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너와 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7.08 21:59
최근연재일 :
2016.12.25 23:3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41,274
추천수 :
493
글자수 :
552,862

작성
14.11.04 23:06
조회
610
추천
10
글자
17쪽

03화 - 2

DUMMY

평범한 일상. 언제나 그렇듯, 주위는 평화롭고 고요하다.

“응.”

“안녕. 후우.”

“……아침부터 뛰냐.”

가만히 아침길을 걸으며 슬슬 쌀쌀해진 기온을 느끼며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문득 뒤에서 숨소리가 들린다. 어깨를 툭 치며 인사하는 명인이.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달려가면서 인사한다. 그리곤 다시금 뛰어 나가는 녀석. 이 아침부터 뛰는 거야.

그보다 어제 아팠잖아. 무슨 괴물 같은 재생력인거야, 저 녀석은.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어 달려서 녀석의 뒤를 쫓았다.

“야, 괜찮아. 어제 아팠잖아.”

“응, 괜찮아. 후우. 16시간 자니까 나았어.”

“16시간?! 나 가고 아침까지 푹 잔 거여?”

“어. 후우, 그러니까 뛰잖아. 후우.”

“그려.”

참 대단한 회복방법이다. 약 먹고 푹 자서 나았다면야.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얼굴을 보니 정말 쌩쌩하고 멀쩡해서 의심을 거두었다. 더 이상 뛸 이유는 없어 속도를 늦추고 걷는다. 명인이는 저 멀리 뛰어간다.

“안녕, 명인이는?”

“오, 예나 안녕.”

교실에 안착. 편한 자세로 멍 때리고 있는데 예나가 와 인사한다.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해 준 건 참 좋은데, 뒤에 이어지는 명인이라는 단어는 참 거슬린다. 그러니까 명인이의 여부를 물어보려고 인사한 거잖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나는 최명인 대변인이다. 그런 포지션이니까, 적어도 예나한테는. ……슬프지 않아.

“운동장 뛰고 있는데 못 봤어? 저 봐.”

“아, 정말. 아침부터 뛰고 있네. 지치지도 않나봐.”

“그러게.”

창가를 가리키며 말하니 예나는 가까이 다가와 창가를 보며 말한다. 나야 내 자리가 창가 옆자리라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보인다. 한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지만 예나에게서 상큼한 샴푸냄새가 난다. 아침이라 그런지 더욱 달콤하고 진하게. ……최명인 복 받은 놈.

“주말에도 뛰었으려나, 비 왔는데.”

“아. 그─게.”

예나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명인이를 보며 말한다. 자나깨나 명인이 걱정인 모양이다. 나는 조금 껄끄러운 기분이 돼 말하는 걸 망설였다. 명인이 아플 때, 미지만 부르고 예나는 안 불렀으니까.

그도 그럴게, 예나 불렀으면 아마 엄청난 패닉상태가 됐을걸. 단순히 많이 뛰어서 토한 정도의 경미한 이상에도 과할 정도의 반응을 보인 예나인데. 평소에 명인이에게 쿨하게 대하는 미지조차도 비 오는데 쓰러졌다니까 엄청 걱정해서 달려왔는데, 예나였으면……. 그래서 안 불렀었다. 생각이 안 난 것도 있지만.

“비 오는데 달려서 감기 걸렸었거든.”

“에? 무슨 말? 처음 들어.”

“그야 어제 감기 걸리고 오늘 다 나았으니까.”

“그게 돼?”

“본인은 된다네. 어제 16시간 자서 나았데.”

“우와. 대단해.”

차마 달리기 하다 쓰러져서 내가 업고 왔다는 말은 못 하겠다. 그랬다간 엄청 난리법석을 떨 테니. 전부 말하진 않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예나는 눈이 커져서 잠시 흥분할 것 같은 태세를 보이더니 ‘나았다’는 말에 다시금 흥분이 가라앉는다. 후우, 자극하면 안 돼. 그렇게나 명인이가 좋을까. 착찹한 심정으로 예나를 바라본다.

“음? 미지?”

“아, 그렇네.”

