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364 회
조회수 :
217,840
추천수 :
6,786
글자수 :
1,993,819

작성
21.04.12 12:00
조회
541
추천
19
글자
14쪽

CSAR 16

DUMMY

내가 총만 쥐고 침묵하던 사이,


총성이 터졌다. 내가 바라보던 바로 그 장소에서.


그때라도 쏴야 했다. 우리 중대원들이 도망갈 요만큼의 여유라도 주고 시선을 분산시켜야 했다. 그건 내 책무다. 그랬다면 중대원들도 내가 있던 자리를 보며 ‘저기 누구야!’ 누구 하나 살아있다는 걸 알 것이고, 그러면 1243으로 왔을 거다. 분명히. 명백히. 믿는다. 그러지 않아도, 잠시라도 들렀겠지. 무슨 표식이라도 했겠지. 아니면 좀 떨어진 곳에 숨어서 하루 이틀이라도 관측을 해보고 떠났을 거야. 그렇게 쉽게 버릴 사람들이 아니야.


‘1243의 동서남북 지형 특색. 거기서 뵈는 더 높은 봉우리 촘고점. 산의 등고선 모양. 도로와 길에서 1243에 도달하는 지형과 길. 몇 km인가. 시간이 지나 먼저 떠날 때 하는 약정 표식. 이거다 저거다 정 안 되면 지역대 삼각산.’


꾸역꾸역 머리에서 나온다. 백지에 시험 몇 번을 치렀나. 이것도 6개월 전에 새롭게 바뀐 작계라 머리 터지는 줄 알았다. 그냥 작계지역 연구시간이면 시험으로 끝인데, 실 작전은 브리핑이 이어지고 매일매일 모자란 걸 채우고 정하고 암기했다. 생각이 나는 걸 보니 정말 지독히도 머릿속에 처넣긴 했나 보다.


‘1243에서 삼각산으로 가는 지형. 루트. 얌구어. 접선방법. 능선길을 피하라. 길 없는 곳을 가라. 물을 취득할 때 조심하라. 분산 후 재집결할 때는 최대한 먼저 가서 기다려라. 모이는 지점에 표식을 하고 – 좀 떨어져서 기다리면 더 안전하다. 나타나는 사람의 후방을 경계하고 안전을 확인한 다음 접촉하라. 그 어떤 상황이라도 목표 타격 임무를 수행하라. 작전 포기는 항명 배신이다. 몇 명이라도 모이면 최 선임을 기준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어디든 들어오며 실망이 있을 거다.


아무리 옆에서 떠들어도 군대를 모르는 사람이 군대에 가는 거다. 당연히 나도 실망했다. 기본적으로 전근대적인 부사관 체계와 전통, 다른 부대는 다 사라져가는데 여긴 남아 있다. 헌병대에 신고하는 놈만 늘어날 뿐 절대로 안 사라진다. 계급은 하사지만 일병으로 2년은 사는 것 같다.


유튜브도 소소한 진실을 감출 수 있다. 그중 가장 창피한 악풀은 [노가다 훈련만 시키냐. 서양 봐라. 그렇게 하나. 네팔에 가까운 훈련에 불필요한 정신력만 강조한다. 현대식으로 개선할 생각이 없어. 현대전에서 그렇게 해서 되냐? 천리 걷는 게 자랑이냐? 껏해야 체력단련 보여주면서 안 쪽팔려?]...


나는 이런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장비. 미군이 녹색 베레모 쓰고 오면 바로 안다. 그리고 고참들은 그들이 우리보다 못 걷고, 산 잘 못 타고, 기초체력이 우리보다 떨어진다는 말로 위안한다. 그리고 그들이 좀 늙어 보이긴 한다.


우리의 분류는 간단하다.

707 = 건물

여단 = 산


물로 가건 공중으로 가건 결국 산. 산이 공화국의 모든 건 아니지만, 북한은 도시화가 덜 되어,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산이라 할 수 있다. 지렁이도 굶을 헐벗은 산. 공화국의 야전은 도시보다 광대하다. 개발이 없다. 목표는 산에 없으나, 주로 산에서 버텨야 작전을 지속할 수 있다.


사람 괴롭히는 구시대적 훈련만 한다고?

최고의 장비로 정찰감시 항폭만 잘하면 된다고?

