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별박이연입니다.

내공빨로 무림 갑질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별박이연
작품등록일 :
2022.06.11 16:44
최근연재일 :
2022.11.29 18:46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725,316
추천수 :
15,819
글자수 :
366,925


작성
22.09.07 21:55
조회
10,916
추천
268
글자
19쪽

33. 너였구나.

DUMMY

# 33. 너였구나.


어두운 토굴 속.

곳곳에 피 얼룩이 무늬처럼 새겨진 그곳엔 세 사람이 나란히 십자 형태의 나무 기둥에 묶여 있었다.

제일 먼저 눈을 뜬 건 세 사람 중 중간의 소녀였다.

소녀는 이곳이 고문실이라는 것과 자신이 지금 누군가에게 붙잡혀 구속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오른쪽엔 쌍둥이 동생이 있었고, 왼쪽엔 홍미단의 우두머리인 단장이 있었다.

같이 구속된 인물이 단장이라는 걸 깨닫자, 소녀는 절망했다.

단장은 소녀가 본 사람 중 제일 강한 사람이었다.

단장 같은 고수가 저런 꼴로 제압된 걸 보면 이미 홍미단의 단원 모두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으리라.

하지만 싸운 기억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이가 쳐들어와 이렇게 된 것일까.

다른 단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미 고문을 받고 죽어버린 걸까.

“녹두야. 녹두야.”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동생을 불렀다.

“으응···. 언니···.”

그녀의 목소리에 동생이 깨어났다.

“크읏···.”

단장도 깨어났는지 옆에서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드르륵, 드르륵.

한 사내가 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수레엔 화로가 실려 있었는데, 수레가 덜컹거릴 때마다 벌건 숯불이 불꽃을 튀겨냈다.

저 불에 인두를 달궈 지지려는 거구나.

고문을 받는다 생각하자, 소녀는 두려워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흐흑. 우우···.”

겁많은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마. 나도 울 것 같단 말야.

사내는 휘파람을 불며 수레에서 화덕과 탁자를 내려놓더니, 식사라도 할 참인지, 탁자에 식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설마 살점을 베어 구워 먹으려는 의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소녀의 공포심이 극에 달했다.

사내가 말했다.

“모두 깬 모양이네. 다들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뭐야. 모르겠다는 얼굴이네.”

사내가 엄지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주홍경이라 한다. 너희가 죽이려던 사람이지.”

이름을 듣자, 두 소녀는 반응이 없었고, 단장은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수레의 사내, 홍경은 세 사람의 반응으로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홍미단의 단원들은 암살 대상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혹은 저 소녀들이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위치거나.

겁을 먹고 우는 걸 보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살수로서도 미완성이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녀들에게선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니 심문 대상은 단장으로 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장쯤 되면 고통을 견디며 심문에 대응하는 수법을 익혔을 테니, 단단하게 무장한 마음부터 흔들어 놓아야 한다.

이런 일의 전문가에게 맡기면 편하겠지만, 홍경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가족에게 손을 댄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이제부터 너희를 심문하겠다. 질문에 답을 잘하면 상을 줄 것이고, 못하면 벌을 주겠다.”

숯불이 가득한 화로를 위협하듯 발로 툭 건드리자, 불꽃이 사납게 튀어 올랐고, 두 소녀는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홍경은 앞으로 걸어가 왼쪽의 소녀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지만, 지목된 소녀는 홍경이 무서운지, 울먹이며 답했다.

“9호, 아니, 노, 녹두요.”

“그대는?”

중앙의 소녀에게 묻자 그녀도 순순히 대답했다.

“녹수입니다.”

“녹두와 녹수! 아주 좋아. 대답을 잘했으니 약속대로 상을 줘야겠군.”

잘했다고 칭찬하며 두 사람을 기둥에서 풀어주었다.

녹두와 녹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기둥에서 내려왔다.

이게 뭐지?

겨우 이름을 말한 것뿐인데?

