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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의 서재

초급던전에 들어간 SS급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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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7
최근연재일 :
2021.08.18 18:4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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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4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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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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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관계정리

DUMMY

실험실을 나온 순간부터 송채린은 장은미에게 날카롭게 굴었다.

생각도 읽을 수 없었기에, 송채린은 그녀가 더욱 싫었다.


속내도 모르는 상대와 가까워지기엔. 마음속 어린 소녀가 가진 상처는 너무도 컸다.


불신하기에 기대하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기에, 실망하지 않았다.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송채린의 방식이었다.


차라리 욕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적대적일지언정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상대방이. 그녀는 더 편했다.


그런 점에서 장은미는 송채린에게 상당히 불편한 존재였다. 진심을 알 수 없는 호의. 심하다 싶은 것까지도 장은미는 해냈다. 그게 오히려 송채린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장은미에겐 송채린의 말을 들어야 하는 어떠한 사유도, 의무도 없었으니까.

'안진태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닌 것 같았다.


안진태가 자리를 비웠던 3개월. 장은미는 송채린을 모른 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송채린이 막말을 하든, 자기를 이용해 먹든. 뻔히 보이는 수에도 장은미는 응해줬다.


송채린은 도저히 장은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밉기도 했다. 안진태는 그녀를 의지하는 것 같았으니까.

최근만 해도 그렇다. 자신에게는 죽었다고 속였으면서. 장은미에게는 계획을 모두 알려줬던 모양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송채린에게 장은미는 그런 존재였다.


'믿는 순간 시커먼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가까이하면 그만큼 자신을 상처 입힐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결코 다가가지 않았다. 늘 경계했고, 마음을 놓지 않았다.


흔들릴 때도 있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 옆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 자연히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괴롭게 신음하며 피를 토해내던 마지막 모습이.


그럴 때마다 내색하지 않기 위해 송채린은 자리를 피했다.

회피하면 울컥이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는 멀어졌다.


아무리 작은 앙금이라도 치우지 않으면 쌓이게 된다. 그리고 썩는다.

그렇게 곯아가던 감정이. 마침내 술에 빗대어 터져버린 것이다.


"왜 계속 알짱대냐고!"


장은미의 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감정이었기에 날카로웠고. 감추기만 해왔기에 서투른 표현이었다.


"말했잖아. 동생이라고."

송채린을 바라보는 장은미의 표정이 한층 가라앉는다.


동생과 언니라는 관계. 하물며 오빠까지도. 그건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했다. 그저 나이만으로 순번 매긴 유대.


어린 소녀에겐 수많은 오빠가 있었고, 수많은 언니가 있었다.

언니 오빠들은 자신이 향하는 방향도 모른 채, '퇴원'이라는 명목 아래 사라져 갔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문 너머로 그들은 발을 옮겼다.


당시 어린 송채린에게도 퇴원은 긍정의 의미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자신도 퇴원하길 바랐으나, 한편으로는 남몰래 문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

방어 기제가 완성되기에 소녀는 아직 어리숙했고. 그렇기에 이별이 아팠다.


떠난 이들은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웃던 시간도, 이름을 불러주던 시간도. 병원 문을 나서면 모두 잊혀지는 것만 같았다.


실험실에서 맺어진 관계는 그만큼이나 얄팍하고, 불안정한 것들뿐이었다.


그런데 언니기 때문에 잘해줬다? 단지 그딴 이유로?

그동안 피하기만 했던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송채린의 얼굴을 망가트렸다.


"그딴 가족 놀이 집어치워!"


날카로운 음성이 퍼진다.

놀란 너구리가 몸을 움츠렸고, 그 옆에 있던 곰도 잠자코 눈치만을 살폈다.


"언니는 무슨 얼어 죽을 언니? 우리가 피라도 섞였어?"


그 말에 옆에 있던 안진태가 두통을 느끼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마치, 기피하던 문제를 마주한 것처럼.

반대로 당사자인 장은미는 담담했다. 그리곤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송채린에게 답했다.


"어. 섞였지."


"장은미!"


안진태가 장은미를 쏘아보았다. 술 먹고 실수하지 말라는 눈빛.

그도 그럴 것이. 장은미가 내뱉으려는 말은, 안진태가 함구하고 있던 진실이었다. 그것도 장은미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서.


'말하게 된다면 꼭 자기 입으로 하고 싶다.' 당시 장은미는 안진태에게 그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말해야 했을 내용. 하지만 이런 형태는 아니었다. 적어도 술에 취한 상태로, 그것도 감정의 휩싸여 꺼낼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뭐야, 똑바로 얘기해."


