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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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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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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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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주변인정전 4

DUMMY

씨발 기다렸구나. 동초나 예상치 못하게 깨어있는 놈들에게 막혀 있었어. 우리 쪽에서 하길 얼마나 기다린 거야.


그때 왜 진호가 날 잡나 순간 멈칫했다. 진호가 주포 포구를 지시하며 수류탄을 들어 빙그르르 보여준다. 개새끼.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냐. 난 포구 아래로 달려가 기마자세로 다리에 힘을 주었고, 순간 놈이 내 허벅지를 밟고 도약해 내 목으로 올라탄다.


딱! 안전손잡이 날아가는 소리, 이어 포구에 쇳덩어리 굴러가는 소리가 댕그르르 텅텅텅 들리고 쿵! 진호가 내 목에서 땅으로 점프했다. 우린 포구 반대편으로 뛴다. 곧바로 쇳덩어리가 찢어지는 듯한 푹! 퍼펑! 포구 안에서 터졌다. 폐쇄기 약실 깨져라 씨발.


저 멀리 김중사님이 손에 불난 사람처럼 흔든다. 그러나 잠시 멈췄다.


난 땅에서 만세 부르는 보초에게서 내 생존을 위해 깡통모자를 압수했다. 써보니 얼추 잘 맞는다. 밤에 그걸 쓰면 순간 조우한 적이 헛갈려 한다. 대가리 상태, 아무리 컴컴해도 몸에 비해 머리는 금방 노출된다. 하지만 북한모는 건빵주머니에 넣는다. 지금 쓸 수 없다.


이제 산중에서 우리끼리 식별해야 하는 시간이다. 깡통모는 작전에만 써야 안전하고 적이 가깝게 붙었을 때 써야 한다. 우리도 동료 적성복장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니까. 진호도 은거지에서는 벙거지 쓴다. 깡통모를 건빵주머니에 넣고 뛴다. 김중사님이 교통경찰처럼 손가락으로 방향을 지시한 채 기다리다가 진호와 내가 통과할 때 등을 퍽퍽 쳤다. 뭐 초딩도 아니지만 힘이 난다.


드디어 달리기의 시간. 산 초입을 향해 달린다. 얼마 쯤 달렸을까, 우리 뒤쪽에서도 고함소리가 들린다. 어느 순간 대대 최고 주력인 김중사님이 맨 뒤에서 추월해 우리 앞으로 넘어가 선두에 선다. 계속 뛰어! 숨이 턱에 걸리고 김중사님은 중간중간 조원 넷을 챙기면서 길을 인도한다. 중간에 적이 뜰까 걱정되지만 일단 뛴다.


15분 쯤 달렸을까? 내려가기 전에 찍어둔 우리 조 약정 합류지점에 도달했다.


손을 무릎에 대고 숨을 고르는데, 주 공격조가 산으로 향하는 방향에서 총소리들이 요란하게 울린다. 그쪽을 유심히 바라보던 김중사가 우리들 얼굴을 훑는다.


“저기 올라오는 데 엄호 좀 하고 간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김중사가 산길을 선두로 뛰기 시작한다. 우리도 따라 저속 구보로 산길을 뛰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또 인원이 푹 줄었다. 이제 추모식 같은 건 없다. 해봤자 감정만 자극하고 기운만 빠진다. 그냥 안 떠오르게 없었던 일처럼 행동하는 게 서로 편하다. 우린 이제 추모식보다 일단 먹고 자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내일 밤 또 내려간다.


불침번과 은거지 경계가 정해지고 우린 곧바로 곯아떨어진다. 판초 하나면 된다. 다음 예상목표 그런 거 생각 않는다. 간단히 먹고 자는 게 중요하다. 요즘은 먹고 나면 일단 눕는다. 안 그러면 살이 너무 빠진다. 먹고 바로 누워야 걷고 뛸 힘이라도 생긴다.


첫 경계는 진호였다. 지나가던 진호가 나뭇가지로 위장하고 누운 날 내려다보더니 오른손 손등으로 턱의 수염을 앞으로 민다. 눈을 감으며 이상했다. 내 몸이 몸서리를 치면서 진호가 무서웠다.


