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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너와 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7.08 21:59
최근연재일 :
2016.12.25 23:3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41,277
추천수 :
493
글자수 :
552,862

작성
14.11.05 20:36
조회
645
추천
9
글자
19쪽

03화 - 3

DUMMY

“…….”

“…….”

다소 비장미마저 느껴지는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압도감과 존재감에 감히 숨도 잘 못 내쉬겠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마침내 대결 당일. 그렇다, 마침내 대결의 때가 다가온 것이다.

미지와 명인이는 체육복을 입고 가만히 서 있다. 평범한 체육복이지만 분위기가 분위기다보니 뭔가 정갈하고 엄숙해 보인다. 둘 바로 앞, 조회대 앞에 나는 서 있다. 어쩌다보니 둘 사이에서 심판을 맡게 됐다. 옆에는 예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귀엽다.

“시작할까.”

“응.”

“어.”

나지막이 말을 꺼내니 미지와 명인이는 동시에 대답한다. 때는 저녁, 꽤 쌀쌀한 공기가 감돈다. 저녁시간인지라 달리기를 하기엔 꽤나 적합하다. 가끔 축구를 하는 애들이 있기도 한데 오늘은 없다.

“자신 있어? 나한테 질 자신.”

“……해 봐야 알지, 그건.”

미지는 간단하게 명인이를 도발한다. 그 정도 도발에 넘어갈 명인이가 아니다. 나지막이 대답하고 미지에게서 시선을 땐다.

“달리기 거리는 16바퀴.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이의없지?”

“응.”

“……어!”

내 공증에 명인이는 무덤덤하게, 미지는 잠시 움찔 하더니 성을 내듯 대답한다. 명인이의 승리 조건이 떠오른 모양이다. 지그시 미지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다 슬슬 정리한다.

“자자, 둘 다 자리에.”

“…….”

내 말에 두 사람은 아까 내가 발로 그어놓은 선 앞에 나란히 섰다. 고조되는 긴장감. 내가 뛰는 것도 아닌데 굉장히 긴장된다. 예나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는다.

“준비. 시……작!”

‘후다다닥.’

뜸을 들이다 마침내 시작 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은 득달같이 달려 나간다. 드디어,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됐다.

우선 앞서 나가는 것은 미지. 하지만 미지가 마냥 멍청하고 바보인 것은 아닌지라 순간의 앞섬을 위해 전력질주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적당한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 물론 명인이도 완전히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두 사람은 달리고 있다.

“누가 이길 것 같아?”

“글세…….”

예나는 옆에서 불안한 듯 물어본다.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초창기라면, 미지가 압도적으로 이길 거라 점쳤을 것이다. 명인이가 못 달리는 것도 한 이유지만 미지도 미지대로 엄청 잘 달리거든. 반 전체 3등이라는 게 괜히 자랑하는 타이틀이 아니다. 남자애들과 늘 하는 축구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고 오히려 어지간한 남자애 체력은 압도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체력이니까.

하지만 명인이도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다. 분명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약골이던 녀석인데 토할 정도로, 쓰러질 정도로 달리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체력이 늘었다. 죽순이 자라는 것마냥 눈에 보일 정도로, 정말 이전과는 완벽하게 다르다.

그래서 함부로 우위를 점치기가 어렵다. 전통의 강호(?) 모미지냐, 신흥세력(??) 최명인이냐. 일단 앞서 본다면 아무리 그래도 미지가 이기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잘 달렸고, 명인이가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고 체력이 늘었다고 해도 좀. 결국 오늘 내일 일이잖아. 물론 명인이가 이기는 게 결과적으로는 훨씬 재미 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있잖아, 앞에서 말한 ‘소원’이란 게 뭐야? 이기면 소원 들어주기 라며.”

“아, 그건 뭐.

예나는 궁금한 눈치로 물어본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넘겼다. 명인이에게 푹 빠져 있는 예나에게, 명인이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섯 바퀴.”

“……후우, 후우.”

“……하앗.”

달리기는 계속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미지가 조금 앞선 상태로 그 거리를 유지한 체 다섯 바퀴 째 돌고 있다. 명인이는 조금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미지는 그리 힘들지 않은 분위기다. 적막하고 긴장감 넘치는 가운데 둘의 경주는 계속된다.

둘은 그리 빠르게 달리지는 않지만 금세금세 한 바퀴씩 채워 나간다. 벌써 여덟 바퀴, 아홉 바퀴, 열 바퀴. 반 이상 달리고 있다.

