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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너와 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7.08 21:59
최근연재일 :
2016.12.25 23:3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41,271
추천수 :
493
글자수 :
552,862

작성
14.10.09 17:37
조회
861
추천
10
글자
19쪽

01화 - 4

DUMMY

야자가 시작됐다. 학교 수업 때보다 현저하게 한산한 교실. 학원을 다닌다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야자를 빠진 녀석들이 꽤나 있어서 교실은 이가 빠진 것처럼 반 가까이 빠지게 된다.

“야, 야!”

“?”

야자의 기본적인 분위기는 ‘조용함’이다. 사람 수도 적고, 야자를 하고 있는 학생들 생각이 어떻든 일단은 ‘자율학습’이 주된 목적이기에, 정숙한 분위기가 당연하게 요구된다. 허나 그런 상식과 규범을 파괴하는 사람, 모미지. 내 쪽으로 손을 뻗으며 작지 않은 소리로 불러댄다. 명인이는 신경 쓰이는 듯 움찔 하다 이내 무시한다.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구태여 조용히 해야 하는 야자시간에 이렇게 나를 부를 이유가 있을까.

“왜?”

“일루 와!”

“왜!”

“그냥 와!”

미지는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앞서 말했듯 야자는 사람이 반수 가량 빠지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자리를 앉을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지는 나를 옆자리로 소환하려 한다. 이유 따윈 없나보다. 바깥 눈치를 살피며 위장용 정석 책을 지참하고 은밀한 몸놀림으로 미지 옆자리로 넘어갔다.

“왜.”

“할 말이 있어.”

“뭔데.”

은밀하게 다가와서 은밀하게 말한다. 야자시간엔 마치 죄수를 감시하는 간수처럼 선생님이 돌아다닌다. 계속 돌아다니는 건 아니고, 보통은 교무실에 계시다 일정 주기로 돌아다닌다. 시끌시끌하면 당연히 나오실 게 뻔하기에 조용하게 얘기한다.

“아까 예나 울었다던데. 뭔 일이야?”

“아아.”

미지의 물음에 얕게 탄식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벌써 소문이 났나. 하긴, 충분히 소문이 날 만한 일이긴 하다. 남자애가 여자애 울렸는데, 그것도 별 시덥잖은 이유로. 예나랑 친한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지랖은 겁나게 넓은 미지이니 궁금해하지 않을 리 없지.

“그냥 명인이랑 얘기하다.”

“명인이? 걔는 또 뭐랬길레 애가 운데?”

“뭐.”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명인이가 예나를 울린 것, 그건 사실이니까. 굳이 감추거나 왜곡할 이유는 없다. 눈을 치켜뜨며 나를 보는 미지. 미지의 물음에 난 ‘뭐.’ 하는 대답뿐이 할 수 없다. 그렇잖아,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최명인인걸. 나한테 따진다고 해도 별 수가 생기지 않는다. 내가 최명인 대변인도 아니고.

“걔도 참, 배알도 없나. 그딴 녀석이 뭐가 좋다고. 울 때까지 있어?”

“취향이니까 존중해 줘야지.”

방금 전까진 분명 명인이를 타겟으로 잡은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또 예나를 까고 있다. 그냥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무참히 욕하는 무법자인건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홀딱 빠져버렸나보지. 소녀 마음이잖아?”

“와, 재수없어 역겨워.”

“아니, ‘역겹다’까지야. 친구잖어?”

“그래도 역겨운 건 역겨운 거야. 무슨 자기가 공주님도 아니고.”

‘너도 소녀인데.’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꾸욱, 내렸다. 가뜩이나 야자시간인데 꽤 큰 소리로 말하고 있는 미지인지라 난처한데 저 말까지 하면 엄청 호들갑 떨 게 뻔하니까. 워낙 남자애 같은 거침없는 성격에 외모도 하는 짓도 남자애 같은 미지인지라 자기가 여자애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나보다.

