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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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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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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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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CSAR 14

DUMMY

저걸 타면?


대리 지역대장. 상사.

어디로 갔어. 어디로!

유중사님 임중사님은 또 어딨어!


우리 8중대는 어딨는 거야. 팀원이 실종됐는데 찾지도 않냐? 말만 떠든 거야? 뭐 이런 개 같은 거. 평상시 말하던 거 기억 안 나? 단결. 절대 충성. 가자! 뭉치자! 가자!


[너희 중대 몰살됐어.]


다 죽었다고? 전멸했다고? 우리 중대 다 죽었다는 거 지역대원들이 믿지 않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질기게 생존할 사람들이야. 여기 넘어와서 당장 죽을 것 같았지. 생존은 꿈도 못 꿨지. 먹을 것도 없었지. 그리고 현실 앞에 우리들은 무기력했지. 훈련은 훈련이야. 그래, 한참 모자라. 무장간첩으로 전락한 기분이야. 곧, 다, 죽을 거라 생각했지. 차원이 달라. 왜 차원이 달라? 훈련은 끝이 있거든. 끝이 있다는 걸 알고 훈련을 하거든. 한달을 야전에 있어도 결국 돌아간다는 걸 알거든.


그게 없었어.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갔지. 실종됐지. 사라져갔지. 팀이 단체로 사라졌지. 지역대장도 사라졌지. 정신이 돌지 않은 이상 돌격까지 했지. 어차피 시간 싸움이고 가늘게 살아봤자 임무수행이 천 프로 불가능하단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나 같이 경험이 없는 하사가 먼저 죽을 거였지. 당연한 거야.


하지만 놀라운 사실을 알았지. 개념만 있으면 상황이 최악이라도 살 수 있다는 사실. 보아하니, 살려면 무슨 짓이든 한다. 먹는 풀은 죄다 먹는다. 감자를 삶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살아 있으면 총을 든다. 표적이 보이면 골로 보낸다. 문제는 살려는 생각일뿐, 누가 안 살고 싶나. 우리 하나하나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넘어와서 알았다.


난 이렇게 하는 거 꿈도 못 꿨다. 내가, 내가 살아있다니. 굶고 굶고 못 자고 못 자도 내가 살아 있다. 자연히 총칼을 든다. 배고프고 자지 못해 지쳐 쓰러져도 또 이 몸이 일어난다. 매일 기억이 일어나서 난 잠에서 깨고 총을 든다. 총알이 남았다. 아무리 졸병이라도 고참 하나만 붙으면 충분히 생존 가능해···. 염병. 졸병이 1년 2년이 경과 해도 ‘졸병’이란 말만 안 쓰지, 그냥 막내 하사는 영원히 바닥. 해놓고 보니, 하사. 하사란 말 낯서네.


여긴 고참도 갈참도 없지. 고참은 4년이 지나고도 남아야 진짜 고참. 내일모레 전역할 사람도 담당관 아래 영원한 졸병. 중사를 달아도 졸병. 밑에 애를 몇 명 부릴 수 있는 격상된 졸병. 난 장기 꿈꾸지 않았고 입에 올리지도 않았어. 운동 잘하는 비슷한 기수는 중사도 달기 전에 장기를 백히고. 난 대상도 아니고 묻지도 않았지. 여기 왜 이래. 저 양반은 또 왜 저래. 대대본부면 다야? 어, 대대본부. 맞다. 저 사람 대대본부.


원사님 아냐!


”넌, 가 이 새끼야!“


누군진 알겠는데 자꾸 뭔 개소리를 시전하지?

”왜 그러십니까 저한테!“


”코로넬이 오라잖아!“

응?

“코로넬은 우리 대대장보다 높아!”


이 또한 뭔 개소리십니까.

명령계통이 다르잖아. 저 백인이 무슨 상관이야!

난 저 백인과 말도 나누지 않았다. 뭔 말을 해.

먼지를 뒤집어 쓴 늙은 얼굴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해가 안 돼???”

“내가 뭐랬다고.”

“지금 여기서 저 사람이 가장 높아!”


