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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너와 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7.08 21:59
최근연재일 :
2016.12.25 23:3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41,269
추천수 :
493
글자수 :
552,862

작성
14.10.01 23:13
조회
707
추천
9
글자
18쪽

01화 - 3

DUMMY

“음…… 아무래도 역시, 친해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치, 친해지는 거?”

다음 쉬는시간. 예나는 내 자리에 와서 다시금 명인이에 대해 물어본다. 지금은 미지가 없어서 그나마 좀 덜 정신사납다. 그래도 여간 기분이 좋지가 않다. 나름대로 호감 가지고 있던 여자애가 실은 다른 남자애를 좋아하고, 그게 명인이라니. 그것만으로도 큰 일인데 거기다 이 예나란 애는 나를 이용해 명인이와 친해질 생각 뿐인 것 같다. ……이게 NTR 아니면 뭐냐고!! 뭐, NTR은 아니지만.

속마음이야 어떻든, 겉모양으론 착하고 너그러운 친구 이미지를 연기해야 한다. 나쁜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최명인 이 녀석, 복 받은 거야. 이런 예쁜 여자애가 좋아해주는데다 이런 마음 착한 친구까지 있으니.

“응. 뭐가 어찌됐든, 친해져야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

“으, 응. 맞아! 그럼 뭘 어떻게……?”

예나는 앙증맞게 대답하곤 말끝을 흐리며 묻는다. ‘어떻게 친해져야 할까’를 묻는 것일까. 아, 하긴. 예나처럼 숫기 없는 여자애에겐 남자애랑 친하게 지내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인데, 거기다 그 타겟이 괴팍한 성격의 명인이니. 그러니까 어떻게 친해져야 하나, 요령 같은 걸 알려줘야 하나.

“명인이는, 스스로 뭘 하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해.”

“응, 응!”

“그리고 자기한테 너무 관여하거나 신경쓰는 것도 싫어하고.”

“아아~ 음…… 또? 또 뭐 없어?”

예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휴대폰을 꺼내 무엇인가 적는다. 메모하는 건가. 귀엽네.

“응, 고마워! 참고가 될 것 같아!”

“응, 그래.”

예나의 상큼한 미소에 조금 부끄러워져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젠장!! 귀엽잖아!! 안 된다, 저 여자애는 명인이를 좋아해. 내가 예나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면! NTR이라고! ……어디까지나 내 망상이지만. 뭔가 허무하다. 남 좋은 일만 골라서 하는 호구가 된 느낌. 기분 탓이겠지.


“저, 저기! 도와줄게!”

“됐어.”

“에엣?!”

책을 들고 가는 나와 명인이. 보충수업 교재이고, 꽤나 무겁다. 지나가는 길에 교무실에서 선생님께 붙들려 이렇게 책을 나르고 있다. 나나 명인이나 팔 한 가득 책을 들고 가는데. 쭈볏거리며 다가와 눈을 질끈 감고 말하는 예나. 호오, 벌써 시작하는 건가. 숫기 없는 예나 입장에서 본다면 굉장히 엄청난 용기이자 패기이다. 가만히 지켜보는 내가 다 뿌듯할 기분이다.

허나 명인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다. “단호”라고 표현하기도 부족하게, 냉기가 풀풀 날릴 정도로 단칼에 잘라 말한다. 솔직히, 예나만큼 귀여운 여자애가 저렇게까지 도와주겠다고 말하는데 보통 남자애라면 ‘아니야, 괜찮아’ 하고 살갑게 얘기할텐데, 그럴만도 한데 최명인은 최명인이다.

너무도 단칼에 잘라 말하는 명인이의 태도에 예나는 금세 울상이 돼 가련한 눈으로 명인이를 쳐다본다. 귀엽네.

“몇 개 들지도 못 하고 낑낑대고 징징댈 거잖아. 방해야.”

“아, 아니야! 그, 난 도와주고 싶어서……!”

“영인이가 도와주고 있어. 필요 없어.”

“으우우…….”

명인이는 냉기가 풀풀 날리게 차갑게 말한다. 예나는 제대로 말도 못 붙이고 떨어져 나간다. 누가 보면 명인이가 화가 났나, 혹은 예나랑 싸우거나 해서 저렇게 냉랭하게 말하나 싶겠지만 아니다. 최명인은 원래 이런 녀석이다. 특히 여자애들에겐.