아침 운동장은 등교하는 애들로 붐빈다. 그런 와중에 명인이는 운동장을 돌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애들의 시선이 쏠릴 텐데, 언제 명인이가 그런 거 신경 쓰는 녀석이었나. 한참 달리고 있는 명인이 곁으로, 저 쪽에서 어떤 여자애가 붙는다. 치마도 펄럭이고 가방도 들썩이지만 곧은 자세로 달려와 명인이 옆에 붙는다. ‘으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왜…… 왜 같이 달리는 거야?”

“그걸 나한테 물어도. 그냥 장난거는 거 아닐까.”

“……나도 갈 거야!”

“하하…….”

예나는 뾰로통한 표정이 돼 나에게 묻는다. 잔뜩 심통이 난 표정. 나는 최명인 대변인(?)만으로 벅차 미지의 심경까지 대변할 수 없어 적당히 대답했다. 이에 귀엽게 볼을 부풀리며 더욱 화난 표정이 되는 예나. 당차게 문을 박차고 나간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선을 땠다.

과연 잠시 뒤, 예나는 운동장으로 나왔다. 명인이는 미지와 뛰고 있다. 멀리 있어 표정이 잘 안 보이지만, 왠지 나는 명인이의 싫어하는 느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미지는 잔뜩 웃는 표정으로 뭐라고 한다. 아마 명인이 놀리는 거겠지. 그런 둘을 착찹한 분위기로 바라보는 예나. 타이밍에 맞춰 따라 붙어 뛰기 시작한다.

명인이 오른쪽으로 따라 붙은 예나. 왼쪽에서 깝죽거리며 달리고 있는 미지. 두 여자애가 붙어서 한데 뛰고 있는 그 모습은 하나의 장관이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다. 저 장소에 있지 않은데도 살짝 창피해질 것 같다. 정말, 최명인 저 녀석은 인물이다. 저런 상황에서도 제 하고 싶은 걸 묵묵히 하다니.

두 여자애는 극명하게 다른 모습으로 뛰고 있다. 미지는 전형적인 선머슴. 자기가 여자애라는 걸 정말 인지하지 않고 있다. 모습이 망가지던 말던 그냥 달린다. 달리는 기세에 앞머리가 뒤집어져도, 치마가 흔들리고 뒤집혀서 흰 팬티가 살짝살짝 보여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이미 만성이 된 나는 별다른 감정 없이 그런 모습을 본다.

반면 예나는 전형적인 소녀. 미지와 같이 공격적인 자세로 뛰는 것은커녕 잘 달리지도 못한다. 팔은 애교스럽게 흔들고, 그나마도 한쪽 손은 치마를 잡고 자세를 바로 하느라 쩔쩔매고 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겠지, 바로 옆에 있는 명인이에게. 정작 명인이는 전혀 아무런 신경도 쓰고 있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뛰는데 본격적으로 달리는 명인이와 미지와 같은 속도로 달릴 수는 없다. 사실 명인이, 지금 엄청 빨리 뛰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명인이가 연습하는 건 오래달리기니까. 하지만 예나는 보통 여자애, 달리기 엄청 못 한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져 나간다. 얼굴이 빨개져서, 억울한 표정으로 달리는 명인이와 미지를 쳐다본다.


“웬일이여, 후우. 달리기 하고? 후우.”

“너한테 그 말 들으니까 되게 기분 이상한데.”

점심시간. 명인이는 오늘도 달린다. 체육복까지 차려입고, 자세 바로 잡고 열심히. 꽤 쌀쌀한 날씨지만 지속적인 달리기로 명인이는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런 명인이 옆으로, 내가 붙었다. 나 또한 체육복을 갈아입고서.

명인이는 힐끔 보더니 말을 건다. 씨익 웃으며 대답하니 명인이는 입을 다물고 달린다. 규칙적인 호흡을 하며 명인이는 계속 달린다.

“가끔은 같이, 달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후우. 음. 괜찮지. 후우.”

“그지.”

옆에서 나란히 달리며 한 마디 하니 명인이는 짧게 대답하곤 다시 입을 다문다. 달릴 때엔 달리기에 집중하겠다. 명인이 성격 아니까 마찬가지로 짧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고 달린다.

“평소에 달리기를 할 때엔,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후우, ……뭔 생각을 해, 그냥 달리지. 후우.”

“아하하.”

“넌, 후우, 안 숨차냐?”

“나는 그냥, 원래 이래.”

