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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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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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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CSAR 13

DUMMY

‘난 어떤 놈이었던 거야?’


이상해. 나 지금까지 군 생활 동안 바깥을 생각하지 않았어. 거의 안 하고 살았어. 물론 생각은 하지. 어머니. 친구들. 여자친구. 먹을 거 마실 거. 하지만 그건 ‘시간이 났을 때’야. 시간이 없으면 ‘생각을’ 하지 않아. 먼 것 같아. 멀어 보여. 까놓고 말해서 잘 안 떠올라. 부대 생활이 모든 관심사니까. 정신 안 차리면 펑크가 나고 내가 힘드니까. 비슷한 임관 기수들이 어머니, 집, 이런 얘기할 때 나만 이상한가? 그랬어. 난 안 그런데? 밖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고, 애써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도 좀 아니다. 노력해야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지금은 몰려와. 잠깐 여유만 생기면 떠올라. 내가 생각을 막았던 뿐인가? 죽으려고 하니 미련이 몰려오나? 총 내리고 앉으면 생각이 와. 다 이러다 죽나? 이러다 훅 가는 건가. 이상해. 내가 날 몰랐나? 나도 어쩔 수 없나? 죽을 때는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나? 어머니인가?


혼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뭔지 몰라도 지금 기분 안 좋다.

아까 오른 울화가 안 내려가.


벌판이었다가 나무가 보이고, 내리막이었다가 오르막이고, 나무와 풀이 없다가 나타나고, 그래도 시키는 대로 했다.


드디어 본다. 반갑지도 않다. 저기 흔드는 손.

‘합류했음. 오버. 이병훈 살아서 합류했음. 놀라운가, 이상!’


분명 두 번 했어. 후미경계조 차단 전술. 이제 사람들이 안 보여. 흠흠. 코가 막혔나? 코에서 또 진한 폭약 탄내가 오네, 흑색화약 냄새도 난다. 뭐가 또 터지고 쐈나? 목도 케케한 것이, 바게트 뜯어 먹고 싶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싶어. 매운 떡볶이 먹고 싶어. 피자 먹고 싶어. 콜라. 콜라 마시고 싶다고.


근데, 이 총은 뭐지? 내가 왜 총을 두 개 들고 있지? 왜 AK를 들고 있지? 각개도 아니고 양손에 다라씩. 어느 총을 내가 쓰는 거야? 이 총이냐? 이 총이야? 이 AK는 어디서 난 거야? 뭐지, 씨벌, 총에 피도 묻어 있어. 내가 누굴 쏘고 빼앗았나? 노획했나? 죽이고 뺐었던, 아니면 노획은 맞겠지. 누가, 이거 하나 가지세요 줬겠어? 근데, 근데 이거. AK. 여기 꽂혀 있는 탄창이 전부야? 탄창 여분을 안 챙겼어? 그럼 뭐하러 들고 온 거야. 뭐하러.


놀라냐?

놀라워?

됐지?

와, 저 사람 어떻게 끌고 왔어?

여기까지 어떻게 끌고 올라왔지?


어쨌거나 합류했다.


“죽갔네.”


나 주저앉는다. 말리지 마라.

뭘 봐. 왜 나를 봐.


“물 없어?”


내 앞의 이 사람은 아군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쏜 사람인가 내가 쏘면 안 되는 사람인가. 사람의 차이가 아무것도 없어. 없어졌어. 그냥 다 사람 그뿐. 누운 사람은 구별되어 알겠다. 한국인이 아니니까. 헬로 보니파스? 웃기다. 영어책을 그렇게 많이 봤는데, 영어 공부가 몇 년이냐! 한 마디도 입이 안 열린다.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발음은 f로 시작하는 욕이 아닐까. 끊긴다. 아득해진다. 좀 자야 하나 보다.


헬로. 폭스트롯. 유타. 찰리. 킬로! 코로넬?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몽상인지 모르겠어. 낮이니 백일몽인가? 여기가 어딘진 알겠으나 의심이 들어. 가짜 같은 기분이 1/3. 모든 것이 조작 같아. 홀로그램이야? 저 앞에 손을 뻗으면 갖고 싶은 것이 있어. 저기 남쪽이 있어. 바로 앞에 있어. 몽롱해. 뒤섞여. 여기와 엄마와 수현이와 도시락과 총과 폭발과 중대장님 담당관님 사수님 유중사님 임중사님 섞여. 그래도 엄마야. 넘어지면 엄마야! 하잖아.


누가 찾아가? 엄숙한 얼굴로 종이를 건네? 아들 전사. 전사? 그건 도저히 못 참겠다. 도저히. 그냥 실종이 좋아. 작전 중 실종. 아닌가? 더 괴로우신가?


누가 울어.

누가 울어 이 한밤.

내 몸이 왜 이렇게 꺼억 꺼억 거리냐.

애가 타도록 그 누가 울어울어

검은 눈을 적시나...

운다면 이유는 뭐니.


난 어디로 가니. 은거지. 퇴출. 비정규전 이런 거 말고. 죽어서 가는 곳도 궁금하지만, 정말 내가 갈 곳이 어디야. 하겠어. 총은 놓지 않아. 하지만 난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로?


“왜 이래 새꺄. 물 마셔.”

“어떻게 된 거야.”

