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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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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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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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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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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변인정전 2

DUMMY

대대 막사 옆이었고 따스한 봄날이었다는 기억은 난다. 하여간 내 머리가 상상력으로 복잡해졌다. 추가적으로 물어서 얻은 대답 : 그 친구는 강원도에서 웨이터를 했었고, 작은 분은 밤에 쇼를 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 이상은 물어보지 못했고, 더 말해줄 확률도 없었다. 대화 하다가 갑자기 없던 일처럼 퉁명하게 입을 다무는 버릇을 난 알고 있었다.


난 녀석의 대답이 진실의 50% 이하라고 느꼈다. 설명 듣고 다시 사진을 보면서 나 개인적으로, 서커스단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 거의 없는 시골에나 돌아다니는. 허나 물을 수는 없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일한 것 같았다.


친구는 강원도 출신이 아니고, 어투는 뿌리가 희미한 경상도다. 그런데 강원도에서 일을 했다? 사진 속 그 친구 나이는 많아야 열일곱. 그 옆의 작은 사람은 나이 가늠이 안 된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내가 나에게 가지고 있던 내 인생의 특별함이라 믿는 맹종이 모래성처럼 붕괴했다. 합리적인 이유도 떠오르지 않은 채 붕괴했다.


얘는 뭐지? 얘 대체 뭐하고 산거야? 이 어린 나이에... 물론 애는 아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


이 친구는 무리 안에서 특별하지 않았다. 말을 거의 안 했고, 고참이 뭘 시키거나 지도해도 군말이 없다. 우린 말단 하사였고, 긴 시간을 내는 여흥과 대화는 불가능했다.


난 이 녀석 군 생활이 힘든지 어쩐지 외관으로 알 수 없었다. 물론 군대가 쉬운 게 어딨나. 난 힘든데 넌 얼마나 힘느냐 그거였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군대에서 몸이 힘든 게 우선이기는 하나, 어쩌면 그 반대로 고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부대는 잘못하면 한 사람에게 3년을 맞고 갈굼 당해야 하고, 장기자에게 찍히면 전입부터 중사 달고 나갈 때까지 쳐 맞지 않을 궁리를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난 그저 평범해 보인다는 이유로, 이 친구를 일단 ‘진호’라는 가명으로 부르겠다. 진짜 이름을 함부로 언급할 자격이 나에게 없다고 생각한다. 제3자처럼 기술해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호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등 중등 고등 모두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다시 말한다. 초등학교 검정고시도 존재한다! '진호'가 말해주기 전에 난 알지도 못 했다. 어떻게 이 시대에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딴 건지 난 이해 못했다. 그 이유는 녀석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에서 대충 감 잡았다. 그리고 고졸 검정고시는 여기 지원하기 위해 일부러 딴 것이다.


무수한 것들이 흘러 산악복과 낙하산을 착용하고 - 이제 인생 좆댄건가 비행장 바닥에 퍼질러 앉아있을 때, 고개를 돌리니 원래 그랬는지, 안 보이던 진호가 바로 옆에 있다. 하여간 이 자식은 옆을 돌아보면 유령처럼 문득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짜증 무지하게 났었다. 말도 없지, 툭 보면 옆에 서 있고, 옆에 앉으면 아무 말 없고... 왠지 나이 많다는 이유로 날 무시하는 거 아닌지 공연한 화도 여러 번 났다. 지내고 보니 그런 건 아니었다.


당시 난 굉장히 두려웠다. 침투 성공 자체가 불안했다. 공중침투 자체가 이 현대화된 시대에 굉장히 원시적이고 물리적이다. 아주 멀리 날아가 지구 중력을 이용해 천 쪼가리로 공기를 끌어내리며 뛰어내리는 것. 단순 무식의 원조는 낙하산이다. 이 낙하산 타는걸 멋있다고 생각하는 거, 그거 좀 이상하지 않나? 이 원시적인 걸 말이야. 하.


가장 깔끔하게 헬기로 강습하는 시대에 우린 진짜 선사시대 물리학을 만났다. 게다가 뛰어내릴 곳은 등신불처럼 자살공격도 가능하다는 광신도들의 거친 땅. 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진호'와 눈길이 마주쳤지만 역시 표정 없다. 그 표정을 보면 말 붙이기 힘들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사방은 분주하고 사람들 눈에선 조용히 스파크가 튄다. 무척 민감하다. 그 이전에 떠들고 전달한 게 워낙 많아서 정신 없었고, 그렇게 떠드는 걸 내가 다 기억할지도 모른다. 전달자 입장에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들이긴 했다.


