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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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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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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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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SAR 18

DUMMY

나는 적이 등장한 순간 쏴야 했다. 만약 재집결지에 아무도 없었다면 전 인민군이 나로 향했겠지. 난 군장을 버리고 아무 데나 뛰었을 것이고, 살았을지 죽었을지 가정도 성립하지 않아. 하지만 있었고, 하나는 넷을 살리는 것이 올바른 거야. 그게 뼈대야.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내가...”


거기 우리 중대가 있을 줄 몰랐기에? 그걸로 이유와 명분이 되나? 그걸로 책임을 피할 수 있나? 날 항상 챙긴 선배들과 중대장을? 다른 건 몰라도, 사라진 군장 네 개 중에서 중대장 것은 없었어. 군장 외관만 봐도 누구 것인지 알아. 컴컴해도 거의 알아봐.


[병훈이 거는 놔둬. 바로 들고 가게.]



총을 들고

자물쇠를 풀고

지나가는 자들을 향해,

그림자들을 향해 조준했다.

자물쇠를 풀고

방아쇠울에 검지를 넣었다.

손가락이 방아쇠에 닿고,

당기려고 했다.


주저했다. 이러다 나만 죽는 거 아닌가. 저기 아무도 없는데 내가 헛지랄하다가 죽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내가 날 속일 순 없다. 믿고 있었다. 저기 분명히 중대가 있었다. 전부이건 아니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이 날 위한 것이건 아니건 쏴야 했다. 저기 없더라도 쏠 수 있었다. 꼭 저기가 아니라도 이 근처에 있다면 적의 접근을 알려준다. 적은 조용히 산길을 우회하며 돌고 있었다. 마치 아는 것처럼. 조여오고 있었다. 저기가 아니라도 총소리 들리는 곳에 우리 중대는 분명 있었다.


‘왜 하필 내 앞으로...’


놈들은 산길을 따라 올라오면 위험하단 걸 알았다. 우리가 잡힐 정도로 산길로 따라올 때 잠시 돌아서 갈기는 것이 후미경계조의 임무니까. 산길에서 후미경계조가 쏘기 전에 본대는 방향을 바꾸고, 후미경계조는 쏘고 원래 가던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가 꺾어서 본대로 향한다. 가장 기본적인 특수전 도피 탈출 전술이다.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우리 중대도 분산탈출할 때 산길로 뛴 사람도 있으리라. 산길은 위험하지만 시간당 거리를 벌리는 데는 가장 빠르지 않은가. 일부가 길을 따라 조심스레 올라오고, 내 앞을 지나치는 적 병력은 원래 차단조로 있다가 산을 향해 돌면서 조인 거다.


자꾸 반복된다. 정말, 죽고 싶다는 말이 내 입에서 중얼거린다.


‘설마? 저기?’


적, 20m. 산악행군 종대.


‘당겨? 말어?’


말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걷는다.


‘어?’


다시 후방 1km 지점을 봤다.


‘날 기다리지 않아?’


병력. 자리.


‘갔어? 갔을까?’


총구가 서서히 내려갔다.


못 쐈다. 쏘면 군장을 버리고 조끼와 총, 단독군장 상태로 뛰어야 한다. 군장을 버린다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내 주특기 용품이 가득이다. 아직 팀 타격 작계가 끝나지 않았다. 거기 써야 한다. 실전에서 통신 주특기의 군장은 아무것도 아니다. 폭파 물품이 거대했다.


그걸 버려? 제대로 하나 쓰지도 못하고? 그 어마어마한 폭약과 실탄을 버려? 폭약과 장비 때문에 식량은 분산 2조가 나누어 지었다. 팀원들이 지었던 폭약들을 받자, 군장에 내 식량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줬는데 릭샥을 버려? 그보다도...


저기 누가 있다는 확증이 무의미해졌다.


아무리 시계로 재지 않아도, 이 산에서 나와 중대 모두 20분이 충분히 지났다는 걸 모를 리 없어.


