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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의 서재

초급던전에 들어간 SS급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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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7
최근연재일 :
2021.08.18 18:40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18,459
추천수 :
746
글자수 :
447,712

작성
21.07.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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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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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소풍

DUMMY

2층 테라스. 나무로 된 펜스에 양팔을 올려놓은 채로 몸을 기댄다. 바람에 살랑이는 보랏빛 머리카락. 그 사이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응, 흥~♪"


최준성은 자기 사람에게 약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무려 정신까지 링크된 사이였다.


'최준성은 금방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다.' 송채린은 그렇게 예상했다.


"흐음··· 음."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발소리는 도통 들리지 않았다. 진작 와봤을 법도 한데. 좀처럼 낌새가 없었다.


"와, 진짜 너무하네."


짜증이 난 건 사실이었다. 기껏 선물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는데. 자기만 빼고 술을 마시러 가?

그래도 냉큼 달려오면 못 이기는 척 기분을 풀 생각이었다.


"그래, 됐네 됐어."


송채린 딴에는 퍽 서운한 일이었다. 어찌나 서운한지, 품에서 꺼낸 분말 봉지도 떨어트리고 만다. 테라스 밖으로 넘어간 봉투가 수풀 어딘가로 모습을 감췄다.


"아···. 진짜."


찾으러 갈 의욕이 나지 않아 가만히 테라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찬바람을 쐬고 있으니,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잊고 있던 콤플렉스도 떠올라 버렸다.


'자신이 진실로 믿는 사람은 꼭 뒤통수를 친다.'


어린 시절. 한 의사 선생님이 그러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인간 대접과 따뜻한 손길. 하지만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인간처럼 보고 있지 않았다. 하나의 실험체. 소중한 결과물로 그녀를 여겼다.


그래서 송채린은 자신이 가진 것 따위는 상관치 않는 사람을 만나길 바랐다.

그 과정이 삐뚤어져서 꼴통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갔지만.


이건 엄연히 안진태의 잘못도 있었다.

한참 질풍노도를 보낼 시기. 송채린의 나이가 중학생쯤 되었을 때. 안진태가 3달 정도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이유가 뭐였더라? 연애라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것도 외국인이랑.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했었나?


뭐, 어쨌든. 고삐 풀린 망아지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자기 멋대로 살았다.

당시 장은미가 안진태를 대신하고 있었으나, 송채린은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다 안진태 잘못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자신에게까지 죽은 것처럼 속이지 않았나?

송채린에게 있어서 이건 뒤통수였다.


이상한 조직과 거래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국던수의 관계자라고 그랬나?

어린 시절 받았던 실험의 진상을 밝힌다나 뭐라나 할 때는 언제고. 던전을 이동하는 시계나 인펀트 같은 괴수를 받아오는 게 심상치 않았었다.


결국 그러다 살해당할 뻔한 거잖아? 가만 보면 안진태야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준성 오빠를 만나긴 했지.'


아직도 최준성과 만나 날이 송채린은 생생했다.


'끄나풀 시체 처리.' 던전 안에 묶여있는 연구원 하나를 처리하는 내용이었다. 썩 내키진 않았으나, 당시에는 빨리 끝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잘생긴 남자가 하나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래 봐야 그날 죽게 될 사람이었기에, 송채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구구절절한 상황을 알아봐야 괜히 기분만 찝찝할까 싶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었다.

어쩌면 묶여있는 여인이 흰 가운을 입었고. 그 모습이 의사 선생님을 떠올리게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눈길을 돌린 곳에는 끝내주는 오를린이 있었다. 얼마나 강렬하던지 송채린은 떠올리기만 해도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생각해 보면 날이긴 날이었던 모양이다. 오를린보다도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눈빛이 있었으니까.


붉은색 눈동자. 짐승을 닮은 눈빛에 송채린은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압도적인 힘. 그는 정말 목이라도 꺾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그렇게 섹시하더라.'


그때를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최준성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실 이런 감정은 그녀의 삐뚤어진 쾌락 신경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그동안 그런 쾌락의 것들은 어떻게든 얻어냈다. 대체할 만한 것들도 찾으면 구할 수 있었다.