혼란 속에 고요를 찾고 있는 녀석이 대단해 보였고, 나도 녀석처럼 그랬으면 했다. 그에게는 별다르지 않은 또 하나가 닥친 것에 불과해보였다. 영화에 보면, 한 사람이 중간에 고정 피사체로 서 있고, 나머지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그런 장면. 바로 그런 것처럼 중간에 그 녀석이 고대 고인돌처럼 있었다.


같은 해 임관한 하사라 동기 비슷하지만 나보다 서너 살이 더 많다. 왜 그런 많은 나이로 들어와 어린 하사 고참들의 갈굼을 자처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물론 난 나이 대접 할 생각 없었다. 어느 순간 고참들도 녀석의 나이를 잊었다. 본인도 상관없이 정확한 신병하사로 행동했고, 다음 기수가 들어와도 고참으로 대우해주기 바라지도 않는다.


“공포가 좋다. 없던 생기가 돌아.”


이게 비행기 탑승 전 녀석에게 들은 유일한 말이다. 이 녀석도 무섭기는 무섭구나. 공포. 이 말이 날 곰곰하게 만들었다. 공포. 우린 숨기고 있지. 각자가 가진 공포는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숨긴다. 저 녀석은 나보다 대담해, 저 녀석은 나보다 공포에 금방 굴복해... 이런 말 못한다. 공포는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진심으로 털어놓지 않으며, 그리고 꼭 말해 무엇하는가, 공포의 크기가 중요한가? 공포가 있건 없건 하라는 걸 - 해야 할 걸 하면 이상 없다.


항상 고민했었다. 난 내가 각별하지만 심리적으로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포로 얼어, 내가 아무 것도 못 할까 봐 걱정했다. 아무리 훈련해도 이런 거대한 사건과 공포 앞에 잘 대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훈련이 중요하다. 훈련은 버릇처럼, 위기 상황에서 '그것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해야 한다. 그것 밖에 할 수 없고, 그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럼 무엇을 하겠는가. 군인은 개인전술이 무의식적으로 나와야 한다.


난 정말 무서웠다. 죽는다는 게 그렇게 공포를 일으키는지 참 이상하다. 말로는 죽는다 죽인다 어쩌지만 막상 바로 앞에 내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니 덜덜 떨렸다. 공포와 기겁으로 내 몸과 마음이 얼어 병신 될까 두려웠다. 내 안의 나약한 것이 실현될까 걱정한 것이다. 바보 되고 싶지 않았다. 부인할 수 없다. 공포란 게 어쩌면 인간 모두에게 동등한 크기일지 모른다. 다만 그걸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용감해지려면 필수조건이 하나 꼭 필요하다. 자기 세뇌. 아주 단순한 세뇌. 그래야 용감할 정도로 무식할 수 있다.


내가 진호를 다시 보게 된 건 지역대 규합이었다. 내가 팀 작전 동안 뭘 어떻게 했는지 자세하게 말하진 않겠다. 잘하지도 못 하지도 않았다. 예상대로 난 평균이었다. 그리고 어이없게 난 살아 있었다. 다른 팀원이 죽었다. 생각하니 정말 어이없었다. 전우애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내가 나에게 내리는 평가다.


많은 주검을 보았다. 하지만 나도 남다른 점은 있었다. 난 시골 씨족공동체 속에서 자랐고, 거기 풍습은 입관을 적어도 육촌까지는 다 보게 했다. 장례식은 이제 천막과 솥단지에서 병원으로 옮겨갔지만, 최소 사촌까지 입관을 보게 하는 풍습은 반 강제였다.


염 직후에 초 들고 들어가 많이 봤다. 그래서 그걸 받아들이는 게 남들보다는 공상적이지 않다. 요즘은 자식도 두려운지 어쩐지 입관 때 얼굴만 잠깐 보고 나가는 사람들 많으며, 교통사고도 아닌데 안 들어가는 자식도 있다. 어떤 개새끼는 진정한 남자처럼 폼이란 폼은 존나게 잡더니만, 지 어머니 염에도 무서워서 못 들어가더라. 부모를 떠나서 죽은 사람이 무섭다네, 병신새끼. 자기가 약한 걸 인정 안하고 강하게만 보이려는 케이스.


