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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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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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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복도

DUMMY

복도




조끼 안에서 숨 헐떡이는 날 발견한다. 게다가 총이 내 가슴을 누르고 있어 호흡은 더욱 불편하다. 벽에 몸을 1/3 기댄 상태에서 누웠고 발만 복도에서 안쪽으로 빼 들였다. 마지막 총격 후 몸을 돌려 90도 꺾인 복도 벽에 몸을 던졌다.


고요하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화약연기가 가득 차, 마치 도시게릴라 훈련장 안에서 공포탄을 수십 발 서로 난사한 상태처럼 코를 찌른다. 허나 상황은 다르다. 거기선 30초만 그대로 있다가는 상대에게 당한다.


단거리 벽에 내가 막혔을 경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최대한 귀로 소음을 청음한 뒤에, 한 쪽으로 나가며 돌진하던가, 아니면 한 쪽으로 내밀어 일단 쏘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건 부대에서 하는 통제관 놀음으로 진짜 목숨을 거는 건 아니다.


측정 아니면 공포탄조차 없이 빈총으로 해야 하는데, 빈총으로 1:1로 상대와 붙었을 때, 격발을 위해 노리쇠를 후퇴전진하는 건 위험천만하다. 상대가 안 보일 때는 귀가 민감해진다. 폐쇄형 밀실에서 아무리 탁상 캐비넷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다 들린다.


고글은 안 들어와서 올렸다. 뭔가에 맞았는지 모르겠으나, 배터리가 이렇게 쉽게 나갈 리 없다. 그렇다고 방탄헬멧을 벗어 상태를 볼 수도 없다. 상대도 느끼고 나도 느끼고 조금만 꼼지락하길 기다리고 있다.


뒤를 돌아본다. 우리가 굵직한 지하 출입구 2차 문을 들어섰을 때, 팀은 다 모여 있었다. 우린 옆모습 뒷모습만 멀리 봐도 누군지 알만큼 수 년을 같이 했다. 그리고 하강계단을 내려와 한 20미터 전진했을 때, 거총하고 조심스레 다가가던 우리에게 고막이 나갈 파열음과 함께 뭔가 팍팍 튀고 때리며 먼지가 일었다.


누가 자동으로 갈긴 건 분명하고, 아무리 겁먹고 긴장해도 AK임은 분명했다. 이 안에 구식 RPD 같은 기관총이 있을 리 없다. 여긴 그들의 수도이고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기관 건물이다. 오히려 정찰국에서 쓰는 미니 AK나 좀 독특한 소형 기관단총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정보과 담당관이 말했었다.


내가 항상 궁금해했던 카라쉬니코프에 장착된 유탄발사기의 위력을 알고 싶었으나, 워낙 많이 터진 까닭에 언제 저들이 그걸 쐈는지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1차로 피탄으로 각도와 방향을 잃은 탄두들이 사방에서 비산하며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안에 가구나 인테리어가 있으면 튀는 피탄들을 좀 먹을 텐데 전혀 없다.


실눈 뜨고 주변을 돌아본다. 무슨 영화처럼 빨간색 천이나 누구누구에게 충성! 이런 글귀 같은 거 없다. 단조로운 회색이 전체이며 그들에게 이곳은 그저 피난처일 뿐. 다만 콘크리트가 우리 것에 비해 조잡하다. 공간 저 위쪽에 아주 작은 비상등 하나가 아니라면 어둠은 그 모든 것이었다.


걱정된다. 우리 팀은 어찌 된 건가. 전방과 측면에서 자동화기 사격을 받았을 때 이후로 창현이가 옆에서 따라오는 것 외에는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 기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수류탄을 던졌다.


