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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너와 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7.08 21:59
최근연재일 :
2016.12.25 23:3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41,272
추천수 :
493
글자수 :
552,862

작성
14.10.27 22:19
조회
535
추천
9
글자
17쪽

02화 - 2

DUMMY

“근데, 이길 수 있어? 가능성은 있는겨?”

“……아니.”

“너무 간단하게 대답하는데.”

교실로 돌아가며 묻는 말에 명인이는 뜸을 들이다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건 또 대쪽같이 말하는구나.

“지면 고기 사줘야 되잖아? 아─ 미지보다는 어찌됐든 낫구나.”

“……흐흥.”

체육복을 갈아입으며 말하니 명인이는 바지를 입으며 피식 웃는다. 그 과묵한 최명인이 이만큼 웃다니, 어지간히 미지에게 한 방 먹인 게 즐거운 모양이다. 나 역시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재미있어 하하 웃었다.

“솔직이, 노렸지? 미지 당황하는 거 보려고? 캬, 이거이 최명인이 책사여 책사? 제갈공명이여?”

“……뭐, 그런 것도 있지만.”

셔츠 단추를 다 채우고 넥타이를 깔끔하게 올리며 명인이는 말한다. 슬쩍 시선을 저쪽 미지 방향으로 돌린다.

미지는 애들과 깔깔대며 얘기하고 있다. 평소라면 열에 아홉은 명인이에게 와서 시비를 걸 텐데. 뭐, 미지는 원래 친구가 많은 편이니 친구들하고 놀 수도 있다. 반드시 명인이에게 와 시비를 걸도록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흥!”

“이거야.”

“……아!”

미지는 쳐다보는 명인이를 보고 새침하게 표정이 바뀌더니 혀를 쭉 내밀고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린다. 마치 초등학교 때 싸워서 삐친 여자애 같은 느낌이다. 그러기엔 미지가 키가 커서 모양이 안 살긴 하지만.

명인이는 그런 미지의 반응을 보고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는다. 나는 잠시 그 감각을 음미하고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최명인, 이 무서운 아이……! 그런 것까지 노리다니……! 정말 책사인건가! 명인이의 씨익 웃는 모습이 어째 더욱 사악하게 보인다.

명인이의 계략은 제대로 먹힌 것 같다. 그 뒤로 저녁시간까지 단 한 번도 미지가 찾아오지 않는다. 미지가 찾아와 장난 걸고 놀리는 걸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싫어했던 명인이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하긴, 미지 입장에서도 저러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한다. 엄연히 성희롱이니까, 명인이가 한 짓거리는. 처음 보게 되는 미지의 소녀성도, 결국 그거지. 저래 선머슴 같아도 미지도 여자애라는 거. 명인이 보기 껄끄러운 것이겠지.

“그래도 좀, 그렇지 않아?”

“뭐가.”

보충수업 영어를 듣기 위해 명인이와 둘이 걸으며 말했다.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명인이는 평상시와 같이 냉랭하게 대답한다. 아까까진 미지의 새침한 반응을 보며 굉장히 좋아하는 반응이었는데.

“미지 말여. 갑자기 팍 말 안 걸잖아? 그래도 꽤 친했는데.”

“그런 걸 친하다고 하는 게 아니지. 일방적으로 귀찮게 시비거는 관계지.”

“하긴.”

명인이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건 누구보다 옆에서 지켜 본 내가 잘 알지. 미지가 말을 걸 때, 명인이는 육신에서 영혼이 도망간 채 죽은 눈이 되니까. 정말 귀찮고 싫어하는 느낌이지, 그건.

“그리고 이것도, 조만간 원래대로 될 거야. 저 녀석 성격이면.”

“왜?”

“금세 회복돼서 다시 올 게 뻔하거든.”

명인이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그의 얼굴에서 깊은 고민과 약간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다. 안타까운 고민이네, 명인이도.

“흐흥, 생각보다 잘 아네?”

“……알고 싶어서 알게 된 건 아니지만.”