“어쨌든, 그렇단 말이지.”

“뭐, 그렇지.”

미지는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개운치 않아 보이는 표정. 무엇인가 큰 사건을 일으킬 것 같은, 장난기 많은 악동 같은 표정인지라 조금의 불안한 기운이 맴돈다.

‘덜컥. 끼익.’

“야.”

“……?”

미지는 순식간에, 날랜 범처럼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비어 있는 명인이 옆자리에 앉는다. 물론 그렇게 갑작스럽게 갔으니 소리가 안 날 수가 없다. 잠시 반 애들이 쳐다봤지만 이내 원상복귀된다.

미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명인이를 바라본다.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던 명인이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미지를 쳐다본다. 평화로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해꾼이 등장하니 그럴만도 하다. 계속 말하지만 명인이는 자기가 하던 일을 방해받는 걸 엄청 싫어하니까.

“아까 왜 예나 울렸어?”

“……뭐?”

헛. 비상상황. 저 무표정한 듯 검은 오오라가 감도는 듯한 최명인의 표정은 깊은 빡침을 나타낸다. 용의 역린을 건드린 셈이지. 명인이와 오래 지낸 나는 명인이가 저 상태까지 가게 건드리지도 않지만 만일 저 상태가 된다면 즉시 사과하고 자극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모미지. 만만찮은 여장부다. 방긋방긋 악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그건 화난 사람 입장에선 꼭 도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울린 게 아니라 걔가 운 거야.”

“네가 울릴만한 짓을 했으니까 그렇지. 여자애 강간해놓고 ‘내가 넣은 게 아니라 쟤가 대준 것이오.’ 할 거야?”

“!!!”

충격과 공포. 소름. 지근거리라서 잘 들리는 게 아니다. 둘 다 목소리 크기를 잘 조절하지 못 하는 녀석들이다. 특히 미지가. 명인이는 그나마 낮고 차분한 목소리라 반 전체에 들리지는 않는데 미지는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높은 톤의 목소리인지라 반 전체에 목소리가 미친다. 거기다 그 잘 들리는 목소리로 한다는 말이 도저히 그 나이 여자애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인지라 굉장히 충격이다.

반 애들은 모두 경악하는 눈으로 미지를 쳐다본다. 아무리 미지가 남자애 같아도, 아니 남자애라 해도 저런 식의 격한 말을 누구나 들으라고 크게 말하진 않는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건지 애초에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지 미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명인이를 보고 있다. 오히려 당황스러워 보이는 건 명인이다.

“나는 애초에 울릴 생각도 없었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너 싸이코패스야?”

“!”

계속되는 미지의 거침없는 행보에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별달리 접점이 없던 애들도 흥미진진하게 두 사람의 설전을 관전한다.

명인이의 변은 지극히 최명인다운 대답이다. 미지의 말에도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은, 최명인다운 센스. 난 아무 생각이 없다. 예나가 혼자 울어버린 거지. 외고집인 명인이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거기에 대하는 미지의 말도 아주 가관. 보통 사람이라도 뜬금없이 ‘너 싸이코패스임?’ 하고 물어본다면 굉장히 불쾌할 것이다. 하물며 자존심이 센 명인이야.

“긋…….”

“『공감』이란 걸 할 수 없는 거야? 애가 우는데, 그게 누구 말 때문에 우는 건데. 생각없이 던진 돌이라도 그 돌이 사람한테 맞아서 상처를 입혔으면. 그 때도 이딴 변명 낼 거야? ‘내가 죽인 게 잘못이 아니라 지나가다 돌에 맞은 저 사람이 잘못이오’ 하게?!”

“…….”

무엇인가 말하려는 명인이를 제지하고 미지는 굉장한 기세로 말한다. 그것도 정공법으로.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쉽사리 꺼내지 않는 올곧은 말로. 당장 나만 해도, 어떻게든 돌아오는 명인이의 반론을 받기 귀찮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게다가 논리도 완벽해 보인다. 말만 들으면 명인이가 아주 나쁜 싸이코패스 범죄자 같다.

