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날꺽새의 서재

초급던전에 들어간 SS급 내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날꺽새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7
최근연재일 :
2021.08.18 18:40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18,450
추천수 :
746
글자수 :
447,712

작성
21.08.13 07:40
조회
29
추천
2
글자
12쪽

전환되는 것들

DUMMY

덜컹. 오래도록 누워만 있던 육체가 잠에서 깨어났다.


"젠장, 젠장. 젠장!!"


뻐근한 감각이 다 물러가기도 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송국의 머릿속을 휘저어댔다.


"이 개새끼가···!!"


새로운 몸을 만드는 건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리더'에게조차 숨겨왔던 능력.

송국의 기프트는 언뜻 모래와 같은 사철과도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띠었는데. 그건 바로 그의 의식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타인의 몸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처음이 언제였더라? 정보를 캐야 하는 인간을 고문할 때였던 것 같다.


고문할 때. 그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묶어둔 후, 물에 얼굴을 처박는 것을 즐겼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손짓에 생사를 맡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우월감과 희열이 빳빳하게 올랐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물이 없었고. 비슷한 행위를 하기 위해, 자신의 기프트를 사용해 봤다. 숨을 쉬지 못해 벌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며, 송국은 따로 물을 구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일이 발생했다.


"커헉."


송국의 기분이 좋지 않아 유독 강도가 심했던 날이었다.

고문당하던 녀석이 축 몸에 힘을 풀며 꿈쩍도 안 했고. 송국은 죽어버렸나 쯧쯧 혀를 찼다.


"흐으-"


의자에 등을 푹 기댄 채 눈을 감자, 묘한 포근함이 그를 덮쳤다.

다시 눈을 뜨니 의자에 등을 기댄 자신이 보였다. 놀란 마음에 거울을 비춰보자. 거울 속에는 고문당하던 녀석 나이 또래의 자신이 있었다.


송국은 그때 깨달았다. 나는 선택받은 인간이구나.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인간을 기프트에 처박아 넣었는지 모른다. 그때부턴 고문할 대상이 필요한 게 아니었기에, 적당한 젊은 남성이라면 아무나 저질러 버렸다.


하지만 그런 형상은 매번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혹시 몰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기프트에 담갔던 적도 있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렇게 해서 얻은 육체라고는 딱 세 개였다.

그중 하나는 너무 늙은 자여서, 금세 숨을 거뒀다.


고통은 그대로 전해졌기에,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등줄기가 오싹하다. 그래도 나머지 둘은 퍽 젊은 사내였기에 만족했다. 그렇게나 소중히 하던 육체였다.


그리도 중요한 몸 두 개가 모두 부서져 버렸다. 그것도 동시에, 그 개자식 때문에···!


"씨발!!"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으세요?"


고개를 드니, 간호복을 입은 여인 하나가 자신을 안쓰럽게 내려다보고 있다.


신분을 세탁시킨 후, 시골 요양원에 등록해 놓은 몸. 거울에 비친 주름진 노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본래의 몸은 너무도 초라했다.

어쩔 수 없이 이 몸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있었지만. 송국은 그럴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허리는 좀 괜찮으세요?"

"나가!"


노인의 외침은 너무도 보잘것없었다. 물러가는 간호사는 자기들끼리 수군댄다. 분명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조악한 입을 놀리며 감히 흉을 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병신 같은 몸!"


'씨익, 쉬익.' 화를 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왔다. 자신은 이런 몸뚱이에 갇혀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송국은 그렇게 되뇌었다.


"···."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송국이 사납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꺼지라고···!"


간호사가 아니었다. 젊은 남성. 끼이익,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앉는 사내를 보고 있자니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네, 네가··· 여기, 어떻게···?"

"···."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노인을 훑어봤다.


"바, 방금까지. 아··· 아니."


갑작스레 마주한 상황은 공포에 가까웠다.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하는 송국이 벌벌 떨었다.

요양원은 던전과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육체 자체가 나누어져 있던 송국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방금까지 그곳에 있던 사람이 이곳에 있기란 말이 안 됐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날 아나 봐?"


그 물음에 송국은 꿀꺽 숨을 삼켰다. 확실히. 풍기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단순히 얼굴만 같은 게 아닐까? 아니면 다른 속임수가 있는 건가?' 한참을 눈치만 보다, 송국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 뭘 원하나?"


결국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그게 뭔지 파악하는 게 먼저다.


"아니, 내가 물었잖아."

"뭐를···."

"나 아냐고."


사내의 눈은 감정이 텅 비어있는 것만 같아서 속내를 알기 어려웠다.


"그게···"

"아, 답답해. 됐어, 됐어."