“좀 잘 말할 수도 있잖아?”

“……징징대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지나가는 말로 말하니 명인이는 여전히 딱딱하고 무감각하게 대답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녀석, 지금 화난 게 아니다. 그냥 보통 상태의 대화.

“‘도와주겠다’는 순수 호의잖아? 매몰차게 거절할 것까진.”

“그래봤자 자기 힘 약하다고 책 몇 권 들고 말 거잖아. 그런 고양이손 같은 도움은 필요 없어.”

“너무하네, 매정혀.”

여전히 마초적이고 독선적인 대답이다. ‘힘이 적으면 도와주겠다는 호의조차 무시하겠다’라니. 이 얼마나 독단적이고 무시무시한 말인가. 딱 최명인스럽다. 하긴, 명인이는 애초에 도움을 바라는 녀석이 아니다. 자기가 하면 했지.

선생님 명령대로 책을 교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명인이는 감각 없이 ‘보충 교재 가져가.’ 하고 말한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책을 보는 명인이를 보며, 대체 어쩌다 이 녀석과 친해졌나 싶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풀 죽은 체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예나를 보며, 명인이와 예나가 친해질 계기를 찾아본다.


“들어줄게!”

“필…….”

“아하, 고마워. 무거워하고 있었는데, 명인이도.”

“내가 언제…….”

“헤헷.”

체육시간. 수행평가를 하겠다고 허들을 나르라고 한다. 오늘은 재수가 옴붙었는지 일을 많이 하게 된다. 명인이와 함께 여러 개의 허들을 나르는데 예나가 와서 말한다. 이번엔 단단히 작정을 했는지 의젓한 표정이다. 명인이는 여전히 일관성있게 거절하려 하는데 내가 얼른 팔꿈치로 녀석의 명치를 치며 저지했다. 동시에 이번의 예나는 얼른 명인이의 허들 한 개를 뺏어 든다. 허들을 뺏고 좋아라 하는 예나. 혀를 쭉 내밀며 좋아하는 모습이 굉장히 귀엽다. ……나도 무거운데. 나도 명인이랑 똑같이 허들 들고 있는데.

“으앗!”

‘꽈당!’

“아으으…….”

넘어진다. 분명 평평하고 아무것도 없는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운동장인데. 예나는 굉장히 아픈지 무릎을 쓰다듬으며 괴로워한다. ……도짓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괜찮아?’ 하고 물으니 ‘응…… 괜찮아.’ 하고 간신히 대답하는 예나. 얼굴이 빨개져서, 눈물까지 핑 도는 걸 보니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그니까 필요 없댔잖아.”

“야……!”

“…….”

명인이는 정말 냉랭하게, 한 마디 툭 던지고 예나가 들던 허들을 마저 들고 앞서 간다. 예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이 반짝,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땅을 적신다. 나는 소리치며 뭐라 하려 했지만 명인이는 듣지도 않고 앞서 간다 ……정말, 답이 없는 녀석이긴 하다. 앞서 가지도 예나를 위로하지도 못 하고 멀뚱히 서 있는다.

“뭐해? 어! 왜 울어!”

“……아냐, 훌쩍!”

“우는데! 뭐 왜 욕 먹었어?”

불쑥 끼어드는 미지. 엄청난 눈치 없는 여자애다. 명인이랑은 정도와 방향성이 다르지만 얘도 분명 정상적인 애는 아니야. 예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일어난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닦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미지는 ‘왜 저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한다. 조금 난처해서, 요약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줬다. 미지는 가만히 듣더니 냅다 명인이에게 달려가 ‘그것 드는데 그렇게 힘들어하냐!’ 하고 퍽, 등짝을 세게 때린다. 싱글싱글 악의 없는 미소다. 명인이는 고개를 홱, 굉장히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무엇인가 말하려다 다시금 무시한다. 미지는 계속 명인이 주위에서 알랑거리며 놀러댄다. 약간의 카타르시스.

“후이잉…… 잘 안 돼.”

“험난하긴 하지, 저 녀석인데.”

예나는 꿍한 표정으로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잠자코 대답했다. 둘이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고 있다.