명인이는 말문이 막혔다. 입을 다물고, 벙찐 표정으로 미지를 바라본다. 그 표정은 묘하게 멍해 보인다. 요 근래에 명인이의 저런 표정은 처음 본다. 평소의 분위기와 다른 명인이의 표정에 약간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아주 야자가 아니라 100분 토론을 하고 있구먼. 나가.”

“…….”

“아아이~”

뒤에서 불쑥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교무주임 선생님. 대체 언제 오신 거지. 소리 없는 발자국은 꼭 육식동물의 그것과 같다. 우리 쪽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근엄하게 말씀하신다. 명인이는 말없이 일어나 나가고, 미지는 안타까워하며 나간다. 이럴 줄 알았어. 미지 목소리가 너무 컸어.

“넌 왜 안 나가.”

“네? 저요?”

“그래, 너도 같이 떠들었잖아.”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을 쳐다보았을 뿐입니다. 야자시간에 공부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던 걸 책망하시는 것이라면 달게 받겠지만 떠드는 것 때문이라면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 아닙니다.

하고 말해야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군말 없이 나갔다. 크윽…… 억울하지만 별 수 있나. 한 마디 꺼냈다 더 맞을 확률이 크다. 나가보니 이미 명인이와 미지는 엎드려 있다.

……치마를 입은 체 엉덩이를 꼿꼿이 올리고 엎드려 있는 미지의 모습은 차라리 경악스럽다고 표현하는 게 낫겠다. 허벅지 끝에 간신히 걸려 있는 치마는 굉장히 위험하다. 조금만 삐끗 해도 팬티가 보일지도. 평소에 왜 남자애들은 엎드리는데 여자애들은 무릎 꿇고 손 드나, 역차별이라 생각했는데 이해가 확 간다. 미지는 꿋꿋이 엎드려 있다.

“뭐여, 너는 무릎 꿇어도 되는데.”

“아뇨! 제가 잔뜩 떠들어 댔으니 제 잘못입니다! 이대로 벌 받겠습니다!”

“나참. 그려, 맘대로 해라.”

선생님은 미지의 당찬 대답에 헛웃음을 지으며 매를 까딱거리신다. 미지, 명인이, 나 순으로 있는데 매의 시작은 나부터. 퍽, 퍽, 퍽. 그리 크지 않은 움직이미지만 당구대의 움직임은 극히 효율적이고 기민하여 엉덩이와 허벅지가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고통이 전신에 퍼져 불판 위의 오징어마냥 몸을 베베 꼬았다. 아프잖아아아앜!! 고통에 겨운 작은 신음을 안 낼 수가 없다.

다음타자, 명인이는 묵묵히 고개를 숙인 체 매를 맞는다. 아프긴 아픈 듯 이를 악물고 꾹 참는다. 미동도 하지 않고 자세를 유지하는 명인이의 묵묵함은 일견 보기에 멋지다. 나도 저렇게 맞았어야 하는데. 저게 남자지.

“넌 일어나, 손 대.”

“아닙니다!”

미지 앞에 선 선생님. 당연한 조치다. 호쾌하게 여자애 엉덩이를 때리는 폭력교사라니. 있을 수 없지, 요즘 세상에. 그러나 미지가 누군가. 호쾌한 목소리로 거부한다.

“제가 잘못했으니 제가 달게 받겠습니다! 때려주세요!!”

“……너 변태냐.”

미지는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살랑 흔들며 말한다. ……끔찍하다. 여자애가 저런 배포와 저런 마인드로 저러다니. 선생님도 굉장히 당황한 눈치이다. ‘네가 때리랬다.’ 하고 재차 말씀하시는 선생님. 곧이어 ‘퍽, 퍽, 퍽.’ 하고 경쾌하고 찰진 소리가 난다. 얼굴이 빨개져서 꾹 참는 미지. 하지만 몸은 나와 마찬가지로 베베 꼰다. 결국 ‘으아앗……!’ 하고 작은 신음. 피식 조금 웃음이 나온다. 선생님은 ‘시끄럽게 하지 마.’ 하고 교무실로 돌아가신다. 복도에 남을 셋.

