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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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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05.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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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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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민족해방전선 1

DUMMY

God Save The Queen


by 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 이건 뭐 파시스트 정권

사람들을 머저리로 만드는 잠재적인 수소폭탄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 여왕은 인간 따위가 아니다

미래는 없다. 영국은 더 이상 꿈을 꾸지 못 한다


원하는 걸 말하지 마. 필요한 걸 말하지 마

미래는 없어. 결국 너에게도 미래는 없어


God save the queen. 그냥 남자야

우린 여왕을 사랑해. 신이 구원해주실 거야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 여행객 돈이나 갈취하는

명색뿐인 간판 수령.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지?


오, 신이여. 역사를 구해주시고

그 미친 열병식을 중단해 주시고

그 모든 죄악에 자비를 베푸소서


여기 미래가 없는데, 죄악은 또 피어난다

우리 국민은 쓰레기통 속의 꽃들.

우리 국민은 독을 먹은 인간 기계들

우리의 미래, 너의 미래, 그런 거 없어.


No future, no future,

No future for me

No future, no future,

No future for you



민족해방전선


호랑이 가죽, 호피.

북조선에서는 북한 인민군 군복을 호랑이 가죽이라고도 부른다. 뭘 훔치고 강탈해서 뻔뻔하면 신고해봤자다. 누런 색에 번개 같은 검은 물결. 호피 무늬. 영어로 타이거 스트라이프라고 한다. 살아숨쉬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동물의 생동감이랄까.


달은 고요하다.

달은 원래 고요하게 혼자 있었다.

거기 무엇이 끼어들 뿐이다.


'온다. 오고 있다.'


타이거 스트라이프 무늬 같은 갈기 구름이 달을 긁어 빛과 어둠을 반복하는 밤. 달빛도 지상에 기다랗고 날카로운 그림자 남기며 지나간다. 어디선가 늑대소년이 나타나 무섭게 포효할 것 같은 계곡. 여기를 지나면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계곡을 관통하는,

산짐승들도 음흉하게 웅크릴 계곡으로 중앙의 길. 산짐승을 느낀 사람은 일단 칼이라도 뽑고 걸어야 할 것 같다. 늑대가 무리로 모여 달 아래 먹잇감을 노린다. 괴기영화에나 나올 척박한 땅과 헐벗은 산야.


무거운 침묵 다섯 개의 그림자.

다섯은 모자를 깊게 고쳐 쓴다.

그 앞서 걸으며 나타나는 1인.


그걸 바라보는 좀비 같은 사람들. 마을사람들은 당당히 앞을 못 보고, 눈을 땅바닥에 깐다.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눈만 위로 치켜뜨며 눈치를 본다. 말하는 사람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할까봐 높은 경비대 단상을 주기적으로 휙 쳐다보고 다시 눈을 깐다.


휘이잉~~~ 휘이잉~~~


옷 속을 파고드는 바람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자정이 넘은 시각, 경비대장 이름으로 집합하라 통발을 돌렸는데, 연락이 닿음과 동시에 무척 빠르게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힘은 없지만, 행동은 군인들처럼 빠르게 걸어와 부동자세처럼 서 있다. 조선인민경비대라고 하면 껌뻑 죽는다.


부동자세처럼 서있기는 하나, 사람들 몸이 불규칙하게 흔들린다. 이들 외관을 어디 비교하자면, 미국 기병대에게 쫓겨, 한 겨울 보호구역으로 이동하는 인디언들이라면 어떨까. 여기저기 천으로 머리 목 손 허리를 감싸고 있다. 목적지는 운디드니인가?


주민들은 마르다고 할 정도를 넘어 바람에 훅 날아갈 것 같다. 마르다 쪘다가 아니라 곯았다는 게 올바르다. 휑한 눈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기 힘들다. 예수님이 지금 계시다면 중동 땅을 버리고 여기로 달려왔으리라. 너무 불쌍해서.


북한의 전시 형편은 바닥을 치고 민간인은 방치되었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가옥도 흙벽에 구멍이 나고 초목은 씨가 말랐다. 의식주 모든 게 이 산골마을은 부족해 보인다. 진료나 의료품은 먼 이야기, 드러난 얼굴 상처를 그냥 놔둔다.


하긴, 이 땅의 성공 요건으로 꼽는 노동당 입당과 평양 거주. 그걸 기준으로 보면 더 무엇을 기대하는가. 평양 수준에서 더 밑으로 내려간다면, 남에서 어떤 모양을 떠올리겠는가. 상상이 안 되는 거다.


평양이 카스트제도 최상위. 남에서는 평양도 헐벗어 보이지만 그들 자신은 최상위 자부심을 가진다. 나머지 북한 전역은 이런 데가 한두 곳이 아닐 게다. 가장 가엾어 보이는 건 역시 아이들. 하고 많은 나라 중에서 여기 태어난 것이 이 어린이들의 죄 아닌 죄. 의복에서 그들이 겪는 일상의 곤궁이 드러나 애처롭다.


