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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의 서재

초급던전에 들어간 SS급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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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7
최근연재일 :
2021.08.18 18:4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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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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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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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류

DUMMY

커피 머신을 세척하고, 싱크대에 놓인 잔들을 비워낸다. 홀 테이블에 묻은 얼룩과 바닥에 떨어진 손님들의 흔적을 지워간다.


별것 아닌 흔적 사이에는 이야기가 묻어있다.

마구잡이로 찢어진 빨대 봉투에선 초조함과 떨림이 엿보였고. 탁자에 묻은 끈적함에는 언성을 높이던 연인의 열기가 눌어붙어 있었다.


재잘거리며 나누는 우정. 애정이 담긴 속삭임. 업무로 인한 전화와 은밀한 비밀까지도.

공통점 없는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카페 안을 채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야기가 쉬어가는 공간' 최준성에게 카페란 그런 곳이었다.


콧잔등을 스치는 그윽한 향이 잦아들고, 흐트러져 있던 의자들이 제 위치에 놓이면.

포근했던 분위기는 물러가고, 이야기의 잔재가 모두 흩어진다.


마감 시재를 끝으로 아름거리는 분홍빛 전등은 잠에 빠졌다.


"이렇게 갑자기 휴업해도 될까요? 그것도 주말에."


고개를 돌리자. 손님 없는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는 하진이가 보였다.


"넌 왜 퇴근을 안 해?"


"동네 카페는 단골이 생명이잖아요. 그새 다른 카페로 옮기면 어쩔 거예요?"


휴가가 생겼으면 기쁜 마음으로 집에나 갈 것이지, 퇴근도 안 하고 은근한 원성을 내비치고 있다.


"도대체 왜 쉬는 건데요?"


"놀러 가려고, 수성이랑."


꿈틀. 불만에 가까웠던 의문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런 건 미리 계획해놓으면 좋잖아요. 공지 붙여놓을 수도 있고."


"미안. 여행 패키지에 당첨돼서."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변명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허접했다. 딱 봐도 거짓말.


"갑자기요? 어디로요?"


"속초."


"흐음-"


어쭙잖은 소리에 넘어갈지 말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요. 저도 친구나 만나죠, 뭐."


"친구?"


"왜요? 친구도 없을까 봐요?"


하진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런 장난스러움에도 최준성을 웃을 수 없었다.

눈앞에 존재는 하진이가 아니다. 하진이를 흉내 낼 뿐이지. 최준성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단지 최대한 그 사실을 떠올리려 하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진이의 친구들은? 그들은 거짓된 모습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함께 웃고 떠들겠지.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겠지.


같은 책을 읽어도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됐을 때 느끼는 감상은 다르다.

사람의 가치관은 삶의 경험에 따라 성장하기도, 변하기도 한다.


그럼 눈앞에 존재가 새로이 이야기를 쌓는다면. 그건 하진이일까? 아니면 그조차 흉내쟁이 몬스터에 불과할까?

그 곁에 있을 친구들은? 그들은 하진이의 친구일까? 몬스터의 친구일까?


눈앞에 존재는 자신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하진이는 이미 죽었다.

처음엔 수성이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하지만 정작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건 자신이었다.


하진이의 복수를 할 때까지만. 그것은 자신이 임의로 정한 데드라인이었다.

그때까지만 이대로 두자고, 그때까지만 이 생활을 유지하자고.


너무도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지금이라도 놓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추모하고. 모두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천천히 하진이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만해.' 그 한마디면 눈앞에 녀석은 자신의 일을 끝마칠 것이다.


"하진아."


녀석이 똑바로 눈을 마주쳐왔다. 몇 번을 보아도 하진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오늘 진짜 이상하네. 무슨 일 있으세요?"


맞는 말이었다. 녀석의 말대로 최준성은 오늘 이상했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았으며.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닌데 갉아 먹히는 기분이었다.


"너, 나 때문에 다치면 어떨 거 같아?"


불안정한 음색이었다. 그마저도 유지하기 위해선 고개를 떨궈야 했다. 녀석의 눈을 마주하고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예요? 뜬금없이."


최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녀석은 한 번 더 물어야 했다.


"다치다뇨? 얼마나?"


"많이."


"손해 배상 청구해야죠. 다 뜯어먹을 거예요, 아주."