“아오……! 겁나 아프네! 너네는 맨날 이딴 거 맞아?!”

“뭐, 그렇지.”

미지는 한 손으로 엉덩이를 매만지며 속삭인다. 무릎을 땅에 디디고, 표정은 찡그린 체로. 난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나 역시 무릎을 땅에 디뎠다. 원래 이러는 게 맞지. 선생님 오시면 얼른 일어나고. 명인이는 여전히 정자세로 엎드려 있다. 고지식하긴.

“아…… 아직도 아퍼. 바지 입고 있을걸~!”

“미안하다.”

“응?”

미지는 여전하게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괴로워하는데, 문득 명인이가 말한다. 찡그린 표정인 체 명인이에게 시선을 돌리는 미지.

“내가 잘못했다. 의도가 없었지만…… 울린 건 내가 맞으니까. 사과할게.”

“흐흥, 나한테 사과할 이유가 있나? 예나한테 해야지.”

“……그래. 야자 끝나고.”

“아하하. 그래, 그럼 됐지.”

명인이는 여전한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미지는 씩 웃으며, 명인이를 쳐다본다. 목적한 바를 이룬 자의 승리의 미소. 다시금 말해 사과의 대상을 명확히 한다. 명인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한동안 엎드려 있다 잠시 뒤 돌아오신 선생님의 명령에 교실로 돌아갔다.


“미안하다.”

“어…… 어?”

야자와 야자 사이 쉬는시간. 다른 쉬는시간과는 달리 20분이라는 넉넉한 쉬는 시간을 자랑한다. 대신 야자 한 시간이 1시간 30분이라는, 보통 수업의 2배를 자랑하는 게 문제지만.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명인이는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생님한테 엉덩이 맞고 얼마 안 지나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 하다. 뚜벅뚜벅 걸어 예나 앞으로 갔다. 예고도 없는 뜬금포 사과에 예나는 당황해서 멀뚱멀뚱 명인이를 올려다본다.

명인이는 묵묵히 예나를 내려다본다. 그런 녀석이지만 그런 녀석이다, 명인이는. 분명 여자애한테 사과하는 것에 굉장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을 텐데. 자존심이 센데다, 이상할만치 여자애에 대해선 되게 엄격하고 더욱 자존감이 세다. 나쁜 방향의 마초랄까. 헌데 그런 명인이의 자존심에 여자애에게 사과하다니. 거기다 자기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뭐, 미지에게 잘못했다고 말한 시점에서 잘못은 인정한 셈일까.

그러면 또 틀려질 수 있는 게, 명인이는 잘잘못에는 또 엄격하다. 자기가 잘못했다 생각이 드는 건 곧장 사과한다. 질질 끌 이유가 없다. 다만 명인이 성격상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외고집이기에, 이런 경우가 굉장히 드물 따름이지. 거기에 여자애에게 먼저 가서 사과하는 건 처음본다.

“무, 무슨……?”

“아까 울려서, 미안하다고.”

예나는 어떤 상황인가 몰라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한다. 영문을 모르겠지, 중간과정을 모르니까. 명인이는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로 사과한다. 어째 사과하는 태도가 영 아니다. 누가 보면 다시금 싸움을 시작한 줄 알겠다.

“헤에~ 사과하는 태도가 뭐 그래~? 사과 안 받아주면 한 대 때리겠다? 응응?”

“……미안해, 울려서. 내가 네 생각 배려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 같다. 그것 사과하는 거야.”

“아, 어, 응……! 난 괜찮아! 명인이 네가 사과할 건 아니야! 내, 내가 멋모르고 울어버린 건데 뭐.”