그나저나 명인이, 정말 엄청나게 잘 달리게 됐구나. 미지랑 별 차이 없이 이 정도로 달릴 수 있다니. 예전에는 단순히 수치 상의 비교지만 거진 미지보다 3~4바퀴 이상은 딸릴만한 기록의 명인이었는데. 확실히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명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이른바 전환국면. 명인이는 숨을 헐떡이고 있다. 하나 아까와 비슷하다. 고르고 일정하게. 반면 미지는 조금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한 편이었는데. 정말 승부를 어떻게 점칠 수 없다.

“열 네 바퀴.”

“흐핳! 하아, 하앟!”

“후우…… 후우…….”

마지막 두 바퀴. 미지는 거친 숨을 내쉬며 힘겹게 달리고 있다. 아무래도 힘들겠지, 열 네 바퀴나 돌았는데. 잘 달린다는 애들도 이쯤 달리면 힘들긴 하다.

반면 명인이는 의외로 멀쩡하다. 아까보다야 숨이 거칠고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지만 마치 철로 만든 사람인 양 단단한 모습으로 묵묵히 달린다. 힘에 부쳐 약간씩 자세가 흐트러지는 미지와는 달리 자세 또한 초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다간 정말…… 모두가 바라는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 질지도. 애초에 나밖에 모르긴 하지만, 명인이가 내건 조건은.

“어어! 따라 잡았어!”

“……이야.”

예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계속 지켜보고 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명인이가 마침내 미지를 따라 잡았다. 점차 속도를 높이더니 미지를 옆으로 제끼고 앞서 나간다. 당황한 미지. 있는 힘껏 달리지만 어째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흥미진진한 순간이다.

“열 다섯바퀴, 마지막!”

“하악, 흐읏, 흐앗, 하아악!”

“후우, 후우, 후─ 후우─.”

마지막 바퀴. 두 사람은 전력으로 달린다. 둘 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땀이 줄줄 흐르고 거친 숨을 경주마처럼 내뿜는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증기기관 같다. 심장이 터져라, 다리 근육이 찢어져라 두 사람은 정말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명인이가 앞서고 있다. 미지는 진심으로 죽을 힘을 다 하는 게 느껴질 기세로 따라 잡으려 하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를 줄이지는 못한다. 명인이라고 전력질주 안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현실이다. 명인이가 이기고 있다. 이제 반 바퀴, 저 쪽 코너를 돌아 결승선.

“!!”

“하악, 하앗, 하아, 학, 하아…….”

“후, 후우, 후욱, 훗…….”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두 사람. 둘 다 표정이 가관이다. 거의 결승선 가까이 왔을 때, 나는 명인이의 표정을 봤다. 세상사에 해탈한 어느 현자의 눈. 증기기관처럼 거친 숨을 퍼내고, 오르는 열을 식히기 위해 땀을 줄줄 내며 그는 오롯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결승선을 지났다───



“으하! 학, 허억, 어흑……!”

“하악, 커헉, 크흑, 후우, 후우…….”

“마셔.”

둘은 결승선을 지나고도 한참을 달려서 멈추었다. 그대로 나뒹굴 듯 바닥에 주저앉는 미지. 호흡곤란을 느끼는 듯 산소를 갈망하며 괴로워한다. 여자애로서의 정조는 다 갖다 버리고 길게 늘어지는 걸죽한 침을 운동장에 쏟고 있다. 명인이도 비슷하게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있다. 뭐, 명인이 괴로워 하는 건 저번에 봤으니까 생략하고.

아까 예나에게 부탁해 사온 이온음료를 두 사람에게 건넸다. 둘은 음료수를 받고도 한참, 숨을 고르느라 미처 음료수를 마시지도 못한다.

둘 다 정말 열심히 달렸다. 특히 마지막 바퀴의 공방전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달린 면이 없잖아 있다.

결국 승자는 명인이. 미지가 애써 따라 잡으려 했지만 명인이 역시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다. 노력만으로 미지를 이긴 명인이를, 경외로운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이 녀석, 나보다 못 달리던 녀석인데. 단순히 한 달 간의 연습만으로 미지를 이긴 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나이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의외의 요소는 두 가지이지 않나 싶다. 미지의 방심과 명인이의 상식 이상의 성장.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 3등의 타이틀이 무색하게 미지는 잘 달리지 못했다. 내가 너무 미지를 과대평가했나보다. 어쩌면 명인이에게 신경이 쓰여 자기 페이스대로 달리지 못하고 명인이 페이스에 말렸을 수도 있다.

