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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oon 님의 서재입니다.

곤봉 기자, 홍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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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oon
작품등록일 :
2023.12.02 20:18
최근연재일 :
2024.01.09 19:0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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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3
추천수 :
53
글자수 :
243,767

작성
23.12.0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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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 지잡대 문과 출신

만년 편집부 기자가 사회부 기자가 되었다. 마침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참교육을 위한 '곤봉'을 마련했다.




DUMMY

지잡대 문과 출신. 취업전망은 암흑이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두드리고 두드린 끝에 취업의 문이 홍정의에게도 열렸다.


신규채용 인원의 일정 부분은 지방대 출신으로 채우라는 정부의 방침이 기업들에 하달되었다. 홍정의에게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명줄이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좋은 나라’였다.


그리하야 우리의 주인공, 홍정의가 스카이(SKY) 애들이 즐비한 공중파 방송국, KMS에 당당히 기자로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푼 가슴으로 출근한 첫날부터 공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다들 ‘쟤야?’하는 눈초리로 홍정의를 힐끗거렸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그러거나 말거나... 어떻게 입사한 회사인데 쉽게 좌절할 수 있겠는가?


입사 동기 7명에게 지지 않기 위해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었다.


6개월 수습기간이 끝나고 정식 사원이 된 날, 동기 8명 중 7명은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 홍정의는 편집부였다.


홍정의도 인사의 의미를 못 읽을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았다. 수습 6개월 동안 먹은 눈칫밥도 있었다.


잘난 스카이 출신들 ‘시다바리’하라는 의미였다.


수습 6개월 동안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뛴 게 억울하긴 했지만 지잡대 출신을 한 식구로 받아준 것만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회사의 인사명령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하는 일이 한심했다. 취재 기자들한테 전화해서 기사 빨리 보내라고 독촉하기, 개발새발 쓴 기사 수정하기, 영상 편집자 재촉하기, 자막 달기, 제목 뽑기 같은 일이었다.


잘난 스카이 출신들은 보도자료 베껴서 메인뉴스 리포트(취재기자가 자신이 작성한 기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하고 관련 화면을 입힌 1분20초 가량의 보도 클립. 일반적으로 취재기자의 얼굴이 나오는 스탠드업이 포함된다. 취재기자의 요구에 따라 영상편집 담당자가 편집을 한다.) 한 꼭지 제작하고 나면 뭐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데 홍정의의 노고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눈꼴사나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래봤자 받는 월급은 똑같다며 스스로를 달래가면서 편집부 생활을 감내했다.


편집부 생활을 성실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신도 검찰이나 국회, 대통령실 같은 출입처에 나가는 날이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맨날 잠바때기나 입고 다니며 군말 없이 일을 하다보니 만만한 놈으로 보인 게 분명했다.


5년이 넘어도 편집부에서 빼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무려 5년...


그 오랜 세월 동안 입사 동기들은 뻔질나게 내미는 TV에 얼굴 한번을 못 내밀었다.


어깨가 축 처져 퇴근하는 홍정의를 그의 아버지는 늘 짠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홍정의의 아버지는 특별한 직업이 없는 사람이었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데도 결코 추레하지 않았다.


눈빛은 사람을 꿰뚫을 듯이 형형했고 얼굴색은 빛이 났으며 걸음걸이도 기품이 느껴졌다.


그리고 돈도 많았다.


어느날 밤.


유례 없는 폭우로 저녁 내내 재난방송을 진행하고 자정이 다 되어 지친 몸으로 귀가한 홍정의를 아버지가 불렀다.


그날따라 개량한복을 단정히 갖춰입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무슨 할말이 있는 듯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천둥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고 번개도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히곤 했다.


부자간의 대화가 끝난 뒤 아버지는 장대같은 빗줄기를 그대로 맞으며 마당으로 나섰다.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는 마당 구석에 서 있는 ‘벼락 맞은 은행나무’ 앞에 섰다. 아들도 세찬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아버지 옆에 섰다.