“쿡쿡.”

마치 한 차례 싸웠지만 금세 화해할 걸 잘 알고 있는 친한 친구 같은 사이랄까. 단짝은 아니고, ‘악우’라는 개념? 그 정도로 서로 속속드리 아는 사이냐고 놀리니 명인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왠지 모르게 명인이가 미지로 인해 괴로워하는 걸 보면 몹시도 즐겁다. 좀 더 명인이를 놀리고 싶지만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이 시작돼 그럴 수 없게 됐다.


수업이 끝이 나고, 조금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저녁시간. 저녁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애들이 꽤나 많이 빠져 여유 있게 밥을 먹을 수 있다. 굳이 죽음의 레이스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넉넉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소리. 그러니 그만큼 시간도 절약되고 놀 시간도 더 많아 좋다.

그런 저녁시간, 나와 명인이는 을씨년스러운 운동장에 덩그러니 서 있다.

벌써 어둑어둑 하다. 하교하는 애들의 물결은 예저녁에 사라진 지 오래. 운동장엔 정말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서부 사막에서 건초 더미가 둥글게 구를 것 같은, 그런 이미지의 황량한 운동장.

“자, 시작해볼까.”

“그려, 양껏 혀.”

명인이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체육복으로 갈아 입은 명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달리기 자세를 취한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런 명인이를 보며 대답했다.

좀 갑작스럽지만 달리기 실력을 테스트 해보겠단다. ‘장난으로 한 게 아니여? 진심으로 하는겨, 대결?’ 하고 물으니 진지한 표정의 명인이의 대답은 ‘대결을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안 되지.’

하긴, 매사에 진지하고 진중한 명인이니까. 이런 어줍잖은 대결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겠지. 그게 명인이의 장점이자 단점이지. 개그를 다큐로 받는 거. 쓸데없이 진지병 돋는 거.

“세 바퀴.”

“하앗, 하악.”

명인이가 내 앞을 지나고, 나는 심드렁하게 외쳤다. 목표가 16바퀴니까, 아직 한참 남았구나. 명인이는 벌써부터 꽤나 힘든 모양이다. 체력이 약하다곤 하지만 아직 초반부인데도 좀 불안불안 하다.

16바퀴라고 하니까 뭔가 엄청 많아 보이고 살인적인 수치로 보이지만 운동장이 그렇게 넓지가 않아서 실은 적당한 수치다. 체력장 할 때는 10바퀴 정도만 돌긴 하지만.

근데 명인이, 상상외로 잘 못 달리는구나. 가만히 달리는 명인이를 살펴본다. 자세는 하여튼 죽여준다. 달리기에 대해 잘 모르는 나지만, 얼핏 봐도 자세만큼은 프로급인 명인이다. 곧게 뻗는 팔과 쭉쭉 뻗는 다리. 말처럼 튼실한 허벅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근육이 붙어 있는 허벅지가 인상적이다. 오, 여리여리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근육이 있긴 있구나. 남자네, 최명인이.

문제는 달리는 속도와 체력. 자세 좋고, 시선 좋고. 몹시 빠르게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질적으로 달리는 속도는 굉장히 느리다.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 적당적당하게 달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 겨우 반 정도 달렸는데 거친 숨결을 토하는 모습을 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열 바퀴.”

“헉, 허억, 흐읏, 하앗, 흐억.”

이제 열 바퀴. 대략 2/3 지점이니 힘이 들 만한 지점이다. 하지만 명인이는 다 죽어가고 있다. 숨을 헐떡이는 기세로만 보면 한 25바퀴 정도 뛴 사람 같다. 흰 얼굴은 모처럼만의 운동으로 인해 벌겋게 달아올랐고, 이마와 볼에선 연신 땀이 흐른다. 거친 숨결은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하듯 헐떡인다. ……저 정도면 나보다 체력이 약한 것 같은데. 체육 수행평가는 전부 A 맞는 녀석이. 역시, 자세빨인가. 저렇게나 힘들어 하면서도 지금도 자세는 일품이니까.