내가 자주 가던 병원 장례사는 사후 영혼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망자를 대하는 정성이 모라자고 그런 건 아니다. 너무 많이 해서 인이 박혔을 수도 있다. 저승길을 준비시키는 게 아니라, 그저 마지막으로 예의를 다한다는 기분 여러 번 느꼈다.


나도 어려서부터 언젠가 저 모습이 될 거라 생각했고, 팀 작전 동안 여러 위기를 맞으며 그걸 상상했었다.


‘나도 이제 눕는구나.’


다만 북한 땅이니 염은 생략해야지 뭐 어쩌겠는가. 하지만 좋은 것도 있었다. 야외훈련 없는 자대의 빡빡한 일정(생활관 공기)이 가장 힘들었는데, 넘어오니 자고 먹고 쏘고 걷는 게 전부다. 사람 죽고 죽이는 건 그 중 아주 잠깐. 해 지면 이동하고 해 뜨면 정지하고 시계 볼 필요도 없다. 처음 시신을 보고 엄청나게 오버하는 사람도 없었다. 산 놈도 존나게 힘들고 무서우니 내어줄 감정 여력이 모자라 보였다. 전장은 죽음과 시신이 아주 평범하게 끝도 없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그렇게 모였을 때 진호 중대 고참과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난 진호가 어떤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고참은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진호?...”


그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호가 너무 못한다는 건지 뜻을 모르겠다. 그래서 고참 눈을 봤다. 그 눈이 나머지 말을 하고 있었다. 고참 눈은 긴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 지역대가 모였을 때, ‘우리’란 말이 무색했다. 숫자가 줄었고 계속 줄어들 것 같았다. 규합은 심리적으로 최소한의 위안과 사기에 도움은 되었다. 산중의 무리는 남쪽에 있을 때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저분한 외관과 슬픔 포기 낙관이 뒤섞인 눈들. 지역대 규합에서 반가움의 악수도 잠시. 사람들이 각자 조용하다. 입 별로 열지 않는다.


지역대장은 전사했고 선임 중대장이 지휘권을 인수해 차후 작전을 설명했다. 계속 하던 거다. 별다르지 않다. 인원이 많지 않으니 새롭게 엄청난 걸 시도할 수도 없다. 모습들은 비슷했다. 개중 몇은 군복이 찢어지거나 그을어 우리 걸 버리고 북한군복을 입었다. 적성기간에 입던 저가 리플리카가 아니라 진짜 여기 북한군복.


북한군은 군복이 단벌이라 좀 튼튼하게 만든다. 북한군복 착용은 신분위장이 아닌 진짜 필요에 의해서 입은 거다. 그 무거운 군장에 FM대로 예비 군복과 군화를 챙겨온 사람 많지 않았다. 개인 사물을 마구 버릴 정도로 작계 군장은 엄청났다. 더 이상 집어넣을 틈이 없어 밟고 누르고 군장 외부에 묶어 달았다.


우린 안다. 북한군복은 입고 구르기에 무척 편하다는 걸. 특히 펑퍼짐한 하의. 우리처럼 링을 넣을 필요도 없고, 치수에 맞는 것을아래 단추만 하나 잠그면 한복 입은 것처럼 무척 편하다. 우리 것보다 천이 두껍다. 그래서 좀 단단하지만 여름에 졸라 덥다. 상의도 하전사 복장은 그냥 뒤집어쓰는 형태라 기어도 흙이 몸이 잘 안 들어온다.


녀석이 북한군복을 입고 있었다. 북한모는 조끼에 넣고 우리 위장모를 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은, 그래도 나란 인간에게 눈까지 마주쳤는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날 보며 살짝 웃었다. 웃은 건지 겁을 준건지 모르겠다 씨발놈이. 그리곤 손가락으로 북한군복에 난 구멍을 찔러 보였다. 핏자국이 어우러진 총알구멍. 자기가 죽인 사람의 군복이란 말 같았다. 나는 오른손 손등으로 양반처럼 내 턱 아래에서 앞으로 수염을 몇 번 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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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7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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