두 사람은 홍경의 의도를 몰라 불안해하며 움직이질 않았다.

홍경은 수레에서 석쇠를 꺼내 화로 위에 올려놓더니, 큼직한 소고기 한 덩이를 꺼내 얇게 썰어서는 한점, 한점, 석쇠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치이익.

기름이 뚝뚝 떨어지며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탁자 위 접시에 익은 고기를 올려놓고 두 소녀를 손짓해 불렀다.

“뭐 하느냐. 얼른 이리 와서 먹도록 해.”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그리 겁먹을 거 없다. 뒷조사를 했으니 알겠지만, 나는 성도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겁도 많고 마음이 여려 함부로 남을 괴롭히지 못한다. 이 화로도 고기를 구워 먹으려 가져온 거지. 누굴 지지려고 가져온 게 아니야. 내 물음에 제대로 답하기만 하면 힘든 일은 없을 거다.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면 된다.”

녹수는 용기를 내자는 듯 동생의 손을 잡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탁자까지 다가왔다.

“자, 먹거라.”

이상이 없음을 보여주려는 듯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으며 권했다.

마지못해 젓가락을 든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고기 맛을 본 두 사람의 눈에 광채가 번뜩였다.

환기가 안 되는 토굴의 특성과 연기로 거점을 들킬 위험 때문에 늘 육포나 과일, 건량 같은 말린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기름기 가득한 육질을 씹는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쾌감이었다.

젓가락질이 점점 빨라졌다.

구워 내주는 족족 그녀들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홍경은 고기를 계속 구우며 물었다.

“둘 중 누가 언니지?”

“저···. 제가 언니예요.”

“그럼 그대가 동생?”

“네.”

녹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답을 잘했으니 또 상을 줘야겠군.”

수레에서 술병과 잔을 꺼내와 한 잔씩 따라주었다.

“여인이 마시기 좋은 술이야. 과즙을 섞어 달고 부드럽지.”

이번에도 자신이 먼저 마셔 이상이 없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말대로 달고 부드러웠다.

쌉싸름한 뒷맛은 입안의 텁텁한 기름기를 싹 지워주어 고기와도 잘 어울렸다.

홀짝, 홀짝, 고기 한입에 술 한 모금.

가랑비에 옷 젖듯 두 사람은 조금씩 취해갔다.

홍경은 술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가벼운 질문을 던지며 두 소녀에게서 대답을 끌어냈다.

“너희가 속한 단체의 이름이 홍미단이라고”

“네.”

“어째 여인밖에 없던데.”

“저희 홍미단은 원래 여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요.”

“오호.”

대답할 때마다 음식 가짓수가 늘어났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쌀밥에 맛깔난 채소볶음 같은 요리들이 탁자 위를 가득 채웠다.

도대체 수레 어디에 공간이 있는 건지, 방금 조리한 듯한 요리들을 계속 수레에서 가져왔다.

“너희는 무슨 연유로 이런 곳에서 일하게 된 거지?”

“저흰 어릴 때 팔려 왔어요. 춘궁기에 입이라도 줄이겠다고···.”

“저런! 고생이 많았겠구나.”

알딸딸하게 취기가 돌자, 이젠 묻지 않아도 알아서 떠들기 시작했다.

“···힘들었어요. 훌쩍. 그 많은 동기 중에 살아남은 건 겨우 다섯이고···. 8년이나 함께한 친구들이었는데···.”

“저흰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나리. 흑···.”

“홍미단은 이제 끝났다.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긴 한낱 지부일 뿐인걸요. 총단에서 알게 되면···.”

그때 기둥에 묶여 있던 단장은 도깨비 같은 얼굴로 두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병신들이···.’

단장은 속이 바싹 타들어 갔다.

저 멍청한 놈이 그냥 풀어줬는데도 제압할 생각은 않고 시시덕거리며 소중한 정보를 고주알미주알, 불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녹두와 녹수는 총단에서 이제 훈련을 마치고 넘어 온 신입 단원이었다.