무표정한 사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냥 입 다물고 있어."


후욱. 갑작스레 변하는 눈동자. 그 눈동자의 송국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백색으로 변한 수정체는 백내장을 앓는 사람 같았다. 그 눈동자는 '텀블'의 것을 훔쳐 온 것만 같았다.



+



"활용도가 무척이나 좋은 던전이네요!"


송국이 사라지고. 주인을 잃은 던전은 인트의 손에 들어갔다.

'도망가자, 왜 이런 짓을 하느냐.' 따위로 떠들 땐 언제고 안면을 싹 바꾼 녀석은 던전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신세를 졌네요."


기운이 딸려 바닥에 대(大) 자로 뻗어있는데, 안진태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겠어? 말대로 녀석 몸이 다른데 더 있을 수도 있잖아."

"전부 찾아서 죽여야죠. 마침 잘 됐네요. 준성 씨 따라 '리더'를 만나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요?"

"그래, 서두르자."


안진태가 최준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몸으로요?"

"금방 나아."

"목적이 자살이 아니라 복수라면 정비 먼저 하시죠. 어차피 그쪽도 이미 냄새 맡고 위치를 옮겼을 텐데."


최준성이 억지로 상체를 일으키려 했으나, 툭 밀어내는 안진태의 손에 다시 엎어진다.


"그렇게 급했으면 아까 가셨어야죠. 제가 기껏 말씀도 드렸었잖아요."


내려다보는 녀석의 시선 사이로 앞단이 찢어진 와이셔츠가 보였다. 안진태의 가슴팍에서 요상스러운 빛을 뿜어대던 장치는 조용했다.


"뭔진 몰라도···. 기껏 몸에 박아 넣었는데, 이제 쓸 일 없겠네?"


시선을 느낀 안진태가 와이셔츠 앞단을 여몄다.


"글쎄요. 나중에라도 사용할지 모르죠."


그의 얼굴에는 평소와 같은 자본주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준성 씨도 뭐가 났는데요?"


안진태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머리를 만져보았다.


"뭐야, 이거?"


딱딱한 감촉. 강하게 쥐어봐도 떨어지지 않는다. 무언가 묻어있는 게 아니었다. 머리에 돋아나 있었다.


"뿔 같은데요?"

"뭐?! 무슨 뿔?"


와락, 인상을 구긴 최준성이 인트를 향해 소리치려는데. 안진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사라지네요."


손끝에서 느껴지던 감촉도 점차 부드러운 알갱이를 만지는 것 같더니, 이내 만져지는 게 없었다.


"뭐야···"


인펀트를 흉내 낸 탓일까? 영 찝찝하다. 위력이 상상 이상이긴 했으나,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뭐였나요?"

"모르겠는데."


안진태는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으나, 최준성이 답해줄 말은 딱히 없었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모르는 게 참 많군요."


벌러덩 누워있는 최준성의 옆으로 안진태가 앉았다.


"준성 씨는 그런 적 없나요?"

"뭘?"

"모든 상황에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혀 모르고 있었던 때 말이에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진이 쭉 빠진 탓에 이것저것 따질 힘이 없었다. 나른한 몸과 멍한 정신으로 최준성은 잠깐 생각해 봤다.


다 안다고 착각하고 실수했던 적.


많이 있었다. 특히 대학생 시절에.

최준성은 기프트 등급 자체가 높았고, 성적도 좋은 편이였기에. 학비를 전액으로 면제받았었다.

하지만 그 정도론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이 있었으니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학비 이외에 추가로 지원받는 장학금이 필요했다.


교내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은 학비를 넘길 수 없었기에. 특별한 성과를 내려고 여러 대외활동에 손을 댔다.

던전테크 역시, 그런 활동을 하다가 엮이게 된 회사였다.


뜻대로 잘 풀려서. 모든 게 자신의 실력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었고. 자기 잘난 맛에 취해서,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려 들기까지 했다.


"많았지. 그러다 죽을 뻔도 봤는데."


수두룩한 과오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중에서도 딱 떠오르는 일이 있다.

문이 세 개 있던 퀴즈 영역. 어떠한 문을 먼저 열어도 몬스터가 나타나고, 꼭 마지막 문을 열 때만 채집 영역으로 넘어가던 던전 유형.


남들이 문의 패턴을 파악하고 있을 때, '그까짓 문제쯤이야.'라고 생각하며 모든 문을 동시에 열어젖혔었다.

그런 짓을 하고서야 알았다. 남들이 왜 그렇게 속단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연구하는지.


우르르 떨어지는 몬스터에 충격을 받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뉴스에도 실렸지. 잘못된 공략법이라며. 고차장님은 아마 죽을 때까지 술 마시는 족족 그때 일을 꺼내들 것이다.