내 생각을 대변하듯 미지가 등장해 비꼬는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다. 실실 웃는 모습이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나조차 얄밉다 느껴질 정도이다. 명인이는 이를 꾹 누르고, 자존심을 꾹꾹 눌러 참는 모양으로 사과한다. 아까보단 태도가 누그러졌지만 다른 의미로 화난 듯하다.

예나는 방긋 웃으며 힘있게 말한다. 괜찮다고 하지만 명인이의 사과에 굉장히 기분이 좋은 듯, 다시금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빛으로 명인이를 쳐다보며 웃는다. 큭…… 최명인 개자식!

“그…… 미안하니까, 내일 저녁 사줄게. 밖에서 먹자.”

“어, 어! 어?! 저, 저녁을?!”

불쑥 튀어나온 명인이의 무감각한 말에 예나는 급격히 당황했다. 얼굴은 빨개져서 허둥지둥, 명인이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 한다. 명인이는 특유의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안 돼, 돼? 안 되면 말고.”

“아, 아, 아냐, 돼! 돼! 응, 고마워! 히히히힛.”

“오~~ 이제 작업까지 거는겨, 최명인이~??”

“……좀 닥쳐라 제발.”

예나는 얼른 수락한다. 이제 예나도 명인이의 칼 같은 성격을 좀 파악했나보다. 함박웃음 지으며 예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예나가 저렇게 명인이 한 마디 한 마디에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 나는 뭔가 기분이 묘해진다. 기분 탓이겠지. 미지는 명인이 등을 탁탁 치며 좋아라 하며 놀려댄다. 명인이는 한껏 절제한 목소리로 낮게 말한다. 정말 감정을 죽이고 말하는 것이다, 저 정도면.

“어쩐 일이여? 저녁을 같이 먹는다니.”

“미안하니까.”

“진심으로?”

“……진심으로.”

명인이는 다시금 자리로 돌아와 앉고, 나는 잠자코 물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짓는 명인이. 더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할 기세이기에 잠자코 휴대폰을 쳐다본다.

“책임은 져야지, 남자가 한 말에.”

“사과 한 마디면 끝나지 않아? 사과만 하는 건데.”

“……그렇긴 하지만. 그냥 내 싸움이야. 혼자.”

“너도 참, 답답허긴 허다.”

명인이의 대답에 혀를 끌끌 찼다. 뭐 자기 자존심과의 싸움 그런 말인가.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하는구나, 싶다. 가끔은 저런 고지식함으로 쓸데없는데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명인이지. 그런 면도 있었지.


“데려다줄게.”

“어, 어?! 엣…… 고, 고마워!”

“아하. 난 빠져야되려나.”

“뭔 소리여, 따라와.”

야자가 끝이 났다. 명인이는 다시금 불쑥, 예나에게 가 말한다. 예나는 얼떨떨하다 당황하다 금세 대답한다. 오오, 빠른 적응. 그렇지, 명인이는 단칼에 대답하지 않으면 가차 없지. 그게 최명인인걸.

슬쩍 눈치가 보인 나는 기지개를 켜며 둘러대듯 말했다. 여자애 남자애 둘이 걷는데 눈치없는 친구 한 명 끼는 모양새잖아. 거기에 명인이 저거, 가만 보니까 ‘자기와의 싸움’ 어쩌고 하는데 실은 예나에게 이성적으로 눈을 뜬 게 아닐까, 그 돌부처 같은 최명인도 이제 봄날이 왔나 싶어서 말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명인이는 명인이다.

슬쩍 걸음속도를 늦춰 걷는다. 명인이와 예나 둘이 걸을 수 있도록. 아무리 샘 나고 NTR 같다 해도 친구 일인데, 초를 칠 수는 없지. 슬며시 뒤에서 걸으며 두 사람을 보니 한 쌍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명인이가 키가 좀 작은 게 흠이지만. 예나도 아담한 편이니 그렇게 엄청 이상하진 않다.