지부로 넘어온 신입은 중독성 강한 약물을 복용시키고 홍미단에 충성하도록 세뇌한다.

하지만 저 아이들은 교육을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저리도 멍청하게 구는 것이다.

‘젠장. 풀려나기만 하면···.’

저 멍청한 사내는 팔다리를 구속했을 뿐, 혈도를 제압하지 않아 내공을 쓰는 데 문제가 없었다.

풀려나기만 하면, 저런 놈을 제압하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대답을 잘해 저 아이들처럼 풀려난다면 상황을 다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아이들과 어울리기만 할 뿐, 자신에겐 아무것도 묻지를 않았다.

참다못해 물었다.

“이봐! 어째서 나에겐 질문하지 않는 것이냐!”

홍경이 단장을 흘깃 꼬나보며 중얼거렸다.

“쯧···. 늙은 것이 시샘은···.”

“시, 시샘이라니!”

“심문을 앞둔 사람은 보통 얌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세상에 어떤 죄인이 빨리 심문해달라고 보채는 경우가 있단 말가! 이래도 시샘이 아니라 말할 테냐?”

“큭···.”

“너 때문에 흥이 깨졌다. 원하는 대로 물어봐 주마.”

홍경이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날 죽이라고 의뢰한 놈이 누구냐!”

“······.”

말문이 턱 막혔다.

살수로서 목숨을 잃더라도 의뢰인을 밝혀선 안 되는 것이 이 업계의 불문율.

당연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대답하지 않는 것이냐. 내 분명 답을 못하면 벌을 준다고 했을 텐데?”

단장은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녹두와 녹수에겐 겨우 이름 정도 물어보고 대답을 잘했다며 고기까지 구워주더니···.

비무로 치자면, 두 소녀에겐 공격 전 기수식(起手式)을 보인 거고, 자신에게는 시작하자마자 필살기부터 날린 격이었다.

어리고 예쁜 아이에게는 잘해주고, 나이 좀 들었다고 차별하는 더러운 세상.

홍경은 뒷짐을 진 채로 천천히 단장에게 다가갔다.

“나는 마음이 여려 피를 보지 못한다. 괴롭히는 걸 즐기지도 않는 데다, 고문을 해본 경험도 없으니 어떤 벌을 줘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너에게 간지럼 형을 내릴까 한다. 피를 보지도 않고, 상처를 입히지도 않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지.”

간지럼?

겨우 그딴 걸로 날 어찌할 셈인가?

단장은 웃음을 터뜨릴뻔한 걸 간신히 참아냈다.

하나부터 열까지 멍청한 짓뿐이구나.

홍경이 소매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남만에 서식하는 어떤 나방의 날개 가루다. 어렵게 구한 물건이야. 이게 피부에 닿으면 몹시 가려워진다더군.”

단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간지럼 형이라길래 깃털로 발바닥을 문지르려나 생각했는데, 저런 물건을 준비한 걸 보니 간지럼에 진심인 듯했다.

홍미단에는 붙잡혀 고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 감각을 무디게 하는 수법이 전해진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효과가 크다.

불로 지지고 살점을 베어내도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간지럼이라는 수법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영역.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홍경은 약병에 면봉을 넣어 가루를 묻힌 후 단장에게 다가갔다.

“사람이 가려울 때 가장 견디기 힘든 부위 세 곳이 어딘지 아나? 하나는 귓구멍, 또 하나는 콧구멍···.”

가장 견디기 힘든 부위에 묻히겠다는 소리 아닌가.

그런데 세 번째는?

어느 부위인 줄 알면 각오라도 다지겠는데, 말을 하다 마니, 더욱 불안해졌다.

홍경이 모래시계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더니, 다짜고짜 귓속에 면봉을 쿡 찔러넣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으갸갹!”

간질간질, 따끔따끔.

귓속에서 개미 수백 마리가 돌아다니는 듯했다.