어린이 키만한 검은 숯덩이 같은 ‘벼락맞은 은행나무’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눈길이 빨려들어가고 있는데 우르르쾅쾅! 하는 천둥소리에 이어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 맞은 은행나무’에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홍정의는 정신을 잃었다. 홍정의가 태어나기 수백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벼락 맞은 은행나무’는 한동안 불길에 휩싸였다.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잔 홍정의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집안 공기가 평소와 다른 것 같았다.


아버지 방으로 건너갔다. 아버지의 옷가지와 쓰던 물건들이 깨끗이 치워져 있고 책상에 편지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편지를 펼쳐 급히 훑어내렸다.


편지를 다 읽은 홍정의는 심호흡을 하더니 편지를 다시 고이 접었다. 자기 방에 돌아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홍정의는 어젯밤 야근을 한 관계로 해가 중천에 떠서야 출근길에 나섰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구석으로 향했다.


지난밤 불길에 휩싸였던 ‘벼락 맞은 은행나무’는 원래의 숯덩이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


홍정의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의 한 구절을 옮기면 이런 내용도 있었다.


[세상이 변하였으니 이제 그 능력을 써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을 늘 생각하기 바란다.]


*


태풍은 간밤에 한반도를 벗어나 동해상에서 소멸되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생방송을 하느라 도떼기시장 같았던 보도국 사무실도 고요했다.


홍정의는 편집부의 말석, 자기 자리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홍정의는 아직 출근 안 했어?”

“아까 보이는 것 같던데요...”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투명모드’가 정상작동되고 있었다.


홍정의는 의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보도국 사무실을 어슬렁거렸다.


약간 어린애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남들이 나를 보지 못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보도국 사무실에 앉아있는 각 부의 부장, 차장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궁금해서 그들이 뭘 그렇게들 열심히 보고 있는지 조금 훔쳐봤다. 컴퓨터로 회사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메신저로 잡담을 즐기거나 주식거래를 하거나 야한 동영상을 보거나 했다.


아마 이 시간 쯤, 출입처에 나가 있는 기자놈들도 점심에 반주를 걸치고 나서 사우나나 휴게실에서 한잠씩 때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들 설렁설렁, 일하는 시늉만 내는데 자기만 그동안 뼈빠지게 일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동안 정말 편집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입사 동기들처럼 TV에 나오고도 싶었다. 그러나 누구도 홍정의의 희망사항을 물어보지 않았다.


전임 국장도 지금 국장도 그리고 역대 편집부장들도 홍정의의 인사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국장이나 부장에게 부탁을 하기는 싫었다. 지들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굽신거리며 편집부에서 빼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상상만 해도 진저리 쳐졌다.


비록 지잡대를 나왔으나 자존심까지 지잡대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어느덧 5년이 넘었던 것이다.


아, 정녕 대한민국에서 지잡대는 불가촉천민이라도 된단 말인가?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도 아니고 인도의 카스트제도도 아닌, 눈에 안 보이는 학력차별은 정말 지독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특별한 능력’을 쓰게 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리 전개될 것 같았다.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안 하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인사문제이든, 돈벌이든, 출세든 간에...


*


‘벼락 맞은 은행나무’에 벼락이 떨어진 순간, 대형 풍선 모양의 투명 막(膜)이 홍정의의 몸을 감쌌다.


그 막(膜)에 오로라같은 전자기파가 발생하면 안에 들어있는 홍정의의 모습은 사라졌다.


홍정의는 몇 번의 연습 끝에 전자기파 발생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홍정의의 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시대를 살았던 조상들은 신기한 능력이 알려지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어 대대로 가문의 극비로 지켜왔다.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홍정의의 아버지는 시대가 변한만큼 그 능력을 조금씩 써보았다.


그러나 홍정의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상처(喪妻)를 한 뒤 세상사 모든 게 부질없다고 여겨져 아주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더 이상 쓰지 않았다.


*


저녁 무렵 홍정의는 일선 기자들이 송고하고 각부 데스크가 출고한 기사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메인뉴스 끝나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필러(filler)용(用) 단신(短信)들을 고르는 중이었다.


메인뉴스 후반부, 날씨로 넘어가기 전에 1분20초 짜리 기자 리포트를 넣기엔 시간이 부족할 때 대신 넣어 전체 뉴스 길이를 맞추는 용도였다.