갑자기 뭔 소리여. 누워있을 때 스치듯 눈을 마주한 것이 전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백인은 나에 대해 놀라는 눈을 했다. 날 어리게 본 건가? 어리긴 어리지. 나 지금 스물이거든. 하지만 내가 무슨 10댄 줄 아냐? 철 없는 아이로 보이냐? 당신은 어째 한국인으로 보면 50은 넘어 보여? 아니 70이라도 믿긴 믿겠다.


하지만 당신보다 강해. 당신은 저 높은 곳에서 조이스틱으로 깔짝대는 hit’em, hit’em 아냐? 난 사람 보고 쏘는 종류다. 매번 사람 눈동자 보고한 쏜 건 아니지만, 내가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데. 몇은 제꼈는데. 애 같아 보이냐? 내가 당신을 위해 몇을 보낸 줄 알아?


한마디는 했구나.

나도 모르게, 저 거구 금발의 백인에게 말했지.


“보니파스.”


그냥. 재밌잖아. 보니파스.


보니파스는 판문점에서 북한군 도끼에 살해당한 미군 대위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나, 판문점 근처 기지가 캠프 보니파스로 명명되었었다지. 어떻게 미군이 도끼에 맞아서...


광풍이 내 군복을 퍼덕이고

굉음은 가뜩이나 멀어져간 청력을 잡아 흔든다.


저 검은 구멍의 사람 그림자. 바로 서 있는 헬멧이 영어로 소리 지른다. 검은 구멍에 검은 선그래스 헬멧. 이것이 지옥의 사자인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fuck. shit. holly. 이젠 헬기 승무원까지 난리네? 나를 향해 come on, come on, 하는 장갑 낀 손짓. 이젠 저 안에 있는 코로넬을 보라고? 겟 더 뻑이다 이... 우린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써야 따라간다.


“뭐 해. 빨리 가! 가!!!”


진짜 왜 이러는 거야.


“난 안 다쳤어!”

“그게 아니라고!”

“아니면.”

“이 무전기로 통보가 왔어!”


소텍 무전기로? 그건 공군이야.


“대령이 건의했고 연특사가 승낙했어!”


“다 어디 있습니까.”

“누구!”

“가면 같이 가야지 않습니까!”

“빨리 타! 군말 말고! 니가 무슨 판단을 해!”


떨리는 화면. 거대한 로터가 까마귀 날개처럼 돈다. 반월도가 사람 목이 잘릴 때까지 붕붕붕 도는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가라고? 저 안쪽의 컴컴한 곳.


연특사? 퇴출명령이 떨어졌다고?


“여기 있는 사람이라도 다 타야지!”

“그냥 타! 없어!”


얇아진 다리에 넓어진 군복이 펄럭인다. 좆도 실력도 없는 전투수영 군복 입고 허우적대다 물에서 나와 떨던 모습과 비슷하다. 급조도하 허우적대다 누가 끄집어내서 나와 덜덜 떠는 것 같다. 여름인데도 어깨는 태양이 태우고 몸은 덜덜덜.


오른손에 내 총. 왼손에 AK.


남조선. 정상적인 인간들이 사는 곳. 가면을 취하지 않아도 되는 곳. 어머니. 수현이. 도시락. 카페. 미트볼 스파게리. 클럽. 내 방. 제대하면 쓰려고 모아둔 물건과 옷들이 있고, 천성이 헤프게 쓰질 못해서 나도 모친과 비슷하지. 구멍 난 양말을 신으면서 새로 산 고급 양말이 5년째 내 방 박스에 있다. 20개는 될 거다. 맘에 들어 사놓고 쓰질 않는다. 이러다 노년에 입을 내의와 양말이 충분하리라. 색깔과 디자인이 멋진 고가 내의, 다섯 개나 있다. 한번도 안 입오보고 군용만 입었다. 어쩌면 그렇게 부모와 비슷해지냐.


“이런 씨발.”


눈물 난다. 이 몸에 아직 물기도 남아 있네. 뜨거운 다리미로 압착해 다 증발한 줄 알았더니만. 난 좋은 인간이구나. 모친이 보고 싶다. 아니,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종이 쪼가리로 내 신상을 통보하고 싶지 않다. 그건 고문이야.


‘가면 배신이야.’