녀석은 장난스럽게 낄낄대다가, 아무 표정 없는 최준성을 바라보곤 조금 차분해졌다.


"요즘 일 많이 시킨다고 한 것 땜에 그래요? 하여간 마음 약해선···. 막 굴리는 거 알고는 계셨네요? 아니면 일 그만둘까 봐 걱정이에요?"


여전히 장난스러웠지만. 묘하게 차분했다. 벌벌 떠는 동물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처럼.


"만약 죽으면?"


"네?"


"나 때문에 죽는다고 너."


미래형으로 말했으나, 그것은 이미 일어난 과거였다.


무어라 말을 꾸며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평범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불쾌한 감정들이 뼛속을 휘저으며 내장을 발라내는 것 같았다.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지금 당장 멈추지 못하는 스스로가 역겨웠다.


"제가 선배 때문에 죽어요?"


'진짜 하진이'가 이 광경을 보면 어떨까? 기껏 동생까지 챙겨줬건만 패악질로 갚았다. 편히 눈을 감겨주지도, 추모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이 클 것이다. 하진이가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이 자연히 그려졌다.


"눈이 감기겠어요?"


차가운 목소리. 최준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마주해야 했다. 자신에게 피어오른 혐오는 정당한 것이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무겁디 무거운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다시금 마주친 시선. 그 눈빛은 최준성이 상상한 것과 달랐다.


"선배. 죄책감에 끙끙 앓고나 있을 텐데."


그건 어느 술자리. 최준성의 말을 닮아있었다.


"선배 잘못 아니에요."


울컥 미운 마음이 솟았다. 눈앞에 녀석은 하진이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심어놓은 거니까. 최준성이 무슨 짓을 벌였고, 하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모르니까.


하진이가 죽는 건 가정이 아니었다. 이미 일어난 사실이었다.

연인들이 흔히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지껄이는 이지선다 따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건 내 잘못이 맞아. 내가···"


"그냥 사고겠죠."


분명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임에도. 눈앞에 녀석은. 하진이와 똑같은 얼굴로 멋대로 떠들어댔다.


"선배 때문에 제가 죽는다면 그건 그냥 사고일 거예요."


반박할 말은 많았다. 해야 할 말도 많았다. 하지만 커다란 알갱이가 목구멍에 꽉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너무 죄책감 가지고 사시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스스로를 갉아먹는 거,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저는 알거든요."


이하진이 최준성과 처음 만난 날. 가족을 불로 태워 죽였다는 꼬리표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렸던 날.


'선배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바다에 빠져 죽었을 거예요.' 선택적으로 기억을 넘겨받은 몬스터에게까지 깊게 남아있을 정도로. 이하진은 최준성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아요. 수성이한테 더 잘해주던가요."


"미안, 미안."


"선배? 울어요??"


무너져내린 슬픔이 최준성의 입가에 흘러나왔다.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사내.

그 모습은 던전테크의 술자리에서 종종 회자되는 '신입의 주사'를 닮아있었다.



+



"여행? 좋지."


다음날 수성이와 속초로 향했다. 둘이 같이 여행간지가 언제더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별것 아닌 일들로도 수성이는 밝게 웃었다.


대형마트에서 여러 물품을 샀음에도, 휴게소에 들려 간식을 챙겨 먹었다. 관광지에 들러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고, 바비큐 그릴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것저것 떠들다 보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해가 진 이후로는 낮에 볼 수 없었던 분위기가 찾아들었다.


"아함-"


소파에 누워있던 수성이는 솔솔 부는 바람과 함께 살며시 잠에 들었다.


'잘도 자네.'


조심스럽게 담요를 덮어준 후, 자리를 치웠을 때였다.

우웅, 왼팔에 걸린 팔찌가 불길하게 움찔거렸다.


【지금 뭐였죠?】


대뜸 인트가 호들갑을 떨었다. 목소리가 꽤나 경직되어 있다.


"뭐가?"


【아니, 방금. 그러니까, 그. 이상했잖아요.】


"그러니까, 뭐가?"


【뭔가 어그러진 듯한···.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끔찍하면서도 괴이한 감각이었어요.】


이상한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인트가 갑자기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준성은 신경을 날카롭게 벼려냈다. 눈동자의 붉은빛이 퍼져나갔으며, 몸 주위로 옅은 전류가 뿜어졌다.