편집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썩는 포장재 개발했다는 기사 있어?”


홍정의는 뉴스시스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예, 경제부 거요?”

“그래, 그거 넣어줘라. 웬만하면.”

“웬만하지 않은데요.”


무심코 홍정의의 말을 들어넘기던 편집부장이 응? 하며 홍정의를 바라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돈 냄새가 나서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까 업체 홍보하는 놈이 와서 김성철이한테 돈 찔러주고 가더라고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


홍정의는 아까 오후에 화장실에서 봤던 장면을 부장한테 설명했다.


*


“아, 왜 화장실까지 따라오고 그래? 알았으니까 놔두고 가요. 읽어보고 기사 되면 쓸 테니까.”

“당연히 기사야 되지요.”


기업체 홍보담당자가 싱글싱글 웃으며 경제부 김성철 기자의 뒤를 졸졸 따라가더니 급기야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간다.


투명모드로 보도국 이곳 저곳을 어슬렁거리다 두 사람과 마주친 홍정의는 호기심이 생겼다.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다.


홍정의는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등뒤에 서서 그들의 수작을 지켜봤다.


업체 홍보 담당자는 김성철의 소변기 위에 누런 대봉투를 하나 놓더니 누지도 않은 오줌을 마무리하고 먼저 화장실을 나갔다.


“그럼 이따 춘상에서 봐요.”

“어, 그래요.”


김성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대봉투를 살짝 열어 봤다. 홍정의의 눈에도 하얀색 편지 봉투 2개가 보였다.


김성철은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대봉투를 챙겨 사무실로 돌아갔다.


김성철은 대봉투를 보도자료라도 되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경제부장에게 건넨 뒤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경제부장은 대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책상서랍에 던져넣었다.


두 사람간에는 이런 무언의 대화가 익숙한 듯 보였다.


*


남들이 들을새라 소곤소곤 들려주는 홍정의의 목격담을 편집부장은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그래? 근데 그건 다 어떻게 봤냐?”

“큰 거 보다가 문틈으로 봤어요.”

“얼마 들었는지는 모르고?”

“그것까지야 모르죠.”

“알았어. 빼버려. 어떻게 나오나 보게.”


경제부 애들이 돈을 챙기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한 현장을 포착하기는 처음이라 편집부장이 신나했다.


*


메인 뉴스 진행을 마치고 홍정의는 ‘춘상’으로 향했다. 포장재 개발업체 홍보담당자가 말했던 ‘춘상’은 일대에서 알아주는 술집이었다.


단신이 안 나간 걸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확인했을 것이다.


“에이, 걱정 말라니까. 내일 나가면 되잖아, 안 그래?”

“아니, 나야 이해하는데 윗사람들 때문에 그러는 거죠.”

“윗사람 누구? 김상무?”

“됐어요. 하여간 내일은 정말로 내주세요.”

“오케이, 우리 부장한테도 전달했으니까 걱정 말라고. 오케이?”

“알겠습니다.”

“김과장, 그런데 하나만 물을게.”


김성철이 진지한 표정으로 뚱해있는 김과장을 바라본다.


“네, 말해보세요.”

“나도 이 주식 사면 돼? 올라, 안 올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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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봉 기자, 홍정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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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특별한 능력울 추가하다 24.01.02 30 1 12쪽
43 검사와 재벌의 윈윈 24.01.01 24 1 12쪽
42 42. 일약 사회부장으로 23.12.30 26 1 12쪽
41 41. 호사다마와 기사회생 23.12.29 28 1 12쪽
40 40. 귀곡산장의 참교육 23.12.28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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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연임을 위한 음모 23.12.26 32 1 12쪽
35 35. '배트맨 tv'를 론칭하다 23.12.26 37 0 12쪽
34 34. 사장의 흉계 23.12.25 37 1 12쪽
33 33. 개인택시 기사가 되다 23.12.25 3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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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범인은 홍정의', 사실상 결론 23.12.18 51 1 12쪽
22 22. '귀신'은 홍정의이다! 23.12.16 55 2 12쪽
21 21. 귀신이 아니고서는... 23.12.15 5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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