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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oon 님의 서재입니다.

곤봉 기자, 홍정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oooon
작품등록일 :
2023.12.02 20:18
최근연재일 :
2024.01.09 19:05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2,536
추천수 :
53
글자수 :
243,767

작성
23.12.1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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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 앵커의 타락

만년 편집부 기자가 사회부 기자가 되었다. 마침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참교육을 위한 '곤봉'을 마련했다.




DUMMY

노조에서도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시민사회단체들도 KMS 뉴스의 공정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신임 보도국장은 나름대로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정치뉴스나 검찰의 정치인 수사 뉴스는 각별하게 신경을 더 썼다.


양당의 주장을 같은 분량으로 넣어주고 기사도 양쪽을 균형 있게 다루라고 정치부장이나 사회부장에게 누누이 강조했다.


이런데도 여당 편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남기형 앵커 때문이었다. 남기형 앵커는 ‘앵커의 권한’을 행사했다.


10초 정도 되는 앵커멘트를 자기 취향에 맞게 고쳤다.


과거엔 웬만하면 취재기자들이 써준 앵커멘트를 자신의 호흡에 맞게 손보는 정도였으나 언젠가부터 취재 기자들의 앵커멘트를 아예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 마음대로 앵커멘트를 작성했다. 앵커멘트는 앵커의 몫이니 얼마든지 그럴 권한이 있었다.


그러다보면 기자의 리포트와 결이 조금 다를 수도 있었다. 그 정도면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자 리포트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리포트의 앵커멘트를 정부도 다 사정이 있을 거라고 옹호하거나 야당의 비협조로 더 꼬여간다고 초를 쳐버리면 기자의 리포트는 죽도 밥도 안 되어버렸다.


보도국장이나 부장들은 그러나 남기형 앵커에게 대놓고 지적을 못했다.


앵커의 권한을 존중한다는 암묵적인 관행 때문이기도 했고 선배에다 특임이사라는 그의 위치 때문이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앵커로서 회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특임이사라는 임원대우 직책을 부여하고 극진하게 대우하고 있었다.


홍정의는 생각이 달랐다. 독재정권에 맞서는 용기있는 행동이라면 모를까 KMS의 뉴스를 망가뜨리는 행위는 ‘교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남기형 앵커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했다. 무슨 이유로 앵커멘트의 방향이 바뀌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가 만나는 사람, 통화하는 사람들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었다.


투명모드로 며칠 관찰하면 점심 약속을 누구와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저녁 뉴스를 진행하다 보니 남 앵커는 외부인사와의 약속을 주로 점심시간으로 잡았다.


남기형 앵커는 비서를 둔 자기방이 따로 있지만 점심 시간 이후에는 보도국 편집부에 마련된 앵커석에서 주로 일했다.


홍정의는 투명모드로 바꿔 앵커석을 관찰했다. 수시로 핸드폰이 울리고 본인이 걸기도 했다.


그렇게 관찰한지 2, 3주 되었을까? 드리워놓은 낚시대의 찌가 물속 깊숙이 쑥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총장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하하하하.”


총장님? 누굴까?


“알겠습니다. 그럼 모레 뵙죠.”


총장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통화를 마친 남앵커는 핸드폰 다이어리에 약속을 적었다. ‘김형식 총장, 스카이호텔 중식당’이라고 썼다.


김형식? 여당의 사무총장이었다. 당의 살림과 공천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고 있는 3선 국회의원이었다.


두 사람이 점심을 하기로 약속한 날 홍정의, 저스티스 홍은 일찌감치 사무실을 나섰다. 두 사람이 예약한 중식당의 별실에 미리 들어가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오래된 친구처럼 격의가 없었다.


“요즘 KMS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총장님은 신수가 훤하십니다.”

“신수만 훤하면 뭐하겠습니까?”

“네? 무슨 고민이 있습니까?”

“아니, 우리 당 지지율이 좀처럼 반전될 기미가 없어서요.”


김형식 총장 입에서 당 지지율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홍정의는 바짝 긴장했다.