“열 여섯바퀴.”

“흐핫! 하악, 허억, 흐억, 하아, 크헉…….”

괴로워하면서도 기어이 명인이는 열 여섯바퀴를 다 돌았다. 내 나지막한 목소리에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 명인이. 평소의 근엄한 체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숨을 헐떡이는 모습만 보면 42.195km 마라톤 풀코스나 철인 3종경기 같은 거 마친 선수 같은 모양새. 산소호흡기라도 가져다주고 싶을 만큼 애처롭다.

“18분 54초 52. 개판인데?”

“학…… 하악…… 흐억…….”

“그려, 좀 쉬고 얘기해야지.”

명인이가 달리는 동안 스톱워치로 시간을 쟀다. 결과는 시궁창. 나지막이 결과를 얘기해줘도 지금은 힘들어서 들리지 않는 모양. 그저 숨을 고르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명인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쉬게 해 준다. 머릿속으로 살짝 계산해본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기록은 체력장. 10바퀴지만 대강 유추할 수 있으니까. 제일 빠른 녀석이 6분 50초 대였나. 미지는 3위라니까 7분 정도겠지. 아, 참고로 난 8분 40초 정도. 그냥 반에서 중간이었다.

10바퀴 이후로는 힘드니까, 속도가 느려진다 쳐도…… 바퀴당 1분이라 잡아도 7분 + 6분 해서 13분. 무려 6분 가까이 차이난다. 이건 대결이 아니라 일방적인 관광이겠는데. 미지가 한 세 바퀴 앞서고 한 바퀴 역주행하고 다시 달려도 넉넉하게 이기겠다. 완벽에 가까운 양민학살이 되겠는데.

“마셔, 숨 넘어가겠다.”

“헉…… 고마워.”

힘들어 죽으려고 하는 명인이가 안쓰러워 운동장 나가 문방구에서 포카리를 사왔다. 명인이는 기력이 쇠한 손을 뻗아 캔을 집어든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간신히 캔을 딴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거이 최명인이 완전히 물렝이구먼! 아주 죽을병 다 걸렸어! 이래가지고 무슨 달리기 시합을 건데?!”

“꿀꺽. 하아, 그러게. 저질이네.”

“흘흘흘.”

나의 비꼬는 듯한 말에 명인이는 음료수를 마저 마시며 깊은 한숨을 쉰다. 빠른 인정은 명인이의 좋은 점이지. 자신의 저질체력을 인지하고 인정했다. 나름대로 동안인 명인이의 얼굴에서 갑자기 중년 아버님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려 한다. 한 15년 폭삭 늙은 것 같다.

잔뜩 힘들고 괴로워하는 명인이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늘 진지한 선비마냥 체통을 지키고 자세를 올곧게 하는 녀석이니까. 그래서 난 이렇게 괴로워하며 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명인이가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 아, 남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 좋아하다니, 난 새디스트인가보다.

“확실히, 지금 이것 가지곤 죽었다 깨나도 못 이기겠네.”

“잘 아네. 네, 사실입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명인이는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한 시선을 취하며 말한다. 충격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현실을 인지한 표정. 나는 잔뜩 웃으며 명인이를 놀려댔다.

“뭐, 그래도 별 거 없잖아 져도? 그까짓 고기 한 번 사주면 되지.”

“……갈고 닦아야지.”

“음?”

명인이는 작게 말하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나도 쪼그리고 앉았던 자세를 바로하고 일어섰다. 겨우 숨을 고른 명인이. 평정심을 찾은 듯 심유하고 총명한 눈빛이 돌아왔다. 운동장 가운데 방향으로 몇 걸음 발을 내딛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괴성을 지르는 명인이. 큰 소리로 저 멀리까지 들리게 복식호흡을 하며 길게 외친다. 당황스럽다.

“뭐여, 갑자기?”

“정신집중.”

“그것 참 정신집중 한 번 요란하게 하네.”