수행평가가 한창이다. 장애물 달리기. 명인이의 차례다. 멋진 자세로 촤악 뛰어가는 명인이. 명인이는 결코, 나처럼 운동을 못 하는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신경 자체는 상당하다. 다만 의지가 없을 뿐이지. 완벽한 자세의 명인이를 보니 이번 수행평가도 A+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인이 어디가 좋아?”

“응…… 멋있잖아. 지금도. 평소 시크한 모습도. 거기에…… 귀엽잖아!”

“그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물음에 답하는 예나. 꿈결 속에 빠진 듯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명인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납득할 수가 없다. 명인이 녀석이 ‘멋있다’ 까진 어떻게 넘어간다고 해도 ‘귀엽다’는 도저히…… 예나도 어느 정도 독특한 시각의 소유자인 것 같다.

“아까 그거, 너무하지 않아?”

“뭐가.”

명인이는 돌아왔고, 예나는 부끄러워하며 여자애들 쪽으로 갔다. 짐짓 명인이에게 말을 꺼냈다. 명인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예나를 옹호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스스로 호구짓을 자처하다니, 나도 비정상이다.

“여자애가 넘어졌는데, 그렇게 냉랭한 투라니. 너무하잖아.”

“남자애도 넘어질 수 있어. 금방 일어나면 되잖아.”

항상 일관된 태도의 명인이. 여기서 괜히 건드리면 벌집을 쑤시는 꼴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명인이에겐 직설적인 접근법보다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게 좋다.

“아니, 꼭 여자애라가 아니라. 사람이 넘어졌는데, ‘괜찮아?’ 하고 말할 수 있잖아.”

“너, 내가 넘어지면 ‘괜찮아?’ 하면서 손 내밀래?”

“아니.”

“그래, 그거야.”

“……??”

자칭 논리적이라고 말하는 명인이. 하지만 지금 나와의 대화는 도통 무슨 논리인지 알 수가 없다. 명인이라면 분명, 내가 손을 내민다 해도 툭 치고 안 받을 녀석이다. 그래서 그런 대답인데 뭘 그거라는 건지. 가끔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명인이다.

“그렇게 여자애가 싫으우”

“……여자애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짓을 여자애들이 해.”

왜 이렇게 이 녀석은 여자애들에게 냉정할까, 넌지시 물어보니 명인이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내가 싫어하는 짓’이라…… 자세히 물어보면 골치아파질 게 뻔하기에, 그냥 그러려니 넘어간다.

“흐흐, 그럼 미지는 괜찮어? 쟨 완전 상남자잖아.”

“……쟨 더 싫어. 짜증나.”

“왜, 뭐가 그리 짜증나는데.”

“됐어, 그만해.”

마악 마치 말처럼 폴짝 허들을 뛰는 미지를 보며 말아니 명인이는 질색을 하며 대화를 끝내려 한다. 키들키들 웃으며 명인이를 놀려댄다. 모미지, 거의 유일한 최명인의 천적이 될 것 같다.


“저…… 명인아!”

“응.”

오옷. 벌써 그런건가.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숨죽여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한다.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꺼내는 예나. 수줍은 소녀의 용기가 돋보인다. 저 부끄러움과 격동은 아마, 고백하려는 게 아닐까 살짝 추측해본다.

명인이는 반면 예나는 거들떠도 안 보고 보고 있던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한다. 그것도 되게 무성의하게. 여자애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좀 쳐다봐주지. 하긴, 그러면 천하의 최명인이 아니지.

“그…… 저…… 있잖아……!”

“후우. 뭘 말하고 싶은데.”

얼굴이 빨개져서, 몸까지 파들파들 떠는 예나의 모습은 차라리 가련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모습을 보지 않더라도 떨고 있다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겠다. 명인이는 자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예나를 쳐다본다. 더욱 당황하는 예나. 도저히 명인이와 눈도 잘 못 마주한다.

“저, 저녁 같이 먹을래!”

“내가 왜.”

“…….”

오옷. 엄청난 용기. 여자애 쪽에서 먼저 밥을 먹자고 하다니. 예나,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것 같다. 숫기가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솔직히, 여자애 쪽에서 먼저 밥 먹자고 하면 게임 끝난 거라고, 보통 남자애라면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잖아? 하지만 예나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상대는 상태가 영 안 좋은 최명인. 상식을 기대해선 안 되는 녀석이다. 특히 여자애로써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한 듯 튀어나온 명인이의 대답에 예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 저, 저녁 뭐 먹어!”