평생을 통틀어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정말이지 간지럽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긁고 싶다.

긁고 싶다.

긁고 싶다.

미치도록 긁고 싶다.

팔다리가 구속된 게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온몸을 비틀며 빠져나오려 힘을 썼다.

고개를 돌려 머리 뒤, 기둥에 귀를 문지르려 안간힘을 썼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자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아악! 미친다, 미쳐버려!”

지켜보는 홍경은 가루의 성능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저런 효과 좋은 물건을 구해다 준 천외비선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질 즘 홍경은 또 다른 병을 꺼내 병 속의 액체를 면봉에 묻혀 그녀의 귓속에 묻은 가루를 닦아냈다.

“가루의 효과는 주정(酒精 에탄올)으로 닦아내면 사라지지. 어때. 시원한가?”

“후아- 후아아-.”

눈이 반쯤 뒤집힌 채로 단장은 큰 숨을 몰아쉬었다.

가려움이 사라진 이 순간은 마치 사막의 열기에 갇혀있다. 얼음물 속에 뛰어든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이제 정신이 들어?”

단장은 대답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큭. 크큭.”

“왜 웃지?”

“네놈이 당할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나올밖에. 네놈은 내가 당한 것의 천배 만배로 보복당할 거다. 홍미단은 중원 전역에 걸쳐있다. 대륙의 모든 단원이 너와 네 가족에게 피의 복수를 행하리라!”

방금까진 죽는다고 그리 난리를 피우더니, 사실 견딜 만했나 보다.

저리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면 말이다.

“아하하하.”

이번엔 홍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제압했는지 알고 있나? 어쩌다 그 꼬락서니가 된 건지 기억이 나느냔 말이다.”

“······.”

“당한 당사자도 모르는데, 다른 놈들이 어떻게 알고 복수를 한다는 말이냐. 협박도 똑똑해야 할 수 있는 법이다. 모자란 것아.”

“이이···.”

협박이 먹히긴커녕 오히려 멍청하다고 놀림을 받았다.

씩씩거리며 분해했지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단장은 빠드득, 이만 갈 뿐이었다.

홍경은 비웃음을 흘리며 단장에게 다시 물었다.

“날 죽이라고 사주한 놈이 누구냐.”

“······.”

묵묵부답.

“그래. 두 번째 부위도 경험해 보고 싶단 말이지···.”

홍경은 망설임 없이 단장의 콧구멍에 면봉을 찔러 넣었다.

“캬앗! 캬앗!”

그녀의 얼굴이 엉망진창 일그러졌다.

귓속이 가려운 것과는 전혀 달랐다.

콧속 점막이 자극받자 엄청난 콧물이 좔좔 흘러내리고, 재채기가 쉴새 없이 터져 나왔다.

“엣취, 엣취, 엣취, 엣취, 엣취, 엣취!”

미친 듯이 가려운데 콧물에 재채기까지 더해지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로움을 맛보게 되었다.

콧구멍이 가렵다는 게 이리도 괴로운 일이었구나!

몸부림치는 단장을 보며 홍경이 말했다.

“이걸 구해준 친구 말로는 시간제한이 있다더군. 모래시계가 다 떨어지기 전에 닦아내지 않으면 가루의 성분이 피부 깊숙이 파고들어 손쓸 방법이 없다고 해.”

몸부림치던 단장의 시선이 모래시계를 향했다.

“엣취, 엣취···.”

모래가 줄어들수록 더 가려워지고, 두려움도 커졌다.

저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단장에겐 그걸 따질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냥 미칠 것 같았다.

“아악, 캬악!”

이 상황을 지켜보며 두 소녀는 몸을 떨었다.

세상에 저런 고문이 다 있구나!

피를 보지도 않고, 상처를 입히지도 않으면서 죽도록 괴롭히는 방법이라니.

대답을 안 했으면 자신들도 저리됐을 거라 생각하니, 손발이 달달 떨려왔다.