사계절 7~8년을 그 옷 하나로 버틴 것 같다. 여기저기 천을 덧대고 꿰맨 자국에 무릎이 드러난 바지도 많다. 아직 초겨울도 아닌데 천을 목도리처럼 두른 걸 보니, 몸들이 작은 찬바람에도 못 버티나보다. 자유당 시절 거지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두려움이 공기를 떠돈다. '이 새벽에 무슨.' 이런 밑바닥에서 더 무엇을 무서워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들을 모이게 한 건 조선인민경비대 2915부대 부대장. 경비대는 길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경비대 막사 앞의 작은 공터는 연병장을 내려다보는 단상과 같다. 그 막사 앞 공터에 부대장이 서 있고, 2m 아래 연병장에 주민들이 모였다.


연병장 가장자리에 보급품과 식량이 있는 경비대 창고가 있으나, 주민들이 장난으로 거기 문고리라도 잡았다간 죽도록 맞던가 정말 총 맞아 죽을 수 있다. 이 경비대 막사 연병장에 모이는 것 자체가 주민들에게는 불안이다. 자아비판 인민재판 공개적인 구타가 여기서 일어난다.


이들에게 인민재판 후 총살은 상상의 일이 아니며, 1년에 몇 번 꼭 보게 된다. 총알 아낀다고 몽둥이로 때려죽일 수도 있다. 그 죄목은 보편적인 시각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누추하다. 조선인민군도 이런 오지는 와보지도 신경 쓰지도 않고, 전시 경비대는 일반 육군처럼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한다.


익히 잘 알려진 경비대장이 군관복을 차려입고 주민들을 바라보나, 전쟁 때문인가 평상시보다 군관은 기가 많이 꺾였다. 이곳이 전쟁에 큰 영향을 받는 건 아니지만, 경비대 전사 하전사들도 밤이면 다섯 개 마을이 있는 긴 계곡을 따라 감시참호에 들어가 있다. 전쟁 났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곳은 소외된 것처럼 전쟁의 그림자 코빼기도 뵈지 않았다. 남조선 군대가 애써 여기 들어와 제압할 부대, 시설, 그 무엇도 없다. 부동산업자나 관심을 가질 척박한 산천초목 외에는.


부대장 뒤로 조선인민군 하전사 다섯 명이 서 있다.


경비대 사무실 앞에 켠 전구 하나가 조명의 전부라 막사 쪽에 붙은 전사들은 잘 보이지 않고, 그 중 두 명은 막사 옆 어둠 속에 서 있다. 주민들이 심상치 않게 여기는 것은, 이 병사들이 주민들을 구타하던 몽둥이나 굉이 같은 게 아니라 '총'을 들고 있다는 거다. 총도 평상시처럼 배 앞에 수평으로 걸은 게 아니라 몸에 붙여 수직으로 들고 있어, 여차하면 쏠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왼손으로 총열 덮개를 잡고 오른손은 방아쇠를 잡고 있다. 주민들에게 어떤 강력한 무엇을 통보하려는 가보다.


전쟁이 난 걸 주민들 상당수 알고는 있으나, 여기서 징후는 상공을 자주 날아가는 제트기 소리뿐.


“일부러 대오를 맞출 필요 없소~~!!!”


부대장 뒤의 전사가 소리쳤다.


주민들이 다 안 왔기에 밀집 상태로 있지만 대열을 맞추라 말하면 군대처럼 움직일 것 같다. 부대장이 등장하자 아무도 속삭이지조차 않고 움직임도 사라져 정지화면이 되었다.


이렇게 모여서 하는 건 대부분 정치강화다.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이 새벽에 나오라는 건지 주민들은 추측이 무섭다. 경비대는 상부에서 내려온 위대한 지도자의 하달문 같은 걸 열정적으로 읽는다. 군인들 역시 주민들 눈에 노출되니, 열정적으로 침을 튀기며 수령의 지도문을 웅변처럼 낭독한다.


그런 지도문은 듣는 사람도 정확히 렬렬한 반응을 안 했다가 무슨 일 당할지 모른다. 서로서로 감시하고, 아는 사이라면 정말 연기라도 잘해야 한다. 수령께서 우리 인민을 신경 쓰신다는 기쁨과 지도문에 대한 감동을 흉내라도 내야 한다. 찍히지 않으려면 반 미쳐서 감동해야 한다.


전사가 다시 한 마디 거든다.


“멀리서 오는 다른 사람들 도착할 때까지 자암시 기다리갔소!”


부대장은 표정이 불편하다.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이 있다. 거리는 좀 떨어졌지만 남조선 게릴라들이 산에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돈다. 이런 외딴 곳에 그 산사람들이 내려오면 속수무책이다. 상부에서 부대를 금방 보내주지도 않고, 마을들도 그런 것에 별 두려움이 없다. 빼앗길 것이 없으니까. 다 털어도 줄 것이 없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너무 힘겹다. 차라리 그들을 기다리는 건지도 모른다.


