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364 회
조회수 :
217,780
추천수 :
6,773
글자수 :
1,993,819

작성
21.05.10 12:00
조회
376
추천
14
글자
12쪽

성냥개비 3

DUMMY

내 부하들은 이제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은 계급 높은 사람들에게 일임했고, 우린 남한에서의 훈련과는 달리 ‘문제점은 없어 보이나?’ 적당히 묻는다. 이 작전계획에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는지 묻는 거다. 이제 무작정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해!’ 이렇게? 안 된다. 군기는 있지만, 형태라도 민주적인 절차가 흐르고 있다.


물어도 ‘이건 아닙니다!’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Yes라고 말해도 분위기를 보면 안다. 그리고 나도 무리한 작전으로 이 숫자에서 더 전상이 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우린 항상 최소한의 숫자다.


뒤로 물러나 담장 앞에서 총을 든 부하들. 다른 지역도 이러한가? 너무, 너무, 너무 말랐다. 아사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쩌다 노획한 걸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너무 많이 굶었다. 총을 잡기 위해 소매에서 나온 손목이 너무 가늘다. 힘줄들이 가득 덮여 있다.


이제 내 부하들은 ‘쏴!’ 하면 바로 쏜다. 주저? 주저하면 곧바로 내가 맞는다. 그것이 현장의 이치다. 말로 ‘나는 북조선이 싫어요!’ 떠드는 새끼도 봤지. 바로 쐈어.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데리고 갈 수도 없어.


부하들은 이제 자동소총 조종간을 [안전]에 놓지 않는다. 무심한 표정. 하나둘 가끔 날 쳐다보고 시선을 돌린다. 팔 아프냐? 행색과 얼굴들이 비슷하다. 모자가 아니면 누가 누군가 종종 혼동된다. 물은 마시는 데만 사용하고 세수한 기억이 멀다. 때인지 위장 자국인지 검으니 표정이 안 보인다. 단어. 몰골. 이렇게 심각하고 비참한 몰골일 수가...


나와 저 부하들이 지리산이나 2차대전 동부전선의 빨치산이라고 해도 총만 안 들면 구분이 안 될 거다. 배불리 먹는 게릴라는 없는가.


쏘라면 쏜다. 주저 없이 쏜다. 내가 말만 하면 쏜다.


모두. 우리 모두. 생명체가 얼마나 허무하고 황당한지 안다. 개 황당하다. 어떤 놈은 길길이 버둥대지만, 어떤 놈은 총 한두 방에 술 취한 놈처럼 픽~ 쓰러져, 몇 초면 골로 간다. 죽음의 여유 시간이란 없었다. 펑. 픽. 탁. 끝. 많이 봤다. 어쩔 수 없이... 적의 것에서도 느끼기는 하나 인상이 깊지 않다. 그러나 우리 지역대원들이 망자의 표정을 지었을 때는 오래간다.


아무 생각 없는 얼굴, 곤히 자는 얼굴, 벌어진 입과 공포로 놀란 얼굴, 아직 싱싱한 치아를 놔두고 혼이 떠났다. 이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떠난듯한 얼굴. 표정. 그마저도 얼굴에 큰 상처를 입어 깨지고 찢어지고 불에 그슬거나 탄 얼굴. 눈. 매장을 미뤘다가 다시 왔을 때의 충격.


아는가? 구더기는 얼굴부터 파먹는다. 가장 부드러운 살들이 많은 해골부터 노린다. 구더기가 가장 먼저 파먹는 것이 눈이다. 쥐도 거기부터 노린다. 일단 나타나기만 하면 신체에 정확한 구멍을 가지고 있는 두개골이 표적이 된다. 콧구멍과 귓구멍으로 들어가 가장 부드러운 것부터 말끔하게 핥아먹는다. 해골이 혀로 핥은 것처럼 번들번들해진다.


장소에 따라 구더기 이전에 개미가 먹다가 교대한다.


때 묻고 뜯어진 군복, 벌어진 입, 불탄 외면, 며칠 뒤에 묻으려 가보니 눈이 없다. 사라졌다. 그렇다고 구더기를 총으로 쏠 수도 없고 칼로 콕콕 찍어 다 죽일 수도 없다. 작대기 같은 것으로 걷어낼 수도 없다. 왜? 너무 많아서. 그 많은 구더기를 치워도 닦아도 몸 안에서 계속 나온다. 구더기를 다 죽이는 방법은 시신을 태우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므로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신을 받은 영안실은 볼 것이다. 종종 볼 것이다. 이 광경을. 경찰이 구더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영안실에 넘기겠어?


해골의 눈에서 무엇이 기어 나온다.