귀감을 높여 주위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탐색했다.


"······"


그럼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도 느껴져?"


【네. 아니, 아뇨. 아니 그러니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잔류가 남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면 모르겠다고 떳떳이 말하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이토록 확신 없이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조금 더 조사해볼까.'


파지직-

주위에 맴돌던 붉은 빛깔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더욱 반짝였다.


"형, 뭐해?"


수성이의 목소리와 함께, 응집되던 에너지가 빛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깼어?"


"응. 에어컨 너무 세게 켰나 봐."


담요를 뒤집어쓴 수성이가 탁자 앞에 있는 의자를 빼서 앉았다.


"배고파? 뭐라도 먹을래?"


"괜찮아. 그보다 형. 나 이상한 꿈꿨다."


"무슨 꿈?"


"분명 서울 같았는데,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았어. 건물들이 다 주저앉았었거든."


수성이의 말에 최준성은 묘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꿈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는데, 뭔가 막 날아다녔어. 지상에도 벌레 같은 것들로 가득했었고."


최준성이 꾼 꿈에 그것들은 몬스터였다.


"그리고 중심에는 한 남성이 서 있었어."


최준성은 그곳에서 두 남성을 보았었다. 하나는 눈앞에 있는 수성이었고.


"되게 무섭게 생겼었어."


다른 하나는 그의 목을 비틀고 있는 자신이었다.


"키가 아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수성이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형이랑 비슷할 거야."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마치 저지른 잘못을 들킨 것마냥.

단지 꿈이었다. 단지 그런 허상이 왜 이리도 마음에 걸릴까?


"그래? 그 남자는 어떤 사람 같았는데?"


"편향적인 선함? 이기적인 사람 같았어. 무언가 완전히 엇나간 사람."


꿈을 꾸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전지적인 입장에서 상황을 알고 있는 경우.

무서운 꿈에 나오는 귀신의 한을 누가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알고 있다던가. 놀란 자신이 모르는 사람에게 쫓기는데 쫓아오는 사람이 흉악한 살인범이라는 걸 안다던가.


수성이도 그렇게 꿈에 나온 사내를 알지 않을까, 그 사내가 자신을 닮지는 않았나. 최준성은 신경이 쓰였다.


"전쟁도 그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 같았어. 참 웃기지? 혼자서 그런 상황을 만든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꿈이라서 그냥 그렇게 느껴졌어."


최준성이 꿈에서 마주한 자신 또한 그런 모습이었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의표를 찔렀기에, 주제를 돌리기로 했다.


"어떻게 거기가 서울인 줄 알았어? 사방이 전쟁 난 것처럼 망가져 있었다며."


"어? 글쎄···. 그냥, 그런 느낌이었어."


이번엔 최수성이 눈길을 피했다. 뭔가 께름직한 기분이었으나, 딱히 추궁할만한 건 없었다.


"그래서 그 남자 말인데."


최수성이 다시금 주제를 돌려놨다.


"이상한 가치관이 있었어. 형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네."


뭔지 듣기도 전부터 불안감이 일었다. 최준성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음··· 그러니까. 교양 수업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는데."


수성이는 미간을 좁히며 적절한 가정을 찾았다.


"그 있잖아. 달리는 기차에 선로가 두 개인데 사람 숫자가 달랐던 거. 무슨 딜레마였는데."


예전에 수업에 다녀온 수성이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트롤리 딜레마?"


"어, 그거."


지금 상황에서 왜 그런 주제를 언급했는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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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또 다른 루트의 연장선 21.07.31 44 3 12쪽
68 퀘스트형 던전 21.07.30 46 3 12쪽
67 완벽한 오답 21.07.29 51 2 13쪽
» 기류 +2 21.07.28 59 3 12쪽
65 관계정리 21.07.26 50 3 13쪽
64 소풍이었던 것 21.07.24 51 4 12쪽
63 소풍 21.07.23 4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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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곰과 너구리(2) 21.07.21 55 3 13쪽
60 곰과 너구리(1) 21.07.19 57 3 12쪽
59 또 다른 루트 21.07.17 61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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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팀 활동(2) 21.07.15 6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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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송채린(2) 21.07.12 7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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