“급식 먹어야지.”

“그, 그럼! 밖에서 튀김이랑 떡볶이랑 먹자!”

“됐어. 튀김 싫어해. 오늘 오징어덮밥 나와.”

“그, 그, 그, 그럼!”

뭔가 정상적인 대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예나는 잔뜩 당황해서 터질 듯한 빨간 얼굴로 말한다. 이미 정신은 그로기 상태가 됐는지 되는데로 막 말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것에 일일이 디테일하게 대답하는 명인이도 참 잔악한 녀석이다. 여자애 연심을 저렇게나 파괴하다니. 오징어덮밥이 그렇게나 좋더냐. 명인이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정확히?”

“……나, 난…….”

명인이는 아예 책을 탁 덮고, 예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정확하게 노려보고 있다. 살벌한 눈초리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일그린 체.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명인이지만, 선이 가는 미소년인 명인이지만 눈매만큼은 상당히 강렬한 편이다. 거기에 저렇게 노려보는 표정은 가히 일품이다. ……근데 저 멍청이가 여자애한테 그런 무서운 표정을 지어! 예나는 우물쭈물 겁먹은 표정으로 제대로 명인이를 쳐다도 못 본다.

“그…… 그……”

“하.”

예나는 여전히 우물쭈물, 답하지 못한다. 나는 십분 이해한다. 솔직히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덥썩 고백하는 것도 여자애가 할 짓이 못 된다. 그것도, 소심하고 숫기 없는 예나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 행동은 명인이의 속을 더욱 긁어놓았나보다. 아, 뭔가 일촉즉발인데. 명인이랑 꽤 오래 지내서 명인이가 싫어하는 패턴을 좀 아는데 명인이, 저런 식으로 질질 끌고 말 끝 흐리거나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자기가 똑부러진다고 남들한테도 똑부러지는 걸 강요하는 성질 괴팍한 녀석인 게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소리 내어 한숨 쉬고 한 손을 허리에 올리는 명인이.

“하루종일 주변 알짱대기나 하고, 똑바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뭔데?! 할 말 있으면 제대로 말 하고, 말할 준비 안 됐으면 그냥 짜져 있던가. 왜 사람 귀찮게 자꾸 말 걸어. 그렇게 한가해?”

“……미, 미안.”

명인이는 숨도 쉬지 않고 쭉 늘여 말한다. 이럴 때 보면 한가지 신기를 보는 것 같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잔악할 수 있을까. 가련하고 귀여운 여자애를 상대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저렇게 심한 힐난(詰難)을. 명인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나를 꾸짖듯이 험한 소리로 말한다. 명인이가 키가 작은 편이라 예나를 내려다보진 못하고 동등한 눈높이에서 말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긴 하다. 예나는 숨도 못 쉬고 사과한다.

“야, 명인아 그건 암만해도 좀 심하잖여.”

“내 입장은 확실히 그래. 그러니까 할 말 있으면 하고, 준비 안 됐으면 할 말 생각해서 말 할 수 있을 때 오라고. 그거 말 하는 게 잘못됐어?”

“네, 네. 하나도 안 잘못 됐습니다. 그냥~ 아, 여자애라고 그러는 건 아니구요, 그…… 울잖아.”

“……흑!”

나는 제재하려다 힐난의 화살이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아 얼른 유하게 돌려 말했다. 그러면서 슬쩍 예나의 눈치를 본다.

울고 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기 딴에는 어떻게든 명인이랑 친해져보려 노력한 건데. 엄청 용기 냈겠지, 이해할 수 있다. 나한테도 엄청 물어보고 상담도 했는걸. 하지만 명인이에겐 전부 허사다. 오히려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진 듯, 명인이의 화만 돋운 결과가 됐다. 그래서 우는 것일 거다. 단순히 지금 명인이가 혼냈다고, 그 순간의 슬픔으로 우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종일 알짱대고’ 라는 말도 명인이가 했으니까.