흐느적거린다. 뭘 하고 싶어도 의욕이 없다. 쏘라면 쏘겠지만, 힘이, 힘이, 단, 단 하나도 없다. 쓰러지면 곧 내 인생의 마지막이란 예지몽 같은. 그래. 내가 아니라도 여기서 쓰러지면 다 못 일어났지. 지금 여기 서 있는 게 기적이야.


내 방. 그 방에서 이틀만 자고 싶다. 아무것도 안 먹고 아무도 안 건드리고 내 방에서 이틀만 자고 싶다.


저기에 오르면 그것이 있다!

하지만 이건 군법이야.

늙은이 말을 다 믿을 수 없어.

난 8지역대 8중대야.


우우웅... 우우웅 소리가 늘어져 들린다. 후욱~ 후욱~ 후욱~ 봉 돌아가는 소리. 모든 현상이 슬로비디오. 이건 꿈인가보다. 꿈이 날 시험하는가 보다. 여기서, 하하하. 까만 도포에 까만 갓을 쓴 사람만 나타나면 제격이겠는 걸. 캐 세라 세라.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 죄책감이 몰려와. 슬퍼. 나밖에 모른다. 내가 병신이자 야비한 놈이었다는 것! 난 야비했어!


중대장의 ‘분산 재집결!’, 우리 중대 모두 있었다. 중대장님이 항상 그랬으니까.


‘자, 까먹을까 봐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어느 상황 언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훈련 때는 항상 말로 새롭게 지정했다. 훈련 때는 작전 출발 직전 브리핑에서 지정했고, 조금씩 바꿨다. 여기선 그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까먹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 확실히 정한다. 상황 발생 시 기본은 무조건 후방 1km다. 가다가 주요 재집결지를 선정은 하겠지만, 일단 일이 벌어지면 우리 침투로 1km 후방이 최초 재집결지다. 지형지물 참고점 동서남북 방위각으로 해봤자 머리만 복잡하다. 상황 발생 시 무조건 1km 후방. 복창.’


‘지나온 침투로 1km 후방.’

‘지나온 퇴출로 1km 후방.’

‘지나온 이동로 1km 후방.’


‘기다리는 시간 20분. 그다음은 우리 중대의 산. 그다음은 우리 지역대 재집결 산. 어렵지 않지?’


담당관님.


‘차라리 그렇게 못 박아 두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매번 하다 보면, 조금씩 바꾸다 보면 정신이 없습니다. 정신이 없어요. 수면부족이라 그런지 헛깔려요. 자꾸 멈춰서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정하십쇼. 찬성입니다.’


‘오케이. 오늘 확실히 하자. 아예, 팀 군장을 2개조 분산으로 아예 나눈다. 이러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 반 개 팀에서도 조장들이 다시 한번 아예 반으로 나누고, 정확히 지정합시다. 김중사 이후로 복잡해졌어. 담당과임. 지금 그냥 재분배하고 맞춥시다.’


첫 전사자 직후였다.

몇 명이 조금 망설이자


‘복잡해. 이러선 안 돼. 어느 순간이라도 이제 흩어진다는 생각을 해야 돼. 아무리 노농적위대건 후방사단이건 북한군은 금방 붙는다. 끈질기다. 저들 훈련이 허당이라는 건 남에서 하는 소리다. 놈들이 너무 잘 걸어. 봐, 봇다리 짐 같은 군장에 먹을 것도 없는데 따라오잖아. 소총만 들고 1개 소대만 와도 위험하다. 저격해서 죽여도 숫자만 불어난다. 저격해도 우리 위치만 알린다.’


‘중대장님. 여기가 왜 그럽니까? 당체 이해가 안 됩니다. 전선도 뭔데 왜 이리 질기게 쫓아옵니까? 이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냥 미쳐서 날 뛰고 쫓아오는 것 같습니다. 목표를 때리고 쫓아오는 건 이해하지만, 이건 반 미친 것 같습니다.’


‘나도 궁금했어. 그리고 답은 있어.’

‘뭡니까?’

‘여긴 묘향산이야.’


‘묘향산?’


산? 우린 별 뜻이 없다. 우린 산 이름에 의미가 없었다. 그냥 이 산, 저 산, 높은 산, 조금 낮은 산. 저 산이 이 산이 사실 무슨 상관이냐. 이름이 있건 말건 다 똑같은 산.