모래가 거의 다 떨어질 즈음에야 홍경은 콧구멍을 닦아 주었다.

가려움은 가셨지만, 콧물은 멈추지 않아 비참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으흑···. 쿨쩍.”

홍경은 턱을 문지르며 고민했다.

두 번의 공격도 버텨내다니, 과연 살수의 우두머리다.

이 정도면 세 번째 부위까지 견디는 게 아닐까.

게다가 거긴 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하긴 좀 그런데.

그때, 뒤에서 녹수가 홍경을 불렀다.

“저기, 나리.”

“응?”

“저,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다른 이들은 무림맹에 다 넘길 생각이다. 지은 죄에 따라 벌을 받게 되겠지. 너희는 아직 죄를 짓지도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라 할 수 있으니 그냥 보내주마. 가고 싶은 곳으로 가거라.”

두 소녀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였다.

저 사내는 단장 같은 사람에겐 잔혹한 반면, 자신들과 같은 약자에겐 상냥하다.

선악이 분명하고, 의협심이 넘치는 협자(俠者)의 모습이다.

그 협(俠)의 마음에 기대를 걸며 무릎을 꿇었다.

“나리!”

“나리께서 저희를 거둬주시면 안 되나요?”

“너희를?”

“저희는 보고 배운 게 이런 일밖에 없으니,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대로 세상에 나간다면 저희는 거리를 떠돌며 몸이나 파는 수밖에 없겠지요.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나리. 제발 거둬주세요.”

합당한 걱정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팔려 와 세상 물정 모르는 저들에게 알아서 살라고 내보내는 건 꽤나 무책임한 일이었다.

“내 밑에서 일한다면, 너희가 익힌 기술은 평생 쓸 일이 없을 것이다. 가게에서 음식을 나르거나 물건을 파는 등 평범한 일만 하게 될 터인데···. 상관없느냐?”

“오히려 바라는 바입니다.”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나리.”

홍경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맺은 인연, 적어도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보살펴줘야겠다.

“너희 결심이 그러하다면 내가 거둬주마.”

“감사합니다. 나리!”

두 소녀는 서로 손을 맞잡고 환한 웃음을 보이며 기뻐했다.

“너희는 필요한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거라.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너무 끔찍하고 더러워 볼 게 못 되니.”

“···네. 나리!”

단장은 쿨쩍, 콧물을 들이마시며 몸을 떨었다.

끔찍하고 더러워?

이보다 더한 것이 남았단 말인가?

거짓말이다.

날 흔들려고 지어낸 거짓말인 게 분명해.

나는 흔들리지 않아!

단장은 의지를 강화하는 구결을 외며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녹수와 녹두가 나가고, 홍경이 다가오자, 단장이 악을 썼다.

“그딴 건 이제 통하지 않는다! 헛심 빼지 말고, 당장 풀어다오. 이번 일은 없던 일로 여기겠다. 복수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고, 저 아이들도 네게 넘겨주겠어.”

그러자 홍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리를 묶은 사슬을 기둥에서 풀기 시작했다.

“그래. 너한텐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러니 너한테 답을 구하는 건 포기하겠다. 그러니 세 번째는 시험이 아닌 처벌이다.”

갑자기 다리를 들어 머리 위로 넘겨 엉덩이가 하늘을 향하는 민망한 자세를 만들어 놓았다.

“무슨 짓이냐! 이게 무슨 짓이야!”

“너도 이제 짐작했을 텐데. 세 번째 부위가 어디인지.”

“이 개 같은 놈이! 아무리 적이라도 여인에게 이런 수치를 주는 경우가 어딨느냐!”