이 밀폐공간에서 AK만도 귀가 먹는데, 두 방 정도 수류탄이 터지니 내가 못 듣는 건지 귀가 이상한 건지 아무 소리도 안 들렸고, 내 사고는 2차원으로 하락했다. 다만, 수류탄이 터지면 돌진이란 본능적 생각만으로 밀고 들어왔다. 물체가 보이고 내 총구에서 번개가 터지고 상대가 쓰러지고 나는 나간다. 훈련용이나 스턴탄이면 이 정도는 아닐 거다. 숨은 헐떡이는데 내 숨소리가 안 들린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앞을 보니 아무 것도 없다. 상대는 내 소리를 원하고 있다. 내가 들어왔던 뒤를 돌아보니, 역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렇게 고개를 다시 돌리려는 찰라, 무언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15미터 정도 바닥에 군화 반 정도가 흘러나와 있다. 시신들 속에서 유독 그게 부각되어 보인 이유는 뭘까? 군복이 안 보이니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되뇐다. 아주 조용히 노리쇠를 약간 당겨 본다. 노리쇠에 물린 주황색 실탄 끝자락이 보인다. 됐다. 다시 천천히 밀어 노리쇠뭉치 톱니를 정확히 물리고, 머리를 흔든다.


내 습관대로 한 번 당기면 총소리에 섞어

“나!” “둘!” “세!” 소리를 냈다.


실전에서는 단발로 당기나, 나도 모르게 거의 점사에 가깝게 한번 당기면 세 발 이상을 정말 빠르게 쏘게 된다. ‘나’는 하나 ‘세’는 셋이다. ‘세’를 분명 구령했으니 최대 9-10발이 내 총에서 나간 셈이다. 그럼 20에서 18발은 남아 있다. 탄창을 빼서 볼 상황 아니다. 이 건물을 진입하면서 금방 깨달았다. 좀 싸우려고 하면 계속 탄창이 빈다.


전투에서 항상 실탄이 모자란다는 말을 많이 읽었는데, 갑자기 빈 탄창이 현실로 다가오니 순간 등이 싸늘하다. 이제 무거운 탄창은 꼽힌 것 포함 세 개 밖에 없다. 떠나기 전 실탄을 수령해 탄창에 삽탄을 해 다 채우고 나서, 남은 실탄 클릭 서너 개가 보였다. 한 2초 망설였을까? 난 특전조끼 뒤에 넣었다.


‘뭐 이거 넣는다고 더 무거울 건 아니니까. 실탄은 실탄이잖아.’


그러나 대놓고 삽탄할 자신이 없다. 그 순간 놈이 튀어나와 날 향해 갈길 것 같다. 휴일에 사회인 서바이벌 게임에서 그런 die를 많이 먹었다. 뭔가 서로 수 막힘이 온다 싶으면 서블은 순간 가차 없이 밀고 나온다. 내가 어떤 부대에 근무하는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지만, 그런 순간 창피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다르다. 정말 누가 이 순간에 대담하게 조끼를 벗어 실탄 클립을 꺼내고 파우치의 빈 탄창을 꺼내 껄끄러운 소리를 내며 삽탄할 것인가. 삽탄만 한다면 만땅의 한 탄창이 생기지만 말이다. 교전 중간에 탄창을 교환할 때 파우치에 넣지 못하고 그대로 수직으로 떨어트린 적이 있으나, 적어도 파우치에 세 개는 있을 것 같다. 몸을 굴려 확인해볼 엄두도 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잠시 생각해 보니 무거운 새 탄창 하나만 더 가진다는 것이 이토록 마음이 든든할 것으로 상상하지 못했다. 언제나 실탄은 넘쳤으니까.


점차 이상한 기분이 몰려온다. 이건 내 감각이다. 어떤 장면이나 사물을 보아도, 특히나 멀리 있는 두 사람 정도가 보여도, 만약 그들이 심각한 문제를 주고받으면 난 공기 중으로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대부분 내가 느낀 게 맞았다. 그런데 지금 미묘하게 내 마음 속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 두렵다. 뭔가 두렵다. 내 고개는 생각하기도 전에 뒤쪽으로 돌아간다.


군화. 다시 집중해 실눈을 뜨고 군화를 본다. 주변에 너부러진 옛닐곱 적성 시신들 사이에 유난이 돋보이는 군화. 거리는 그 물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그 발은 밑창을 보이지 않고 등을 보인다... 난 적어도 기본적인 판단에 도달했다. 저건 적의 군화나 신발이 아니다. 짐작건대 저건 우리들이 쓰는 전술화 종류다. 북한군이 저런 걸 미국서 수입해다 쓸 리가 없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아군!