반면 명인이는 생각보다 훨씬 잘 달렸다. 한 달간 미친 듯이 달리기에 올인한 노력이 빛을 발했다.

어찌됐든 결과는 명인이의 승. 그렇다면 계약한 것에 따라, 두 사람은……. 뭐, 지금은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

“이제 괜찮여? 숨 쉴 수 있어?”

“어…… 하아.”

“…….”

한동안 숨을 고르는 두 녀석. 내 질문에 명인이만 간신히 대답한다. 미지는 대답이 없다. 영혼이 빠진 것처럼 멍한 표정이다.”

“……내가 졌네.”

“……어.”

미지는 잠자코 말한다. 땀을 줄줄 흘리며 무덤덤한 표정이다. 어째선지 얼굴엔 약간 흙도 묻어 있다. 명인이도 마찬가지로 흙투성이에 땀을 흘리며 10년은 늙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하아.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

미지는 한숨을 푹 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표정. 명인이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따라 일어난다. 사뭇 진지해진 분위기에 예나는 ‘뭐야 뭐야?’ 하고 작게 말한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약속은 약속이니까.”

“으으…….”

미지는 잠시 망설이더니 찡그린 표정으로 아니꼬운 목소리로 말한다. 명인이는 무감각한 목소리로 미지가 운을 뗀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미지는 어찌 대답도 못 하고 억울한 표정이 된다. 얼굴은 달린 것 때문에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지만 어째 더 빨개진 것 같은 느낌이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 개씹변태.”

“응, 맞아 변태.”

“아 쫌 진짜! 짜증나. 후우.”

미지의 삐죽이는 말에 명인이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무감각하게 받아쳐 미지의 화를 돋은다. 미지는 ‘에이씨’ 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체육복의 지퍼를 내린다.

“……자, 만져!”

지퍼를 다 내린 미지는 머뭇거리다 잔뜩 부끄러워하며 명인이 쪽으로 가슴을 내민다. 잔뜩 달려서 체육복 안에 입은 면티가 완전히 땀으로 다 젖어 있다. 그래서 면티는 찰싹 미지의 몸에 달라붙어 있다.

……어째 야한데, 이거. 땀으로 젖어 안의 검은색 브라가 비쳐 보인다. 흰 티에 검은색 브라라니, 남자애인 나라도 이상함을 느낄 수 있는 조합이다. 게다가 이렇게 대놓고 내미니(?) 생각보다 상당한 크기다. 나는 제3자의 입장에서 옆에서 지켜보는데도 민망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명인이는 전혀 어떤 표정의 변화가 없다. 평소와 같은 무감각한 표정이라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정면으로 미지의 가슴을 쳐다보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저 새끼, 고자?

미지는 잠시동안 그러고 있다 아무 느낌도 나지 않으니 의아한 표정으로 실눈을 뜨고 명인이를 본다. 명인이는 그제야 씨익 웃으며 미지를 본다.

“됐어.”

“……뭐?!”

“됐다고. 보기 민망하니까 빨리 체육복 입어.”

명인이는 악마처럼 씨익 미소 지으며 말한다. 아아, 하고 나는 명인이의 깊은 뜻을 이해했다. 명인이는 정말로 미지의 가슴이 만지고 싶어서 그런 제안을 한 게 아니다. 다만 미지를 놀리려고, 미지가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단지 그것만을 위해 한 달 간 그렇게나 무리해서 달리고 지금도 죽도록 달린 건가. 그 집중력과 집념에 감탄이 절로 나올 것 같다. 어쩐지, 명인이는 여자애한테 정말 관심이 없는 앤데. 저런 제안을 진심으로 할 리 없지.

미지는 명인이의 표정과 반응에 화악, 잔뜩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된다. 모멸감과 수치심을 받는 얼굴. 뭔가 조금 뜨끔하는 기분이다. 이거, 성희롱으로 신고하면 잡혀가지 않을까, 명인이.

“네, 네가 민지고 싶댔잖아! 변태새꺄! 이, 이제와서 뭐?!”

“내가 미쳤냐, 그딴 거 만지게. 난 그냥 너가 그러는 반응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야, 야! 만져, 얼른! 진짜 만져! 너 안 만지면 죽여버릴거야! 야, 야!”

