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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너와 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7.08 21:59
최근연재일 :
2016.12.25 23:3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41,307
추천수 :
493
글자수 :
552,862

작성
14.11.11 23:17
조회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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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8쪽

04화 - 2

DUMMY

“후우…… 후우…….”

“아하암.”

늘 그렇듯 느긋한 일상. 늘 그런 지루한 체육시간.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잉여롭게, 조회대 옆 계단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산소를 소비하고 있다. 이 시간이야말로, 내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공기’같은 느낌.

명인이는 땀을 흘리며 달리고 있다. 미지와의 대결은 예저녁에 끝난지 오래다. 하지만 명인이는 어째선지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달리는 걸 그만두지 않고 달리고 있다. 무슨 의미 같은 것이라도 있을까. 이쪽 앞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말을 건다.

“야, 왜 달리는겨? 대결 예전에 끝났잖아?”

“……후우. 그냥 달리는거지 뭐. 건강에 좋잖아. 후우.”

“아하, 그런 깊은 뜻이 있다면야.”

머리를 흔들며 땀을 떨어뜨리는 명인이. 내 외침에 숨을 고르며 별 의욕없이 대답한다.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미지와의 대결에서 달리다보니 달리기의 재미에 눈이라도 뜬 것일까. 점심시간에도 저녁시간에도 달리더니, 단순히 ‘건강에 좋잖아’라는 노인 같은 이유라니. 하긴, 달려서 건강에 나쁠 건 없지. 명인이처럼 체력이 약하던 녀석이면 더할나위 없이 좋고. 결국 변하지 않는 건 여기 있는 나같은 잉여인간 뿐이구나.

“좀 시끄러봐. 공부하는데 방해되잖아.”

“아하하, 오히려 이 쪽에서 적응이 안 된다고, 그 모습은.”

“닥쳐. 좀 짜져 있어.”

“예이. 쇤내는 그저 그래야만 하는 놈이지요.”

명인이는 저쪽으로 뛰어가고, 나는 그런 명인이를 보며 혼자 생각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거칠게 말하는 미지. 실실 웃으며 대답하니 더욱 거친 말이 돌아온다. 조선시대 노비같은 투로 대답하며 여전히 빙글빙글 웃으며 미지를 바라본다. 어째선이 일련의 상황들이 상당히 즐겁다.

체육시간인지라 체육복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미지 체육복은 모래도 땀도 묻어있지 않다. 항상 체육시간이면 활동적으로 움직여 붉게 달아오르던 볼도, 줄줄 흐르던 땀도 전혀 없다. 오히려 전혀 안 어울리는 모습으로 미지는 무릎에 참고서를 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예전에, 미지가 명인이한테 ‘너는 남자새끼가 체육시간에 뛰지도 않고 뭐야!’ 했던 말이 생각나는데. 정확히 반대로 된 상황을 동시대에 볼 수 있다니, 몹시 즐거운 일이다.

미지는 요즘 공부 삼매경이다. 명인이가 미지와 대결할 때 달리기 삼매경이었던 것처럼 미지도 그것과 같다. 그토록 좋아하던 체육시간 축구도 마다하고 이렇게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축구를 제안하던 남자애들은 에이스를 잃어 아쉬워하면서도 미지의 공부를 격려한다. ‘에이스’소리를 들을 정도로 축구 잘 하는구나, 미지.

“아아아이! 이게 왜 이 값인데! 병신같애!”

“아하하.”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책상물림에는 소질이 없는 미지다. 엉덩이 오래 붙이고 무엇인가 하는것도 성격이 그런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활달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시비 걸고 말하고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미지다. 진득이 앉아서 무얼 하는 건 상당히 귀찮고 좀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물며 그게 하고싶지도 않은 공부라면 말 다 했지.

명인이는, 애초에 명인이는 조금 사기캐릭(?) 같은 경향이 있기에 가능한 역전승이었다. 분명 책상물림이 전공인 명인이지만 의외로 육체적 능력도 딸리지는 않는다. 그 증거로 수행평가는 전부 A였거든, 지금까지. 음악이나 미술 같은 것도 비슷하고. 지력에 집중된 만능캐릭이라고 해야할까. 삼국지로 친다면 주유나 조조, 서서 같은 느낌이랄까.