강호의 도리를 들먹이며 힐난했지만, 홍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녀의 바지를 벗겨버렸다.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켜주지. 무림맹에 넘어가면 넌 아마 죽을 때까지 뇌옥에서 나오지 못할 거다. 거기서 자살은 꿈도 못 꾸지. 30년, 아니 50년? 그 길고 긴 시간을 지독한 가려움 속에 살아가야 한다. 나는 무림맹에 반드시 두 팔을 구속해 놓으라 요구할 생각이다. 가려워도 긁지 못하게 말이야. 거긴 남에게 긁어달라 할 수도 없는 곳이지. 네 남은 인생은 심심할 틈이 없겠군. 매일 간질간질할 테니까.”

모래시계까지 거둬버리자, 단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건 그것이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구적으로 지속한다면 그야말로 지옥의 형벌이 아닌가.

“그, 그만둬. 그만두라고!”

속곳을 젖히고 엉덩이에 가루를 병째로 들이부으려 하자, 단장은 기겁해 소리쳤다.

“말하겠다. 말하겠어! 말한다고!”

단장의 항복 선언.

그녀도 영원한 가려움의 공포를 이겨낼 순 없었다.

“양추. 우리에게 의뢰한 자의 이름이다. 크흑···.”

홍경은 지그시 눈을 감고 그 이름을 되뇌었다.

양추···.

양추야.

네가 선을 넘고 말았구나.


작가의말

연재가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최근 안압이 올라 눈알이 아파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진작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그냥 낫겠지 싶어 버티다 보니 더 악화해버렸네요.

지금은 통증도 사라져 컨디션이 정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내일부턴 정상적으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공빨로 무림 갑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45 22.12.07 6,491 0 -
공지 감사합니다. +87 22.12.01 3,750 0 -
61 61. 양심도 없느냐. +18 22.11.29 4,136 134 15쪽
60 60. 이빨 보이지 마라. +8 22.11.26 3,670 131 13쪽
59 59. 비동개방 +4 22.11.23 3,995 131 15쪽
58 58. 무시무종(無始無終). 3 +9 22.11.21 4,018 147 11쪽
57 57. 무시무종(無始無終). 2 +11 22.11.19 4,188 142 16쪽
56 56. 무시무종(無始無終). 1 +10 22.11.12 5,092 172 12쪽
55 55. 함정. +14 22.11.08 5,509 179 13쪽
54 54. 하늘의 마음. +17 22.10.27 6,942 187 12쪽
53 53. 황금의 손 2 +21 22.10.26 6,393 185 13쪽
52 52. 황금의 손 1. +12 22.10.25 6,194 178 16쪽
51 51. 나도 강해지고 싶어. +11 22.10.22 6,389 200 14쪽
50 50. 보아선 안 되는 것. +12 22.10.21 6,430 163 16쪽
49 49. 형부는 허풍쟁이 +8 22.10.19 6,520 192 15쪽
48 48. 외상 사절. +8 22.10.18 6,419 186 14쪽
47 47. 채무 정리 +7 22.10.16 6,740 189 15쪽
46 46. 심장이 쿵쿵. +14 22.10.14 7,099 201 11쪽
45 45. 이빨을 뽑다. +6 22.10.14 6,729 175 15쪽
44 44. 안 주인의 실력 +9 22.10.12 7,221 211 17쪽
43 43. 이글이글 +9 22.10.11 7,159 195 14쪽
42 42. 사랑의 힘! +12 22.10.07 7,607 200 13쪽
41 41. 사람 살려! +14 22.10.06 7,630 205 12쪽
40 40. 불심이 깃든 단약 +12 22.10.05 7,846 191 15쪽
39 39. 그릇을 깨닫다. +14 22.09.26 8,708 210 14쪽
38 38. 오월동주(吳越同舟). +11 22.09.23 8,995 213 18쪽
37 37. 이게 왜 있지?(수정 13:19) +15 22.09.20 9,533 236 13쪽
36 36. 쾌락 없는 책임. +18 22.09.18 9,970 225 20쪽
35 35. 동방화촉(洞房華燭) +16 22.09.15 10,125 245 15쪽
34 34. 인생은 고해(苦海). +9 22.09.09 10,898 249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