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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364 회
조회수 :
217,779
추천수 :
6,773
글자수 :
1,993,819

작성
21.05.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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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추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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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성냥개비 1

DUMMY

성냥 점화와 동시에 양손을 모아

담배에 뻑~ 뻑~ 뻑~ 점화.

한 모금 깊숙이 빨고


“후~~~~~”


흐린 하늘, 손가락 사이에서 주황색이 빛났다.

역시 담배도 제복 입고 피워야 맛이지.


슬라이드를 후퇴,

창을 향해 권총 속에 빛을 비춘다.

탄창이 없으니 노리쇠가 걸려 약실이 노출,

약실과 노리쇠의 요철에 가스 때가 없는지 확인.


“군기는 있네.”


총열 청결도 확인하고 걸쇠를 눌러 전진, 철컥!


눈 감고 오른쪽 귀에 권총을 가져다...

천천히, 방아쇠 장력을 확인하면서 격발.

딱!


공이가 정확히 때리는 소리인지 분명히...

다시 한번 슬라이드 후퇴 전진.


눈 감고 귀로...

천천히 장력을 또 확인하며 격발.


총기 청결 이상 무.

격발 상태 이상 무,

다시 말해 결합 상태 양호.


“실탄.”


탄창 윗부분 총알을 푹푹 눌러 스프링 확인...


“걸리는 데 없이 적당하고.”


다시 한 모금.

“후~~~~~”


더블 액션이 안 되는 구형 권총.

토카레프 권총에서 그리 발전하지 못한 구식.

그러나 총은 총. 총알이 나가면 되는 거다.


탄창 결합, 1발 장전 후,

해머를 딸깍 젖혔다, 천천히 앞으로 붙이고,

안전 스위치 확인. 권총을 권총집으로...


이건 쏘기 전에 해머를 엄지로 젖히고 당겨야 한다!

잘 기억해. 더블 액션 아니다.


창밖. 구더기가 들끓는다.

갑자기 내 손목. 시선과 움직임이 멈춘다. 이게 내 팔이고 내 손인가. 단풍철의 앙상한 나무 같다. 전에는 잘 안 보이던 힘줄들이 쓰러지기 직전 고목처럼 불거져 있네. 몇 kg이나 빠진 건가. 10은 충분히 넘은 것 같아.


“사~나이 속에서도, 멋진 사나이... 온 누리 힘 떨친~~~”


거울.

담배를 문 내 얼굴.

군관모. 내 얼굴.

확실히 머리가 길어. 여기 애들은 바리깡 가지고 다니나?


“피부가 많이 상했네. 가자고.”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라?


뻐끔...

“후~~~~~~”


아무리 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관 복장은 대낄이야. 2차대전 소련군 같은 장교 요대 반도, 양어깨에 수평으로 큼지막한 벽돌 계급장. 이런 거 예복으로만 쓰고 장교도 위장 전투복 입는다고 들었는데, 있긴 있네. 후방이라 그런가? 그리고 나에게 잘 맞아. 이게, 계급장? 모르겠다. 관심도 없다. 육군 것하고 다른데? 몰라.


옛날식으로 군복 상의도 요대 밑으로 좌악 빼고, 전면에 주름이 없도록 당기고 등 뒤로 당기고, 요대 버클도 정중앙에 따악 맞춰야지?


다만 소련군 복장 대비, 모자가 좀 깬다.

여기다 금속 담배 케이스를 가지고 다니면 제법인데. 음.

북조선에 와서 진급했네. 혼자라도 단결.


“어때, 소모품치고는 근사하지?”


‘낭비 아닙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래도 육군의 엘리트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엘리트라고 말하진 않지만 보통 그렇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몽창 때려 부어서 북으로 보내고 다 소모합니까?’


‘소모라고?’

‘소모가 아니면 뭡니까.’

‘소모 맞지. 맞는 것 같아.’

‘인정하시는 겁니까?’


‘그럼. 전시에 군인은 소모품 맞아.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어. 그걸 어쩌라고. 그러면 군인이 아니어야 했지. 그 외에 방법이 없어.’


‘넘어오면 다 죽는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주고, 되지 않는 것이라도 되게 하라. 결국, 이렇게 다 죽습니다. 예외가 없어요. 누구나 다 이렇게. 이게 전술입니까? 전략 축에나 낍니까?’


