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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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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3,819

작성
21.04.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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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변인정전 5

DUMMY

이 엄청난 단위. 우리가 일반폭파로 배워 눈으로 보고 실제 터트렸던 단위 파운드로 보면, 대체 이거 몇 파운드인가... 엄청나다. 상상이 안 간다. 여기 누가 타고 가면 몸은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된다. 폭파는 전과 후가 전혀 다른 세상이다. 터지기 전에는 그냥 생물이지만, 터지고 나면 모든 게 사라진다. 그 연소의 압력 범위에 해당되는 모든 건 찢어지고 터지고 아주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고 쪼개진다.


작업을 시작할 때는 트럭을 도로 옆에 세우고 적 차량 대열이 자나갈 때 터트리는 거였다. 하지만, 생각하니 진호가 옳기는 옳다. 그냥 여기서 이 트럭을 유폭시키면 이 지뢰와 포탄 덩어리들만 연소된다. 해봤자 적 차량 대열을 얼마나 많이 죽이고 부수겠는가.


이 지뢰와 포탄을 물리적에서 화학적으로 기화시키는 거 이상이 아니다. 그저 북한군 조달 물품에서 약간 빌 뿐이다. 폭발은 엄청나겠지만 물량은 전쟁에서 티도 안 난다. 트럭을 도로에 세워둬 봤자 근처로 엄청나게 적이 알아서 모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령부가 마지막으로 하달한 목표가 아니다. 우린 살아 있고 사령부 명령은 유효하다.


게다가 지나가는 적 보급대열을 때려 유폭시키려면 전기식으로 타이밍에 맞게 눌러야 한다. 비전기식 도화선에 불 붙이고 나면 터지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 정도 폭약량을 전기식으로 격발하려면 대체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하나, 우리가 가진 도전선 길이 안에서 터트려 격발자가 살 수는 있는 건가?


이 폭력 폭압을 적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주려면 적이 모인 곳에서 터져야 한다. 적의 정말 중요한 구조물 안에서 터져야 한다. 방법은 차량 밖에 없다. 연료를 먹고 바퀴가 굴러가는 트럭. 누군가 몰아야 한다. 영화처럼 몰다가 목표 근처에서 뛰어내려?


아무리 비전기식 도화선을 이중으로 길게 해서 점화하고 뛰어내린다고 해도, 이런 폭약 크기면 아마도 100m 전에 뛰어내려야 할 거다. 아니 그보다 일찍 뛰어내려야 한다. 대전차지뢰 하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가. 그런데 운전수가 사라진 트럭이 100m 넘게 일직선으로 목표를 향해 알아서 굴러가? 상식으로 봐도 아니다.


악셀에 무얼 눌러놓고 뛰어내린다 해도 어디 처박거나 옆으로 전복된다. 그럼 결속한 지뢰들을 무너지고 유폭이 물 건너간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냥 쓰지 못하게 터트리거나 누가 몰고(?) 몰고, 씨발, 몰고 가거나 둘 중 하나다. 니미 스토리 스펙타클하네.


뭐야. 총폭탄정신 땅에서 그걸루 가는 거야? 우리가 이럴 수 있는 거야? 중동이야? 꼭 이렇게 해야 돼? 이 방법 외에 없어? 당연히 이건 무리하다. 하지만 명령엔 맞다. 저길 날리라고 했으니까. 우리가 받은 어쩌면 마지막 목표. 우린 이제 저 안에 들어갈 숫자도 능력도 없다. 둘이 침투했다가 다 맞아 죽는다. 이 방법이 명령은 맞지만 정작 자살공격이다. 저길 운 좋게 침투했다 쳐도 지고 간 폭약 정도로 저 큰 걸 어떻게 날리나.


힘들여 작업을 하고 운전대에 오를 때까지 진호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동사 형용사가 구차하다. 똥이나 쌀 인간의 포장된 말.


진호는 적개칸에서 운전석 중앙 창으로 들어온 비전기식과 전기식을 마무리로 정리했다. 멀어질 때까지 차창에 얼굴도 손도 내밀지 않았다. 그냥 갔다. 이 씨발 새끼는 대체 어떤 인간이야? 인간 맞아? 넌 나에게 정을 못 느끼냐? 난 느껴 이 새끼야. 왜 날 비참한 좆으로 만드냐. 년차 동기 아니냐?


우리에게 당한 운전병의 피가 운전석 바닥에서 줄줄 뚝뚝뚝 떨어지는데 발을 딛고 진호가 올랐다. 오르면서 날 쳐다도 안 본다.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니, 뒈진 새끼들이나 앞으로 뒈질 새끼들이나 가련하다. 우린 서로 역사란 것에 흠집이라도 내?


