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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의 서재

초급던전에 들어간 SS급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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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7
최근연재일 :
2021.08.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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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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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퀘스트형 던전

DUMMY

우웅. 문에 들어서면 발동하는 워프에 따라 풍경이 변했다.

펼쳐지는 채집 영역. 중세 시대, 어느 평화로운 마을을 본뜬 세트장 같았다.


맑은 하늘과 태양. 그 밑으로 보이는 뾰족한 성과 붉은 지붕들. 시장은 활발했고, 아이들은 뛰어놀았으며, 사과나무 밑에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였다.


던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어! 여행자이신가요? 저희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금색 머리의 파란색 눈동자. 서양의 고전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마을 여인이 싱긋 미소 지었다.


'퀘스트형 던전.'

그런 이름이 붙은 까닭은 고전 RPG 게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


"하필 까다롭게."


최준성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머리를 긁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제스처를 취하긴 드물지만.


"어! 여행자이신가요? 저희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고개를 돌렸다 다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처음 본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여성뿐이 아니다. 마을에 있는 주민 모두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꼭 게임의 NPC처럼.


꽤 희귀한 던전 유형이다. 이런 종류의 던전이 제대로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공략 팀에겐 꿈과 같은 곳이었다.

던전의 부산물은 돈이 된다. 와중에 마을이라니. 특히나 이곳의 건축물들은 철이나 콘크리트보다 강하면서도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졌다. 테트리늄 바로 아래 등급의 재료들이다.


어디 건축물뿐인가? 음식이며, 약초며 신비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토벌 팀에서 꺼리는 이유.


"하아-"


뒤를 돌아보아도 출입을 위한 워프가 보이지 않는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기 전까지는 돌아갈 수 없다. 그게 1년이 됐건, 10년이 됐건.


만약 특정 조건을 찾아 클리어하더라도. 던전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면 내부는 초기화된 것처럼 새로 공략을 진행해야 한다.


퀘스트형 던전은 아무리 못해도 A급 이상의 위험도를 부여받는다.

특정 조건이 완료되어야만 나갈 수 있는 던전. 그렇기에 특정 조건이 뭔지 찾는 것부터가 일이다. '퀘스트형'이라는 이름의 걸맞게 NPC들의 말로 유추해야 한다.


몬스터를 물리치건, 공주를 구하건, 마을을 지키건.


무인도에 떨어져서 탈출 방법을 찾는 것과도 같다. 처음에야 판타지 세계에라도 떨어진 기분이겠지만. 같은 말만 반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건 퍽 정신건강에 해롭다.


이토록 넓게 뻗은 풍경이지만. 탈출에 성공한 인원 중에서는 폐소공포증을 앓는 이가 적지 않다.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대부분 그렇게 증언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비해 활동 반경이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이런 유형의 던전은 도대체 왜 만드는 거야?"


던전 중에서도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 유형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최준성의 곁에는 인트가 있었다.


"퀴즈 영역에 왕국 이야기처럼. 이곳도 다른 차원을 모방한 거예요. 그곳에 사람들, 문화, 갈등까지도 옮겨놓은 거죠."


"그러니까, 왜?"


던전이 기프터를 끌어들이는 것은 일종의 먹잇감을 유인하는 행위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퀘스트형 던전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발을 들이는 사람은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실종률이 높은 던전은 사람들이 들어서길 꺼린다.

기껏 들어왔다 치더라도. 몬스터들을 직접 만나게 해서 기프트를 사용하게 하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 복잡한 형태를 갖추는 이유가 뭘까?


"효율보다는 꿈의 실현에 가깝죠."


인트의 말은 꽤나 이상했다.


"던전한테 꿈은 무슨 꿈이야?"


어깨에 매달린 녀석이 팔짱을 끼곤 한 손으로 턱을 쓸었다.


"비유한다면 그렇다는 거죠. 생존 다음에 이루고자 하는 욕구."


욕구에도 단계가 있다는 말. 들어본 적 있다. 인간의 마지막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였지, 아마?


"그거랑 비슷한 셈이죠. 동물도 그렇잖아요. 생존이 해결되면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하죠. 가령 번식 같은 거요."


인트가 슬쩍 최준성을 흘겼다.


"인간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겠지만요."


"던전은 생존 다음 욕구가 뭔데?"


"던전은 행성의 종말을 원하지 않아요. 먹잇감이 다 떨어지면 마찬가지로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요."


잠시 입을 멈춘 인트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은근하게 입을 놀렸다.