특수전에서 수도 없이 듣는 말. 민가가 보이면 고도를 높여라. 내려가면 쉽게 잡힌다. 길과 민가를 멀리하라. 이격하라. 풀과 나무에 손을 댄 자국이 보이면 등고선을 올려서 걸어라. 산길과 능선길을 피하라. 산. 어제 넘은 산. 오늘 넘을 산. 내일 넘을 지도의 산. 자잘한 산 이름을 기억도 못한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산이 아니면 말도 안 한다. 그리고 항상 지나갈 산이었다. 아니, 지도에서 산 이름도 안 본다. 표고 숫자와 등고선만 주시한다. 여길 어떻게 넘어가나 그 생각만 한다.


그래서 여긴 묘향산이라? 그 산이 그 산이지. 설악산하고 뭐가 달라. 이름만 다르지 산은 똑같다. 한반도의 산은 많이 안 다르다. 만주나 넘어가야 다른 형태의 지형이다. 위도에 따라서 나무들이 조금 다를 뿐. 그건 확실히 다르지만 대동소이. 금강산과 설악산은 본질적으로 같다. 붙어 있으면서 이름만 다른 거다. 금강산이 멋있냐? 묘향산이 멋있냐? 그건 호텔에서 아침 맛있는 거 먹고 산보할 때 얘기지.


묘향산.


‘그래서, 묘향산이 어쨌다고요?’

‘특각이 있어.’


특각. 수령의 별장.


‘지금 여기 지도자가 있단 말입니까?’


‘당연히 없지. 미국이 특각 위치를 아는데 주시 안 하겠어? 그렇다고 전선이 후퇴한다고 여기로 오겠어? 아무리 터널을 파 봐라. 특각을 폭격했을 수도 있어.’


‘그럼?’


‘특각을 지키는 부대 같아. 우린 특각 위치를 몰라. 여기서 가까울 것 같지도 않아. 하지만 그 특각이란 것이 규모가 상당하고 지키는 부대도 상당해. 그 특각을 몇 km 정도로 빙 둘러싸서 완전히 밀봉해서 지켜. 그 범위가 10km 단위일 걸. 특각 구역 안에 허가 없이 들어오면 총으로 쏴버려. 나물이나 버섯 채취하러 들어갔다가 정말로 총에 맞아. 아마, 호위사령부 소속일걸?’


‘잘못 생각한 거네요. 하찮은 애들이 아니네요.’


‘그럼. 복장 봐도 후방사단이나 노농적위대가 아니었어. 분명히 좋은 군복에 AK-74 든 녀석들을 봤어! 처음에는 있었지? 허술한 복장에 학생근위대 노농적위대, 처음에만 보이다 이제 사라젔어. 이제 준비된 현역들만 나타나는 거야. 그런 놈들이 우릴 쫓아. 예비군은 안 올라오고 저 아래 도로 쪽에 붙어 있을 거야.’


그때까지 우리 중대는 하나 빼고 말짱했다.


‘수령도 없는데 여길 왜 그렇게 악랄하게 지켜요?’


‘여길 지키는 것이 임무니까. 그게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이 공화국의 직책이니까. 수령이 있건 없건 상관 없는 거야. 산이 크니까 우린 여길 북한의 관광 명소로만 생각한 거야. 그러지 않고는 이런 큰 산에서 저렇게 악랄하게 물고 늘어져? 이건 소탕이야. 소탕 분위기라고. 멀리서 새로운 부대가 온 것이 아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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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민족해방전선 3 +2 21.05.19 415 14 15쪽
221 민족해방전선 2 21.05.17 374 13 13쪽
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6 13 13쪽
219 성냥개비 3 21.05.10 377 14 12쪽
218 성냥개비 2 21.05.07 365 13 14쪽
217 성냥개비 1 21.05.03 443 14 12쪽
216 주변인정전 6 21.04.30 340 14 13쪽
215 주변인정전 5 21.04.28 368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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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주변인정전 3 21.04.23 404 13 12쪽
212 주변인정전 2 21.04.21 449 15 12쪽
211 주변인정전 1 21.04.19 539 12 10쪽
210 CSAR 18 +1 21.04.16 531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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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CSAR 16 21.04.12 540 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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