“에이, 그거야... 시간이 되면 저절로 올라가겠지요. 너무 미리서 걱정하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우리 걱정이 큽니다. 언론들이 왜 정부 여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죠?”

“하긴... ”


식사가 서빙되자 두 사람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요리를 안주 삼아 두 사람은 중국술을 마셨다. 비싸 보이는 도자기병에 담긴 중국술이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두 사람의 대화에도 활기가 돌았다.


“제가 아이디어 하나 낼까요?”


대뜸 남 앵커가 아이디어를 내겠다고 제안했다. 홍정의는 남앵커가 낚시 바늘을 제대로 문 느낌이었다.


“?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남앵커는 아무도 없는데도 주변을 살피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김총장도 덩달아 몸을 숙였다.


투명인간 홍정의도 두 사람 가까이 다가가 귀를 쫑긋했다. 남앵커는 소곤거렸다.


“문제는 여론조사 아닙니까?”


김총장도 덩달아 소곤거렸다.


“그렇죠. 여론조사가 계속 밀리고 있다니까요?”

“그럼, 올리세요.”


남앵커가 ‘하하하하’ 웃었다.


“???”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멀뚱거리는 김총장을 향해 다시 소곤거렸다.


“제 말씀은... 여론조사 기관 하나 골라서 우호적으로 만드시라는 거죠. 아니죠. 하나가 아니라 서너 개 접촉해서 우호적으로 만들면 이야기는 간단해집니다.”


김총장이 받은 충격만큼이나 홍정의도 충격을 받았다. 아니, 홍정의가 더 놀랐을 것이다.


관심이 커진 김총장이 몸을 더욱 바짝 당겨앉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내년 총선 지면 레임덕에다... 그리고 2년 후에 있을 대선에서 정권 빼앗기면 총장님도 낙동강 오리알 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아이, 총장님, 그렇게 말씀드렸으면 알아들으셔야 하는데...?”


남앵커가 막 구체적인 설명을 하려는데 서빙하는 남자가 다시 들어와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김총장은 먹을 생각을 못하고 남앵커의 입술만 쳐다봤다. 남앵커는 중국술을 한잔 들이켰다. 남총장이 손을 뻗어 빈잔을 채웠다.


“이거 정말 우리끼리만 알아야합니다?”

“당연하죠.”

“지금 여론조사 회사들 난립해 있잖습니까? 그놈들 전부 돈 벌려고 눈이 벌겋잖습니까?”


김총장은 입을 헤벌리고 남앵커의 말에 집중했다.


“그런 놈들 중에서 말 잘 들을 것 같은 놈으로 서너 곳 골라서는...”

“골라서는...”

“한 2, 3억씩 뿌리시라고요.”


순간 김총장이 눈을 깜빡거렸다.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 작업을 누가 하죠?”

“아니, 총장님이 하셔야죠. 아니면 대통령실 쪽과 협의해서 국가기관을 좀 이용하시든지요.”


점입가경이었다. 여당 사무총장에게 여론조사 회사를 매수해서 여론조사를 왜곡시키라고 제안하는 사람이 과연 KMS의 앵커일 수 있는가?


김총장은 심각한 얼굴로 먼산을 보면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총장님,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예?”

“그렇게 순진하셔서...”

“아니...”

“지금 법에 어긋날까봐 걱정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요즘엔 워낙 비밀이 없는 세상이 되어놔서 말이죠.”


남기형 앵커는 빙긋이 웃었다.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총장님은 정치만 하시다 보니 밑바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총장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여론조사 회사 선별해서 말이죠...”


총장은 선생한테 가르침을 받는 학생의 자세가 되었다.


“네.”

“그놈들에게 당이나 정부, 정부 투자기관들하고 계약을 맺게 해주세요.”

“무슨 계약이요?”