미지는 부끄러움에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명인이는 여전히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사실대로 말한다. 그제야, 미지는 진실을 알아채고 억울한 표정이 돼 잔뜩 화를 낸다. 돌격태세로 명인이에게 가슴을 내밀며 소리친다. 명인이는 질색을 하며 ‘으으, 저리 치워 살덩어리.’ 하고 냉정하게 말한다. 미지는 더욱 화난 표정이 돼 ‘뭐 살덩이?! 야, 야 이 개X꺄!!’ 하고 투닥투닥 명인이를 때린다. 결국은 폭행인가.

“저…… 저기, 진짜야?! 저게 명인이 소원……?”

“뭐. 보면 알겠지만 순전히 놀리려고 한 조건이지만. 저렇게 응징당하고 있잖아.”

“……흐에에에에!!”

예나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한다. 턱을 긁으며 느긋하게 대답하니 예나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 지른다. 큰 충격이려나. 그렇겠지, 명인이 전혀 안 그렇게 생겼으니까. 예나가 반한 명인이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닌가보다.

“난 한참 작은데…… 저 만큼은…….”

“그 쪽이야?!”

“아냐, 나도 성장기니까……!”

“……그래.”

예나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그 쪽 때문에 충격 받은 거야. 명인이 취향이 자기 현실(?)과 달라서. 예나는 내 태클을 무시하고 혼잣말한다. 괜찬아, 무시 당하는 건 익숙하니까…….


‘치이익─’

“아, 힘들어 죽을 것 같네.”

“그럴만하지, 그렇게나 뛰었는데.”

미지는 지쳐서 의자에 널부러져서 말한다. 나는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결국 미지 소원대로 고기부패에 왔다. 시간이 조금 촉박할 것 같지만 미지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가자!’ 하고 패기있게 말해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오게 됐다.

물론 대결에서 이긴 건 명인이니 명인이가 사는 건 아니다. 명인이는 급격히 지쳐서 별 말도 없이 앉아 있다. 예나는 그런 명인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자자, 고생들 했으니까 많이 먹어. 힘 내는 데엔 고기가 최고지.”

“너 무슨 육상대회 감독 같이 말한다?”

“얼추 맞지 않을까, 명인이 늘 코치했는데.”

“아핫.”

고기를 다 굽고 넉살 좋게 말하니 미지가 웃으며 말한다. 천연덕스런 대답에 미지는 피식 웃고 얼른 고기를 집어 든다.

“어떻게 이겼네, 명인이.”

“……뭐.”

“소원은 못 이뤘지만.”

“……그야.”

“흥! 됐네요 그건.”

고기를 집어먹으며 마주앉은 명인이를 보고 말한다. 명인이는 아까의 달리기에 모든 기력을 소모했는지 힘없이 말한다. 아니면 옆에 앉는 미지의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건지. 미지는 고기를 먹다 나와 명인이의 대화에 새침하게 말하고 내가 집으려던 고기를 뺏는다. 아니 그렇다고 고기를 뺏으면……. 예나는 아까부터 불만스런 표정으로 미지를 쳐다본다. 명인이 옆에 앉고 싶었는데 다짜고짜 옆에 앉아 버려서 그게 불만스런 모양이겠지.

“진짜 내가 맘 같으면 소문 내고 싶은데! 내가 더 창피하니까 그냥 암말도 안 하는 거야. 어휴, 개씹변태새끼. 거기다 악마야 악마. 미친놈인 것 같아. 안 그래?”

“너 진짜 잘 먹는다.”

“내 말에 대답을 해!”

“넵. 지당하신 말씀이시죠.”

미지는 잔뜩 먹으면서 말을 계속한다. 내가 고기를 굽는 동안 스파게티나 튀김, 만두, 초밥 같은 것을 잔뜩 가져온 미지다. 고기와 함께 그것들을 한데 그러모아 먹으면서 말한다. 그러면서도 밥알 하나 튀지 않고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말한다. 저것도 참 능력이다. 감탄하며 말하니 미지는 눈을 부라리며 말한다. 얼른 절대적인 복종. 쇠, 쇤내가 무얼 알겠습니까, 그저 높으신 분들 하는 말을 따를 뿐이지요.

“……뭐, 됐어. 결국 너도 그렇고 그런 변태새끼라는 걸 자알 알게 됐으니까! 혼자 고고한 척 깨끗한 척 다 하고 있으면서, 결국 속은 시커멓고 음흉한 변태새끼잖아. 더 변태야.”