"그런데도 행성 전체에 계속해서 퍼져나가죠. 그럴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링크도 흐려지는데 말이에요."


"결론이 뭐야?"


"세계를 담고 싶은 거예요. 던전은."


"뭐?"


"당신들은 자손을 통해 DNA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내죠. 하지만 던전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요. 대신, 그렇게 변화하는 세상을 품고 싶은 거예요."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녀석이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세상 그 자체가 되고 싶다는 게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수줍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인트의 볼에는 옅은 열기가 비쳤다.


"그건 마치 당신들의 '사랑'을 닮지 않았나요? 동경하고, 소유하고, 품고 싶은!"


던전은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욕구도 인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격을 가진 입장에서 던전의 욕구를 공감하기란 어려웠다.

적어도 인트처럼 첫사랑 이야기하듯 몸을 배배 꼴만 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래."


이해하길 포기한 최준성이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서 며칠이고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다. 안진태에게 약속한 시간도 있고. 그보단 수성이가 깨기 전에 펜션으로 돌아가서 싶다.


"퀘스트가 뭔지 알아낼 수 있어?"


"글쎄요. 직접 해킹하는 거라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성공할지도 미지수고요."


상황이 만만치 않다. 인트라면 퀘스트가 뭔지 바로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낭패다.

던전을 빠져나가기 위해 깨야 하는 건 메인 퀘스트 하나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고, 누구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며. 던전 내부에는 메인 퀘스트 밖에도 서브 퀘스트가 널려있다.


서브 퀘스트를 깰수록 메인 퀘스트에 가까워지긴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는 정말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인펀트에 대한 기척도 없어?"


"여기 폭주 던전 아니잖아요. 생성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죠."


조금씩 조급함이 몰려온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궁전에 들어서야 할까? 하지만 궁전에 들어가는 것도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범죄자로 찍힐 것이고. 그런 상태에선 왕에게 퀘스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뭘 그렇게 고민하세요? 간단한 방법으로 가시죠."


한참 고민에 빠져 있는데, 인트가 스르륵 자신의 모습을 창으로 변화시켰다.


"뭐, 어떻게 하자고?"


최준성의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공략 팀 입장에서의 파훼법이었다. 그에 비해 인트의 생각은 지극히 던전 입장이었다.


【다 먹어 치우면 그만이잖아요.】


최준성이 힘을 싣지 않았음에도, 붉은 창이 쭈욱 길이를 늘려 빠르게 쏘아졌다.

인트가 날아가는 방향. 그곳에는 활짝 미소 짓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어! 여행자이신가요? 저희 마을에 오신 걸 환영···"


퍼석. 그녀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통제를 잃은 몸은 털썩 주저앉는다.


"너 지금···."


꽈악. 최준성이 창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사람을 해친 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피어오르는 불쾌감은 마음속에 있는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만 해를 가한다.'

편향적이면서도 얄팍한 도덕심이 스멀스멀 마음을 괴롭혔다.


【저건 어디까지나 모형이에요. 모방했을 뿐이지 실제 다른 차원의 사람이 아니라고요. 던전이 만들어낸 몬스터랑 똑같아요.】


붉은 창은 채찍처럼 휘기도 했다. 그렇게 바로 옆에 있던 주민을 또 한 번 습격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던 남성 역시,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몸의 중심을 잃었다.


【아니면. 멈출까요?】


날쌔게 움직이던 창이 쓰러진 육체에서 빛가루를 뽑아냈다.


【배고프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이 정도에서 참아볼게요.】


녀석은 진심인 것 같았다. 악의나 비꼬는 투도 느껴지지 않았다.


【퀘스트를 찾고, 하나하나 풀어가는 방법을 원하시나요?】


스르륵. 모습을 바뀌기 위해 빛을 뿜는 창.

최준성이 오른손에 힘을 주어 변화를 저지시켰다.


"아냐. 간단한 방법으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붉은 창이 다시 한번 예리하게 벼려졌다.


퀘스트를 찾아 헤맨다면 정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쓰러진 시체를 보고 놀란 사람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황을 되돌리기엔 손이 너무 많이 간다.


'웃긴 일이지.'


쓰러져 있는 건 시체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그건 생물체가 아니었으니까.

도망친다는 말도 웃기다. 그저 NPC 마냥 입력된 매뉴얼대로 움직일 뿐이니까.


"이대로 전부 쓸어내면 찾을 수 있지?"