건물에 진입할 때 매우 혼란스러웠다. 일단 외곽초소와 교전을 벌일 때 지역대가 좀 흩어졌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조련한 군인과 부대 중에서 날 향해 난사로 날아오는 총알 앞에 엎드리거나 엄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지금 내 앞의 북한군도 그러고 있다.


난 이들을 상대하기 전에, 태평양전쟁 일본군처럼 돌격으로 맞다이를 깔 줄 알았다. 그렇게 상상했다. 그러나 현대에 서로 자동화기로 무장한 교전은 나나 저편이나 본능적으로 느낀다. 일본군의 반자이 공격에 미군이 성능 좋은 자동소총 M1이 상대했지만, 기본 여덟 발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동화기는 기본적으로 피아 30발을 삽탄하고 있다. 반자이 공격? 돌격? 냉정하게 당기면 한 명이 열 명도 그대로 잡을 수 있다. 우린 조준경 사용하지 않아도 내가 쏜 총알의 첫 탄착만 튀는 걸 확인하면 그대로 이동해 목표에 적중시킬 수 있다. 많아도 두 발이면 탄착이 타킷이나 상대 몸으로 옮겨진다.


많이 해보면 누구나 자동차 운전이나 수영처럼 알아서 된다. 비 적중탄이 탄착을 보이며 3탄까지 갈 경우, 상대는 절대로 내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다음 발부터는 몸에서 피탄 지도를 그린다. 물론 이동목표가 아닌 경우다. 지향사격에서 이동하는, 특히 뛰는 걸 맞추는 건 어렵다. 그러나 일단 갈기고 보는 거다.


군화! 이상한 감이 온다. 반밖에 안 보이지만, 종종 관급이 떨어져 사제로 구입한 전술화들이 완전히 통일되지 않았고, 누가 무엇을 신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전술화에 신경을 쓸 때는 누군가 이 제품이 매우 편하고 좋다, 말할 때뿐이다.


군화! 익다. 눈에 익다. 차가운 공기 속에 내 속에서 무형의 입이 열린다. ‘창현이!’ 저건 창현이다. 내 옆에 따라오던 게 창현이가 맞다. 저기 있다. 쓰러져. 몸통이 안 보이니 숨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난 알았다. 창현이는 명을 달리했다.


왜냐하면... 저런 상황에서 자기 발이 복도 쪽으로 나와 있다는 걸 감지하지 않을 수 없고, 온몸이 마비될 정도의 중상이 아니면, 의례 발은 안쪽으로 뺀다. 창현이가 그럴 리가 없다. 1년 후배지만 모든 면에서 명석했고 날 잘 따랐으며 내 조원인 창현! 창현이는 조장인 내가 나가자마자 따라 나온 게 틀림없다. 만약 내가 ‘창현아 괜찮아?’ 목소리를 내는 순간 놈이 갈기며 나올 게 뻔하다.


허공이 보인다. 눈이 더 들리니 콘크리트 천장이 들어온다. 창현이가 죽었다. 그리고 나 외에 여기 아무도 없다. 어쩌지? 우리가 너무 과소평가한 건지 너무 대담했던 것인지, 이 목표를 받고 브리핑받을 때, 생각보다 우리 병력이 너무 적게 편성된 것이 아닌가 미묘한 의문이 들었다.


이 정도 병력으로 저 건물을 과연 우리가 장악할 수 있어? 상상하면, 그 안에 상대를 모두 쓰러트려야 점거하는 것인데, 과연 지역대 3개 팀으로 가능한 것인가? 미친 거 아닌가? 정보장교는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경계병력이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고 했다. 듣는 순간 명백한 거짓말이자, 저 건물 안의 상황을 정보장교가 확실히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그 정도일 것이다. 그걸로 작전은 실행된다.


본관에 들어섰을 때 혼성으로 섞였지만 그래도 우리 팀이 선두였고, 난 선임담당관의 목소리를 들었다.


“3층은 안 올라간다! 2층까지 하고 지하로 간다!”