그래도 심심하니까 입을 가만히 둘 수는 없다. 말하니 명인이는 묵묵히 달리다 나를 쳐다보고 말한다. 무안해서 나오는 웃음. 명인이는 숨도 안 쉬고 말을 하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다. 그야 명인이는 아까부터 달리고 있었고, 나는 아직 한 바퀴도 안 돌았으니까. 운동은 별로 안 좋아하고 많이 안 하는 편이지만 신기하게 체력은 좀 되는 나다. 나도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렇다, 원래부터.

“나는 그래도, 달리는 너를 보면 기분이 좋다.”

“……후우, 무슨 또, 청춘드라마 같은 대사 하려고, 후우.”

사뭇 진지한 말투와 표정으로 운을 떼니 명인이는 잠자코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어느 정도 장난을 치다보니 이 녀석도 예상을 하나보다.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단속하며 말한다.

“너가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기쁘거든.”

“……개변태새끼네. 후우, 나중에 와이프 패겠다?”

“어어어, 큰일 날 소리를. 애초에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과격파가 누군데.”

“……내가, 후우. 언제. 그랬다고.”

“전혀, 정말 안 믿긴다, 그 말.”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니 명인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한다. 낄낄 웃으며 계속 달린다.

같이 달리고 있으려니 꽤나 먹먹하고 이상한 기분이다. 이 넓은 운동장을 명인이와 나 둘만 뛰고 있다면 괜찮겠지만, 운동장에선 애들 축구가 한창이거든. 가끔 공이 날아오거나 해서 어색하기도 하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잘도 뛰는구나, 명인이는. 이런 점은 부러운 점이다. 무슨 상황이든 자기 할 일 무덤덤하게 하는 거.

“핫하─! 웬일이야, 너가 뛰고?”

“왜 똑같은 말 하는데, 둘이서.”

“음? 응? 뭐?”

건물에서부터 뛰어 나오는 미지. 체육복을 입고 잔뜩 기세가 오른 상태로 뛰어 나온다. 아예 작정을 했나 보다. 내 옆으로 붙으며 힐끔 나를 쳐다보고 명인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 이것들은 무슨, 부부인가. 내 대답에 미지는 못 알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명인이 뛰는데 왜 같이 뛰는겨. 불안해서?”

“그런 거 아니거든! 불안하긴 누가 불안해,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볼까.”

“워이워이. 아직 그렇게 에너지 낭비하면 안 돼. 며칠은 남았는데.”

“어쨌든! 불안하긴 누가 불안해. 자꾸 그딴 소리 할래?”

“알았습니다요.”

미지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며 말한다. 저렇게 과민반응하면 오히려 더 의심스럽게 보이는데. 분명 불안한 것도 어느 정도 있으리라. 명인이는 나와 미지의 대화에 신경쓰지 않으려는 듯 살짝 눈을 감고 달린다. 코너 쪽에 와선 다시 살짝 눈을 뜨고.

“제법 늘었어, 명인이? 잘 달려 이젠.”

“……언젠, 후우. 못 달렸간.”

미지는 나 때문에 가려진 명인이에게 얼굴을 내밀며 말한다. 명인이는 감았던 눈을 뜨고 대답한다. 입이 간질간질 하다. 분명 처음 16바퀴 달리는 거 측정했을 때 엄청 못 달렸는데. 어지간한 여자애 수준으로 못 달리는 거였는데, 그 기록은. 자존심이 강한 명인이이니 짐짓 허세를 부리는 꼴이 가관이다. 하긴, 이래야 명인이답지. 미지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척 하면 척이지. 저~번에 보니까 되게 못 달리던데.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헉헉대고.”

“그걸 몇 바퀴 셀 만큼 구경했나보네. 신경 쓰여, 명인이 달리는 거?”

“아, 아니라고! 자꾸 그딴 식으로 몰아가지 마, 멍청아!”

“아하하. 자꾸 티나게 그러니까.”

“아니야, 아니야! 절대 신경 안 쓰여!”

명인이를 놀리는 것에 이어 이제는 미지까지 놀린다. 미지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보여서 재미있다. 자꾸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런 당황스런 모습이 나를 더욱 즐겁게 해준다. 아, 점점 더 변태가 돼 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있잖아. 명인아.”

“……후우. 응?”

“너는 왜 달려.”

“……무슨 청춘만화 같은 말 하려고.”