“그렇게 우는 것도 엄청 짜증나거든. 울면 해결이 되는가? 여자의 눈물? 뭐만 하면 울기부터 하지? 제대로 말도 행동도 하나 못 하면서? 울면 해결될 것 같은가? 자기가 스스로 무엇인가 성취를 해야 그게 제대로 된 민주시민이 아닌가?”

“야야, 여기서 민주는 왜 나오는데. 그만해, 애 울잖아.”

“……흑! 미, 미안해, 다, 다시는! 안 울게! 흑!”

“……에이씨.”

명인이는 특유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는가’ 말투를 시전한다. 보는 내가 다 죽어버릴 듯이 창피하다. 거기다 이건 누가 봐도 명인이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팍팍 오는 그림이다. 명인이는 본인이 의도한 것이긴 하지만 반 애들에게 별다른 존재감이 없지만 이런 그림의 시나리오는 영 좋지 않다. 이쯤에서 그만두게 하려고 얼른 제재했다. 예나는 ‘흑! 흑!’ 하며 울음을 참으며 간신히 대답한다. 여자애들이 술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내 제재에 명인이는 팍 기분 상한 얼굴로 한 마디 내뱉고 자리에 앉는다.

예나는 꾹꾹 울음을 참는다. 그렇게나 명인이가 좋을까. 명인이가 ‘울지 마!’ 하는 투로 말하니까 정말 울지 않으려고 하다니. 소녀가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구나, 새삼 놀랍다. 곧 예나 친구들로 추정되는 여자애들이 와 ‘왜 울어, 예나야!’ 하면서 데려간다. 예나는 애써 꾹꾹 울음을 참으며 이 쪽까지 들리게 ‘나, 나 안 울어! 흑!’ 하고 대답한다. 명인이는 여전히 기분 상한 표정이다.


“왜 그려, 저 작은 여자애 울리고. 그렇게 진지할 건 없잖아, 사람이?”

“……짜증나잖아.”

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나는 잠자코 말했다. 명인이는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이런 반응의 명인이는 기분이 안 좋은 명인이다. 기분 좋을 리가 있나.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자기가 여자애 울렸는데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명인이라고 좋아서 울린 것도 아니고. 다만 명인이는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해서,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진 않는 녀석이라. 음, 뭐가 잘못된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그런 말 있잖아. 아리스토 텔레스인가? 활시위가 너무 팽팽해져 있으면 정작 전쟁 때 못 쓴다고. 평소에도 그렇게 진지빨고 살면 힘들잖아? 그냥 정신줄 놓고 살어, 나처럼.”

“……그러긴 죽어도 싫다. 나는, 적어도 여자애 눈물은 세상에서 제일 싫으니까.”

“하. 낭만없는 놈.”

명인이는 내 말에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참, 어떻게 해도 자기 고집은 못 꺾는 녀석이다. 이런 광경도 한두번 보는 건 아닌지라 그러려니 한다. 급식실로 들어간다.


작가의말

너무나 오래 참았어~ 가슴만 설레 눈 감고우오우오~

난 지금 꿈을 꾸었어~~~ 너무도 아름다웠지~~


안녕하세요, 되게 오래간만이네요! 드디어, 드디어 구작들이 속속들이 완결이 났습니다!!

이제 저의 연재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하하하하!


......그·러·나.


안타깝게 구작들을 연재하면서 또다른 연재거리가 생각나버려서...... 이 녀석은 제 2의 「제취미」가 되는 것일까요. 그래도 1주일에 1편 정도는 꾸준히 올릴 생각입니다. 오래간만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11.12 07:23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11.13 11:32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5.01.24 19:06
    No. 3

    잃어하는 => 싫어하는 ???
    오타 나신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1.26 23:09
    No. 4

    아, 감사합니다! 이제야 보고 수정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5.01.27 11:31
    No. 5

    영인이라는 캐릭터도 매력적이네요. 살짝 정신줄을 놓고 사는 가치관이 좋다고 생각하니. 유도리 있어요. 언뜻보면 평범한 그가 명인 옆에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그 자신도 빛나네요. 자기 주관이 지나치게 또렷하면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 하는데 , 그 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1.27 23:20
    No. 6

    본인은 존재감이 없지만 명인이를 통해 존재감을 펼치는 설명 캐릭터. 처음 짰을 때는 분명 그런 캐릭터였는데, 점점 진행되다보니 원래의 컨셉은 산으로...... 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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