여기저기 총성이 들리고 종종 뜨거운 탄피가 나에게 튀었다. 건물 내부 소탕훈련 때 공포탄을 쓰면서, 실탄으로 하면 귀가 아작 나겠구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상상 저 너머로 귀청이 떨어질 듯했다. 여기저기 불시에 지역대원들이 순간순간 계속 쐈기 때문이고, 그러다 난 정신을 차렸다. 혼란 속에, 누군가 지역대원이 맞았고 동료들이 끌고 가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길게 늘어진 선홍색 핏자국을 보면서 정신이 확 차분해졌다.


저 위에서,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음향 프로그램으로 가장 둔탁하게 변형한 소리들이 들린다. 저 위에서 아직도 누가 쏘고 있다. 텅 터더덩 텅텅. 소리로는 종종 구분이 안 된다. 다시 창현이를 본다. 난 구조된 보트피플 같은 표백된 감정으로 반 누워 있고, 어디선가 한 줄기 차가운 실바람 같은 게 날아가는 듯 오싹했다.


이를테면 창현이 영혼이 날아가는 건가? 혹시 창현이가 맞기는 맞았어도 그냥 경상에 쇼크 먹은 건 아닐까? 심증은 했으나 실감이 나지도 않고 부정했다. 쓰러졌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그럼 난 어떡하지? 그러자 귀가 민감해졌다. 그래, 저 놈을 없애야 내가 창현이를 살펴볼 수가 있다. 일단 출혈이라도 막고 어떻게 해서라도 1층으로 끌고 나가면 누가 있을 거야. 주특기의 1/4은 의무니까. 지역대 본부팀 의무 주특기들은 현대전에서 사람 살리는 중요 물품 혈장까지 가지고 왔다.


건물 복도와 90도로 꺾인 문들과 방들은 우리에게나 적에게나 죽음의 직사각형이었다. 서부영화 결투처럼 서로 복도에 선 채로 갈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여기 도달할 때까지 세 차례 이상, 놈은 그 방에서 상체를 노출해 날 향해 쐈고, 나도 벽에 붙어서 쏘고 달리면서 쏘고 그러면서 결국 이 방 앞의 모서리 복도에 도달했다.


‘일단 잡아야 돼!’


천천히 손을 들어 헬멧을 옆으로 비껴 눌렀고, 약간의 공간이 생기자 벽에 귀를 밀착했다. 두께는 몰랐지만, 뭐라도 들릴 것이다. 바로 이 방에 상대가 있으니까. 대기 전에 얼굴을 살짝 털었더니 굵은 땀방울들이 우수수 우산 돌리기처럼 비산한다. 귀가 차가운 벽에 붙었다....


이런 젠장. 벽에 귀를 대니 오히려 저 위에서 쏘는 총소리들이 더 강하게 텅텅텅 들려온다. 놈들이 건물 지을 때 철근을 덜 넣었나. 어떻게 이렇게 강하게 소리가 오지? 나는 집중한다.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렇다 모오스 연습할 때 전투소음 모스 테이프가 생각나고, 훈련 때 엄청난 소음 속에서 여단본부 통신대의 모스를 잡아냈었다. 집중하자. 먼저 얘를 잡아야 창현이에게 간다.


둔탁한 소음 속에서 나에게 제3의 눈이 있다고 상상하며 방안을 투시한다 생각했다. 눈을 감는다. 뭔가 잡혀라. 눈을 감으니 갑자기 몸이 무거워진다.


지난 3일 동안 극심한 피로를 겪으며 작전을 준비하고 연구하고 브리핑하고 엄청나게 무거운 군장으로 헬기에 올랐고, 경례하는, 생전 보지 못했던 헬멧을 쓴 여단장을 보았다. 베레모를 즐기며 위장모는 거들떠도 안 보는 여단장이 방탄헬멧을 쓰고 있었다. 우린 서로를 보며 웃었다. 저 그림은 나도 가고 싶다. 나도 마음은 너희들과 같이 간다... 그걸 말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이륙해 생각보다 정말 짧은 순간 우린 TOT 그대로 여기 도착했다. 사방은 폭격 중이었다. 가뜩이나 어둑하고 우울한 회색 건물들 사이를 뛰면서 날씨까지 차가운 가랑비를 흩뿌리며 초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화성 표면에 솟은 구조물들.