‘안 쏴도 돼. 아니, 쏘면 안 되는 거야. 아닌가?’


그 30초. 30초의 주춤?


빵~~~~~~~~~!!!!


그 자리에서 울리던 총성.

빠바바바방. 다다다다다...

이어지는 어두운 산악의 엄청난 총성.


내가 죽인 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 죽였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 뒤로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삼각산에 누구나도 올 줄 알았다.

그리고 상사가 말했다.

우리 중대를, 몰살이라고.

아니, 그걸 어떻게 알지?

전부 포로라도 됐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해도 상사가 어떻게 알지?

그냥 어림 짐작으로 떠든 거야?

상사는 또 어디로 갔어? 물어봐야지. 어딨어!!!


두두두두 휘익~ 휘익~ 두두두두두.

거대한 로터가 내 두개골을 칠 것처럼 돈다.

검고 거대한 칼날이 붕붕붕 회전하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아는 사람,

원사님이 보인다.

바람에 낙엽들이 날린다.

시뻘건, 시뻘건 단풍들이 날아오른다.

굳어버린 핏덩이들이 공중에 부유하는 것 같다.

사방이 황적색 파스텔로 물든다.


우린 서로를 잡고 허벅지를 낮춰 멈춰 있다.

난 다시 밑으로 떨어진다.


뭐지?

60이 아니었어? 레스큐는 60 아냐?

큰놈이 왔다. 47인가 46인가.


책무. 후회. 몰살.

난 악을 쓰련다.

난 부정하련다.

“뭔 소리입니까!”


“이 자식이 진짜.”

“미쳤습니까?”

“내가 미쳤냐? 니가 미쳤지!”


저 어둠 안에서 보니파스가 날 바라본다. 두세 그림자가 다리에 응급조치를 하고 있고 하얀 튜브 링겔도 머리 위에 걸려 있다. 하지만 보니파스는 날 보고 있다. 왜야.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 아니 그런데 저게 뭐지... 이 비탈진 곳에 헬기가 어떻게 앉았지? 헬기는 수평으로 정지 상태.


어! 앉은 게 아닌가?

오, 꽁무니만 땅에 걸치고 있네.

저러고 지금 왜 안가. 날 기다려? 됐다니까.


쪼그려 있고 싶지 않다. 저들이 보기에 약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 난 일어선다. 일어설 힘이 없지만 일어선다.


“난 안 가. 원사님 타세요. 원사님이!”


팔짱을 끼고 서서 본다. 내 총이 팔짱에 끼어 잠시 쉬고 있다.


“야! 명령을 거부해? 항명이야? 기다리잖아. 시간 없어. 위험하니까 빨리 타! 헬기 위험해! 타라면 빨리 타라고!”


명령은 중대장님이나 담당관님이 하는 거지. 하다못해 사수가.


‘난 이제 괜찮아.’


꽈릉~~~~! 꽈르릉~~~~!!! 우르릉 우르릉.

저 아래서 뭐가 터진다. 큰놈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제트기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밑으로 내려왔다. 시선을 내리니 검붉은 구름이 여기저기 올라온다. 원사는 내 소매를 끌고, 승무원도 날 잡으려 손을 뻗는다.


난 뭐지. 내가 왜 가야 하지?


언제 감았는지 모를 미끌미끌 떡이 진, 군인이라고 보기에 길어진 머리, 양치질은 물 머금고 부글부글 침 뱉기. 내가 맡아도 역겨운 내 구취, 땀에 찌들었다 말랐다 반복하면서 번들번들해진 더러운 디지털 픽셀. 바늘로 꿰맨 하의. 바닥이 닳아버린 군화. 입대 전으로 돌아간 잘록한 허리. 꼬르륵 소리마저 잊어버린 위장. 첫 저격장소에 놓고 온 위장모. 뻑뻑하고 지겨운 북한 담배.


눈이 감긴다.

프로펠러 광풍이 몰아친다.

먼지와 잡물이 날려 숨 쉬기 곤란하다.