송채린이 경계하는 것은 보다 깊은 감정이었다.


'커플이었는데.'


그녀의 손에는 최준성에게 선물했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에 액상형 전자담배가 들려있었다.


누군가를 꾀기 위해 선물을 했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호감을 사기 위해 남에게 적지 않게 무언가를 주기도 했다. 최준성에게 처음 프러포즈라며 줬던 반지도 그런 종류였다.


하지만 들고 있는 전자담배는 아니었다. 진심으로 고민하고 주고 싶어서 선물한 물건이었다.


'바보.'


링크할 당시, 최준성의 기억에서 보았던 후배. 그를 잃은 슬픔을 송채린은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본래 남의 과거사를 들어주고 있을 만한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런 경험은 꽤 낯설었다.

하지만 그 감정 자체는 어딘가 익숙했다. 의사 선생님을 잃던 자신의 감정과 퍽 닮아있었다.


최준성에게 담배는 죄책감을 상기시키는 장치였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선물했다.

후배 생각 덜 나라고, 슬픔이 덜 느껴지라고. 그나마 좀 다르게 생긴 걸 피면 낫지 않을까 싶어 건넸다.


그런 것도 모르고 성질만 내다니. 송채린은 진심으로 갑갑한 느낌을 받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는다.'

밖으로는 어떻게 피치던 마음으로는 타인에게 늘 거리를 두었다.


'항상 그래왔는데.'


동질감을 느껴서인지 최준성에게는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송채린은 실망할 때 느끼는 답답함이 참 싫었다.


"질렸어."


그래서 이제 최준성과도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싹이 튼 마음이 있으면 잘라내면 그만이다. 관계를 끊어내는 행위는 익히 해왔기에 어렵지 않았다.


손에 쥔 전자담배를 땅에 내리치려는 순간.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최준성이었다.


"흥."


하지만 늦었다. 송채린의 마음은 이미 돌아섰으니까. 늦어도 너무 늦었다.


"···."


최준성이 말 한마디 없이 송채린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나무로 된 펜스에 손을 올린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송채린은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하다가. 최준성이 궐련이 아닌 자신이 선물한 액상형 담배를 피고 있음을 확인하고 조금 더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후우-"


액상형 담배는 따로 불을 붙을 필요가 없었다. 버튼만 누르면 궐련보다 자욱한 연기가 과일 향과 함께 퍼져나갔다.

아직은 어색한지 최준성이 담배를 펜스에 내려놓았다.


"향이 좋네."


어쩜 목소리까지 딱 송채린의 취향이었다.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소리로 여자 꼬셨나 봐?"


피식 웃음을 짓는 최준성의 모습이 송채린에게는 낯설었다. 그녀에겐 맨날 승질만 냈었으니까.


"여자는 무슨."


그래도 나름 미안은 한가 보지? 최준성의 얼굴은 후배에게나 보여줄 표정이었다.


"됐어. 나 이제 오빠한테 정 뗐어. 우리 사이 끝이야."


"그래? 이제 시끄러울 일은 없겠네."


최준성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더 짙게 깔렸다. 그게 송채린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주 매일 밤 떠들어 댈 거야.

─앞으로 잠은 다 잔줄 알아.

─불면증으로 죽여버릴 거야.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에도, 최준성은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됐고. 내려가자. 곰이 술 먹자고 보채."


테라스 밖으로 시선을 옮기자, 음식과 술을 나르는 인원들이 보인다.


"안 가. 안 먹어. 나한테 비밀 있는 사람이랑은 겸상도 안 할 거야."


아까 인트와 나눴던 대화를 말해주지 않은 게, 아직 마음에 남아있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속내를 감추고 있던 의사 선생님 탓에, 송채린은 그런 부분에서 예민했다.


"무슨 얘기 했는지 궁금하면 그냥 보면 되잖아."


최준성이 송채린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에 따라 송채린의 몸이 뒤로 빠지면 최준성이 조금 더 다가간다.

송채린이 다가간 건 여러 번 있었으나, 최준성이 다가오는 건 처음이었다.


"자, 봐."


