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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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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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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성냥개비 2

DUMMY

“지금 감시병, 아니, 경비부대 군관 하전사 동무들이 5열 횡대로 서 있다! 지금부터 여기 수용인들은, 교화인들, 여기 갇혀 있던 사람들은 1열로 열을 짓는다. 그리고 앞 열부터 횡으로 이동하며 모든 경비부대 관병들 얼굴을 확인한다. 당신들 동무들이 어느 정도 용감한지 보겠다. 민주주의가 가능한지 모른다. 이 상황에서 겁먹고 전처럼 바보가 되지 마라.”


우린 현지 법을 인용한다.


“수용인들은, 알아듣기 편하게 수감자들은, 간격을 충분히 벌린 5열을 지그재그로 1열로 지나간다. 그리고 용건이 있으면 그 경비부대원 앞에 멈추라. 그 사람들을 추려내서 따로 확인할 테니 일단 찍어라. 그러면 우리가 저리 끌어내 모은다.”


과연 용기가 있을까?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 있을까.


“잘 새겨들어! 이 경비부대원 중에 수용인을 살해한 자! 칼이건 몽둥이건 총이건 살해한 자! 앞에 멈춰서 지목하라! 바로 때려죽이지 않아도 저들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증언하시오. 수용인을 강제로 강간한 자, 지목하라! 계급 상관없다! 또한, 없는 죄를 억지로 뒤집어씌워 때리거나 찌르거나 살해한 자! 지목하라!”


무슨 말인지 몰라? 얼굴에 내색이 없어. 들.


“너무 걱정 마라. 오늘은 여기 법으로, 이들이 행했던 법으로 바로 실행될 것이다. 국호 민주주의를 실행한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나서지 않으면, 난 공화국 법에 따라 당신들을 총살할 것이다. 입을 다물면 너희는 이 공화국에 아직도 충성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맞고도 참는 게 민주주의인가? 강간을 당하고 입을 다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국호에 따라, 입을 다무는 자는 진실한 반혁명분자이므로 공화국법으로 총살이다!”


[작전 목표 제 7조 (별 외) : 2차와 3차 이상 작전 수행 중, 작전구역 내 정치범수용소, 교화소, 보위부 유치장, 청소년 감금시설 (영 유아원 제외) 등의 수용인을 해방할 여건과 조건이 될 때 습격을 수행한다. 다만 2~3차 작전에 지장을 주거나, 아군의 피해가 예상되면, 차후로 지정하거나 곧바로 포기해야 하며, 목표 작전이 우선한다, 작전상 최종 순위로 간주한다. (가능할 시점까지 연기한다.)


이 별 외 목표는 전황이 지연되어 ‘여건’이 성립할 때, 특수작전이 비정규전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구역 내 반-공화국 세력을 해방하여 사회혼란을 야기하기 위함이며, 민심의 획득과 공화국에 대한 민심의 이반을 목표로 하고, 습격작전 시 제거할 대상은 해당 수용시설 군인/공무원/로동당원에 한정한다.


작전은 신속하게, 필요한 인원만 제거하고 손을 떼고 철수한다. 아군 피해가 방지될 여건이면 남은 총기로 그들을 무장시켜 해방할 수 있다. 경고 : 아군에 대한 비정규전 합류는 절대 불허한다.]


‘7조. 전쟁이 길어질 때란 소리네. 얼마나 길어져야 이 ’여건‘이란 소리지?’


자연스럽다. 이것이 어찌 자연스럽지 아니한가. 평화의 시대는 항상 짧았으며, 가장 평화로운 시대는 전쟁이 끝난 직후였을 다름이다. 지구에서 인종 국가 지역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 그게 나와 마주했을 뿐. 여기나 거기나, 오늘이나 5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인종과 문화만 다르지 다 거기서 거기다. 논리가 모자라도 총이 법이다.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가 그렇게 다른가? 피의 능선과 백마고지는 처음 보는 사람이 구분 못 한다. 파주와 진주는 그렇게 많이 다른가. 단어의 발음 어감으로 특별함을 느끼는 인간.