그럼 우릴 보낼 이유가 없지.

공화국 모든 도시 밑에는 지하도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도시 근처에는 갱도와 터널이 넘친다.

유사시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터널형 공장에서 군수품을 만든다.

터널이 공장이고, 공장을 그냥 터널을 뚫어 지은 거다.


“항공!” “항공!” 6.25 때부터 김일성의 직접적인 공포가 있었다.


우리가 안 오면, 관통되지도 않을 그런 곳에 우리보다 200배는 비싼 폭탄을 써야 한다.


[우린 서양 특수전 부대가 아니다. 우린 서양 특수전이 아니다. 우린 대북-특수전이다. 대북-비정규전이다. 서양의 특수전 방식으로 보면 우리 무척 딸린다. 투자하는 돈부터 현격하고, 우리 한국은 특수전 전용 지원부대가 빈약하다. 까놓고 말해서 자기들 손으로 다 한다. 없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유명한 서양 특수전 부대가 이 대북-특수전에 참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북-비정규전은 그들이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서양은 현재 단기 특수작전이 주력이지 장기 비정규전은 교범에만 있다. 헬기로 모든 곳을 가고, 금방 돌아온다.


미국이 북한에서 특수전 특수작전을 정말로 수행한다면, 지금까지 명성에 금이 갈 수 있는 가장 체계화된 군사국가에 들어오는 것이다. 북한에 들어가라면 정말로 프로들처럼 ‘그러지 뭐.’ 그럴까? 웃음이 나와?


그렇다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지. 미 특전단에 가기 전에 어쩌다 주한미군이라도 경험했다면 안색이 변할 거야. 거길 가라고? 확실히 나올 수는 있어? 미쳤어? 우리 수준으로 꼭 필요한 거야? 우리가 꼭 가야 할 이유가 있어? 그들의 이전 경험과 똑같이 (미군이 공격만 하면) 국가가 금방 붕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린 단지 이런 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좀 아는 사람은 곧 떠올리고 말할 거다. 거기 남한 부대 중에 그거 하는 부대 있잖아. 적지 않잖아. 그 사람들이 가야지. 그러려고 키웠잖아.


서양 사람들이 직접 가면 3일 작전에 최소 100억 정도 들 거다. 공군 포함.


그들은 거기서 직접 총을 쏠 수 없어. 정찰감시로 어디까지 하게?


좀 아는 사람들 말대로 정찰감시는 병력을 보낼 필요도 없는 세상이야. 공중경보기 무인정찰기 인공위성, 마음만 먹으면 지상에서 가까이 보는 것보다 더 잘 봐. 그럼 왜 가? 그건 정찰감시가 아니지. Direct hit가 필요하지. 회사원이 가겠어? 노가다가 가는 거야. 그것도 제정신이 아닌 노가다가 필요해.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 군대가 너무 제정신이 되어 가고 있어. 대신 장비가 좋아지지.]


여긴 테헤란도 아니고, 런던 대사관도 아니며, 포트 브레그도 아니고 크레타도 아니고, 이라크도 아프가니스탄도 아니며, 파나마도 아니고 그라나다도 아니고, 브라보 투 제로처럼 될 수도 없으며, 비유를 하자면 가장 가까운 것이 베트남전쟁 당시 북베트남, 월맹이면 비슷하다. 미 특수정찰대도 북베트남 땅에는 못 들어갔다. 전 관민이 군사작전 체계로 돌아가건 구 북베트남. 들어간 미군은 추락한 조종사밖에 없었다. 가능하다면 체첸, 모가디슈에 있었던 사람 정도? 그 정도의 광신도 바탕을 예상하고 들어와야지.


이건, 우리만 할 수 있다. 아쉽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중동의 사막도 (사람이 살기에) 충격이겠지만, 여긴 여기대로 충격이다. 도로가 가깝고 마을이 있고 읍내든 소도시든 가까워 오면 수목이 사라진다. 옛날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풍경 배경과 똑같다.