화장하기 전에는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구더기들은 자연의 현상이기도 하다. 구더기가 아니라도 야생동물이 먼저 뜯어먹을 수도 있다. 이 자연적이면서 인간이 보기에 비정한 구더기들은, 이 사망한 단백질 덩어리가 부패해 더는 먹을 수 없을 때야 떠난다. 묻어도 구더기 상태로 밀어 넣는 수밖에. 그래서 차라리 완전히 못 먹을 상태가 됐을 때 가서 묻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산중에 구더기들이 어떻게 기어 나와 모여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항상 느껴왔지만, 자연은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제외하고 외국군 적응하기 힘든 것은 고온과 극한의 사계절이다.


나는 이곳을 공격?하기 전에 고민했다. 이게 의미가 있는 것인가. 결국, 실행 쪽으로 기울었다. 이제 지역대는 ‘지역’의 밤을 장악했다. 우린 보통 트럭 서너 대라고 하지만, 수상한 기운이 들면 트럭 한 대라도 전폭기가 와서 때려버린다. 그리고 우리가 쉬는 건 임무 부정이다. 우린 매일 도로에 나갔다. 불태우거나 파괴한 트럭이 셀 수 없고, 탱크와 장갑차도 작지 않다. 밤이 밤처럼 고요해졌다. 하지만 우린 밤이 다시 엄청나게 북적이길 바란다. 대규모로 퇴각하는 북한군을 보고 싶다. 그 뒤에 곧 누가 따라 올라올 것이니까.


와서 보니,

여긴 노획할 식량이 딱히 없는 곳.


이제 우리의 현 세계에서 무의식중에 후순위 목표다.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습격하는 건 군침이 돈다. M. R. E. Ready To Eat.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차라리 우리가 열량 무척 높은 미군 식량으로 장비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칼로리 대박이며, 장난삼아 한 박스 먹었다간 고도 비만에 최상급이다. 온갖 치즈들이 이글거린다. 과거 휴전선 자리에서는 너무나 멀지만, 미군 수송기가 M. R. E. 1톤만 투하해줬으면 정말로 감사하겠다. 미군과 훈련할 때 부가 메뉴 버리는 거 많이 봤다. 우리도 특전식량 전분 버리고 그러니까.


전쟁은 식성이 사라진다.


다른 곳도 그런가. 지금 내 모습도 그런가. 너무 마르고 앙상하다. 마른 가지에 군복이 넝마처럼 펑퍼짐하게 걸쳐 있고, 머리까지 길고 수염까지 기르니 이건 21세기의 모습이 아니다. 나조차 낯설어서 순간순간 놀란다. 그리도 왼손은 총열덮개 오른손은 방아쇠를 잡고 여차하면 쏠 준비. 너희도 느끼는가? 숫자는 작지만, 너희가 달려들면 몰살이다. 그때부터는 구분이 사라지고 이타심도 소멸한다. 우린 딱 한 번만 말한다. 두 번 말할 시간이 없다. 붕대 대신 천으로 감싼 부위들. 저 중 몇은 지금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한다.


괴수. 불한당. 굶주린 무리.

사람은 쏘고 가는 것이지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아니다.


풀어준다고 ‘감사합니다. 다시는 안 하겠어요.’ ? 어느 바보가 믿어.


이 너덜한 상태.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적이지만 강릉 사건의 작전조들을 이해한다.

하루 세끼와 잠자리만 빼도, 인간은 급속도로 추락한다.

우리가 이런 꼬라지가 된 것은 침투 일주일부터다.

그리고 추적부대가 붙으면서 가속화되었다.


많은 부대가 남하했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현역이 아닌 어린놈과 늙은 놈들이 AK를 만지작거린다.

게다가 현역은 5.45 AK-74인데 예비군은 AK-47 7.62mm.


비참하다.

금속은 빛날지언정, 금속을 잡은 인간은 짐승보다 더 굶었다.

짐승은 먹이사슬 아래를 기가 막히게 찾아 생으로 씹기라도 하지.


몰골이 흉흉하다. 저마다 대검에는 자주색 얼룩이 있다.

옷만 바꿔입으면 서로 같다. 너무 비슷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자.


“들어서 이해를 하겠습니까? 뇌들에 모짜렐라 치즈가 다 말랐는데.”


오늘, 나는,

오랜만에 깨끗한 군복을 입는다.


“충성! 조국을 위하여 총폭탄 정신으로!”


“지역대장님. 진짜 여기 군관 같습니다.”

“당연히 게릴라는 그래야 한다. 총폭탄정신!”

“지역댐... 집중력 좋으십니다.”

“가죽 장화만 없네. 젠장.”


결정적으로 우리가 충격 먹은 것이 이 길로 인도했다. 동영상에서 본 우리나라 허름한 교도소는 여기에 비하면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여긴 철창 외에 바람이나 온도를 막아줄 것이 없다. 입구는 철창 한쪽 밑에 개구멍처럼 작은 출입구가 있고, 거기로 포복처럼 기어들어 가고 기어 나와야 한다. 정책이란다. 국가를 배신한 범죄인은 서서 출입할 권리가 없다나? 흠. 그 구멍으로 사람과 똥 양동이가 이용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 감방의 룰이 돌아간다. 여긴 처맞는 것이 일상인 동네.