“아참, 행정 만족도 조사, 교육이나 보육 관련 여론조사, 주택정책에 대한 선호도 조사 같은 걸 맡기란 말입니다. 명분도 되잖습니까? 공무원들의 탁상 행정이 아니라 국민들의 니즈(Needs)를 찾아가는 행정, 이렇게 명분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선거 여론조사는 자동적으로 우호적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빙고! 놈들이 눈치 하나는 빠삭한 놈들입니다. 눈짓만 슬쩍 하면 알아들을 겁니다.”


김총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얼굴이 금새 환해졌다.


“그리고 말이죠. 좀 더 확실하게 여론조사 회사들을 손아귀에 넣으려면 재벌기업들하고 연결을 좀 시켜주세요. 정치관련 여론조사보다 기업들의 소비자 상대 시장조사 규모가 엄청 큽니다.”


김형식 총장은 탄복했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니, 우리 남앵커는 방송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세상 이치는 어떻게 이렇게 통달했을까요?”

“통달은 무슨... 내가 나중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홍정의는 탄성을 내어지를 뻔 했다. 김준성 부장이 말한 대선 당시 정치부장을 했던 사람이 바로 남기형 앵커였다. 김준성 기자로부터 당시 야당의 후보경선 여론조사 조작을 보고받았던 것이다.


“아, 그럼, 그냥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럼요. 정치권에서 이미 써본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여론을 주도해 보세요.”


김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난 남앵커가 덧붙였다.


“어차피 중간의 회색지대에 있는 유권자들을 누가 끌어오느냐 싸움 아닙니까? 여론이 여당에 우세하게 돌아간다고 해 놓으면 그 회색인간들은 그게 맞나보다 하고 여당을 지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홍정의는 남기형 앵커란 사람이 무섭게 보였다. 어떻게 공중파 방송의 앵커라는 사람이 이런 범법적인 생각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을까?


남기형 앵커는 한걸음 더 나갔다.


“그리고 말이죠. 여론조사를 실시하기 며칠 전쯤 깜짝 이벤트를 만들면 더욱 좋을 겁니다.”

“깜짝 이벤트요?”

“네. 제 생각엔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당사로 찾아가 민생을 주제로 머리를 맞대거나 전통시장에서 서민들과 대화를 하는 걸 KMS 같은 방송국에서 라이브로 중계한다든지 말이죠.”


김총장이 무릎을 쳤다.


“아, 그런 걸 생각 못 했네요.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고 서민들 깊숙이 찾아가 민생을 고민한다 이거죠?”

“하나 더 얹는다면 말이죠. 측근들 몇 명 쳐내는 것도 방법이죠. 어차피 내년 총선 나갈 사람들 미리 내보내는 셈 치고 국민들한테는 국정쇄신을 위해 읍참마속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지 않겠어요?”


김총장은 얼굴이 환해졌다.


홍정의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 좋은 점도 많지만 사람들의 이런 악마적인 면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건 고역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진실과 정의를 외치면서 밀실에서는 나라를 들어먹을 음모를 꾸미는 사람을 보는 게 여간 괴롭지 않았다.


“총장님, 그런데 이 일은 어디까지나 공개적으로 추진해야 할 겁니다.”

“공개적으로요?”

“그럼요. 대통령실과 상의해서 예를 들어 ‘정부 만족도 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식으로 공식 발표를 하도록 하세요. 요즘은 하도 보는 눈도 많고 듣는 귀도 많아서 말이죠. 최대한 투명한 사업인 것처럼 진행을 하시라는 말이죠.”


홍정의는 여기까지 핸드폰에 녹화를 다 하고 서빙직원이 나가는 틈을 이용해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갔다.


정부에서 하는 일 치고는 추진속도가 빨랐다. 일주일 뒤 정치부에서 남기형 앵커가 여당 사무총장에게 제안한 정부 만족도 조사를 발제했다.


정치부장은 기자 리포트로 한 꼭지 처리하겠다고 했다.


멋모르는 편집부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 뭐 결과가 나왔다면 모를까... 앞으로 추진하겠다고 하는 거 단신으로 그냥 처리하죠. 오늘 뉴스 많이 넘칩니다.”


평상시 거의 의견을 내지 않는 남기형 앵커가 모처럼만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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