반면 미지는 관우…… 아니 장비. 아니 전위나 허저 정도일까. 딱히 미지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하는 행동거지나 그런 걸 보면, 음. 확실히 무투파에 직설적이고 돌격적이지. 어줍잖은 삼국지 드립은 여기까지 줄이고.

어쨌든 미지는 굉장히 괴롭고 힘들어 하고 있다. 공부라는 게 하루아침에 느는 건 아니지. 거기다 반 30등 하던 녀석인데 말 다했지.

“이거 알아 너?”

“음. 아니, 전혀. 모르겠어.”

“이 멍청아!”

“적어도 너한테 듣고 싶진 않은데. 반 30등 씨.”

“이익…… 으흣…… 아오.”

미지는 골머리를 앓는 표정으로 문제를 풀다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힐끔 보고 대충 대답한다. 애초에 아는 걸 물어봐야지. 전혀 모르는 문제인데. 미지는 짜증스럽게 소리 지르지만 나는 전혀 밀리지 않고 답변한다. 정상이 아닌 건 명인이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 명인이랑 지내다보니 이 정도 미지의 비난에 반박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미지는 문제 안 풀리는 것도 짜증나는데 나까지 도발을 하니 더욱 화가 나는 모양이다.

“몰라, 갈 거여.”

“어디가.”

“알 거 없잖아! 예나한테 물어보라 건다, 왜!”

미지는 신음하며 일어난다. 참고서를 들고 툴툴대며 말하곤 강당 쪽으로 향한다. 어디가냐고 물어보니 짜증스럽게 목적지를 말해준다. 전형적인 츤데레구먼. 심심한데다 시간도 남아 도는 나는 어기적 일어나 따라 나섰다. ‘따라 오지마, 짜증나니까!’ 하고 말하는 미지. 그러거나 말거나 따라간다.

예나도 체육시간에 하는 일은 늘 비슷한 편이다. 주로 배드민턴. 아니면 가끔 내 옆에, 정확히 말하면 명인이 옆에 앉아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오늘은 배드민턴이다. 한창 배드민턴을 하다 지쳤는지 강당 구석에 앉아 쉬고 있다. 예나랑 자주 어울려 노는 친구 두 명이랑 같이니까 세 명. 어차피 한 명은 빠져서 점수 세 줘야 하는구나.

“야, 야! 이것 좀 알려 줘. 얼른!”

“응, 뭐?”

미지의 화법은 언제나 돌직구. 여자애의 대화법과는 거리가 멀다. 보이시한 외모와 상통하게, 목표만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격하는 거친 남자애 같은 화법을 구사하는 미지다. 예나 친구들은 좀 언짢은 표정으로 보지만 예나 본인은 만성이 됐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참고서를 봐 준다. 참, 예나도 저런 거 보면 너무 착한 것 같단 말이지.

“이건 이렇게 해서, 이렇게 푸는거야. 이렇게 하면, 이거니까. 알겠어?”

“오. 겁나 신기하다. 너 무슨 마법사야?”

“아하하, 문제 푸는 것 가지고 뭘 마법사야.”

“넌 선생님 하면 되겠다. 잘 가르쳐주잖아.”

“으흥, 선생님~”

예나 선생님이라. 확실히, 어울릴 것 같다. 긴 치마 입고, 입 가리고 ‘호호호’ 하고 점잖게 웃는 청순한 어떤 젊은 여선생님이 떠오른다. 미지는 부럽다는 눈치로 예나를 쳐다본다. 말하는 걸 보면 미지는 이렇게 문제를 풀 수 있는 예나가 신기하고 부러운 모양이다.

“되게 열심히 하네, 체육시간에도 공부하고.”

“응. 그 자식, 꼭 이겨야 하니까.”

“……너는 조건 뭐야? 혹시, 혹시 혹시, 명인이 가슴 만진다던가……?”

“미쳤어! 걔를 왜! 너 변태야?!”

“아, 아, 아니이! 그, 그렇잖아, 그 명인이도 그런 조건이니까!”