놀라 물어보니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명인이.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땀에 절은 체육복 상의를 벗으며, 명인이는 한숨을 쉰다.

“내일부터 운동해야겠다.”

“허허, 진짜 진심으로 하겠다는거네. 그러면, 한 달 동안?”

“그렇지.”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명인이. 참 편해서 좋다. 달리기를 못 한다. → 그럼 연습해야지. 하는 아주 간단한 메커니즘. 약간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때까지 해서 승산이 있어?”

“해 봐야지. 해 봐서 안 되면 그 때 가서 후회해야지. 그렇다고 안 해보고 패배할 순 없으니까.”

“……오. 방금 좀 어른 같았어. 멋있는데.”

“어른은 개뿔. 그냥 허세야.”

어른스런 명인이의 태도에 감탄하니 명인이는 쑥스러운 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열심히 노력한 뒤 그 후의 승부는 결과가 어떻든 수긍하겠다. 캬, 얼마나 멋진가. 할 일을 마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겠다는 옛 격언이 떠오른다. 성숙하구나, 명인이는.

“들어가자.”

“그래.”

교실로 돌아간다. 계단을 오르는 명인이의 발걸음이 어째 무거워보인다. 장난스레 등을 밀어주고 싶지만 스킨십을 싫어하는 녀석이니. 잠자코 나란히 걸어 힘겹게 교실에 도착한다.


“저…… 명인아!”

“응.”

야자 중간 쉬는시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예나. 주볏거리며 잠시 명인이 앞을 얼정거리다 힘겹게 쥐어짜듯 말을 꺼낸다. 순순히 대답하는 명인이. 기력이 없어 멍한 눈초리다. 평상시라면 책을 읽는다던지 할 텐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전력을 다해서 뛰었다, 그런 뜻일까.

“그, 달리기 시합한다고 들었어!”

“……어.”

예나는 여전히 명인이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부끄러운 소녀인 모양이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해도 되는 말인데, 사랑을 속삭인다거나 그런 게 아닌 일상의 이야기임에도 굉장히 용기를 내 쥐어짜는 느낌으로 말한다. ……이건 좀 부러운데. 옆에서 지켜보면 완벽하게 사랑에 빠진 소녀같은 느낌이니까, 명인이를 대하는 예나.

정작 명인이 본인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 투다. 평소에도 그럴진데 지금은 아까 저녁시간에 토할 정도로 달리기를 해서 모든 기력이 빠진 상태다. 어떤 것도 관심이 없는 기묘한 명정상태인 것이다. 해서 명인이는 굉장히 오래되 단지 폴더를 켰을 뿐인데 한참 버벅거리는 컴퓨터처럼 렉이 걸렸다가 대답을 한다. 끄덕끄덕, 그럴 수 있다.

“여, 열심히 해! 이길 수 있을 거야……!”

“……응. 근데 그건…… 누가 말해줬어?”

“어?”

명인이는 오른손을 미간에 짚고 머리를 기댄다. 잠시 눈을 감으며 대답하지 않는다. 현기증? 그 정도로 힘들면 달리지 말라고.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하는 명인이. 굉장히 기분 나빠 보이는 표정으로 예나에게 물어본다. 당황하는 예나. 어버버 하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미, 미지가 말해줬어…… 그, 나한테만 말해준 거야! 딱히 떠벌리고 다닌 건 아니야, 미지 그런 애 아니니까!”

“……딱히 떠벌려도 상관없는데. 아, 미안 내가 지금 좀 힘들어서. 화낸 거 아니니까. 음…… 고마워.”

“응…… 힘 내!”

명인이의 저 표정은 자기 말대로 화나서 그런 게 아니다.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에 힘듬이 더해져 저런 예민한 표정이 나온 것이다. 지금 녀석이 상태가 상당히 안 좋으니까. 그래도 그런 컨디션 안 좋은 상태에서도 예나에게 사과하며 사실을 말한다. 웬만하면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제멋대로 말해서 오해를 사는 명인인데. 예나에겐 조금은 누그러진 태도를 보인다. 예나는 겁먹은 표정에서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속삭이듯 말하고 뿌듯하게 명인이를 쳐다본다. 명인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괴로워하다 그대로 엎드린다.