"그때는 주위에서 말려도 안 들렸어.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니까 남들은 다 틀린 것처럼 보이더라고."


최준성이 안진태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참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다.


"그렇군요."


안진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담뱃갑을 꺼내 들었으나, 안은 비어있었다.

툭, 빈 껍데기를 던전 한쪽에 던지며 그가 말을 이었다.


"오늘 느끼는 게 참 많네요. 준성 씨 덕입니다."


감사의 표현임에도 그닥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보답할 겸. 채린이랑 결혼하실 때, 제가 사회를 보겠습니다. 식장 분위기는 책임져 드리죠."


아니나 다를까 이상한 소리를 주절댄다. 최준성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자. 그는 즐겁다는 듯 쿡쿡 웃음을 토했다.


'무시하자.'


최준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을 웃던 안진태가 미소를 거두며 조금 차분한 얼굴로 입술을 움직였다.


"앞으로는 저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어요."

"송채린한테 관심 없다니까."


너무도 진지한 얼굴로 그런 소리를 하기에, 최준성이 선을 긋듯 말했다.


"그거 말고요."


최준성을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그의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혼자 옳다고 생각하고, 멋대로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에요."


안진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최준성은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



와장창-


별장 밖까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날카로운 목소리는 송채린의 것이었다.


'알아서 처리해.' 문고리를 잡은 최준성이 안진태에게 눈치를 줬다. 안진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천천히 문이 열렸다.


"삼촌!"


제일 먼저 소리친 건 너구리였다. 그 옆으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곰. 와중에도 벨라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무표정하게 신문을 읽고 있었다.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건 역시나 송채린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부엌칼이 들려 있다.

의자에 묶여있는 장은미의 손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기프트를 방해하는 물건이었다.


김누리가 구세주를 발견한 것마냥 계속해서 안진태에게 눈짓했다. 그에 따라 안진태가 천천히 송채린에게로 다가갔고. 그제야 너구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태 오빠. 오늘은 진짜 나 건드리지 마. 진심이야."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가 보랏빛 머리카락 사이로 흘렀다. 하지만 경고에도 안진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빠 후회···"


철컥, 총을 장전하는 안진태. 기겁한 김누리의 눈이 아까보다도 커다래졌다. 놀랜 건 너구리뿐이 아니었다.


"해보자는 거지?"


배신감과 분노가 치민 송채린이 칼날을 아래 방향으로 돌려 잡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그런데 이상했다. 안진태의 시선이 꽂혀있는 건 송채린이 아니었다.


"말해."


총구가 향한 방향은 장은미 쪽이었다.


"왜 그랬어?"


안진태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급던전에 들어간 SS급 내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장기 휴재 관련 공지입니다. 21.09.14 26 0 -
공지 연재 시간 변경 공지입니다.(수정) 21.06.25 46 0 -
공지 21.07.22) 후원 감사 공지 입니다. 21.06.09 98 0 -
81 시작 21.08.18 34 2 12쪽
80 즐거운 파티 21.08.16 28 2 12쪽
79 서툰 표현 21.08.14 32 2 13쪽
» 전환되는 것들 21.08.13 30 2 12쪽
77 단말마의 총성 21.08.12 34 2 13쪽
76 자만하지 않는 의심 21.08.11 36 2 12쪽
75 안진태 21.08.09 37 3 12쪽
74 작별 인사 21.08.07 39 2 12쪽
73 거북한 인사 21.08.06 38 2 12쪽
72 세 번째 작전 21.08.05 41 3 12쪽
71 송국 21.08.04 40 3 13쪽
70 정리되지 못한 것들 21.08.02 43 3 12쪽
69 또 다른 루트의 연장선 21.07.31 44 3 12쪽
68 퀘스트형 던전 21.07.30 46 3 12쪽
67 완벽한 오답 21.07.29 51 2 13쪽
66 기류 +2 21.07.28 59 3 12쪽
65 관계정리 21.07.26 50 3 13쪽
64 소풍이었던 것 21.07.24 52 4 12쪽
63 소풍 21.07.23 48 4 12쪽
62 곰과 너구리(3) 21.07.22 56 3 12쪽
61 곰과 너구리(2) 21.07.21 55 3 13쪽
60 곰과 너구리(1) 21.07.19 57 3 12쪽
59 또 다른 루트 21.07.17 61 4 12쪽
58 팀 활동(3) 21.07.16 61 4 13쪽
57 팀 활동(2) 21.07.15 65 4 13쪽
56 팀 활동(1) 21.07.14 73 5 12쪽
55 송채린(2) 21.07.12 75 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