예나는 한 마디 꺼냈다가 질색을 하며 질타하는 미지의 대답에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다. 자기 사심이 굉장히 반영된 것 같은 질문인 것 같은데. 애초에 명인이, 성격과 하는 짓거리와는 전혀 다르게 유아체형이니까 만질 것(?)도 없을 텐데. 예나는 마음 속에 무슨 명인이를 품고 있길래. 얼굴이 빨개져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귀엽다. 미지는 정말 싫은 표정으로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끔찍해.’ 하고 말한다. 하긴, 미지는 명인이 등목할 때 이미 명인이 몸을 봤었지.


무식하고, 이해가 안 가고, 짜증나고, 정말정말 하기 싫고, 그치만 미지는 굳건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 보는 내가 다 대견스러울 정도로. 예전에 달리기를 수시로 하던 명인이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것처럼, 쉬는시간에도 쉬지 않고 문제를 풀고 있다.

평소엔 수업시간에 딴짓하거나 졸기 일쑤고, 체육시간 뒤엔 아예 퍼질러 자던 미지인데 이렇게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선생님들이 예뻐할만 하기도 하다. 하지만 전혀, 오히려 전 시간엔 혼났다. 수업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니까. 애초에 수업시간에 하는 건 교과서 진도 나가는 거고, 미지가 공부하는 건 모의고사니까. 그래도 차마 공부하는 걸 혼내는 건 그러니까 선생님도 가볍게 머리를 톡 치고 주의만 주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지는 공부를 계속한다.

“긴장되지 않어?”

“무슨.”

그런 미지를 가만히 쳐다보며, 실실 미소를 띠고 명인이에게 말했다. 명인이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만 움직여 대답한다. 일상적인 반응이다. 대답 대신 툭툭, 팔꿈치로 명인이 옆구리를 쳤다. 짜증스럽게 시선을 나에게 돌리는 명인이. 나 또한 말로 대답하지 않고 턱으로 끄덕 미지를 가리켰다. 쉬는 시간에도 불타는 기세로 공부하고 있는 미지. 명인이는 잠시 미지를 쳐다보더니 무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뭐.”

“저렇게 엄청난 기세로 공부하는데. 긴장되지 않냐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게.”

“어허허~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디?”

명인이는 아주 깔보는 태도로 말한다. 아니, 깔보는 것도 아니고 아예 철저한 무시라고 해야 할까. 아예 미지가 이기는 것을 염두하지 않는 태도이다. 자기랑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태도. 나는 씨익 웃으며 명인이에게 말한다.

“그 최명인이 달리기로 모미지 이길 줄을 누가 알았겠어? 미지 본인도 몰랐지. 근데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 저번이랑 똑같이? 방심하는 미지, 분전하는 최명인이. 봐, 지금.”

“…….”

“6·25 전쟁이 어쩌다 일어난 줄 알아? 방심해서 그래, 방심해서. 너 그러다 진짜 밀려?”

명인이 미지 둘이서 서로 신경 쓰고 말다툼하고 사소하게 부딪히는 걸 즐겨 보는 나는 더욱 분쟁이 일어나는 걸 보고 싶어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명인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여전하게 책을 읽는다. 이번엔 좀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다. 별다른 반응이 없으니 되려 내가 심심하다. 뭐 어떤 반응이 있어야 장난도 계속 칠 거 아냐.

“……공부 하는 건 대단하지만. 계속 말하지만 공부는 하루아침에 못 늘어. 중간고사면 모를까. 암만 달달 외워봐. 전범위 다 외우지 않는한은 안 돼.”

“다 외우면? 바보가 무섭다고 하잖아, 세상 말에? ‘나는 공부할 줄 모르니까 그냥 다 외워버려야지.’ 이러면. 왠지 그럴 것 같지 않아, 미지라면? 저번부터 엄청 칼 갈고 있다고.”

“……그러니까 좀 무서운데.”

“그지그지?”

“됐어, 그래도 나는 이긴다. 이건 확실해.”

“오오…….”

그럭저럭 신빙성 있는 가설에 명인이는 조금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다가 다시금 무시하고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결연한 명인이의 말투에 나는 조금 멋있다고 느꼈다. 저 끝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냥 공부를 잘하니까. 궁금해지네.

“근데 너는 공부는 별 걱정없이 잘하네.”