‘그럼 어떻게 해.’

‘어떻게라뇨.’


‘사람이 생각은 많지. 그 사람 머리에서 다 나온 거 아냐? 하지만 이 방법 외에는 없어.’


‘왜 없습니까? 왜!’


‘사람이 하는 일에는 말이야...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 가장 타당해. 가끔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전술로 성공하는 예는 있지만, 소수야. 그리고 그 창조적인 전술도 성공 실패는 똑같이 반반이었어. 아니지, 전통을 거부한 것이 실패 확률 더 큰 도박이지. 어떻게? 어떻게 해! 북한이 이런 전술로 나오는데 우리도 똑같이 하는 거지. 대신, 북한보다 우리가 더 넘어왔을걸. 우리가 더 성공적이야. 제공권이 있으니까. 해상도 우리니까. 북한은 하고 싶어도 못 해.’


‘이게 올바른 전술이란 말씀입니까?’

‘아니, 최선의 전술.’


‘전투력 좋으면 뭐합니까? 여기서 다 고갈되고 소모되는데.’


‘달리 방법이 뭐 있어. 남쪽에 남아서 전선에 투입해? 적 특작부대 잡으러 다녀? 그런 데다 써먹어?’


‘...’


‘아니지. 아니야. 이렇게 쓰일 수밖에 없어. 당연한 거야. 억울하나?’

‘억울하죠. 아무도 모르는데.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가는데.’


‘알든 모르든 무슨 차이야. 죽으면 죽는 거지.’

‘그래도 진실이 있잖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본 진실.’


‘진실? 그런 걸 믿어?’


진실이란, 진실의 규명이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둘이 언쟁하고 싸워봐라. 100% 옳고 100% 그르게 판정 나는 일이 인간 세상에 있나. 판검사 변호사도, 경찰도, 보험 피해사정인도 100% 진실을 규명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불가능이다.


같은 걸 보고 다르게 말하는 애교는 기본이며, 항상 양쪽 말이 다르다. 고의적인 은폐나 왜곡도 생기고, 그것이 길어지면 맹신하는 현상도 어렵지 않게 본다.


증언은 대게 편이 나뉘어 있다. 거짓말 탐지기도 아주 가볍게 부수적인 것. 누가 진실을 너무 따지면 더 수상하다. 양편에게 공정한 증언이 있어도 진실 자체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시간은 흐르고 사건은 벌어졌으며 기억은 계속해서 왜곡 퇴행하며 전에 믿은 것은 안 보인다.


그러므로 법정은 진실의 규명이 아니라 증거 신빙성과 분량의 싸움이다. 판사는 증거 많은 쪽에 손을 든다. 그렇게 역사도 굴러간다. 우린 굵은 줄기를 역사로 믿을 뿐, 진실로 증명된 건 없다. 역사서는 현장에 없던 사람이 쓴 거다. 그래서 옛날 역사서는 문학에 가까웠다. 싸움이 끝나 승패가 갈려도 양편은 여전히 다른 말을 한다. 세상 모든 일에서 양편이 모두 치를 떤다. 서로가 정신병자라며 분노한다.


왜냐.

그래야 자기 살아생전에는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죽은 뒤에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건 상관할 바 아니다.

가끔, 자기가 죽은 뒤 역사에 멋있게 그려지길 바라는 돌연변이는 있다.


난 지금이 나쁘지 않아.


완전히 내려놓는 것. 느끼는 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언행한다. 본성? 뭐, 그런 게 있다면 본성 그대로지. 먹는 것에 순수해지고 (물론 순수하게 집착하는 거야), 내가 살기 위해 널 거시기 해버리는 것,


부모·형제도 조금씩 감추잖아. 조금씩 연기하잖아. 직장이고 사회생활이면 아주 대단할 정도로 내색을 감추고 접대하는 말이 넘쳐나지.


그런 게 여기 없잖아.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아.


내가 살펴본 바로, 그럴 때가 되면 사람들은 표정이 사라져. 누가 누구를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지 몰라... 다 그래. 이런 상황에 들면 다 그래. 얼굴에 감정이 없어. 관심이나 즐거움을 진심으로 표현할 것도 없고. 나도 부하들도 다 무표정 일색이야. 나중에는 공포도 얼굴에 안 드러나. 내 눈앞에 사람들은 2천년대 사람들인데 조선시대 표정들 보는 것 같아. 그 쾡~~~한 그런 눈 말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눈.


