하지 않던 녀석이. 자신이 무얼 해야 하고,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가늠했다.

마치 안진태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처럼.


그룹을 유지시켰고, 다음 후보를 찾았다.

그게 최준성이었다.


그 곁에서는 다시 웃음 짓더라. 다시 또라이처럼 굴더라. 그 모습에 안진태는 안심했다.


'채린이 잘 부탁드려요.'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마지막 때가 되니 괜스레 간절한 기분이 든다.

그런 생각에. 최준성이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회중시계를 사용한 그는 안진태가 설정해놓은 장소로 이동했을 것이다.

마음이라도 닿을까, 그가 떠난 자리에 대고 유언 비스름한 것을 뱉으려는데···


"하아-"

"너···"


그가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최준성!!"


너무도 다급한 마음에 안진태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천천히 움직이는 최준성의 고개.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그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결혼이다 뭐다 하더니. 뒤지려고 그랬던 거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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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또 다른 루트의 연장선 21.07.31 44 3 12쪽
68 퀘스트형 던전 21.07.30 4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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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기류 +2 21.07.28 59 3 12쪽
65 관계정리 21.07.26 50 3 13쪽
64 소풍이었던 것 21.07.24 52 4 12쪽
63 소풍 21.07.23 48 4 12쪽
62 곰과 너구리(3) 21.07.22 57 3 12쪽
61 곰과 너구리(2) 21.07.21 55 3 13쪽
60 곰과 너구리(1) 21.07.19 57 3 12쪽
59 또 다른 루트 21.07.17 61 4 12쪽
58 팀 활동(3) 21.07.16 61 4 13쪽
57 팀 활동(2) 21.07.15 66 4 13쪽
56 팀 활동(1) 21.07.14 74 5 12쪽
55 송채린(2) 21.07.12 7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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