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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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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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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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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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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CSAR 12

DUMMY

두려운 낮. 항상 숨어 있었던 낮. 이렇게 낮에 남아 있던 물기를 몸에서 짜는 것도 오랜만이고, 말 못 할 어떤 위안을 가지고 작전했음을 안다. 그렇다. 미군. 아군의 징후. 하다 못해 헬기에서 던져주는 C-Ration도 상상했다.


밝은 대낮이 무섭다. 다 보이는 것이 두렵다. 가장 친밀했던 친구, 어둠이 없으니 낱낱이 까발리는 기분.


“얼굴이나 좀 털어라.”


원래 더러웠지만, 폭격 때문에 완전히 뒤집어썼다. 상사는 모자가 날아가서 머리에 먼지가 가득하다. 검은 머리가 누런 머리가 됐다.


“모두 총 들어! 사격준비 확실하게 하고 있어!”

“조종사 신호탄 항상 준비하고 있고.”

“이게 보일까?”


“왜 안 보이냐. 잠깐 보이고 꺼지니까 그렇지. 쏜다고 말하고 쏘면 보일 거야. 아니면 하늘에서 지금 쏴! 그러겠지.”


“때려야지 어떻게. 이거라도. 우린 없잖아.”


“두 개야. 저 위에서 지금 때려! 그럴 때 올려야 해.”

“왜 우린 연막탄이 없지?”

“생각해보니 글쎄 말이다.”


“더 안 되면 어떻게? 여기서 산으로 가면 헬기가 못 오잖아. 어떻게.”

“착륙을 안 해도 돼. 그게 걱정이 아냐 지금.”


“우리가 안전하려면 지금 올라가 더 숨어야 해. 이대로 여기 있으면 다 달려들어. 멀쩡할 거 같어? 인민군이 합바지야? 설마 여기서 더 내려가라고?”


“설마 다시 내려오라고 하겠냐.”

“올라가면 헬기 앉을 데가 없어.”

“케이블로 하면 되잖아. 윈치로 매달아 올리는 거.”

“저 사람을 들고 얼마나 올라간다고. 우리 문제라고!”


못 알아들을 영어 교신.


“그렇다고 버려? 아군을? 아군이 아니야?”

“...... 아군이지.”

“올라가? 위로 올라가? 들어?”


“어?”


저 멀리 총소리.


“병훈이, 이병훈 어디 갔어!”




3.


“이게 뭐 이래.”


발은 걷는다.


“그래. 2019년 탈북한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 그랬지. 1년에 총 20발 쏜다고. 그러면서 자신들은 많이 쏘라는 거라고. 미친 거 아냐? 우린 4년 동안 쏜 총알이 천 단위냐 만 단위냐 서로 우기는데. 우리는 신형 총 보급에 조준경까지 필수 옵션인데. 1년에 20발 쏘고 북한군은 강하다 여전히 자신감 쩔어. 제정신이야? 미군이랑 붙으면 과감하면 할수록 학살만 당할 뿐인데, 개전하면 초기에 가장 많이 죽는 건 여기 특수부대란 부대들이야.”


출렁출렁. 알아서 걷는다. 난 거기 살짝 얹어서 간다.


“그래. 오랫동안 믿던 게 여기서 따슨 밥 먹는다고 바뀌겠어? 그런 정신으로 여기서 살다가는 진짜 지옥을 맛보게 될 걸. 전시에는 태백산에만 헬기가 떠도 5만 명은 죽일 수 있을 거야. 북한 특수부대는 죄다 태백산, 태백산 줄기 타고 내려온다. 조기경보기가 뭔지도 모르지. 북한 특수부대는 항상 그러지. 자신들의 전투는 행군으로 시작해서 행군으로 끝난다고. 그러니 걷다가 죽어야지? 너희들 자랑은 한 달 동안 하는 3천리행군. 민족의 근원, 바이칼 호수까지 걸어가봐. 오늘~~~도오오오.”


이 길이 맞나?

이 방향이 맞나?

분명히 산으로 올라갔어.

여기로 올라가는 거 봤어.

뭐 어쩌려는 거야.


후...

차라리 오르막이 낫네.

평지는 몸이 출렁거리는데,

오르막은 그래도 균형이 잡히네.

이놈의 군장 병.

군장을 벗으면 몸이 비틀거린다.

쓰러질 놈도 군장이 잡아주면 간다.

모르는 사람은 해봐야 이해가 간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 없~~~는 이 발길

지이나아아온 세월마다

눈물 고였소.


제목도 모르고 가사도 완전히 모른다. 2절은 모른다. 고참들이 불러서 그냥 따라 불렀다. 고참들은 그 고참들에게 따라 불렀고. 군대는 왜 이렇게 철 지난 노래를 부르나. 90년대 노래도 부른다. 구전되어 부르는 것이고 주범은 원사들이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어디서 들어본 것은 같다. 할아버지들이 부르는 거 들은 것도 같고. 가요무대에서 들은 것도 같고. 하여간 가락은 편하고 쉽다.