“……아, 아니야 그런 애! 명인이 그렇지 않아!”

미지는 잔뜩 먹으며 잔뜩 말한다. 어지간히 심통이 난 모양이다. 명인이는 병자같은 표정을 하고 고기 한 점, 상추 한 잎 겨우 먹는다. 그러나 최명인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미지를 이기는 데 모든 힘을 쏟아 부은 최명인은 이어지는 회식에서 거짓말처럼…… 뭐라는 거야.

예나는 미지의 불평에 불쑥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명인이를 잔뜩 좋아하는 예나로썬 참을 수 없는 모욕이겠지.

“에에에! 봐 놓고도?! 내 가슴 만진다고 대놓고 말했는데! 그러고 갑자기 말 바꾸고! 농락하는 거 아냐 그게?!”

“그럼 넌 명인이가 만져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예나의 불의의 반격. 쬐끄맣고 전혀 그런 말 안할 것 같은 예나인데 갑작스럽게 돌직구로 미지에게 반격을 날린다. 당황하는 미지. 마찬가지로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그, 그런 게 아니잖아! 내 말은, 그! 남자가 한 번 한다고 했으면! 그렇게 푹 꺾어버리면 내 쪽에서 무안해지잖아!”

“그러니까 만져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잖아! 네가 더 이상해! 왜 명인이한테 그렇게 관심보여?! 어!!”

“아아아아!! 넌 또 왜 시비야! 말 하나도 안 통하잖아! 그냥 상식적으로 보라고, 내가 변태야 명인이가 변태야!”

“네가 변태야!!!”

“우아아아아아!!!!”

총체적 난국. 예나는 거의 집착하는 수준에 가깝게 무서운 눈을 희번덕거리며 작은 체구에 맞지 않게 발악하듯 소리치고, 미지는 답답함에 가슴을 퍽퍽 주먹으로 때리며 소리 지른다. 두 여자애가 어찌나 소란스럽게 해대는지 주위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나만 가운데에서 괜히 고생이다. 겨우겨우 제재하고 둘을 자리에 앉혔다. 정작 분쟁을 유도한 명인이는 중립국인양 가만히 앉아서 야금야금 고기를 먹고 있다. 이 자식……!

“대결, 재밌었다.”

“……어?”

“재미있었다고. 체력도 좋아진 것 같고. 네 말대로 체육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 어…… 뭐, 그래.”

“어어? 왜 또 얼굴 붉혀?! 뭔데?! 왜!”

“아아아!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그냥!! 쑥스러우니까!!”

“왜 쑥스러운데, 왜!!”

불쑥 갑자기 말하는 명인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미지를 똑바로 보고 말하니 미지는 뒷머리를 긁으며 명인이의 눈을 피한다. 창피해하며 얼굴이 붉어진다. 다시금 눈이 희번덕해져서 미지를 닦달하는 예나. 아예 이런 컨셉으로 나가려는 건가. 명인이도 나도 보고 있는데 대놓고 미지에게 뭐라 한다. 미지는 미지대로 다시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답답해 하고.


뭐, 중간에서 나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명인이 말대로 꽤나 즐겁고 유쾌한 대결이었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다음에도 이런 재미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지만. 한동안 맛나게 고기를 구워먹고 넷이서 나란히 야자를 하러 간다.


작가의말

윈도우 태블릿 사고 싶네요. 근데 그거 사면 잘 쓸 수 있을런지...... 비싸서가 아니라 활용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 사는 게 망설여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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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11.13 23:40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11.15 21:24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75 J제이
    작성일
    15.01.16 00:54
    No. 3

    와 일상적인 주제로 이런 퀄리티 ㅋㅋㅋㅋ
    잘보고있습니다
    쌓인게 많아서 한번에 읽는중인데 댓글 안달고갈수가 없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1.16 20:41
    No. 4

    아앗! 간만의 칭찬이라 되게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5.01.27 14:39
    No. 5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사람. 즉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면 삶을 살아가은 재미가 있다고합니아. 영일은 그러란 좋은 친구를 두어서 세상 살아가기를 재밌게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앞에 양 손에 꽃을 쥔 명인이가 부럽겠지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1.27 23:27
    No. 6

    그렇지요, 사실은 명인이가 진정한 승자지요. 저딴 성격으로 좋은 친구와 여자애들까지 꼬이다니......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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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1화 - 3 +6 14.10.01 708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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