눈은 감지만, 자고 일어나면 현실이 비참하고 몸도 무겁다. 자봤자 가면에 불과하다. 은거지 내습 두 번을 받았더니 너무 민감한 잠을 잔다.


펑! 소리 하나면 바로 일어나 총 잡고 엎드린다. 두 번째는 포격도 받았다. 귀는 멀고, 충격은 땅을 통해 몸통을 흔들고, 냄새. 나무가 찢겨 나는 좀 상큼한 냄새. 잘려서 나는 송진내. 뒤엎어져 나는 축축한 흙냄새. 직격보다 파편. 특히 나무 파편이 무섭다. 직격 당했으면 죽어서 생각이 없어지므로 고통도 공포도 없을 거다.


가끔은 죽는 게 더 편하다 구라를 깐다. 귀가 완전히 먹은 상태에서 군장 꾸려 뛰는데 무성영화 보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내 생각이 움직이는 건지 몸이 움직이는 건지 이상하게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포격의 어느 시점 내가 기초훈련 조교에게 배운 걸 하고 있었다.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귀 막고 입을 벌리고, 엎드린 상태에서 땅으로 오는 내장 충격을 막기 위해 팔꿈치를 세워 복부를 땅에서 들었다. 정말 훈련이 무서운 거다.


우리를 본 것인지, 어떤 징후를 관측하고 날린 건지 아직도 모른다. 분명 조심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구경 모르겠다. 화기라고 해도 포병사격장 탄착점에서 구경별로 파괴력을 맛보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파운드 당 파괴력을 잘 아는 건 폭파 주특기가 아닐까... 우리 팀 폭파주특기는 저 세상으로 다 가고 없어 물어볼 수 없다.


새벽녘에 받았던 포격. 그 시간이 되면 아무리 피곤해도 눈이 한번 번쩍 떠졌다가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잔다.


아무 쓸모없이 버려진 허접한 넝마처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고장 난 자전거처럼 널쪄진 지역대. 간신히 축구팀을 넘는 총원. 그리고 무선전파를 타고 날아온 사령부 전문. 우린 사령부 전문이 항상 기뻤다. 오지에 살아 있는 우리의 의미와 전과를 알아주는 곳. ‘존재’란 단어는 참으로 흥미롭고 어떨 때 기쁨의 눈물이 흐르는 것.


우린 철학자도 아니고 사이비종교 정신병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상은 아니지만 시시비비를 가릴 정도의 정상은 남아 있다. 우리란 존재의 의미가 필요해졌다. 삶이 막판으로 치닫는다 생각하니 의미가 절실해지고 자꾸 떠오른다.


우린 뭐지?


우린 누구이며 여기서 뭘 하는가! 나라는 인간이 명이 다해 체온이 식어버린다고 생각하니 없던 생각이 떠오른다. 오 하느님. 오 어머니. 결국 어떤 새끼 밑에 깔릴 오 여친! 숨 쉬는 내 몸을 내가 관찰하고 내 맥을 짚어 고동을 느끼고, 그러면서 이 몸뚱아리가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럴려고 태어났나. 영웅담은 없다. 죽는다. 이제 내 몸도 얼음처럼 차가워져 병풍 뒤 쉰내가 날 것이다.


우린 재보급 언급이 없음에도 저 멀리 남쪽에서 온 그 글자를 고마워했다. 전문이 왔다고 말이 들릴 때마다 대원들이 알아서 모였다. 원칙상 전문은 지휘관이 먼저 봐야 했고 이후 설명과 통보도 지휘관 몫이다. 행보관도 고참 중사도 맘대로 달라 해서 볼 수 없다. 그 원칙은 빼앗을 수 없는 지휘관의 마지막 권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엔 무서워 똥을 쌀 뻔했다. 이 전문이 오기 전까지 우리 전략은 우리가 최대한 생존해 아군이 올 때까지 적을 괴롭히고 차단하고 부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문으로 인해 이제 사령부도 급박해졌음을 알았다. 전문을 전달한 통신사수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치켜뜨고 표정이 세멘트처럼 굳었다. 말로 듣기 이전, 종이를 본 대리 지역대장 대위의 손이 떨렸다.