우리가 2차대전 독일군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름이다. 프란츠 오이겐, 호엔슈타이펜, 그로스도이칠라드 등등의 사단 이름. 장군들 이름도 특이해서 또 열광적이지? 그에 비해 2차대전 미군 장군들은 이름이 좀 특징 없지 않아? 아프리카는 아무리 거대한 전투가 일어나도 지명과 이름 때문에 곧 식상해져. 우린 서양 것을 유치찬란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독일 부대를 숫자로만 표기하면 이렇게 열광하겠는가. ‘이질감 속에 뭐가 더 있는 듯한 기분’이 어감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지. 다 거기서 거기다. 전투 이름도 같다. 전격전과 바바로사 빼고는 소련군과 비등하거나 막판에 히틀러의 몽상으로 인해 다 박살 났다. 그리고 제복과 사진들. 왜 패배한 독일군과 일본군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아니 존재할까. 이미지다. 그리고 이름이다.


아우슈비츠의 학살은 다 기억하지만, 영국이 말레이시아에서 행한 무슬림 학살 같은 종류는 이름조차 모른다.


여기 이름이 무슨 상관인가.


비극과 대량학살의 역사도 너무 많아서 열거 못 해. 그러면서 알렉산더나 십자군 전쟁에서 저지른 학살은 전투로 여기며 서양인들은 대단하게 보지. 가끔 묻고 싶어. 우리가 서양인이야?


비극은 일상 반복적이었고 하도 많아서 지루하다. 바로 이런 소리를 하므로 또 일어난다는 개소리도 지루할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남에선 침투한 적을 찔러 죽이고 훈장 받는 사람이 생긴다. 시작이 문제지, 이제 전쟁의 세상은 초법이다. 자기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무식한 놈들이 진리와 이성을 아가리로 갈구했다. 최고의 이성과 진리는 전장에서 전사한 장병이다.


그나마 규명되고 일반적으로 규정되는 것은 역사 자체가 아니라 전사, 전쟁사다. 이조차도 서로의 통계는 다르나 어느 정도 평균값은 나온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진실한 역사다. 그리고 여긴 자칭 민주주의 국가다. 그리고 각 민주주의를 토대로 하는 국가의 헌법 형법은 다르다. 어디서는 사형이 20년형이면 족하다. 그러면 여기 법은? 이 사람들은 여기 법으로 다뤄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저들에게 이질적인 그 법이 이해되거나 통할 리도 없다.


저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직 여긴 저들의 법이다. 노동력의 근간이 되는 소를 잡아서 먹으면 사형이다. 여기 법이다. 남조선 동영상과 음악을 유통하다 잡혀도 사형이 가능한 나라다. 나는 지금 그 위임권력을 받았다. 이런 논리가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똑같다고 거품을 물 거다. 정치, 전쟁, 사이비종교의 논리와 같다고. 그래. 같아. 같다고!


하지만 모두 믿었어!

모두가 믿었잖아!


모두 자기가 옳은 쪽에 있다고 쌍심지를 켜고 거품을 물었잖아! 정치 종교 언론 사이비종교에 적지 않은 사람이 휘둘렸으면서,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린 유교의 전통을 고수해? 시어머니가 옛날처럼 나불댔다간 자녀가 바로 이혼하는 이 시대에?


서양의 정치 권력은 전쟁을 일으켜 상대방에게 무조건 뒤집어씌우고 그냥 죽였어! 그게 강대국이야! 식민수탈을 안 하고 강대국 된 나라도 있어? 식민을 하면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을 죽이고도 처벌은커녕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는데 우린 여행하다 풍경에 마약을 맞아 뿅! 뿅! 역시 서양은 달라, 유럽은 아름다워, 학살의 현장을 딛고 감탄한다. 매일 사람을 죽이고 있는 이스라엘로 성지 여행을 떠난다.