도시란 개념이 사라지면 소가 수레를 끌고 사람들이 강가에서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간다. 내 조부 때나 비교해야 할 풍경. 멍청한 사람들은 2020년대에 무슨 소리냐 하겠지. 하지만 이건 2021년 나온 북한 촬영 동영상에도 흔하게 봤던 거다. 평양만 보고


‘지금 북한 안 그래. 과대망상이야.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아직도 여기가 정상에 비슷해지려 한다고 착각하나. 최신 영상을 보라고! 고성능 카메라로 찍은 북한 영상 유튜브에 적지 않아. 아무리 국경 근처 영상이지만 충격 그 자체다. 어느 영상은 그 마을 탈북자가 리액션 영상을 찍었다. ‘건물이 똑같네. 10년 전과 달라진 것 없네.’ 핵 때문에 경제 동결상태인 걸 기억하지 않았어. 평양과 평양 밖의 그늘은 주인과 노비의 삶처럼 대비된다. 북한에는 평생 평양에 못 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려행허가증 없이 평양 갔다간 체포되어 중형 받는다. 려행허가증 자체를 신청도 못 한다.


10년 이전에 탈북한 북한군 출신이 그랬다. 겨울에 몸 씻는 건 많아야 다섯 번. 어떤 부대는 겨울 초입과 봄 초입에 목욕을 딱 두 번 한다고. 나 안 믿었다. 그러나 여기서 보니 믿는다. 불쌍하지만 위험하다. 애처롭지만 위험하다. 저들의 정신은 남한에서 학을 떼는 사이비종교와 다름없다. 그나마 국경은 좀 깨어있으나, 거긴 내 친한 동기가 있는 그 여단이 간다고 풍문만 들은 것 같다. 녀석이 그랬지.


‘우린 좋아. 만주로 튀어버려. 하하.’


여긴 먹으려고 일하고 살려고 나무를 한다. 아침과 저녁에 하얀 연기가 단체로 오른다. 그리고, 우리도 비슷해졌다. 계속 떨어지는 기온이 무섭다.


북한군은 겨울 초입에 동계훈련을 길게 한다. 본격적인 겨울에 동계훈련을 하면 많은 병사가 얼어 죽을 수 있고, 여러 부대가 주둔지에서 동계훈련을 한다. 평안북 함경북 자강 양강으로 가면 12월에 동계훈련하다 단체로 얼어 죽을 수 있다. 얼어 죽을 수 있는 이유는 동계피복과 방한 장구/식량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초겨울에 동계훈련을 해야 사민들이 땔나무를 싹쓸이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인력 구르마를 끌고 군인처럼 거대한 등짐을 진 여자들이 걸어간다. 옷은 거의 다 검정 아니면 회색으로 눅눅. 집으로 볏짚을 나르고 (아주 멀리 가서) 화목을 해오는 성인 청소년 애들이 보인다. 청소년과 아이들을 보니 ‘여기 태어난 게 죄지’ 생각하면서도 조우했을 때 믿을 수까지는 없다. 아이들은 오히려 세뇌에서 못 벗어난 것이 현실이다.


풍경은 그 영상과 똑같다. 하지만 그 영상과 비슷하면서 다른 것. 군복 비슷한 거 입은 사람은 AK, 그것도 AK-47을 몸에 걸고 있다.


‘측은하면서 위험해. 직접적인 민사전은 불가능해.’


난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난 지금 어느 시대에 있나.


마을이 커지고 우리의 옛날 군청 정도 되면 역전이 금방 가늠된다. 수평에서 철도가 안 보여도 가늠된다. 긴 나무들이 보이면 군락지의 중심이 된다. ‘시’로 불리는 데는 반드시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도시’란 개념에 무척 떨어진다. 그래서 읍내도 아니고 군청 도청 소재지도 아니고 도시라고 보기엔 좀 그렇다. 그래서 군락지란 단어가 떠올랐다.


도시나 돼야 폭격을 받는다. 폭격을 받을 꺼리라도 있다. 군락지는 없다. 모든 군사적으로 보이는 것들은 산과 터널에 숨었다.


마을과 군락지 주변은 허리 이상 올라오는 나무가 없다. 묘목은 먹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희귀하고, 큰 건물도 석탄이나 나무를 땐다. 콘크리트 대형 건물에 긴 굴뚝이 서 있다. 처음에는 공장인 줄 알았다. 우리 같은 사람이 와서 보기 전에는 그냥 여기 자연스러운 형태다. 사용할 가스는 방귀밖에 없어 보인다.


‘봐라, 저. 말 그대로다. 중간에 긴 나무 모인 데.’