좋아. 지금은 진급 걱정도 사라졌어. 세상에 필요한 거북한 접대가 사라졌어. 시체를 보면 어디에 뭘 맞아서 저렇게 됐나 그걸 살펴. 구더기만 먹지 않으면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아. 하도 많이 봤으니까.


[살아있었으나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든다.]


2차대전 유대인 학살과 수용소, 나치 정권이 만들고 집단학살한 소수자들과 소수민족 종교인,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끔찍한 수용소를 기억한다. 외에도 많다. 독소전쟁에선 러시아 키예프 근처 숲에서 독일군이 유대인 등 10만 명을 총살했다. 퇴각할 때는 나중에 밝혀질까 주민들을 동원해 시신을 파내서 소각까지 했다. 소련도 폴란드 장교들을 카틴 숲에서 2만 명 학살했지.


그래서 우린 무엇을 느끼지?


저런 나쁜 놈들이 있어! 저런 미친 독재자들이 있어! 저런 끔찍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단체로 존재했었단 말이야?


No.


집단학살과 집단수용, 인종차별, 민족과 국가에 대한 맹신과 그 맹신으로 인한 잔인한 학살, 언제나 있었어. 지구에서 끊이지 않고 존재했어. 하나의 기치로 국가 국민이 응집할 때는 항상 위험한 법이야. 그래서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베트남이 상당히 위험하지. 국민의 응집이 왜 일어날까, 자발적이지 않아. 언론과 정권 합작의 정치적 선전도구의 결과일 뿐이야. 효과는 알 수 없으나 이 땅도 70년째 응집하고 계시고.


나치만이 그랬을까.

소련의 스탈린은? 일본 제국군은?

정치는 집단학살을 부른다.

독재는 사람들을 집단으로 죽인다.

독재도 정치 행동의 일부다.

여긴 종합 선물세트지.


정치가 독재를 부추기고, 선전/선동으로 하나로 사람들이 뭉칠 때, 그들이 환호하며 지도자를 따를 때, 음지에서 같은 땅의 사람들이 죽어간다. 수 없이 죽어가고 어디 묻혔는지도 몰라. 이런 행위는 인간 뇌가 충격적일 정도로 혁신이 오지 않는 이상 반복된다. 유치원에서 끈 이론을 원아들이 이해할 정도면 가능할까?


이런 비극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충격적인 기억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나치의 전쟁이 끝나고, 시신이 널리고 쌓인 수용소로 인근 독일 주민들을 불러 시신 처리를 자기 손으로 하게 한 것처럼. 그렇게 기억시켜야 한다. 최대한 많이 불러서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 주기를 조금 늦춘다.


하지만 또 어느 도라이가 나와서 판을 망치고 사람들의 혼을 뺄지는 알 수 없다. 그런 확률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항상 공존하고 있다. 현대, 인터넷과 SNS의 고속 정보화 사회라고? 그래서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감추지 못한다고?


아니, 대놓고 하지.


서양 여러 곳의 집단폭력 조직폭력은 살해하는 과정까지 찍어서 올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이미 사용하고 있다. 일부러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찍히는 줄도 모르고. 정보화 사회라고 인간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아? 당해봐야 맛을 알지?


이제 난 직감대로 간다.


“나오시죠.”

“알았어.”


화창한 날. 별 의미는 없지만 일요일.

단상.


“자! 주목. 지금 뭐 하는지 동무들은 모르겠지?”


그냥 물어보는 거다.


“국호가 뭬이야? 국호가!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맞지? 그래서 지금 국호에 있는 민주주의를 눈앞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거다.”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이 교화소는 우리에게 접수되었다. 이보다 큰 규모라면 지나갔을 것이지. 우리가 너희도 믿을 수 없거든. 하지만 하나는 알아둬. 전시에 당신들은 모두 총살이야. 명령도 내려왔다. 여기 이 앞의 놈들은 알고 있다. 너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배신할 가능성이 농후한 반혁명분자들이니까.”


눈 봐라. 한 5할이나 알아듣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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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6 13 13쪽
219 성냥개비 3 21.05.10 376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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