잡물이 따가운 정도로 내 얼굴을 대린다.


원사가 날 민다.

욕하면서 민다. 앞에서 끌려고 한다.


소리.

난 다시 눈을 뜬다.


내가 저 헬기를 탄다면, 타고 싶다면 이유는 딱 하나. 낙하산 결속하고, 타서, 이런 하늘에 올라 주간 점프 한번 마지막으로 뛰고 싶다. 시원~~~하게.


이 자리에 오기까지 시작된 그곳. 십자로 벌판 상공에서 뛰어 ‘왜가리 방향’을 바라보고 싶다. 시원하게 푸른 하늘에 몸을 날려 뛰고, 접지까진 바라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면 헬기보다 수송기를 타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


십자로와 격납고가 보이고, 처음 기구를 뛸 때 보였던 훈련장 바깥의 하얀 아파트와 주택들. 그 상공에서 130의 뒷심을 받아 주욱 수평으로 밀리면서 날아가고 싶다. 기체문을 이탈하면 온몸의 먼지를 바람이 확 날려버리지. 난 고개를 숙이고 양손은 예비낙하산을 잡고 1만! 그리고 확성기 소리. 왜가리를 봐라! 왜가리를 봐야 홀딩이다! 왜가리를 바라보라!


그전에는 나가고 싶었다. 실제로 많이 자진 퇴교했다.

하지만 낙하산을 처음 타고 왜가리를 봤을 때,

드디어 나가고 싶지 않아졌다.

그 첫 강하의 성취감. 기분. 통쾌.

죽는 날까지 못 잊을 것 같다.


진동이 늘어나 세 가지 소리로 범벅이 된다.


헬리콥터 양쪽에서 엄청난 섬광이 연달아 번쩍인다.

두루루루루루 두루루루루루 경쾌한 멜로디.


‘247인가? 7.62mm?’

양쪽 문이 서로 다르다.

오른편이 더 장관이다.

모터 엔진 소리가 징~~~~~~~ 울린다.


‘오, 미니건이야. 미니건.’


귀가 먹었다. 오토바이 엔진에 귀를 댄 기분이다. 미니건은 소리가 작은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네. 하도 귀가 먹어서... 이 정도면 큰 거지? 한 집 건너에서 재봉질하는 정도로 작고 가늘게 들린다. 하지만 저건 큰 거다.


‘가고 싶다. 그리고 가면 안 된다.’


이 너덜너덜한 장갑과 조끼를 벗어 던지고 타고 싶다.

그러나 나는 가면 안 되는 사람이다.


총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누가 총을 쏘며 온다.


적인가?

총알이 없어.


어? 넌 누구냐.


“새끼가. 날 방해해?”


내 손이 AK 치도를 뽑는다.


날 친다.


“일루 와.”

칼은 사람의 목으로.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 같다.


아니, 원사다.


다시 떠든다.


“뭐라고?”


얼굴을 가깝게 디민다.

으이구, 부친의 거시기한 분위기가 난다.

수염 털에 입냄새, 냄새 나는 얼굴.


“너 혼자 남았다고!”


“저역댐이랑 상사님은!”


“이거 정말로 미쳤나! 보고도 몰라???”


헬기는 뜨려 하고,

원사가 다시 잡아끈다.


내가 봤다고?

내가 뭘?

정말로 내가 제정신이 아닌가?


원사가 가르킨다. 땅을.

익숙한 디지털 픽셀.

어, 저 분은 안다.

내가 아는 사람이다.


뭐지? 정말로?

내 기억이 왜 이래.

두 번이나 했다. 혼자서.

계속 따라잡았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

중간을 잘 모르겠다.


다시 누운 분을 본다.

남자가 내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른다!


“너희 지역대는 이제 없어!”


흔들린다. 끌려간다.


우리 지역대는 이제 없다고?


아니, 8중대는 있어.



난 이제 같은 세상 안에 다른 세상으로 들어왔어.


“아주 좋을 것도 아주 나쁠 것도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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