“아니, 진짜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셋이 달리게 됐다. 어느 순간 말이 뚝 끊긴 뒤론 그냥 묵묵히 달리기만 한다. 그러다 침묵을 깬 미지의 말. 명인이는 아까 나한테 했던 말과 같은 대답을 한다. 얘는 무슨 달리면서 말만 하면 청춘만화라고 생각하는 건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만.

“나 이기려고? 단지 그거? 애초에 대결은 왜 걸었어? 심심해서? 나 놀리려고?”

“후우…… 그게 이제야 의문이 드는 거?”

“아 쫌! 그냥 대답이나 해, 이상한 걸로 딴지걸지 말고!”

나도 명인이랑 같은 생각 했는데. 미지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친다. 다 귀찮은 모양. 단순한 미지니까 저런 식으로 중간에 다른 말 하면 그 쪽으로 얘기 주제가 빠져버리니까. 명인이는 잠자코 앞을 보며 달린다.

“너랑…… 후우, 달리고 싶었어.”

“……!”

명인이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땀을 한 줄기 흘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미지는 명인이의 말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다. 나는 가만히 분위기를 살펴 천천히 속도를 줄여 뒤로 빠진다. 이거 마치 분위기 좋은 청춘 드라마 같은 느낌이잖아. ‘너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야. 널 놀리려는 것도 아니야. 사실은…… 너랑 같이 달리고 싶었어. 너와 함께하고 싶어!’ 이런 거?! 최명인 이거, 생각보다 로맨틱한 녀석이려나?

“우웨에에에엑. 미친. 겁나 오글거려. 미쳤어? 정신 나갔어?”

“……난 네가 싫어.”

“나는 이 X랄로 느끼한 네가 싫어.”

“……진짜 싫다.”

“내가 더 싫거든?!”

미지는 분위기를 다 깨버리고 아예 원자단위로 분해하는 토악질을 하며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명인이를 본다. 명인이의 진심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또 자기 대답이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는지 명인이는 지그시 눈을 감고 꾸욱 화를 눌러 참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미지는 예전 초등학생 같은 느낌으로 잔뜩 놀리며 명인이에게 말한다. 명인이는 꾹꾹 눌러 참는다. 뒤에서 나는 쿡쿡 웃음이 나온다. 다시 속도를 올려 명인이 옆으로 갔다. 이번엔 명인이가 가운데.

“그래도 이렇게 달리니까 기분 좋긴 하네.”

“뭐, 그렇지.”

“아 근데 학교에서 달리면 씻을 수가 없잖아! 잔뜩 땀 흘렸는데!”

“뭐.”

다 달리고 수돗가로 향하는 길. 상쾌한 기분이 들어 한 마디 하니 명인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미지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손으로 가슴 쪽 체육복을 집어 펄럭이며 말한다. ……그 쪽, 더워 보이긴 한데. 명인이는 짧게 대답하고 수돗가로 향한다. 수돗가 한쪽 구석에 웬 세숫대야 같은 게 보인다. 그 안에는 속옷 세트와 수건이 있다. 미리 말하지만 여자애 속옷이 아니라 남자속옷.

“뭐여. 아주 살림살이 차렸어?”

“등목 좀 도와줘. 혼자 하기 힘드니까.”

“야, 아주…….”

“가지가지 하네! 학교에서 샤워까지 하지 그래!”

명인이는 속옷과 수건을 들어 수돗가 위에 가지런히 놓고 세숫대야를 나에게 건네며 체육복 상의를 벗는다. 기가 찬 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미지도 마찬가지 심경인지 이어 받아 말한다. 남고였으면 아주 여기서 벗고 샤워를 했을 기세다. 이 정도 굉장한 녀석인 줄 몰랐는데. 어쩐지, 이 녀석 계속 운동하는 것 치곤 땀 냄새가 별로 안 난다 싶더니.

상의와 런닝을 벗는 명인이. 남자애 답지 않은 흰 피부가 인상적이다. 얼굴도 하얗지만 몸은 정말 하얗다. 여자애 저리 가라 할 정도. 근육 하나 없는 유아 체형. 깡마른 몸에 어깨도 좁아 보여 더욱 명인이의 풍채를 작아 보이게 만든다. 명인이는 반드시 옷을 입어야 겠구나. 피부도 하얀데 중요 부위마저 분홍색(?)이라 되게 민망하다.