하지만 말이라는 건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었고. 송채린은 확실히 집고 넘어갈 심산이었다.


"너랑 나랑은 피가 섞여 있다고."

장은미의 대답은 그녀의 표정처럼 담담하게 들을만한 게 아니었다.


"지금 무슨 말 같지도···"


"우린 아버지가 같아."


투득. 송채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뜯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떠나버린 사람.

가뜩이나 통제되지 않는 감정선 위로. 원초적인 분노가 기름을 부었다.


"어머니는 다르지만."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자리를 피해줘야 하나.' 고민하는 최준성이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귀가 쫑긋 솟은 너구리와 눈이 왕방울만 해진 곰. 둘도 처음 듣는 소린가 보다.


"우와, 정말? 그럼 뭐, 우리가 배다른 자매라도 되는 건가?"


송채린이 죽은 눈을 하고선 쿠쿡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입만 웃고 있어서 살벌했다.


"언니 그렇게 안 봤는데···"


키득키득 웃음 짓던 입꼬리가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진짜 또라이네?"


"······."


"왜? 자매라서 미친 것도 닮았다 그러지."


안진태가 말릴 것도 없이, 송채린의 손이 장은미에게로 날아갔다. 그녀의 기프트에 따라 기이하게 꺾이는 팔. 막을 수 없다. 아니, 애초의 장은미는 막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장은미가 눈을 감았다.

송채린은 대인전에 있어 강한 편이다. 반면, 장은미는 직접적인 전투와는 거리가 멀다. 그대로 있으면 장은미의 턱이 돌아갈 상황이었다.


송채린은 진심이었다. 어쭙잖게 손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윽."


너무 취해 있었다.


기이하게 꺾이는 송채린의 몸이 균형을 잃었다. 그리곤 절대 박을 수 없을 것 같은 모서리에 머리를 찧고 만다.

과한 기프트 사용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녀는 기프트를 제대로 가누기 버거울 정도로 술을 들이마신 상태였다.


쿵. 송채린이 탁자에 머리를 박자, 퍽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렸다. 고꾸라진 보랏빛 머리카락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야, 야! 송채린!"


뒤늦게 안진태가 상태를 살폈다. 정신을 놓았다는 것 빼고, 다행히 특별한 상처는 없어 보였다.


충격으로 인해 벌게진 이마. 그보다 붉은 홍조.

얼굴이 얼마나 빨갛던지. 머리를 박아 기절한 건지, 취해서 쓰러진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어휴- 진짜."


일부로 들으라는 듯. 안진태가 장은미를 흘기며 한숨을 뻑뻑 내쉬었다. 장은미는 시선을 피하더니, 이내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진태가 송채린을 업고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상황이 일단락됐다.

곰과 너구리가 돗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벨라가 치우는 것을 도왔다.


'작전 전에 파티를 하면 성공률이 30%나 오른다더니.'


성공은커녕, 실패율이나 안 높아졌으면 좋겠다.


'많이도 마셨네.'


송채린이 앉아있던 자리에선 와인이 몇 병이나 나왔다. 많은 양을 빠르게 들이킨 탓에 더 취했던 모양이다. 와중에도 안주는 김밥뿐이었는지, 다른 빈 그릇은 보이지 않았다.



*



"아아- 오빠, 나 머리 아파--"


아침부터 칭얼거리는 송채린은 평소와 같았다. 한결같이 시끄러웠고, 목소리에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해독할까요?】


송채린 또한 인트와 링크되어 있기에, 숙취 정도는 쉽게 몰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준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쟨 좀 아파야 돼.'


주사가 너무 심했다. 조절 없이 마셔대는 것도 문제였다. 숙취로 고생 좀 하다 보면 다음엔 그나마 덜 마시겠지.


"준성 오빠아아아--"


"시끄러."


침대 위에 올린 접이식 식탁. 그 위에 올린 라면. 아주 상전이 따로 없다.


"오빠가 요리한 거야?"


끓는 물에 면이랑 조미료만 넣으면 끝인데, 이걸 요리라 부를 수 있을까?


"매일 오빠가 만들어준 요리 먹을 수 있었음 좋겠다."


"욕심도 크다."


어제 하도 발광을 하길래, 상태나 볼 겸 온 건데. 상태를 보아하니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아-"


젓가락을 들 생각은 안 하고, 송채린이 입술만 뻐끔댄다.


"뭐 하냐?"


"먹여죠."


얼굴에 들이부어 버릴까 하는 충동을 참으며 방을 나왔다.


"···."


방에서 나오는 길에 장은미와 마주쳤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어제와 달리 평소와 같은 차분한 얼굴이다.


'어떻게 둘이 똑같냐.'