이런 상황에서 전폭기들이 그냥 가루로 만들지 꼭 사람이 여기 들어가야 하나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전폭기 편대도 건물을 붕괴시키지 못하며 그 안의 사람들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온 거다.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중사라고 헬기 안에서 지난 3일 만에 너무나도 달콤한 쪽잠을 잤다. 직선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전술기동과 위장기동으로 헬기는 거의 한 시간에 걸쳐 이곳에 우리를 뿌리고 냅다 이륙했다.


그때부터 우리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난 우리 중대장을 식별하고 뒤를 따라 뛰었다. 중대장은 뛰다 중간에 휙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주고받은 눈빛은


'우리 모두 다 짐승 아니냐! 우린 골로 가는 부대니까.'


그런 이미지였다. 중대장은 뛰면서 말없이 수기신호로 현관 입구를 지시했다. 만약 잠겨 있을 경우 지역대 본부팀 폭파 주특기가 준비해 온 성형장약으로 날려버릴 작정이었다. 저 멀리 다른 목표에서 들리는 익숙한 총소리를 들으며 옆 지역대가 저기 있구나 생각했다. 여기저기 터지는 폭발과 함께 '침공'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방법 없다. 그저 내 눈에 보이는 상대를 날려버리며 내 몫을 하는 수밖에.


귀를 열려고 해도 자꾸 내 숨소리가 방해한다. 그것이 꼭 소리는 아니지만 헐떡임은 분명했고 난 전술호흡으로 입을 다물고 숨을 잡으려 반복했다. 그러나 진정이 잘 되지는 않는다. 내 생과 사가 달려 있다. 상대가 이곳에 근무하는 병사라면 적어도 1년에 사격 몇 번 하는 허투른 병사는 아닐 것이다. 성분 좋고 사격이나 체력도 기본 이상은 되는. 내가 놀란 것은 아주 빠르게 방문에서 몸을 노출하며 쏘는 그였다.


영화라면 그 정도는 상상하겠지만, 실탄으로 목숨을 건 상태라면 훈련되지 않은 이상 아무나 못 한다. 상대는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이빨을 깨문다. 숨아 좀 진정되라. 안을 들어야 한다. 느껴야 한다. 이러다 놈이 갑자기 일어나 뛰는 소음을 들으면 내가 이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총의 왼손 오른손 파지를 바꾸어 쥐었다.


내 등의 오른쪽이 복도고, 놈이 나온다면 내가 정상적인 거총 상태에서 복도로 몸을 돌려 누우면서 쏘는 수밖에 없다. 종종 했던 왼손잡이 거총으로 총을 내밀면서 수평만 보면서 갈기면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이 안에 놈이 아닌 제2의 인물이 있었다면 벌써 등장했다. 어쩌면 이곳이 이 지하대피소 혹은 전시작전실 막다른 구역일지도 모른다. 여기가 끝이라면 남은 것은 다른 건물로 가는 이동 터널.


여전히 간헐적인 총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계속 느껴지는 내 가벼운 숨의 헐떡임. 놈과 세 번째 총질을 끝내고 2분은 넘게 지난 것 같다. 귓전에 여전히 총소리가 들리는 듯 텅텅텅 윙윙거린다. 설마 놈이 맞은 건 아냐? 글쎄. 마지막 들어가는 동작을 봤는데 정상적이었어. 그냥 선수를 쳐서 달려 수류탄을 안에 넣어?


그게 성공하면 반은 내가 이긴 거지. 그리고 창현이에게 가는 거야. 일단 들어보자. 여전한 헐떡임. 내가 왜 이러냐? 내 손을 가슴으로 가져가 누르면서 좀 진정해보자. 훈련과 교전에서 진정은 내가 얼마나 숨이 가뿐지를 정확히 알아채는 것에서 시작한다. 훈련보다 장성들 앞에 놓고 하는 시범이 많이 긴장된다. 정신적으로 먹통이 되면 먹통인 상태도 모르고 실수를 저지른다. 장갑 낀 손으로 가볍게 가슴을 누르자 내 손이 위아래로 살짝 씩 올라갔다 내려갔다는 반복한다.


충격. 낯설음. 내 귀에 들리는 헐떡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손과 맞지 않다. 이건 뭔가? 내가 듣고 있는 건 내 헐떡임이 아니다. 그럼 무슨 소리지? 귀가 먹어서 환청이 들리나? 아니다. 이건 현실의 소리다. 누군가 헐떡이고 있다.... 바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눈이 커진다. 그리고 그때였다.