“아하하! 너 완전 애기 몸이다?! 겁내 귀여워! 하긴, 이 얼굴에 근육근육 하면 그것도 이상하겠다! 아하하! 너 젖꼭지도 핑두다? 개귀여워!”

“……얼른 하자.”

“그래.”

명인이는 자기 몸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이내 미지의 놀림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엎드린다. 미지는 여자애로써 할 말 못 할말 가리지 않고 제 맘대로 말하는 타입이니까. 명인이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기에 나는 얼른 대야에 수돗물을 담았다.

‘촤악!’

“……으으.”

“와, 개시원하겠다. 부럽다 부러워 이건 진짜.”

“……너도 할래.”

“미, 미쳤어?! 바보 아니야, 바보?”

“아. 너 여자애였구나. 미안, 착각했네.”

“지, 진짜!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하잖아!”

“뭐, 착각할 수도 있…… 죄송합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다. 물도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몸이 부실한 명인이는 차가운 물이 닿자 부르르 떤다. 그래도 꾸욱 신음을 참는다. 미지는 부러운 듯 쳐다본다. 힐끔 미지의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언제 여자애들이 하는 말 들은 적이 있는데. 여자애들이 제일 부러운 게 남자애들이 여름에 웃통 벗는거. 꼴불견이라고, 보기 싫다고 하지만 여자애들은 절대 그렇게 못 하니까. 하긴, 속옷이 하나 더 있으니까. 답답하긴 하겠다. 운동할 때도 답답할 것 같고.

명인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들며 성희롱을 시전한다. 미지는 삽시간에 얼굴이 달아올라 명인이에게서 세 발자국 떨어지며 말한다. 아, 이 반응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명인이는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더욱 상처가 되는 미지. 억울한 듯 쳐다보지만 어쩌겠어. 자기가 그렇게 남자애처럼 하고 다닌 결과이자 업보인데. 킬킬 웃으며 말하다 미지의 살기어린 시선을 받고 얌전히 사과했다.

“아─ 모르겠다. 땀 말리면 되지.”

“……더러워. 냄새나.”

“아 진짜! 너 많이 컸다, 최명인이~?”

“흐흥.”

등목을 마치고 교실로 올라간다. 슬슬 수업시간. 미지는 팔을 내저으며 아쉬운 듯 말한다. 샤워하고 싶겠지. 꽤 땀 흘렸으니까. 명인이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미지를 쳐다보며 말한다. 미지는 잔뜩 눈을 부라리며 명인이에게 말한다. 피식 웃는 명인이. 하하, 미지랑 어울리다보니까 명인이도 많이 변했구나. 저만큼 디스질을 할 수 있게 되다니. 점심 한 때 달리기를 마치니 기분이 상쾌하다. 생략했지만 나도 등목을 했으니까. 이제 수업이다.


작가의말

갑자기 추워져서 죽을 것 같습니다. 고시원은 여름에는 덥더니 겨울에는 춥네요......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5.01.27 14:30
    No. 1

    계속 보니까 명인이가 귀여워지네요. 성격이 솔직하지 못한 것과 그러면서도 살짝살짝 드러내는 속마음이 참 독자들 애간당타게 합니다. 미지도 시원시원하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1.27 23:25
    No. 2

    보이시하고 시원스런 성격의 여자애. 의외로 소심하고 섬세한 남자애. 기획의도대로 써진 것 같아 좋습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너와 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04화. 재미있네 계속 해 봐. +4 14.11.10 681 8 17쪽
10 03화 - 3 +6 14.11.05 645 9 19쪽
» 03화 - 2 +2 14.11.04 611 10 17쪽
8 03화. 너와 나의 대결. +4 14.11.03 682 9 20쪽
7 02화 - 3 +4 14.11.03 495 9 17쪽
6 02화 - 2 +4 14.10.27 536 9 17쪽
5 02화. 대결, 시작한다. +4 14.10.15 591 10 17쪽
4 01화 - 4 +6 14.10.09 862 10 19쪽
3 01화 - 3 +6 14.10.01 708 9 18쪽
2 01화 - 2 +6 14.07.10 795 8 20쪽
1 01화. 징징대는 건 싫어한다. +8 14.07.08 1,796 32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