봐, 내가 십자군처럼 한다고 뭐가 문제야.

역사가 증명해줄 거야.

역사가 오늘의 일을 철저하게 망각하게 해줄 거야.


미안하다. 학살도 숫자놀음인데 이건 양도 안 찬다.

이 땅에서 학살은 고난의 행군 정도는 돼야지.


[힘을 가진 자가 정당하다면 이유가 없이 정당한 거다.]


[정당의 이유를 찾는 쪽이 학살당할 쪽이다.]


[힘을 가진 자가 정당하다고 말하면 역사서도 그렇게 기록해준다.]


내가 내 목숨 걸고 한다는데 누가 감 놔라 배 놔라

곧 죽을 사람의 논리를 숨어서 생명 부지할 놈들이 뭔 상관이냐.


진리와 이성을 찾고 싶으면, 여기 와서 사람을 면전에 몽둥이 하나 들지 않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설득하면서 소크라테스처럼 맞아 죽으면서 하던지.


그 역사의 단순 지루한 역사를 받아들이면 이 세상에 끔찍하고 처절한 일들은 말처럼 끔찍하지 않다. 너희도 할 수 있고 나도 그럴 수 있다. 거꾸로 한반도가 확률적으로 위험할 수 있어. 어디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나 만족하실 양심군자야.


하물며 난 여기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있다.

없던 것이 아니라 국호에 들어가 있던 걸 깨우쳐준다.


너희들의 죄는 우리가 새벽에 접근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경계 실패의 죄목이며, 공화국법에 귀속되지 않는 무수한 폭력 강간 고문 등의 만행이다. 적어도 이 안에서는 무소불위였지. 이제 역전되는 거다.


“그동안 지도자들께서 대를 이어가며 그렇게도 미몽에서 깨어나 혁명을 완수하라고 말했으니 알아는 들어야지. 모르겠어?”


“지목하면 어떻게 합니까!”


오, 생각하는 인간이 등장했군.

훌륭한 사민, 생각하여 고로 인간이야.


“일이 온당하게 처리되면...”


계속 반말해라. 존대하면 말이 안 통한다.


“너희들은 여기 있는 식량을 나눠 갖고 각자 알아서 집으로 가게 된다! 그 전에! 지목하라 너희들이 얼마나 바보이고 겁을 먹었는지 증명할렴 하고. 가족이 죽었는데도 모른 척, 무서워서 모른 척. 그런 사람은 나오지도 말라! 총으로 쏴달라고 하면 쏴 주겠다.”


화창해. 지구는 화창한 날이 많지.


“전달~~~! 우리 지역대원 들어라. 대열에서 움직이거나 도주하려는, 그리고 지목한 사람이 변명하려고 하면 바로 쏴라. 들었지? 움직이거나 지목한 사람의 말이 거짓이라고 소리 지르고 어쩌면 바로 쏜다.”


목격했다. 굳이 감정을 고양할 필요 없다. 지역대원들에게 말할 필요 없다.


“가만히 있어라. 세 명 이상의 증언이 아니면 우리도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 분명히 경고했어!”


따스하니 참 좋아.


“지역대원들은 다수가 지목한 사람은 저기 따로 분류해서 빼라.”


“저, 지역대장님. 그냥 사람들을 그 자리에 있게 하고, 경비부대원들을 한 명씩 지나가게 해서 지목하도록 하죠. 그래야 잘되지 않을까요?”


“그건 너무 북한식이잖아. 인민재판식이잖아.”


“그렇습니까?”

“서로에게 마지막 명예를 지킬 방법을 준 거야.”


태양은 빛난다.

총열이 번쩍이는 아름다운 날이다.


“자, 중대장! 출발시켜!”


사민은 건드리지 마라. 매너를 지켜라. 정 안 되면 차용증을 써줘라. 민중을 우리에게 끌어들여야 한다.


아니, 그런 게 어딨어 씨발. 사소한 잘못이라도 한 놈은 쏴버려야 돼.