“나는 니 자는 거 처음 봤다.”

“……잘 수도 있지. 사람이 살다보면.”

야자가 끝이 났다. 둘이 걸어가며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하니 명인이는 멍한 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무감각한 목소리 속에 조금 어색해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오늘 참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명인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야자 중에 퍼질러 잤을까. 뭐, 야자 하다 잠든 건 아니고 쉬는시간에 잠들어서 그대로 일어나지 않은 것이지만. 옆자리에서 지켜봤지만 너무 곤히 자서 감히 깨울 수가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선생님이 한 번도 안 오셔서 명인이는 숙면을 취할 수 있었지.

“웃기네, 천하의 최명인이 그런 일에 관심을 갖다니.”

“뭐가.”

명인이는 똑같은 볼멘소리의 불퉁한 태도다. 늘 이런 패턴이지, 내가 무슨 질문을 던지면 저 특유의 퉁명스런 ‘뭐가.’ 라는 대답. 기지개를 쭉 켜고 목을 좌우로 흔들어 따닥 소리를 내고 말했다.

“그렇잖아, 네가 관심있는 일 아니면 잘 몰두하지 않는 게 네 성격이잖아? 내가 지금까지 살펴온 너는 그랬는데. 고등학교 와서 바뀌었나?”

“……뭐. 바뀐 것도 있으려나.”

“하하, 나쁘지 않지.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그다지 시원스런 답변을 내놓지는 않는 명인이. 원래 그런 녀석이라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간다.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는 명인이. 아까부터 저런 멍한 눈이라 참 걱정된다. 달리기 한 번에 많은 것을 잃은 것 같아서.

“워낙 짜증나게 하니까. 장난처럼 말은 걸었는데, 내가 먼저 대결을 걸었으니까. 제대로 해야지.”

“음, 그래야 최명인답지. 그건 확실히 본받을만하지, 자기 일에 전력을 다하는 거.”

“……왜 이래. 나 정치인 아니야, 나한테 그렇게 아부 떨어도 떨어지는 거 없어.”

“아니, 그냥. 왜 그렇게 냉소적이여, 사람이.”

명인이는 자기 칭찬하는 걸 되게 어색해한다. 그걸 직접 면전에 대고 입으로 말하는 건 더 창피해하고. 아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부끄러워한다. 몇 안 되는 녀석의 귀여운 점이랄까.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조금 기대가 된다. 과연, 명인이와 미지의 대결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당연하게도 미지의 승리? 아니면, 의외의 명인이 승리? 둘 다 굉장한 모습이 나올 것 같아 기대된다. 중간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니. 고개를 끄덕이며 명인이와 헤어진다.


작가의말

......아까 전까진 기분 좋았는데.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이렇게 가실 분이 아닌데.

아직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얼마 전까지 TV에 나오는 모습도 봤는데.


만남과 이별도 허무하고, 삶과 죽음 또한 너무 가까운 것 같아 하아. 아쉽고 허무하고 공허하고...... 모르겠네요, 뭐가뭔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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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11.13 11:47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11.15 21:22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5.01.27 12:54
    No. 3

    이 날이 그 날이었나보군요. 아직도 기억이 생상하네요.

    명인은 점점 귀여운 면모를 드리내고 있네요. 참 귀엽습니다. 이런 캐릭터가 여자이면 아마 이쪽에서 인기가 크지 않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1.27 23:23
    No. 4

    그렇지요, 그렇게 가실 양반이 아니었는데...... ㅠㅠ

    그렇게 느끼신다면 다행입니다! "귀여움"을 은근히 드러내보고 싶어서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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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1화 - 3 +6 14.10.01 708 9 18쪽
2 01화 - 2 +6 14.07.10 795 8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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