진호는 앞만 보고 시동을 걸었다. 푸러럭 푸러럭 그래도 이 늙은 고철덩어리가 엔진을 진동한다. 난 무기력했다. 녀석을 사지로 보내고 있다. 양심. 여기서 착한 척 슬픈 척 연기하는 거냐? 나란 놈이?


미안한 게 아니라 자존심이 상했다. 쪽팔렸다. 소리쳤다.


“나도 타???!!!”


그리고 처음으로 진호의 욕을 들었다.


“좆까 씨발 새끼야! 올라타면 쏴버린다!”


권총으로 날 겨눈다. 그리고 웃는다 녀석이...


헌데, 헌데, 권총을 쥔 손에 피가 흥건하다. 왜 못 봤지? 총을 맞은 거다. 거기에 더해, 녀석은 날 보고 총상을 눈치 챈 내 생각마저 읽었다. 제법인데? 하는 표정으로 치아를 맹수처럼 드러내고 껄껄걸 웃는다. 중얼거림이 내 귀에 온다.


"내가... 병신으로 평생을 살 놈으로 뵈냐..."


운전석 밖으로 침을 뱉었다. 움찔하더니 1단 기어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래된 트럭이라 미션과 오페라 물리는데 쇠 깎이는 소리가 났다. 아차 하는 순간 차는 출발했다. 며칠 전 자기 전에 보았던 차갑고 무서운 진호의 눈을 옆에서 마지막으로 또 보았다.


차가 출발하기 직전 진호가 담배를 물었고 날 쳐다본다. 라이터가 없다. 비전기식을 위해서라도 라이터가 필요하다. 난 아끼고 아꼈던 남조선제 일회용 라이터를 던졌고 진호는 공중에서 잡아 바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빨아 길게 뿜고, 북한군 깡통모를 끝까지 푹 눌러 썼다.


저 멀리, 목표로 내려온 저 공장. 저 공장을 향해 달린다.


서서 총 든 팔을 내리고, 눈에서 멀어지는 대신, 난 마음으로 녀석을 되짚기 시작했다. 필름이 과거로 빠르게 돌아간다. 어느 저녁. 내무반 근처는 아무리 조명이 밝아도 신병에게 왜 그렇게 어두침침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 침침함은 고참이 되어야 같은 명도 안에서 밝아진다.


내 6개월 뒤 녀석이 그 침침한 가운데 나타났다. 난 추리닝 무리 뒤에서 앞을 보고 있었고, 내 뒤는 1년이 넘은 하사들이 저녁밥을 소화시킬 여흥거리로 앞을 보고 있었다. BEQ로 한 마리도 안 내려갔다. 여기가 개갈굼 없고 신사적인 부사관 부대라고? 흐흐흐. 1년 고참에게 3년간 당해봐. 담당관에게 전입해서 제대할 때까지 숨을 죽여 봐. 그게 어떤 건지. 중사가 대가리 박는 거 보고 싶어?


그날 내 짬밥은 뒤를 돌아볼 수도, 일어날 사건에 마음 놓고 웃을 수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1년을 단위로 묶이는 문화에서 난 저 앞에 선 진호와 먼 짬밥이 아니다. 철저한 기수라 하지만 은근히 1년 단위로 구분되며, 몇 개월 내 앞 기수라도 앞 년도라면 다른 세상 된다. 내 뒤 6개월이 진호지만, 내 앞 6개월은 그들 단위에 묶여 개길 수 없는 선을 긋는다.


소개는 싱겁게 끝났다. (전통에 어긋나게 어떤 고참이) 나이를 묻자 그 답으로 무르익던 분위기는 식었다. 이건 본인에게 안 좋다. 새로 온 놈은 고참들에게 즐거워야 좋고, 고참들이 면상 보고 웃어야 좋게 풀린다. 어두우면 안 좋다.


그런데 반전을 진호가 만들었다. 진호는 공기를 감지했다. 뭐라도 해보라고 하자. 1초도 안 되는 사이.


진호는 물구나무를 서서 그대로 멈췄다. 움직이지 않았다. 5초가 넘어가자 고참들이 웃기 시작했다. 야 씨발 너 기계체조 했냐 뭐냐 질문이 쏟아진다. 이어 덤블링과 빽주가리를 연속으로 돌았다.


