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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3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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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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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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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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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주변인정전 1

DUMMY

주변인정전 (Marginal man story)



사람들은 현실보다 환상을 바라지. 거리를 걸으며 눈은 리얼을 보지만 뇌는 공상 속을 걷는 것 같아. 어떨 때는 고민 덩어리만 둥둥 떠가고, 걸어왔던 거리가 기억나지도 않아.


바라던 것과 현실은 누구나 차이가 크지 아마?


누가 좆밥으로 살려고 태어나고 꿈을 꾸었겠어. 현실이 생각보다 재미없어서 환상을 찾나? 요즘 들어 강한 게 뭔지 알겠어. 미국은 드라마 영화로 진짜 자기들이 창피한 것까지 부끄럼 없이 다 보여주는 놈들이야. 그래서 강한 거야.


치부를 당당히 드러낼 정도의 자신감. 우리나라는 그게 없어. 오로지 환상과 자극, 진실을 숨기거나 과장해. 우리나라에서 진짜 역사는 텔레비전과 영화로 못 봐. 환상 공상 없이 100% 현실만 철저하게 보고 사는 사람이 존재할까? 그게 사이코패시야?


나 자신을 드러내는데 인색해진 기분이야. 그건 다른 사람을 보는 데도 영향이 있어. 내가 저 사람 정말 어디까지 알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 그게 뭐 선진국 아니겠어? 돈이 신이지. 어려서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백지 같은, 다른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기 좋은 사람이었는데,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나 가끔 적같은 내 자신을 봐. 내가 내 자신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거기서 맺은 인간관계도 대충대충 같아.


지금 내가,

이런 생각 하는 걸 보니 나도 정신을 차린 거 같은데, 내가 지금 죽은 건지 살아 있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살았다면 앞이 안 보일 뿐이고, 죽었다면 유령인가?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뇌사상태인지 모르겠어. 분명 난 지금 생각하고 말하고 있잖아. 죽었다면 이게 언제까지 지속되는 건가?...


말을 하고 싶어. 앞서 말한 인간관계, 자신이 남에게 말하지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자기 속을 말하는 게 좋은지, 그냥 말 안 하는 게 좋은 건지,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서 지금 내가 떠들어.


사실 모두의 이야기는 다 특별해. 그러면서 자기 게 더 특별하다고 믿는 게 보통 아닌가? 남의 것이 내 거보다는 특별하지 않을 거란 막연한 배짱을 깔고, 남의 걸 들으면서 이해는 하지만, 사실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지. 나보다 더 마음이 넓은 사람한테는 미안해. 하지만 자기가 고통스러웠다, 힘들었다, 거품 무는 사람들 대부분은 의외로 평범한 이야기야.


어느 순간 믿을만한 사람이 깊은 이야기로 가면 특별함의 반향이 드러나. 그 특별함의 반향에서 그 사람이 형성되었음을 누구나 깨닫게 되지.


어떤 사람 하나를 완전히 다 아는 것도 아냐. 아무리 친해도, 부모도 친구도 그 사람 속에 든 걸 반 이상 알기는 힘들어. 나머지 반은 자기만 아는 모놀로그. 반만 보여도 많이 표현한 거지. 믿는 사람인 거지.


내 말이 좀 길어. 내가 지금 이승에서 죽었을 확률이 높은 것 같은데, 경철의 아량이 있다면 그 '특별한 반향'이 있는 소중한 분으로 인정하지.


좀 더 들어달란 말이야. 땡큐.


논리란 게 과연 존재는 하는가 종종 머리를 쥐어짜. 얘기를 들으면 앞뒤가 맞나 생각해보지. 그런데, 앞뒤가 안 맞는 진짜 이야기도 많은 것 같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벌을 주려고 할 때인 것 같아. 희생도 남 보기에 좀 타당해야 가치도 그럴 듯한 거 아니겠어? 그냥 난 죽일 놈이야! 하고 죽어버리면 남 보기 좀 이상하잖아. 하지만 잘못된 고정관념이라 하더라도 그게 남을 위했다면, 잘못된 시작을 떠나 마음은 아파. 난 그런 사람을 딱 하나 알고 있지.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니야. 내가 정확히 봤어.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했듯이, 교훈을 정하고 말하는 건 전달자가 왜곡하는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어. 중요한 건 가감 없이 말하는 것. 초라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바로 그거지. 우리나라 국어는 초등학교에서 ‘자, 주제를 말해보세요!’ 이것 때문에 이미 망하기 시작해.


이제 이 지루한 말에서, 내가 추억하고 싶은 사람이 오네.


가끔은 혼자 누구를 추억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이게 무의미하고 공허한 이야기가 되더라도 후회는 안 해. 누가 이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될 때, 이 이야기에서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잊을 테지. 그렇게 된다면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다 먼저 말하겠소.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예전에는 상실과 결핍 때문에 입대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경찰서 가야 할 사람이 군대로 도피한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경찰서에서 살인 같은 거만 아니면 자원 입대자를 봐주기도 했다니까. 원사님들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한 분 한 분 몬스터다. 여러 종류로.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런 친구들이 없지는 않지만 직업군인으로 생각하고 들어와 돈 모으고 그런 친구들 많다. 내가 알고 있는 딱 한 명을 제외하면...


난 이 친구 얘기를 하면서 미안한 마음이다. 이미 죽었기 때문만은 아니고, 굳이 이 친구 얘기를 할 필요가 있나? 내가 뭘 안다고 떠들 수 있는 건지 주저한다. 이 얘기 왜 해야 하는지가 가장 큰 문제다.