저 멀리 꺾여 있는 통로에 그림자가 아주 천천히 나타났다. 얼마나 천천히 꺾여 나오는지 눈치도 못 챌 뻔했다. 물체는 흐릿하다. 그림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진입하고 있었다. 지역대다! 뒤에 누가 더 있는지 모르지만 한 명은 뒤늦게 도달했다. 힘이 난다. 난 천천히 손을 들어 공중에서 원을 그렸다. 여기 봐. 그림자가 날 보기 바랐다. 손을 돌리지만 여전히 그림자는 진행 중인 것으로 봐서 날 못 보고 있다. 좀 더 손을 들어 원을 그린다.


여기 좀 봐라 이 자식아. 오발하고 싶냐? 내 마음은 간절했다. 그렇게 20초나 지났을까? 그림자가 정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나에게 손을 든다. 봤다.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그림자는 고글로 나보다 자세히 보이는 것 같다. 그림자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치더니 저 앞을 손바닥으로 지시한다. 상황을 묻는다.


난 수기 신호를 시작했다. 먼저 손가락으로 놈이 있는 방문을 지시하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숫자를 표시하고, 수류탄 뽑는 시늉과 함께 손가락 끝으로 내 가슴을 몇 번 툭툭 쳤다. 내가 가서 수류탄을 투척하고 제압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손을 약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러자 다시 움직이던 그림자가 또 멈춘다. 그걸 보고 난 검지로 수차례 강하게 누운 창현이를 지시했다. 멈춰서 아무 징후가 없더니 드디어 고개를 복도 쪽으로 쭈욱 내밀어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지시하고 접수신호를 해왔다.


다시 귀를 연다. 헐떡임이 사그라져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들린다. 놈은 내가 방문으로 진입할 경우, (문에서 들어가면서 보기에) 오른쪽 벽에 등을 대고 - 반드시 - 거총하고 있다. 날 기다리는 거다. 방에 들어간 이상 놈도 방법이 없다. 복도에 있는 자와 방에 있는 자는 전혀 다른 마음이다.


다른 지역대원이 죽거나 다칠 위험을 방치하고 창현이를 잡아끌고 1층으로 올라간다면 그건 내 책임 회피이고, 그러다 불쑥 놈이 갈겨 나도 죽을 수도 있다. 너무 고요하다. 헐떡임은 여전히 벽에 붙어 있다. 난 또렷한 눈으로 다시 그림자를 본다. 이미 벽에 몸을 의탁해 안정되게 거총해서 방문 쪽으로 서서쏴 조준하고 있다.


내 총 조종간을 점사로 돌렸다. K1은 이게 좋아. 난 천천히 파우치에 걸린 수류탄을 꺼냈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온 몸에 힘을 주어 안전핀을 천천히 당겨 2/3 정도를 뺀다. 이제 툭 빼면 빠진다. 다시 손을 들어 그림자에게 의사를 밝혔다. 손 주먹을 쥐었다 펴서 다섯 손가락 네 번. 20초 후에 하겠다. 거총한 그림자가 가볍게 끄덕인다.


귀를 벽에 댄 채로 천천히 발을 몸쪽으로 당겨 일어서기 시작했다. 뛰어가 문 차고 수류탄 까 넣고, 터진 다음 들어가 남은 탄창을 출입문 오른쪽 벽을 향해 난사하고, 만약 그쪽에서 총구 섬광이 보이면 잽싸게 다시 나와 2차 수류탄 다시 까서 오른쪽으로 투척하고 그 동안 새 탄창으로 갈아끼고 들어가 젓갈 만든다!


거의 반 똥 싸는 자세가 되자, 시간이 왔음을 깨닫는다. 총이 군장에 걸리면서 소리를 낼까 봐 총을 몸에서 최대한 이격해 든 상태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순간, 긴장이 온다. 혹시 놈도 귀를 대고 날 듣는 건 아닐까?... 그러나 더 이상 방법은 없다. 진압은 신호가 떨어지면 죽든 말던 과감하게 해야 한다. 능그적거리면 효과도 없고 자칫하면 내가 죽는다. 마지막으로 그림자를 본다. 자세를 약간 고쳐 잡으며 언제든지 쏠 느낌이다.