“…….”

“…….”

명인이는 별달리 말이 없다. 하긴, 원래 내가 먼저 말 걸지 않는한 딱히 먼저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예나는 어색해서 그런가, 주볏주볏 명인이를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떨려서 그러겠지. 그렇다고 내가 끼어들어 말을 하기도 그렇고. 그 덕에 참 무미건조한 하굣길이 됐다.

“예나는, 우리랑 가는 방향이 같나 보네?”

“어? 어! 이쪽 아파트 살거든.”

“아, 그래. 맨날 지나갔었는데.”

“응응…….”

예나는 마치 내가 말을 걸어주는 걸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밝게 미소지으며 말한다. 비록 명인이를 바라볼 때의 그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나는 귀엽다. 그 귀여운 예나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인이 본인은 정작 무덤덤하지만.

“고마워, 데려다줘서!”

“어.”

“잘 들어가~”

“응, 내일 봐!”

금방 예나의 아파트에 도착해 해어진다. 예나는 아쉬운 듯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로 뛰어간다. 다시금 묵묵한 하굣길.

“데려다주기까지 하고, 진짜 마음 생긴 거 아니야, 명인이 너?”

“뭔 마음.”

“예나 정도면 정말 훌륭한 규숫자리지~ 인물 참허지, 성격 좋지, 어디 꿀리는 데가 있어?”

“흐흣.”

농담 조의 말에 명인이는 피식 웃는다.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니 정말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말하지만 나도 예나가 좋지만 그게 엄청 좋은 것도 아니고, 단순한 호감이니까. 친구의 앞길을 막을 정도로 좋은 건 아니다.

“그냥, 안쓰러워서 그런 겨. 나는 애초에, 여자애를 좋아할 그런 건 못 되니까.”

“얼라? 왜 처음부터 그렇게 턱 막고 시작한데. 네가 여자애한테 직접 갈 일은 없겠지만, 오는 사람까지 막을거야?”

“뭐, 내 쪽에서 준비가 안 돼 있으니까.”

“허허.”

명인이가 말하는 ‘준비’라는 건 대체 뭘까, 궁금하기도 하다. 한동안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내일도 기대되는구먼, 명인이가 여자애한테 저녁을 사 준다니. 아, 나는 못 따라가겠구나. 거기까지 따라가면 눈치없는 새끼지. 집에나 들어가자.


작가의말

집에 돌아왔는데 또 컴퓨터가 안 되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엔 블루투스 키보드와 패드를 가져왔다는 점. 글은 쓸 수 있지만 3일동안 꽤나 불편하겠네요...... 과제도 해야 되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4.10.10 21:05
    No. 1

    우학변과 저취말을 재밌게 봤으니 기대는 해보겠습니다.(부담감 부담감)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10.10 22:38
    No. 2

    Aㅏ...... 너나대는 일주일에 1회 연재합니다.(???)
    이중연재는 힘들거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11.13 10:05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11.16 13:21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5.01.27 12:33
    No. 5

    명인보다 나래이터인 쩌리쪽에 더 관심이 가는 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극중 장치에 불과한 캐릭터이지만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어서 명인보다 저 관심이 가는가봅니다. 명인은 무엇인가 쿨내를 풍기려 노력하는 질풍노도의 청소년이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1.27 23:21
    No. 6

    아무래도, 어쨌든 이야기를 보고 이끄는 녀석이 영인이다 보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그리고 사실, 명인이는 성격이 좀, 공감하기 힘들고 속된 말로 X신 같은 중2병 허세 캐릭터인지라...... 반면 영인이는 평범 그 자체지만 충분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녀석이니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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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1화 - 3 +6 14.10.01 708 9 18쪽
2 01화 - 2 +6 14.07.10 795 8 20쪽
1 01화. 징징대는 건 싫어한다. +8 14.07.08 1,796 3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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