【문제없죠.】


결국 퀘스트고, 물리쳐야 할 몬스터고, 마을 주민이고. 던전이 만들어낸 거짓이다. 하나씩 지워내다 보면 핵심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폭주 던전이 아니기에 링크가 약할 것이고. 코어가 드러났을 때, 인트가 집어삼키면 그만이다.


파직, 파지직!


귀를 찢는 불길한 소음. 허공에 피어나는 붉은 꽃들이 날카롭게 형태를 비틀어 낸다.


"죽여."


눈앞에 있는 것들은 몬스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존재들이었다. 입력된 말과 행동만을 할 수 있는 모조품. 그런 점에서 오히려 리자드맨 같은 몬스터가 생물체에 더 가까워 보였다.


"으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멈춰라! 당장 공격을 멈ㅊ..!"


사방에는 비명이 가득했다.

일부 경비병이 막아섰으나, 이미 머리통을 먹인 직후였다.


공포에 질리건, 도망가건, 저항하건. 결과는 같았다.

파지직. 붉은 선이 호를 그리면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인형들은 실이 끊어진 것처럼 쓰러진다.


생물체를 흉내 낸 데이터 집합체. 단지 그뿐일 텐데. 불쾌한 감정들이 자꾸만 치근댔다.

그럴수록 붉은 전류들은 더욱 굉음을 지르며 목표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아요. 수성이한테 더 잘해주던가요.」

그건 하진이의 말이었다. 아니, 하진이를 흉내 낸 괴물의 말이었다.


최준성은 무엇에 위로를 받았었고, 무엇에 죄책감을 가졌던 걸까?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역겹네."


덜덜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데이터로 만들어진 붉은 혈흔을 뒤집어쓰며. 멈추지 않는 발걸음을 내디디며.


칼을 숫돌에 갈면 빛이 튈 정도로 강한 열이 발생한다. 그것은 칼을 더욱 날카롭고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와 함께 칼의 일부분을 마모시킨다.


최준성이 딱 그런 상태였다. 무언가가 쪼개지고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자신의 배역에 충실한 '연기자들'이라고 생각하자.

그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할 뿐이다. 죽여도 죽는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처음부터 몬스터였으니, 뭐가 중요하겠나.


치직, 치직. 담배의 불을 붙인다. 송채린이 선물해 준 전자 담배가 아닌, 하진이가 태우던 것과 같은 궐련이었다.


마을 일대가 빠르게 타들어 갔다. 주택이고, 병원이고, 시장이고, 성벽이고. 가리지 않고 모든 것들이 잿더미로 변해갔다. 그게 그들이 맡은 배역이었다.

죽음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게 그들의 마지막 파트인 것이다.


거대하게 벌어지는 그림자. 그건 송곳 같기도 했고, 짐승의 아가리 같기도 했다. 그곳에 빨려 들어가는 것들은 재조차 남지 않았다.


"하아-"


그런 광경을 보며 최준성은 생각했다.

자신에게도 배역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악역'일 것이라고.


콰가가각--!!


마을이 완전히 붕괴되자, 지반 속에 있던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메인 퀘스트에 어울리는 비주얼들이다.


"인트."


【네?】


"남길 생각하지 마라."


자신의 배역을 생각해 본 탓일까?


그날 최준성은 필요 이상으로 몬스터들을 갈기갈기 찢어내며, 천천히 목숨을 취했다.

마치 고문하는 것처럼. 또는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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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송국 21.08.04 39 3 13쪽
70 정리되지 못한 것들 21.08.02 43 3 12쪽
69 또 다른 루트의 연장선 21.07.31 43 3 12쪽
» 퀘스트형 던전 21.07.30 46 3 12쪽
67 완벽한 오답 21.07.29 50 2 13쪽
66 기류 +2 21.07.28 58 3 12쪽
65 관계정리 21.07.26 50 3 13쪽
64 소풍이었던 것 21.07.24 50 4 12쪽
63 소풍 21.07.23 48 4 12쪽
62 곰과 너구리(3) 21.07.22 56 3 12쪽
61 곰과 너구리(2) 21.07.21 55 3 13쪽
60 곰과 너구리(1) 21.07.19 56 3 12쪽
59 또 다른 루트 21.07.17 61 4 12쪽
58 팀 활동(3) 21.07.16 61 4 13쪽
57 팀 활동(2) 21.07.15 65 4 13쪽
56 팀 활동(1) 21.07.14 73 5 12쪽
55 송채린(2) 21.07.12 7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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