20초란 얼마나 길고 얼마나 짧은 순간일까? 그림자가 날 보고 있으니 명목상 20초가 1분이 되어도 엄호를 해줄 거다. 소총 권총손잡이를 쥐었다. 조준경 아니다. 조준경으로 볼 시간도 없고 상황도 아니다. 훈련한 대로 지향으로 수평에서 약간 낮게만 쏘면 된다. 그림자가 날 도와주는 건 내가 문에 도달할 때까지다. 그 전에 놈이 밖으로 나오면 그림자한테 직방인데 씨이발!


난 뛰고 있었다. 그리고 문틈이 보인다. 문은 약간 열려 있다. 문 툭 치고 수류탄 까 넣으면서 손에 스냅을 주고 최대한 오른쪽으로 흐르도록 했다. 텅.. 텅텅텅... 수류탄 구르는 소리가 들리고 난 문 바로 옆에 등을 대고 손가락을 방아쇠-울에 넣었다. 그리고 익숙한 충격. 알아서 몸이 문을 차고 들어간다.


이어 오른쪽을 향해 내 총구섬광이 불을 뿜는다. 겁먹을 시간도 없다. 이런 제길. 저 오른쪽에서도 날 향한 섬광이 일어났다. 섬광이 어둠 속에서 마치 포탄 섬광처럼 거대하게 보인다. 방의 양쪽에서 연달아 섬광 번개가 스파크처럼 터진다... 난 여전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고 이제 총알이 안 나간다. 몸을 문 쪽으로 날려 탄창 교환하러 가려 했고, 그때 단말마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난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손이 총구 쪽의 라이트 스위치로 가고 있다.


“항복하라.”


툭! 라이트가 들어온다. 길게 볼 필요도 없다. 내 총알은 타깃에 들어갔다. 주고받은 섬광 속에서 순간 순간 플레시 조명처럼 점차 변하는 상대의 모습을 비추어 뭐가 넘어간다, 감이 왔었다.


숨이 차오른다. 손가락을 방아쇠-울에서 뼀다. 문으로 돌아서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조심! 그림자가 문을 보고 있다! 난 문으로 천천히 다가가 고함을 지른다. “올빼미!” 그러자 보이지 않는 그림자 쪽에서 “오케이!” 응답이 왔다. 다시 손을 문밖으로 내밀어 손가락으로 우리 지역대 숫자를 표기하고 난 다음 엄지를 들었다. 그러자 “접수!” 고함이 온다.


발을 재촉한다. 창현이. 압박붕대 어디 넣었지? 그림자 역시 총구를 허공에 들고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누구지? 목소리 보면 옆 팀 중대장 같기도 하고. 순간 발이 보인다. 오, 설마. 완전히 그런 거야?... 이 미친놈아, 내가 나가면 엄호로 자리를 잡고 내가 멈추면 나와야지. 그냥 같이 따라 들어오면 어떻게 해! 훈련대로 해야지 이 멍청한 자식 같으니라고.


그림자가 소리친다.

“3중대? 누구야? 지금 건물은 접수했는데, 우리 피해가 커요! 내려오다 맞은 3중대 팀원들 다 위로 끌어 올렸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여기가 지하 끝이니까 일단 철수하고 지역대 정리한 다음에 터널을 찾아보죠. 어? 누구야? 박중사님? 누운 건 누구야? 담당관님인가? 어! 중대장님! 중대장님 맞았어!”


시신들을 피해 발에 가까이 다가서자 내 몸이 밑으로 움츠려 내려간다. 빠지지 않는 자욱한 연기와 폭발로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철 조각들,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쉬운 구더기처럼 널린 탄피들,


결국 내 모습이 될 고무 마네킹들의 살 조각들과 코를 찌르는 피 냄새. 우리 가족도 친구도 이런 곳에 우리가 있다는 걸 모르며 영원히 알 수도 없다. 주인을 잃은 AK들과 적성 장구들. 얘들아 이런 장구 안 불편하냐? 대체 AK 말고 뭐 없냐? 총들아, 어떤 손들이 널 잡고 있었니?