그래. 이 노래 많이 불렀다. 천리행군 때. 가사가 딱이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오늘도 걷느다 만은.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도 걷는다만은 아무 생각 없다. 특수전학교 행군은 행군도 아니었다. 단독군장은 행군으로 안 친다. 목표정찰 때문에 왕복 네다섯 시간이 걸렸는데 행군이 아니란다. 그냥 ‘갔다 왔다.’


원수 같은 군장. 처음 할 때는 정말로 ‘정처가 없는’ 행군이었다. 정처가 없다... 지금 내가 걷는데 정한 곳이 없이 그냥 간다는 거지. 다시 말해 아무~~~ 생각이 없어. 처음에는 지도를 봐도 모른다. 지도와 여기 걷는 지형이 일치가 안 된다. 중사들은 하루 행군로를 지도로 보고, 다가오는 지형을 보며 어디 정도 왔는지 아는 것 같다. 몇 시간 걸릴 건지도 안다.


‘궁금하면 봐. 봐.’


첫 천리행군. 지도를 봐도 몰랐다. 지도와 실제 지형은 당연히 일치되지 않고, 그러니 계산도 안 된다. 일부러 친절하게 지도를 누가 보여주지도 않고, 훈련 전에 얼핏 본 지도를 내가 어떻게 기억해. 중대장이나 선임관도 ‘오늘 ㅁㅁkm.’ 끝. 나를 지켜보면서 병훈아 몇 킬로 남았다, 힘내라, 그런 거 없다. 출발 전에 숫자만 세고 끝. 침묵과 발소리. 산 오르면 끙끙... 참는 소리. 조금만 평평하면 다다다다 정말 빠르게 걷는다.


하여, 그냥 앞사람 따라 걸었다. 앞사람이 오르면 오르고 내려가면 내려가고, 그러면서 싫어하게 된 것 두 개. 모모‘산’ 모모‘령’. 거리는 안 나오는데 높은 곳을 넘다가 기운 다 빠진다. ‘산’만 들어도 지긋지긋해진다.


‘대대장이 노고단 넘어가래.’

‘노고단? 이런 씨...’

‘천왕봉 비석에서 지역대장 사진 찍어서 전송하랬대.’

‘진짜 씨바 돌게 하네.’


오늘 행군이 60이면 청왕봉이란 말로 현실적 80이 된다.


‘못 믿겠다고? 사진까지?’

‘안 그럼 노고단 능선 쉬운 데 넘을까 봐.’


산이 진짜 싫은 이유는, 같은 시간 대비 가는 거리가 너무 짧다. 수면시간 깎아 먹는다. 천리행군 행군로는 평평한 지도에서 400이 나와야 한다. 400을 초과하는 작전계획은 아무 말 없지만, 도상 380 정도 나오면,


‘천리행군이 아니잖아!’


행군 루트는 대대장이 올리고 여단장이 결재한다. 대대장이 ‘봉’을 좋아하면 반 죽는다. 자기도 봉우리에 오르는 대대장은 있다고 들었다. 천리행군에 지리산 천왕봉을 루트에 넣으면 훈련 시작도 전에 모골이 송연하다. 충청북도를 지나면 행군로를 꺾어서라도 민주지산 참배비는 꼭 넣는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아무도 말이 없다.

오직, 10분간 휴식! 출발준비!


밤새, 여기가 어딘지 몰랐다. 여기가 무슨 도인지도 몰랐다. 밤새 도가 바뀐다. 행군양 때문에 오후에 무수하게 출발하고, 여름에는 중간에 밤을 끼고, 밝을 때 출발해서 밝을 때 도착한다. 도를 넘어가는 이정표는 또 사진 한방 박고 가는 문화가 있다. 그래도 사진 찍을 때는 없는 힘 내서 폼을 좀 잡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컴컴한 산을 걷는다. 그러다 갑자기 산길이 없어지면 난감하다. 멍~해진다. 여긴 어딘가, 난 어디로 가는가. 칠흑같이 컴컴한데 지금 어디로 가는가. 그래도 그래도, 계속 하다보니 밤눈이 좋아진다. 그래서 보이기는 보이는데, 그래도 모르면 손목시계의 포로.


어쩔 수 없이 길도 없는 산을 뚫을 때는 얼굴이고 팔이고 한밤중에 막 긁는다. 가지가 옆구리를 퍽퍽 친다. 졸다가 앞사람이 활처럼 구부리고 간 가지가 면상을 쌔린다. 팔뚝과 코에서 피가 난다. 이러다 팔뚝에 하도 상처가 나서 깡패처럼 보일까 여름에도 산으로 들어가면 소매를 내린다. 낮에는 길을 찾으려고 뚫는데, 여름에는 1부에서 3부 정도까지 가시가 긁고 풀이 살을 벤다. 산딸기가 보이면 가시투성이로 팔뚝을 직직 긋고 나간다.