“너가 못하는 거지.”

“으윽…… 너무 당당하게 까는 거 아냐.”

“사실이잖아, 수업시간에만 잘 들어도 되는 건데 안 듣고 멍때리잖아.”

“그야 뭐~”

굉장히 재수없다. 고전적으로 전국 수능 1등인 모범생이 ‘저는 교과서 위주로 성실하고 착실하게 공부했습니다. 밤 10시에 일찍 자고 아침형 생활을 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뭐, 구구절절 옳은 말이기도 해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흐윽~~ 죽을 것 같애!”

“확실히, 굉장하긴 하네.”

저녁시간. 미지는 허리를 쭉 펴며 말한다. 한시를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뎌하는 미지에게 이 정도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은 경지이다. 정말 죽을 것 같은 눈을 하고 가만히 내려다보는 나를 쳐다본다. 영혼이 저쪽 세계로 간 것 같은 얼굴인데. 탄식하며 엄청난 녀석의 노력을 칭찬해줬다. 뭐, 별 효과는 없는 것 같지만.

“이제 너 정도는 뛰어 넘을 수 있을걸? 아핫핫!”

“겨우 일주일 공부하고? 왠지 모르게 아직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인데.”

“네가 뭘 알아! F=ma라고! 펩티다아제! 펩신! 지방 + 글리세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정확하게 중학수준 과학인 것 같은데.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거 맞아?”

미지는 깨알같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한다. 지쳐 보였던 건 기분 탓이었나. 깔깔대며 나를 무시하려 하지만 깨알 과학 지식의 수준을 보니 그러지도 않은 것 같다. 미지는 얼굴을 확 붉히며 ‘다, 닥쳐! 예나가 밑바닥부터 차근히 올려야 한다고 이거 하라고 했어!’ 하고 외친다. 아, 이미 예나한테 그런 계획을 얻어서 공부하고 있구나. 대단한 열정이네. 그래도 놀리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아 ‘어마어마하네. 한 달 만에 중학교부터 고3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다니.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도 들어갈 생각이야.’ 하고 비꼬았다. 미지는 억울한 듯 ‘으으……’ 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괜히 재미있다, 미지를 놀려먹는 건.


“야, 야!”

“?”

야자 시작. 조용함이 생명인 야자.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깊은 정적을 깨며 미지가 나를 부른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예전에도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가지 않는다면 더욱 소란스럽게 내가 올 때까지 부를 게 뻔한 미지이니 잠자코 일어나 미지 옆자리로 옮겼다. 아예 위장용으로 깔아놓은 책까지 들고서.

“이거, 알려줘.”

“왜 예나 내비두고 나를. 나도 똥멍청이라니까, 너 놀리고 있지만.”

“알아, 아는데!”

“……그렇게 단박에 똥멍청이 인정하니까 좀 그렇다.”

“시끄러, 닥쳐!”

미지는 참고서를 내밀며 말한다. 손을 내저으며 완강한 거부의 뜻을 내비치니 미지는 강경하게 나온다. 잠시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어쨌든. 미지는 나를 강하게 제압하며 자기 말을 하려 한다.

“우선은, 미안하잖아. 계속 물어보니까. 괜찮다곤 하는데, 확실히 민폐잖아.”

“오, 그런 염치도 있구나, 네가. 명인이한텐 그렇게─”

“닥쳐! 그건 경우가 다르잖아. 최명인은 개X끼니까 상관 없고!”

“쉬, 목소리 너무 커.”

“칫.”

이제는 미지 말꼬투리를 잡아 비꼬는 게 일상이 된 것 같다. 그것에 격한 말로 되받아치는 미지도 나와 비슷하게 적응이 된 것 같고. 흥분한 미지의 목소리가 반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퍼져 제재를 했다.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안 걸어주면 계속 폭주하는 미지의 화법이니까. 미지는 괜히 억울한 표정으로 ‘칫’ 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최명인은 개X끼’ 하는 말에 명인이는 움찔 하지만 애써 이 쪽에 신경을 안 쓰는 뒷모습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나는 수준이 너무 높아. 설명을 해 줘도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 이건 당연하게 이거라는데, 나는 그게 당연하지가 않다니까. 그러니까, 나보다 조금 수준이 높은 너한테 설명을 들으면. 나을 것 같아서.”