뭔진 모르지만, 난 이게 좋다. 모든 것의 현실인 이것이 좋다. 세운 것보다 철저히 파괴되어 부수는 것이 좋다. 거짓 없는 이곳이 좋다. 내 근본이 살아 숨 쉬는 지금 이곳이 좋다. 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난 원래 이거였다. 창조를 원하지만 우린 어차피 파괴된다. 우린 이렇게 되기 위해 훈련했다. 파괴를 훈련하고 나 자신이 파괴되는 것도 감수한다. 우린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도 내 목숨을 히든카드로 숨기지 않는다. 우린 이미 문명 저 멀리 떠나왔으니까. 남들은 우리를 멋있게 보지만 본질적으로 우리가 야만을 위해 훈련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한다.


빈 탄창을 제거해 파우치에 넣고 새 탄창을 결합해 초탄 삽탄. 그 '발'에 다가선다. 갑자기 우울하다.


전술조끼에 피가 흥건하다. 엇? 누군 거야? 컴컴해. 나는 무너진다. 천장이 보인다. 몸이 뒤로 쿵 떨어진다. 나도 모르게 턱을 가슴 쪽으로 당기면서 오른손으로 바닥에 낙법을 쳤다. 등이 차가운 바닥을 느낀다. 온몸에 기운이 나도 모르게 빠진다. MP3 배터리가 방전될 때처럼 소리가 귀에서 늘어진다.


“왜 그래? 맞았어?”


'누구냐 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전술화가 보인다. 중대장님이셨구나. 밑창 앞굽이 약간 떨어진... 돈 빌려줄 테니 바꾸라고 해도 안 바꾸던 중대장의 낡은 전술화. 초라하게 땅바닥에 놓인, 월계윙 실밥 뜯어진 장갑을 낀 중대장의 손. 갑자기 중대장의 딸 얼굴이 떠오른다.


어쩌냐... 그림자가 내 팔을 움켜쥔다. 난 이제 모든 욕망을 초월했다. 그림자는 한 손으로 어깨에 걸린 무전기를 빼내고 다른 손으로 내 전술조끼를 지퍼를 열면서 내 몸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내 몸의 축축하고 끈적한 무엇을 느낄 수 있다.


“어디요, 어디?”


난 눈을 본다. 서로 눈을 본다. 느낀다. 그림자가 마스크를 올렸다. 창현이가 정말로 보인다. 창현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볼 수 없었던 것까지 영안의 투명한 눈으로 보인다. 우리가 정말 형제처럼 생각했나 보다.


“야 어디야. 어 박중사임 어디 맞은 거냐고! 정신 차려!”


같이 한 군 생활 2년 만에 처음 녀석의 욕을 들었다. 욕 하나도 안 하던 얘가 왜 이러나. 나는 웃고 싶었다.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이고 싶었다.


“골프! 골프! 여기 지하. 상태 3-4. 둘. 긴급! 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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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For Anarchy in DPRK 1 24.04.22 44 3 11쪽
363 피양의 숙취 4 24.04.15 105 5 12쪽
362 피양의 숙취 3 24.04.08 114 7 11쪽
361 피양의 숙취 2 24.04.01 144 8 11쪽
360 피양의 숙취 1 +1 24.03.25 145 8 12쪽
359 K-7 Deuce 5 24.03.18 141 8 15쪽
358 K-7 Deuce 4 24.03.11 139 3 12쪽
357 K-7 Deuce 3 24.03.04 167 6 12쪽
356 K-7 Deuce 2 24.02.26 276 4 14쪽
355 K-7 Deuce 1 24.02.19 202 6 12쪽
354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2 +2 24.02.05 230 6 15쪽
353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1 24.01.29 189 6 16쪽
352 Curtain Call 9 24.01.22 201 9 16쪽
351 Curtain Call 8 24.01.15 200 4 13쪽
350 Curtain Call 7 +2 24.01.08 206 8 12쪽
349 Curtain Call 6 23.12.18 332 7 12쪽
348 Curtain Call 5 23.12.11 231 10 12쪽
347 Curtain Call 4 23.12.04 248 9 11쪽
346 Curtain Call 3 23.11.27 254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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