송채린은 눈을 마주한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뒤로 물러나는 송채린은 이상했다.


"싫어. 안 봐."


"요새 자주 그러더라."


아까만 해도 그렇다. 궁금하면 그냥 생각을 읽으면 되는 문제였다. 옛날에는 숨기는 것까지 멋대로 들춰 보더니, 최근 들어서는 이렇게 다가가도 일부로 눈을 피하기까지 한다.


"왜 안 읽으려고 그래?"


잠시 침묵하는 그녀가 옆으로 시선을 흘렸다. 송채린이 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마음이야."


송채린의 허리가 테라스의 끝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그런 그녀의 팔을 낚아채며 최준성이 눈을 마주쳤다.


"놔."


눈을 마주치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쪽은 송채린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이번만큼은 최준성이 그녀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안진태의 생각도 안 읽는다며?"


송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안진태의 귀띔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믿는 사람의 생각을 읽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송채린 스스로가 만들어낸 규칙이었다.


다시 말해, 송채린은 최준성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최준성의 기억을 보아선지, 아니면 그가 그녀의 기억을 보아선지. 그것도 아니면 정이라도 쌓여버린 건지.

결론적으로는 송채린은 눈을 마주치면서도 기프트를 억제했다.


"몰라."


송채린은 인정해야만 했다. 그와의 관계를 생각처럼 쉽게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사귀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송채린도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가서 밥 먹자."


"싫···."


"김밥 쌌어."


갑자기 웬 김밥? 그거 싸느라고 늦게 올라온 건가? 배가 많이 고프셨나 보지?


"그게 뭐?"


송채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최준성이 조금 더 차분해진 목소리로 답한다.


"다행히 재료가 있어서 대충 만들어봤어."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누가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나?

생각을 읽지 않는 송채린은 최준성의 그다음 말을 듣고서야 무언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안진태가 돗자리도 펴줬고."


김밥과 돗자리. 두 단어에는 공통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최준성이 붙잡고 있던 송채린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곤 펜스 위에 있는 전자담배를 챙겼다.


"선물 고마워."


지나가는 듯한 말로 최준성이 액상 담배를 흔들었다. 송채린은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짜 안 갈 거야?"


문을 나서기 전 돌아보는 그.


송채린이 최준성의 기억을 본 것처럼. 최준성 역시 그녀의 기억을 들여다보았다.

소풍. 그건 의사 선생님과의 약속이었다.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


널찍한 식탁을 놔두고 구태여 마당에 돗자리를 펴는 것은. 송채린을 위함이었다.


"하-"


기대하면 기대할수록 실망은 더욱 크고 아프다.

송채린에게 의사 선생님은 어린 시절의 전부였지만, 그와 동시에 트라우마 같은 존재였다. 어디 그녀뿐이었겠는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자신을 팔아치운 어머니.


어린아이는 의지하길 원했으나, 기대에 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소녀는 마음의 벽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그녀가 엇나간 쾌락 속에서 살아가는 까닭도. 누군가 자신을 말려주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기대일지 모른다.


"오빠! 나 오빠꺼 펴볼래."


대뜸 달려드는 송채린에게서 최준성은 들고 있던 액상 담배를 지켰다.


"너꺼도 있잖아!"


"아, 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니궁."


그러면 안 되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직 어린 소녀가 사는 모양이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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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퀘스트형 던전 21.07.30 4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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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기류 +2 21.07.28 59 3 12쪽
65 관계정리 21.07.26 50 3 13쪽
64 소풍이었던 것 21.07.24 52 4 12쪽
» 소풍 21.07.23 49 4 12쪽
62 곰과 너구리(3) 21.07.22 57 3 12쪽
61 곰과 너구리(2) 21.07.21 56 3 13쪽
60 곰과 너구리(1) 21.07.19 57 3 12쪽
59 또 다른 루트 21.07.17 62 4 12쪽
58 팀 활동(3) 21.07.16 61 4 13쪽
57 팀 활동(2) 21.07.15 66 4 13쪽
56 팀 활동(1) 21.07.14 74 5 12쪽
55 송채린(2) 21.07.12 7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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