소란의 두 원흉은 날이 밝음과 동시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진짜 둘이 자매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뭐면 어때.'


괜히 깊게 알아봐야 신경만 쓰인다. 장은미와 송채린이 친자매던, 배다른 자매던, 아예 남남이던. 최준성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서두르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3일 후에는 돌아오셔야 합니다."


안진태의 당부였다. 앞으로 3일. 최준성은 동생을 만날 생각이다.


이미 수성이 옆에는 최준성을 닮은 몬스터가 있다. 사실상 그가 직접 동생을 만날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단순히 최준성의 이기심이었다.


자신과 하진이를 흉내 내는 것들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자.

자꾸만 떠오르는 불길한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안진태의 두 번째 작전에선 최준성이 할 일이 마땅치 않았다. 직접적으로 괴수나 기프터를 만날 일이 없을뿐더러. 기프트 사용이 예민한 던전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눈에 띄는 일은 가급적 삼가해주세요."


그것을 마지막으로 최준성이 차에 몸을 실었다. 장은미의 기프트를 이용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관뒀다.


장은미가 위치를 전이하기 위해선, 최소한 한 번 이상 대상과 접촉한 적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최준성을 닮은 몬스터를 만져본 적이 없었다.


굳이 다른 방법을 찾자면 여러 안이 있었겠지만. 최준성은 그냥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수성이 근처는 가급적 조용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부르릉, 우렁찬 엔진 소리를 타고 진동이 퍼져나갔다.


꽈악-


차의 진동만큼이나 심장이 떨렸다. 그렇게 오랜만에 집으로 향했다.



+



【당신의 더미는 던전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최준성을 대신하는 몬스터는 짧은 휴면에 들어갔다.


딸랑-


따뜻한 느낌의 조명과 포근한 인상의 갈색 벽. 가게 안에 들어서자, 유리벽에 가로막혀 있던 그윽한 커피 향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당신의 행복을 기프트'


분홍색 글귀 앞으로 보이는 계산대. 그 앞에는 그리운 후배의 얼굴이 있었다.


"어, 선배! 오늘은 좀 늦었네요?"


눈앞에 존재는 뼈보다 단단한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를 흘리는 대신 대리석처럼 부서질 것이며. 본래의 기프트는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저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에요?"


그럼에도 녀석의 목소리는 너무도 낯이 익었다. 그의 행동은 여전히 한결같았다.


"진짜 계속 이런 식이면, 저도 파업 들어갑니다?"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것은 너무도 하진이를 닮아있었다.


"연봉 올려주세요!"


옅은 웃음. 그에 화답하기 위해, 최준성 또한 억지로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공동 창업이면서 무슨. 거의 반반으로 나눠주잖아."


핀잔을 주듯.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건넸다. 그러면 하진이는 불만 섞인 목소리로 중얼댈 것이다.


"반반은 무슨··· 분명 딴 주머니 찼을 거야."


혼잣말인 듯, 전혀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중얼거림.

이제 다시 핀잔을 줄 차례였다.


'당연히 대표가 돈을 더 받아야지.'

그러면 또 '공동 창업이랬으면서 대표는 무슨.' 따위에 답을 들을 테지.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선배?"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눈치를 살피는 녀석.

저것도 그저 입력된 행동일 뿐일까? 스위치를 끄면 멈춰버리는 로봇과 똑같은 것일까?


자꾸만 마음 한구석에서 불쾌감이 요동쳤다. 참아야 했다. 수성이를 보러 온 거니까.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행동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최준성은 딱딱하게 굳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선배가 뭐냐? 사장님한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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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송국 21.08.04 40 3 13쪽
70 정리되지 못한 것들 21.08.02 44 3 12쪽
69 또 다른 루트의 연장선 21.07.31 44 3 12쪽
68 퀘스트형 던전 21.07.30 46 3 12쪽
67 완벽한 오답 21.07.29 51 2 13쪽
66 기류 +2 21.07.28 59 3 12쪽
» 관계정리 21.07.26 51 3 13쪽
64 소풍이었던 것 21.07.24 52 4 12쪽
63 소풍 21.07.23 49 4 12쪽
62 곰과 너구리(3) 21.07.22 57 3 12쪽
61 곰과 너구리(2) 21.07.21 56 3 13쪽
60 곰과 너구리(1) 21.07.19 57 3 12쪽
59 또 다른 루트 21.07.17 62 4 12쪽
58 팀 활동(3) 21.07.16 61 4 13쪽
57 팀 활동(2) 21.07.15 66 4 13쪽
56 팀 활동(1) 21.07.14 74 5 12쪽
55 송채린(2) 21.07.12 7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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