“오호. 그건 괜찮은데. 똥멍청이 두 명이서 골몰하면서 답을 구해나가자, 그런 건가.”

“넌 애가 왜 이렇게 삐뚤어졌냐. 최명인이랑 놀아서 그렇지? 하여튼.”

미지는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감하게 말하지만 또 자기가 나보다 공부 못 한다는 건 인정하고 들어오는 미지다. 간단하게 정리하니 미지는 눈을 흘기며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어떻게든 명인이를 안 좋게 엮으려 하는 미지다.

그건 확실히, 괜찮은 생각이긴 한 것 같다. 부족한 두 사람이 서로 열심히 연구해서 찾아내는 게 더 값진 수확이잖아. 확실히 미지가 명인이를 이기려고 공부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는 모양이긴 하나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러면 나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잖아.

“근데 어쩌나, 나는 공부하기 싫은데.”

“야. 해? 안 할 거야?”

“응, 하기 싫은데. 왜 해야 되.”

“닥치고 이거나 알려줘. 얼른! 얼른!”

“아후…….”

나는 잠자코 ‘내가 왜 너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해? 타당한 까닭이나 명분이 있어?’ 하고 말하려 했지만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지는 당당하게 참고서를 내민다. 결국에 이런 전개인가. 지내면 지낼수록 이성과 논리가 아닌 멧돼지처럼 저돌적이고 막무가내인 미지의 면모를 살필 수 있어 참 좋지가 않다. 더 질질 끌어 짜증나게 되는 건 싫으니까, 잠자코 미지의 말을 따른다.

“아─ 피곤해. 오늘은 이제 그만 할 거야!”

“그러던가 말던가.”

“어째 말이 띠껍다?”

“그럼 좋겠어, 강제로 공부했는데.”

“좋은 거잖아! 너도 공부 하는 거니까! 흐흥. 똥멍청이.”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미지는 기지개를 쭉 켜며 신음한다. 키도 큰 여자애가 기지개까지 키니까 굉장히 거대해보인다. 과연, 나보다도 키가 큰 미지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결국엔 야자 내내 강제로 공부하게 됐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웹툰 봐야 되는데. 유머 봐야 되는데. 댓글 난장판인 거 구경해야 하는데. 전부 하지 못해 아쉽다. 집 가서 하지, 뭐.

명인이는 별다른 말이 없다. 미지는 명인이와 선전포고 상태라 그런가 요즈음은 오히려 명인이보다 나한테 엉겨 붙는 일이 많다. 시비를 걸려고 해도 쉬는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 할 것 없이 전부 공부에 매달리고 있으니 뭐. 덕분에 명인이만 살맛 나는 요즈음이다.

“잘 가!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하핫!”

“그려. 쉬어라.”

“……잘 가.”

먼저 갈라서는 골목길. 미지는 손을 흔들며 활기차게 말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확실히 친해지긴 한 것 같다. 명인이 대하듯 편하게 대답했다. 명인이도 작지만 확실히 들리게 미지에게 말한다. 미지는 활짝 웃으며 정말 신나 보이는 표정으로 빠른 걸음으로 뒤돌아 걸어간다.

“얼른 대결 해봤으면 좋겠다, 느이 둘.”

“왜.”

“아니, 그냥. 너나 미지나 쓸데없이 엄청 노력하는 것 같아서, 별 시덥지도 않은 이유인디. 허허.”

“뭐. 좋은 게 좋은거니까.”

“하긴.”

고개를 끄덕이며 명인이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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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11.16 06:39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11.16 13:23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5.01.27 19:37
    No. 3

    페이크 주인공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남을 보고 우고 성장한다는 점에서 참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곤 하니 앞으로를 기대해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1.27 23:28
    No. 4

    감사합니다. 성장...... 성장.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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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1화 - 4 +6 14.10.09 864 10 19쪽
3 01화 - 3 +6 14.10.01 710 9 18쪽
2 01화 - 2 +6 14.07.10 797 8 20쪽
1 01화. 징징대는 건 싫어한다. +8 14.07.08 1,798 3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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