분위기는 다시 불타올랐다. 나와 비슷한 처지는 드디어 웃을 수 있었다. 고참들은 운동 뭐 했냐 안 물었다. 다들 하나 이상 했기에, 그 유연성만 보더라도 진호가 체력적으로 또한 어떤 체력단련이나 고등산악 같은 신체기술적으로 무리가 없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진짜 문제는 무 운동 무 유연성 완전 돌덩어리께서 부임하셨을 때다. 팀에서 그걸 한번 분해했다 결합해주어야 한다. 적어도 10km 달리기 안정권으로 들 때까지.


그날, 모두 잠 든 시간 어두운 곳. 당해년 전입 하사들이 모였다. 때리고 겁주려고 모인 게 아니다. 어둠 속에서 담배를 나누며 서로 얼굴을 각인시켰다. 우리 년차 첫 기수는 같은 년차끼리 구타 갈굼 안 한다고 선언했다.


사실 어설프게 존댓말하면서 우리끼리 뭔가 있을까 걱정했었다. 만약 전 년차가 우리 첫 기수에게 교육 좀 시키라고 하면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당해년 첫 기수와 마지막 기수는 거리가 꽤 멀다. 아무리 특부후 기수 한 칸 차이로 철저하게 간다지만, 그래서는 융합도 안 되고 우린 낱개로 각개격파 당한다. 꼭 구타 얼차려 때문이 아니다. 생활 자체가 눌린다.


그날 첫 기수는 말했다. 다만 1년이 흐를 때까지 윗 기수에게 반말하는 건 고참들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우리 년차끼리 만나면 말 놓자고 하면서 당장 자기에게 말 놓으라고 했다. 우린 철저한 1기수 차이 존대로 자대생활 하는 게 표준오차에서 좋을 거라고 말을 듣고 왔다. 다른 대대 지역대 모른다.


말을 놓으라는 상황에 진호는 침묵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짧은 시간 신상을 묻는데 그저 평범한 집안과 가족으로 진호는 말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난 그게 둘러댄 말이라고 느꼈다. 직접 물어보는 건 남자끼리 방법 아니다. 그 복잡한 초임 하사 생활 1년 동안 남 신경 쓸 틈도 없었다.


그렇게 흘러가던 어느 날, 진호가 보여줬던 사진과도 비슷하게 시야가 넓게 트인 산 정상에 앉아 있었다. 전술종합훈련 작전을 종료하고 이제 천리행군을 위해 모이려는데, 대대장은 지역대 별로 일대 어느 산에 오르라고 했다. 그래서 오른 것일 뿐 아무 의미 없었다. 대대장이 그 산에 올라보고 싶어서 오르자고 한 군대에서 종종 일어나는 의미를 찾으려 해도 손톱만큼도 없는 그런 등산이었다.


날씨는 약간 푸했지만 그런대로 맑은 날. 기온도 적당하고 땀이나 힘도 적당히 들여 거기 올랐다. 대대장은 그냥 시켰지만 이상하게 모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눈에 들어온 게 근사했다. 우린 산을 엄청 탔지만 산을 감상하지 못한다.


아주 기분 상쾌했다. 고산이 별로 없는 충청도의 적당히 높으면서 일대에 우뚝 선 산. 아주 멀리까지 보이고 저 멀리 다른 산 능선들이 부드럽게 중첩된 풍경이 아름다웠다. 문득 옆을 보니 녀석이 있었다. 아무 말 안 했지만 난 녀석이 전에 보여준 사진이 떠올랐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그리고 놀랐다.


“배다른 형제야.”


묻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말했다. 주변에 몇 명 있었지만 분명히 내게 한 말이었다. 천천히 녀석을 돌아보았다. 기억의 저편에서 아무리 뒤져보아도 녀석 얼굴에 표정이 드러난 건 아마도 그때인 것 같다. 표정은 조금 숙고가 필요하다. 살인범으로 20년을 복역하고 나서 진범이 밝혀졌는데,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기뻐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런가?’ 그런 표정. 녀석에게 그런 초롱초롱한 눈은 처음이었다. 눈빛은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이었다.


“형이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날 엑스레이로 투과하듯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으며 자세히 묻긴 싫었다. 더 이상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씩 웃고 말았다. 녀석 몸에 많은 기다란 흉터들에 스토리가 생겼다. 타고난 투명한 피부에 싸래질 같은 자국들이 미세하게 보였다.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인다. 난 어려서 무슨 병을 앓은 걸로 생각했었다.


휴가 때면 어디로 갈지 몰라 했다. 먹는 것에 탐닉 없었다. 모두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고통스러워도 인상 찌푸리지 않고 즐거운 시간에도 웃지 않았다. 밥이 맛있다 없다 표현 없었다. 내가 묻고 싶었던 건 어떻게 살았는가는 아니었고 딱 하나, 그 형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였다. 물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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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성냥개비 1 21.05.03 444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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