깊은 밤 안개 속. 깊은 밤 안개 속. 죽음을 노래해. 이 밤...



진호는 운전석 옆에서 쳐다보는 날 계속 무시했다. 앞만 본 상태에서 문을 쾅 닫았다. 1단 기어를 넣고 트럭은 앞으로 나간다. 수풀을 헤치고 굴러가 잠시 후 도로로 들어선다. 난 뛰어가 보기 드문 이 포장도로에 섰다.


도로에 서 있던 나는, 서서히 자그맣게 멀어지는 차량 후미를 본다. 더 이상 말로 날 합리화 시킬 꺼리가 없다. 이럴 때 울어야 하나? 아니, 몸에 모든 액체가 말랐다. 눈가에 몰아줄 액체가 없다. 액체와 함께 감정도 증발한 거야? 아님 환호성을 질러? 북한 총폭탄정신처럼? 차량의 뒷모습이 진호의 뒷모습이다.


진호와 난 폭파가 아니다. 하지만 알아서 움직였다. 엄청나게 땀을 흘리며 서둘렀다. 먼저 적재물 중간을 치우고 박스와 포장을 뜯어 대전차지뢰를 낱개로 꺼내 적재칸 앞 중앙에 3-4단으로 쌓기 시작했다.


20개 이상 안정적으로 쌓였을 때, 지뢰들 빈틈에 북한제 폭약을 꽉꽉 찔러 넣으며 메웠고, 그 중 격리된 두 폭약에 뇌관을 연결했다. 불발을 대비해서 두 개. 내가 비전기식 뇌관을 폭약에 삽입하고 빠질까봐 철사로 고정하고 도화선 두 개를 길게 빼서 트럭 천장에 일단 걸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대전차지뢰를 그 위에 쌓으려 하는데, 갑자기 진호가 전기식 뇌관을 하나 꼽았다. 세 번째 뇌관? 노획한 북한제 전기식 격발기가 될지 안 될지도 몰랐다.


문득 난 진호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지 마. 진호는 내 눈을 본다. 바쁘게 움직이다 새로운 걸 깨달았다. 내가 알던 진호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 꿈틀거리던 녀석에 대한 공포가 괴물처럼 날 몸서리치게 한다. 그 얼굴, 표정, 내가 모르던 사람, 머나먼 타인. 어쩌면 그게 진짜 진호였다.


이제 자기를 숨기지 않는다. 그 전엔 자기가 아니라 남들이 생각하는 자기처럼 보이기 위한 모습이었을 거다. 진호가 처음 본 남처럼 보였다. 감정의 씨가 마른 투명한 호수와 같은 눈. 진호라는 괴물과의 거리가 영원할 것 같더니, 그 너비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찰라였다.


다시 진호가 보였다. 감정을 가지고 날 보는 진호로 돌아왔다. 드디어 난 진호를 알게 되었다. 그게 진짜였다. 난 겸허하게 진호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또한 깨달았다. 진호는 적어도 최소한, 일말이라도, 날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진호는 막지 말라고 날 밀어내면서 전기식 뇌관을 장착하고는 도전선을 연결해 운전석 옆으로 뺀다. 난 다시 진호를 잡았다. 안 돼. 이러지 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거야.


다시 한 번 막으려 하자 진호가 날 노려보더니 검지로 내 가슴을 톡톡 찔렀다. ‘그럼 어쩔 건데!’ 이럴 거면 왜 우리가 지뢰를 뜯어서 쌓고 지랄인데? 진호가 반문했다. 이어 비전기식 도화선 두 개도 운전석으로 빼기 시작했다. 난 눈으로 말했다. 더 이상은 안 돼. 우린 살아서 계속하는 게 더 나아. 너 그러면 안 돼.


저 수풀에 소리 없이 신음하며 누워있는 - 마지막 남은 지역대 세 번 째 생존자. 우리 조장 김중사. 세 번째는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 저대로 놔두면 죽는다. 진호는 시선을 그리로 돌려 눈빛을 거기 찍는다. 난 갈 테니 저 사람을 도우라...