공화국 인간 군락지에서 긴 나무들이 보이는 곳. 도시 어딘가 반드시 있는 (있어야 하는) 김부자 백두혈통을 위한 혁명역사박물관이다. 거긴 절대로 나무를 칠 수 없다. 다듬는다. 건물보다 높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시 정도를 높은 산에서 망원경으로 보면 긴 나무 있는 데를 찾는다. 혁명역사박물관은 외곽에 (한국처럼 싼 땅에) 있지 않고 좋은 장소에 있다. 그러니 지역 내무성 보안성 열차역 등등이 모여 있다. 탈북자 이번 정권에도 명칭이 하도 바뀌어 탈북자 본인들도 아직 보위부라고 부른다.


우리가 3차 작전을 시작했다면 긴 나무들 있는 곳과 군락지 가까운 곳의 도로를 노렸을 거다. 차량들은 도심 마을 군락지에 가까우면 마음을 놓는다.


‘그 3차 작전 매복 습격이 가장 기대되는 거였는데. 일단 먹을 거.’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추수 끝난 가을에 논에서 이삭 줍는 공화국 사민들. 밀레의 인물화냐. 산에 오래 있으면 감각이 확장된다. 집과 건물들이 모인 곳에 슬슬 똥 냄새가 난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밭에도 똥을 뿌리니까.


‘이것이 끝나면 3차 작전이 가능해?’


우린 총소리와 폭음을 들려줘 민심을 교란해야 한다. 사실 직접타격보다 이 민심 교란과 습격 매복의 파장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난 생각했다. 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민심은 오래도록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였다. 북한군 출신 탈북자 강연을 듣고 놀랐다. 똑같은 소리를 해서.


‘이렇게 죽을 바엔 전쟁 나서 신나게 싸우다 죽고 싶었다.’


우리도 그런 얘기하곤 했다. 전입 초입, 너무 힘들 때 전쟁이나 나라 등등. 그리고 대한민국 군대에서 꼭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넘어가면 저거... 확.’ 본인은 모른다. 자기가 도라이인 걸 알면 도라이겠는가. 없는 부대가 없을 거다. 다만 군대는 계급으로 대놓고 할 수 있지. 우리 지역대는 파라다이스였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골프가 있지.


그래도 국립공원 격인 이 산은 수목이 수려한 편.

‘다른 여단은 어디서 뭐 하나. 여긴 나은 편인가.’


가뜩이나 큰 나무들이 없어, 가을이 되면 누렇게 변하면서 산 등고선이 여실히 보인다. 한국의 산도 겨울에 가면 등고선이 잘 보인다. 잎사귀 다 떨어진 설산의 나무는 등고선에 이쑤시개 꼽아놓은 것 같이 휑~~~하다. 바람 소리 휑~~~~


이제 여기도 겨울이 오겠지.

밤이 너무 춥다. 영하로 푹푹 떨어진다.

어디로 갔나.

처음에는 사람도 많고 릭샥도 빵빵했다.

중대장 담당관은 고사하고 사수는?

연애 한 번도 못 하고 죽었나.

뭐 씨바 이런 게 다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5 격납고 II (2) 21.05.31 374 12 11쪽
224 격납고 II (1) 21.05.26 528 13 11쪽
223 민족해방전선 4 21.05.24 394 12 14쪽
222 민족해방전선 3 +2 21.05.19 415 14 15쪽
221 민족해방전선 2 21.05.17 374 13 13쪽
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7 13 13쪽
219 성냥개비 3 21.05.10 377 14 12쪽
218 성냥개비 2 21.05.07 366 13 14쪽
217 성냥개비 1 21.05.03 445 15 12쪽
216 주변인정전 6 21.04.30 342 15 13쪽
215 주변인정전 5 21.04.28 371 12 12쪽
214 주변인정전 4 21.04.26 989 14 14쪽
213 주변인정전 3 21.04.23 407 14 12쪽
212 주변인정전 2 21.04.21 452 16 12쪽
211 주변인정전 1 21.04.19 541 13 10쪽
210 CSAR 18 +1 21.04.16 533 15 11쪽
209 CSAR 17 +8 21.04.14 559 17 15쪽
» CSAR 16 21.04.12 542 19 14쪽
207 CSAR 15 21.04.09 503 16 14쪽
206 CSAR 14 21.04.07 445 16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