‘이게 뭐야. 이게 뭐하는 거야.’


깨달았다. 지도를 현실과 일치시키지 않으면 정신이 괴롭다. 그냥 끝도 없이 가는 것 같다. 동이나 터야 끝인 줄 안다. 오늘 행군 지형을 외우지 못하면 그냥 오늘도 걷는다만은... 예상을 못 하고 막 걸으니 너무 힘들었다. 한 시간 한 시간이 끝날 기미가 없이 영원하다. 시계만 본다. 죽도록 걸었는데 15분 지났다. 그냥 어느 이름모를 산중 산길을 헤매는 기분. 오직 시계만 본다. ‘50분 지나지 않았어?’ 10분간 휴식. 10분간 휴식. 그 50분 걷고 10분 휴식을 지키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다. 하지만 자주 무시된다. 욕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말은,


‘늦었다. 5분간 휴식.’

‘휴식 없이 일단 빼!’

‘산 넘어서 쉰다.’

‘비 온다. 더 가서 적당한 데 쉬자.’


오~~~~느으을도 소리가 나오면 한숨이 절로 난다. 그러면서 노래가 위안이 된다. 행군하면서 누가 들을 것도 아니고 민가는 저 멀리 있어, 노래 많이 부른다. 땀이 나고 힘들다 싶으면 신병 하사에게 노래시킨다. 랩하는 놈은 다음 휴식 때 사형이다. 오~~~~늘도... 이런 노래 불러야 이쁨받는다. 이게 은근히 발이랑 박자도 맞는다. 상사 원사 소령 대위의 젊은 시절 노래를 불러줘야 이쁨 받는다.


이런 노래 부를 때면 발은 물집 천하. 어깨는 쇄골 분쇄. 총은 웬수. 입은 개처럼 물을 달라며 뙤약볕 개처럼 혓바닥 낼름거리고, 이를 종합하여 몸은 걸레. 이상하게도 정신은 맑아진다.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생각에 쓰는 칼로리도 아깝다. 모든 걸 포기하고 걷는다.


그나마 긴 시골길을 걸을 때나 오늘도 걷는다만...은이 가능하다.


산 타기가 너무 힘들다. 돌아가더라도 차라리 평평한 길로 빨리 빼고 싶다. 산 타면 거리가 죽죽 줄어들고, 이러다 오후에 들어가서 몇 시간 못 잔다. 제정신이 아니다. 누워서 숨 세 번 쉬면 일어나라고 흔든다. 어제가 기억이 안 난다. 어제가. 오직 오늘이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내일은 있냐?


걸레. 기력쇠진. 완전히 갔다. 하지만 누가 뭐랄 건가. 내가 뭘 먹었는데. 뭘 마셨는데. 마지막으로 먹고 마신 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프랑크 소시지 다섯 조각과 탈진에 좋다는 부엌칼 스웨트 한 사발 마시고 왜 걸레냐 물으면 답은 하리다.


“어디로 간 거야.”


흔들린다. 휘청거린다. 총은 놓지 않는다. 총과 군장은 몸의 일부가 된 지 오래.


‘벌써 헬기가 와도 다 떠난 건 아니겠지? 헬기 소리는 몇 km 간다.’


어머니 도시락이 먹고 싶다. 어떤 애가 보고 싶다. 남쪽. 몇 km를 가야 그걸 다시 만날 수 있지? 출렁출렁. 가기는 간다. 가고 싶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안 갈 수 없어서 간다. 그러면서 또 습관을 반복하지. 아무 소리도 다른 놈도 없는데, 탄창 뽑아서 남은 탄 수를 보고 다시 꽂는다. 플러스 약실에 한 발. 오케이... 출렁출렁.


웃기지만, 탄창 교환을 제 때 준비하지 못해서 죽을 수도 있어. 지금 내 탄창에 몇 발! 그리고 다음 탄창은 어디, 탄창은 몇 개! 모르면 죽을 수도 있어. 총소리가 들리면 아무 생각 없어지거든. 그래서 총싸움 직전에 마인드 컨트롤로 확인한 것은 이상하게 알아서 한다. 사수가 가르쳐준 귀한 전술행동. 그나저나,


어디로 간 거야.

제대로 가기는 가는 거야?

모르겠다. 갑자기, 느닷없이 내가 걷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걷고 있다. 중간에 왜 뭐가 없지? 기억이 없지? 왜 갑자기 툭 떨어졌지?


“퇘!”


날아가는 침에 뻘건 것이 섞였어.


“학!”


상관없다. 움직이는데 이상 무.

가고 또 가고, 쏘고 또 쏘고.

한발도 안 쏘던 놈이 오늘 몰아서 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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