모르겠다. 사실 나도 모르겠다. 결론?... 그냥 하고 싶다. 말을 하면서 내가 왜 이 사람 얘기를 하는지 나도 알아보고 싶다. 다른 사람의 깊은 얘기는 인간 누구나 엿보기를 탐내는 습성이 있으니까.


적도 죽었고 아군도 죽었고 많이 많이 죽었다. 숨 쉬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딱딱한 밀랍인형이 되었다. 밀랍인형은 더 이상 온기도 없고, 찔러 피도 흐르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니 사람들 죽었던 순서도 애매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그런데 그 친구만은 조금 다르다.


사실 난 그 친구의 배경 가족 이런 거 모른다. 생각해보니 왜 그렇게 한 전우에 대해 잘 몰랐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군대가 그렇다. 자세한 건 몇몇 소량의 주고받음이고, 고참 졸병이 되면 사적인 거 큰 관심이 없다. 같은 팀이라면 그래도 좀 나을 거다.


"나도 탈까?"

"꺼져!"


이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다. 그 사진이 아니었다면 이런 긴 말 할 정도로, 나 인간과 인생에 별 관심 없었다. 생각이란 건 따분하고 별 쓰잘데기 없는 것 같다. 생각 많이 한다고 우수한 인간도 아니다. 고상한 생각을 하면서 나쁜 짓은 똑같이 한다는 바보 같은 함정에는 누구나 빠진다.


그 친구는 172 정도의 체구에 조용한 성격이었다. 물론 조용한 성격이 정말 죽을 때까지 조용하리란 건 아무도 안 믿을 거다.


얼굴은 하얀 편이고, 글로 말할 때 아주 상투적인 표현... 평범한 얼굴이다. 정말. 평범하다는 걸 표현하기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어떻게 평범한지 설명하는 게, 잘생긴 놈과 못생긴 놈 묘사하는 것보다 서너 배 힘들다.


얼굴이 다는 아니지만 읽는 사람이 상상은 해야 한다. 대충, 길에 많이 걸어 다니는 얼굴, 평범하다 그 표현이 아니면 어디 기댈 데가 없네. 비슷하다 비교할 연예인이나 알려진 인물도 없다. 녀석은 하얀 피부에 여드름 같은 게 아주 두드러지지 않게 얼굴에 많은 정도. 피부는 뽀얗고 좋은 편이다.


국방부가 없어졌다고 애써 강조하는 고참들의 암적인 행사에서 비지땀을 질질 흘려도 그 친구 표정은 침착하고 온화하기까지 했다.


우린 새로운 걸 마딱트려도 경험한 인내의 한도 안에서 그게 세다, 약하다, 판단한다. 그 친구는 나보다 경험한 게 많아 보였다. 사람이 같이 생활하다 보면 순간 순간 이야기꺼리가 사라지면서 의도치 않게 좀 더 안쪽으로 갈 시간의 강제가 온다.


그날, 나와 단 둘이 어쩔 수 없이 같이 있었고, 상투적인 얘기 주고받다 인내와 소재가 바닥났다. 놈은 내가 시도한 대화의 노력에 작은 보답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때 그 친구가 지갑에서 꺼낸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애써 보여준 게 아니라 시간의 공백이 어정쩡해서 멋쩍게 보여준 거다. 어쩌면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강원도라고 했다. 뒤 배경은 설악산 같은 높은 산이었고, 날 잡아서 높은 곳에 올라간 거다. 놀러간 분위기? 그 ‘높은’ 곳이란 의미는 사진에서 약간 남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높은 곳을 평생 도전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지 계속 들어보기 바란다.


그 친구가 무표정하게 바위에 앉아 있고, 그 옆에 한 사람이 다정하게 그의 어깨에 양팔을 두르고 있었다. 두른 사람의 얼굴은 약간 피곤한 듯 찡그리고 있었다. 물론 어깨를 포갠 사람도 남자다.


두 사람 분위기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냥 표정이 없었다. 애써 표현하라면 나이가 어리지만 인생 달관한 듯한 표정? 그 정도? 명확한 감정을 하나 일부러 추출한다면, 아주아주 피곤하고 지치는 일상에서 - 마음을 풀러 유명한 산에 왔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표정.


그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내 추측이다. 그냥 전날 술 먹어서 피곤한지 내가 어떻게 아나.


옆에서 그 친구 목에 양팔을 두른 사람은 키가 거의 비슷했고, 서 있었다.


다시 말해 그 친구 옆에 서있던 사람은 (다른 단어를 몰라 정말 미안하다) 난장이였다. 별로 좋은 뉘앙스가 아닌 것 같지만 다른 명칭을 모르겠다. 그 사진을 보는 내 마음의 받아들임은 약하지 않았다. 사진 보고 그 친구 얼굴을 다시 봤는데, 그 사진 표정과 똑같았다. 그건 녀석 인생의 표정 같다. 말로하면 항상 60% 변함없이 초연하다. 너 대체 뭐하던 놈이냐 묻고 싶었지만, 아무리 군인도 개인 프라이버시는 있다. 그래서 포인트를 좁혀 물었다.


“옆 사람은 누구야?”


내 예상과는 달리, 그냥 어려움 없이 대답한다.


“응, 쇼하는 사람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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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6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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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성냥개비 2 21.05.07 364 13 14쪽
217 성냥개비 1 21.05.03 442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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