내 양심이 흔들린다. 솔직히 말해 난 살고 싶었다. 진호가 하려는 걸 내가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다. 그 어떤 조건에서도 확률을 벗어날 수 없다. 둘 밖에 없으니까.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린다. 진호 아니면 나다. 막거나 계속 하거나. 시간이 없다. 세 번째 조건 : 같이 가던가.


일단 작업을 계속 한다. 뇌관이 장착된 위로 도전선 도화선을 빼고 다시 대전차지뢰를 쌓는다. 그 중간을 그렇게 꽉꽉 채우고 나서 대전차지뢰로 쌓은 탑 양쪽으로 뜯지 않은 지뢰 박스들을 밀어 빈 공간을 차곡차곡 메운다.


철사와 끈으로 박스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트럭 구조물에 강하게 조여 묶는다. 마지막으로 남은 지뢰 박스들은 지뢰탑 위로 빡빡하게 쌓는다. 지뢰 박스들이 터널처럼 쌓였고 그 중간에 포장을 깐 지뢰들이 쌓였고 뇌관이 세 개나 꼽혔다. 대전차지뢰는 하단에 매설제거를 노린 부비트랩 장력식을 인계철선 같은 것으로 격발할 수도 있지만, 각이 위험하고 안 당겨질 수도 있으며, 또한 난 자폭이란 걸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앞쪽이 촘촘하게 쟁여지자 후미 야포탄 박스들을 같이 들어 밀착시킨다. 야포탄은 유폭에 별로다. 탄두 외에는 폭파에 무익하고 불에만 잘 타는 장약 덩어리다. 탄통 안 장약은 그냥 최고의 소이제다. 폭약은 탄두에 있고 탄두가 터져야 한다.


대전차지뢰는 완전한 폭약으로 내부가 꽉 차 있다. 지뢰 안에 들어가는 폭약은 폭뱔력을 높이기 위해 보통 것보다 고농도로 집적화 고형화되어 있다. 아마도 미슬과 어뢰탄두 폭약이 가장 고형화 압착화 되어 있을 거다. 파운드 당 파괴력이 엄청나게 높다.


같은 폭약이라도, 고정되어 같은 압착 공간에서 폭력을 전달받지 않으면 첫 폭발에 주변 것이 생물로 공중에 날아간다. 얹힌 폭약이 첫 대전차지뢰 철판을 뚫고 먼저 유폭되어야 하고, 그 찰라의 유폭 동안 옆의 지뢰들이 꼼짝 없이 그 유폭을 받아야 전체 유폭이 성공한다. 그렇게 완벽하게 가능할지 우린 모른다. 할 수 있는 한 촘촘히 빽빽하게 고정한다. 폭압 폭력이 전달되는 그 시점까지 그것들이 주변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꼭 콘크리트 방에 적재해야 유폭이 가능하다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추 가능한 건 해야 한다. 더 이상 안 될 정도로 촘촘히 적재한다. 트럭 덥바는 유폭 고정에 아무 차단력을 주지 못하고 그냥 없는 셈이다.


적재칸 바닥과 측면의 철제 칸막이만 어느 정도 차단력을 주나 단단하지 않다. 이 상태로 모든 지뢰가 폭력 폭압을 물어줄지 알 수 없다. 해봐야 안다. 그걸 전기로 누르거나 비전기식으로 터졌을 때 옆에 있는 인간의 남은 정신은 1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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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민족해방전선 2 21.05.17 374 13 13쪽
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7 13 13쪽
219 성냥개비 3 21.05.10 377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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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성냥개비 1 21.05.03 445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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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주변인정전 5 21.04.28 371 12 12쪽
» 주변인정전 4 21.04.26 989 14 14쪽
213 주변인정전 3 21.04.23 407 14 12쪽
212 주변인정전 2 21.04.21 452 16 12쪽
211 주변인정전 1 21.04.19 541 13 10쪽
210 CSAR 18 +1 21.04.16 533 15 11쪽
209 CSAR 17 +8 21.04.14 559 17 15쪽
208 CSAR 16 21.04.12 541 19 14쪽
207 CSAR 15 21.04.09 503 16 14쪽
206 CSAR 14 21.04.07 445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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