그게 여기의 법이고, 여기의 법이 아니라도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폭격으로 죽은 아이를 보았다. 그 순간 딜레마가 깨졌다. 아이는 불쌍하다. 여기 사람들은 미군과 남한 공군을 탓하겠지. 증오하겠지. 분노하겠지. 치를 떨겠지. 그래. 그럴 거야. 일본이 원폭 기념일 날 가녀린 할머니가 절규하니까. 좆 같은 미군이 우리를 폭격해서 학살했다! 뭐야. 원폭 기념비 앞에서 세계는 똑같이 절규해야 하는가? 그건 독일 정도나 돼야 가능한 말이지.


[지들은 더 죽여놓고 자기 하나 죽은 건, 치를 떤다.]


딜레마가 깨졌다. 그런 노래 가사가 있지.

We didn’t start the fire.

먼저 쏜 건 내가 아니다.

상대도 똑같은 말을 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역사를 대하면 그게 바로 죽는 놈이 된다. 말은 원래 안 통하는 거다. 타인과 말은 원래 통할 수가 없는 거다. 깊은 관계를 맺으면 분쟁이 난다. 사람이 가볍게 보이기 시작하면 등을 칠 가능성 커진다. 친했나? 친했는데 상황에 따라 변했나?


NO. 원래 생각이 달랐던 거다. 전혀. 전혀. 전혀 달랐다. 그동안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말만 했던 거다.


아이가 죽었다. 끔찍하게 죽었다.

내가 정리해주지.

애는 폭격이 죽인 게 아냐!

여기 세습 부자와 당원들이 죽인 거야. OK?

이제 그 이상의 말은 나에게 안 통해.

내 말을 부정하는 인간은 죽는다.


지금 내가, 우리 지역대가 총을 들고 있으므로 우리가 법이다. 세월이 지나 후회한다는 대표적인 개 같은 소리 마라. 그건 죽을 놈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주제가 아니다. 원래 똑똑한 놈이 바보에게 죽는 거다. 아무 생각 없는 총만 든 바보.


역사는 단순하게 봐라. 그리고 그걸 넘어서라. 내가 지금 화가 난다. 나는 왜 화가 나고 있는가.


이 새끼들아, 너희는 내 인생을 빼앗았어! 그러므로 나에게 죽을 자격이 있다. 너희는 나의 것을 빼앗았다. 이름도 성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내 걸 빼앗았다. 이것이 내 개인적인 증오다. 난 남조선에서 세뇌가 덜 되어서 그런지 개인적이다. 내 인생도 파괴하고 내 지역대원들을 죽였으며 내 왼쪽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날 애꾸로 만들었다. 다행히 게릴라 두목으론 외모 죽이지!


어쩔래. 내가 총을 들었고 넌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진리다. 빨리 많이 죽어야 이 전쟁이 끝난다. 아무나 빨리 많이 죽어야 끝난다. 다 죽으면 평화가 온다. 이 땅을 누가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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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민족해방전선 3 +2 21.05.19 415 14 15쪽
221 민족해방전선 2 21.05.17 374 13 13쪽
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6 13 13쪽
219 성냥개비 3 21.05.10 376 14 12쪽
» 성냥개비 2 21.05.07 365 13 14쪽
217 성냥개비 1 21.05.03 442 14 12쪽
216 주변인정전 6 21.04.30 340 14 13쪽
215 주변인정전 5 21.04.28 368 11 12쪽
214 주변인정전 4 21.04.26 986 13 14쪽
213 주변인정전 3 21.04.23 404 13 12쪽
212 주변인정전 2 21.04.21 449 15 12쪽
211 주변인정전 1 21.04.19 539 12 10쪽
210 CSAR 18 +1 21.04.16 530 14 11쪽
209 CSAR 17 +8 21.04.14 557 16 15쪽
208 CSAR 16 21.04.12 539 18 14쪽
207 CSAR 15 21.04.09 501 15 14쪽
206 CSAR 14 21.04.07 441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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