안은 축사 같았다. 그렇다. 축사로 착각했다. 하지만 그 안에 짐승과도 같은 생명체는 사람으로 밝혀졌다. 처음에는 교화소, 다시 말해 북한 교도소에서 취사를 위해 돼지나 무엇을 기르는 곳인 줄 알았다.


‘뭐야 이게.’


하지만 너무 많다. 돼지를 그렇게 많이 기를 리가 없다. 그리고 감옥이 없다. 그게 사람이고 그게 감옥이었던 거다. 냄새는 축사보다 심했다. 나도 소 돼지 축사 냄새 정도는 안다. 그 이상이었다. 수감동에 변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마다 그 개구멍으로 들어갈 크기의 찌그러진 양동이가 있었고, 거기에 용변을 해결하고 위를 덮어놓았다. 하루에 한 시간 나와서 운동하는 거 없단다. 취조실 같은 것은 고문실에 가까웠다. 고문실의 냄새와 얼룩이 즐비하다.


먼지. 악취. 구더기. 이. 여기 창고에 페인트는 없다. 보급되지 않는다. 우린 일제강점기를 체험한다.


“뭐 이런 개 같은 게 다 있어.”


남조선 게릴라들이 설마 여길 뭐하러 와?

동이 틀 무렵, 경비부대원들을 모두 제압하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변변한 모포도 없이 옷과 종류를 알 수 없는 천으로 둘둘 말아서 밤의 냉기를 피하고 있었으니, 심증은 가지만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우리가 생각한 것 같다.

‘그 눈을 보았을 때, 사람 눈이라고 생각하기 싫었어. 지구상에 이런 데가 없진 않겠지. 아프리카는 춥지나 않지. 중점적으로 들은 새터민 강연에서 교화소 예긴 없었어. 시간상 줄인 것 같아. 노동교화소 얘기는 잠깐 들었지. 오래전에 탈북한 사람들 말인데, 똑같다. 이런 데 돈을 쓰지 않는다. 여긴 그런 땅. 블록 벽돌로 바람만 막으면 가옥이 되는 곳.’


난 지시했다.


여긴 어떤 사람들이 갇혔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곳인지 알아보라고.


그리고 또 말했지.


’아무리 그래도 교도소를 해방시킬 순 없다. 뭔가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면 100% 저들 말을 믿어서도 안 된다. 중대장들이 들어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보고하라. 교도소 밖으로 경계를 내보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린 오전 8시 이전에 여길 뜬다.‘


소란스런 목소리.

수감자 한 명이 장교를 주먹으로 갈기고 있다.

오, 민주주의가 실현되는군.


“뭐래.”


“부부가 수감 되었는데, 남편은 죽도록 맞았고. 여자는, 아내는.”


“데려다 거시기하게 어쩐 거야?”

“네. 옆 수감자 증언도 같습니다.”


첫 번은 지휘관이 해야지 않아?


“저 새끼 데려와.”


분해하지 않고 눈짐작으로 본 권총.

사람 보다 믿을만하다.


내 손가락이 알아서 권총집을 연다.


왼손을 다른 걸 짚는다.


“불!”


언제부턴가

내 몸에서 향 냄새가 난다.

초상집 향 냄새.

죽음에 앞서 먼저 썩는 것 같아.

누가 알고 미리 피우는 것 같아.

게릴라의 냄새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5 격납고 II (2) 21.05.31 374 12 11쪽
224 격납고 II (1) 21.05.26 528 13 11쪽
223 민족해방전선 4 21.05.24 394 12 14쪽
222 민족해방전선 3 +2 21.05.19 415 14 15쪽
221 민족해방전선 2 21.05.17 374 13 13쪽
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6 13 13쪽
» 성냥개비 3 21.05.10 377 14 12쪽
218 성냥개비 2 21.05.07 365 13 14쪽
217 성냥개비 1 21.05.03 443 14 12쪽
216 주변인정전 6 21.04.30 340 14 13쪽
215 주변인정전 5 21.04.28 368 11 12쪽
214 주변인정전 4 21.04.26 986 13 14쪽
213 주변인정전 3 21.04.23 404 13 12쪽
212 주변인정전 2 21.04.21 449 15 12쪽
211 주변인정전 1 21.04.19 539 12 10쪽
210 CSAR 18 +1 21.04.16 531 14 11쪽
209 CSAR 17 +8 21.04.14 557 16 15쪽
208 CSAR 16 21.04.12 539 18 14쪽
207 CSAR 15 21.04.09 501 15 14쪽
206 CSAR 14 21.04.07 441 16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