부대장이 나와 서고 한 20분 지났을 때, 근처에서 모일 주민은 얼추 다 모인 듯했고, 주민들이 고개를 들어 심상치 않을까봐 눈들이 부산하다. 주고받는 침묵의 눈빛. 그러다 부대장, 전사들 눈과 마주치면 급하게 밑으로 깐다.


잠시 후, 주민들은 놀라운 고함을 들었다.


막사 옆 그늘에 있던 군인이 앞으로 나와서 고함을 질렀는데, 나와 보니 하전사가 아니라 그 역시 군관이었다. 부대장보다는 계급이 낮았으나, 아무리 컴컴해도 그림이 보위부 같았고, 그 보위부 군관은 체구가 엄청 단단해보였다. 특히 상체는 군복이 터질 듯 팽팽했다. 북한에서 그런 풍채는 권위를 상징하고, 낮지 않은 지위란 냄새를 풍긴다. 이 땅에서 체중은 지위와 정비례한다. 그의 입에서, 주민들이 귀를 의심하는 소리를 듣는다.


어둠 속 군관이 나와 고함을 질렀다.


“오늘 이 새벽, 긴급 자아비판은 바로 2915 부대장 동무요!!!”


눈을 내리 깔던 주민들은 번뜩 앞을 본다. 주민들이 어리둥절하자, 말을 했던 보위부 군관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북한의 전형적인 숙청의 상징 행동을 했다. 경비대장 어깨 견장, 계급장을 확 뜯어, 무 계급으로 강등시켜버렸다. 그리고 방금까지 경비대장이었던 그의 귀에 소리쳤다.


“시작하라~~!!!”


그러나 부대장은 위신을 갖추려 했다. 그 상황에서 반항하는 건 공화국에서 있을 수도 없는 일. 총살형 당하는 사람들조차 남은 가족을 위해 욕 한 마디 못 한다. 그럴 때는 무조건 잘못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위대한 지도자에게 죽을죄를 지었다 열열이 자신을 비판해야 적어도 가족의 비극은 모면한다.


총살형 이하 자아비판도 있긴 하나, 죄 몫에 따라 그렇게 열성적으로 하고도 죽는다. 자기 죄를 성토하고 미제를 욕하고 지도자를 찬양하는 수순으로 정해져 있다. 자기와 관계된 남은 사람들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을...... 부대장은 했다.


“거저, 기냥 죽이라!”


대놓고 반항. 자아비판에서 절대로 들을 수 없는 말이자 충격. 주민들은 보고 듣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저 동무 정말 미쳤나보다. 주민들은 이런 장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번이 처음일 거라 생각했다. 자아비판 인민재판에서 반항을 해?


저 부대장이 저지른 횡포에 관해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댈 수 있지만, 저런 태도로 죽일 테면 죽여라?... 아니, 남은 가족들은 어쩌려고 저러나. 모든 것은 기록된다. 주민들도 군인들도 다 아는 상식에서 벗어났다. 벗어나도 한참을...


김정은은 젊은 나이에 등극하면서 거대 군부의 쿠데타를 두려워했고, 김정일로부터 군한 군대 규모로 치면 작지만 가장 강력한 개인 군부대인 호위국을 물려받았다. 김정은 옆에서 총을 휴대할 수 있는 건 호위총국 딱 하나 유일했고, 불안한 정권 기반 때문에 그 어떤 작은 부대까지 ‘바늘 떨어지는 소리 하나도 보고’하라 엄명했다.


평양의 김정은 직속 지도국에서는 어떤 부대 일반병사가 쌀 팔아먹은 것까지 보고받을 정도였다. 군대 지휘관을 정치장교가 감시하고, 보위사령부는 이 둘을 또 이중으로 감시한다. 이런 엄격감시는 지휘관들에 족쇄를 채우고 몸을 사리게 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온다. 주둥아리 잘못 놀렸다 알게 모르게 보고되면, 야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보위국이 끌고 간다. 모든 소유물을 압수당하고 가방 하나 들어 수용소로 간다. 장군님 목에 혹이 있다는 말 한 마디로 정치범이 되어 죽음의 계곡으로 끌려갔다. 그런 내용들은 지역 안전보위국에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피양의 지도국으로 문서화되어 올라간다. 그러니 저 부대장이 하는 소리도 모두 보고서에 올라 피양으로 간다.


‘죽더라도 가족들은 어쩌려고 조 사람 조런다니...’


작가의말

일주일 2회로 조정했습니다. 


월요일 수요일 기고됩니다. 


대신, 이번 곰모전에 작품을 내볼까 하는데, 응원 바랍니다.

이 작품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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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민족해방전선 2 21.05.17 374 13 13쪽
»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7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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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성냥개비 1 21.05.03 444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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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주변인정전 4 21.04.26 987 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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