“뭐가.”

“헬기가 안 왔어?”

“물 먹고 좀 앉아 있다가 경계 좀 나가.”

“바게트 없나?”


“뭐?”

“빵. 빵.”

“이게 쳐 돌았나...”

“많이 안 먹어.”

“야, 잠깐 누워 있어. 어서!”

누군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정신 챙겨. 이게 지금...”


‘꿈은 없어. 꿈이란 너희가 살면서 접한 거야. 그걸 꿈이라고 교묘하게 조합하는 거야. 꿈이란 자기가 경험한 욕망들의 구성이야. 모르는 걸 꿈을 꿔? 가긴 어딜가. 가봤자 거기 아니겠어? 시베리아 사람과 태평양 섬사람의 꿈은 달라. 본 것이 욕망이야. 넌 거기 태어나서 그걸 본 것뿐. 좋은 집, 사랑하는 여자, 만족한 월급, 예쁜 아이들, 효도, 그렇게 굴러가길 바라는 꿈이야?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았구만.


인간은 돼서 다행이야. 남의 걸 빼앗을 생각은 안 하니. 다만 그 정도 인간이지. 뭐가 불만이야. 그게 안 이뤄져서? 안 이뤄질 것 같아서? 이 새끼야 평범한 것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는 줄 알아? 그러니까 그런 꿈에서 깨라고! 그렇게 부드럽게 굴러가는 행복을 믿어? 그렇게 되는 사람 얼마나 된다고. 가소롭게 후후. 그래! 그것이 이뤄질 때까진 믿어.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바보는 꿈 꾸다 뒤져!’


아 맞아. 오르막 전에 고사총을 만났어. 파이프가 하늘로 기다란 거. 내가 다 쐈어. 그리고 떨어진 AK를 하나 들고 왔어. 내가 일부러 잊으려 뇌에다 수작을 부렸나? 잊어야할 건 맞겠지. 남자가 할 일도 아닌 것 같고.


고사총 딱 한 문, 트럭. 어디서 급히 혼자 왔나봐. 난 분명히 그냥 가려고 했어. 맞아. 나 분명 그냥 가려고 했어. 그런데 놈들이 쏜 거야. 하늘을 향해.


놈들이라고 하기가 뭐하네. 말은 들었지만 정말 그럴 수가. 하지만 어떻게 해. 적인걸. 군인인걸. 등에 AK를 각개로 걸고 있는걸. 그것도 이 AK-47을. 총을 돌려 나에게 향하면 그 사람들도 쏠 것을. 고사총부대는 현역 아니냐? 이성 차별하냐? 74도 아닌 47을. 88식이라고 하던가. 하여간,


그 소리 때문이야. 펑. 펑. 펑. 난 그냥 걸어갔는데 날 안 봐. 지나가려고 했는데 시끄러워서 갔어. 그게 솔직한 거야. 시끄러워서 화가 났어. 가뜩이나 귀가 먹었는데, 고막이 나갈까봐 화가 났어. 그래서 갔어, 그리고 쐈지. 하나, 둘, 셋, 넷, 다섯은 넘은 것 같은데 모르겠어. 언제나 첫 사람 쏘는 게 힘들뿐. 거기 있던 수류탄을 까서 고사총 밑에 터트린 것 같은데, 이게 내가 한 거야 상상이야? 하지만 총이 여기 있잖아. 이게 꿈이 아니란 증거야. 후미경계 거부 사격에서 총을 노획할 정도로 가까이 온 놈은 없었어. 있었다면 고사총에서 들고온 것 맞아. 그게 사실이라면 기분 젖 같네.


그런데 어째. 날 보면? 날 쐈겠지. 내가 쐈다면 당연한 거지.


자기들 발포 폭음 때문인지 내가 온 지도 몰라. 탄약수 같은 사람이 봤고, 하지만 고사포 소리에 쐈고, 돌아보는 걸 쏘고, 등에서 총을 돌리는 걸 쏘고, 하여간 스코프를 잘 뗐어. 바로 앞에서 지향으로 쏘는 건 그냥이야. 그냥.


다 끝났을 때, 내가 뿌린 탄피들이 태양에 빛나고, 사람들은 쓰러져 있고, 군복과 모자가 조금 달랐어. 하지만 가슴은 쏘지 않았어. 무의식중에 유의한 것 같다.


그리고 전술적으로 올바르지. 우리 구출작전을 방해하는 대공포 아냐. 발포음이 강해서 제트기 소리는 못 들었지만 아군기 미군기를 쏘는 거니까. 그러다가 한 대라도 격추되면 이 작전은 캔슬될 것이니까. 생각해보니 그렇네. 하나 더 떨어지면,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서 다른 조종사가 죽거나 이 땅에 떨어지면?.. 잘 한 거네. 내가 잘한 거야. 그래도 이 오지에서 우릴 도운 건 공군이야. 대한민국과 미국 공군이야. 대공포가 눈앞에서 아군기를 쏘는데, 그걸 운영하는 사람들이 좀 그렇다고 놔둬? 그건 임무 방임이지. 하자민,


‘뒷맛이 안 좋아.’


빛나는 탄피. 누워서 자는 사람들. 피. 조각들. 탄을 몇 개 들어다 고사총 밑에 놓고 거기 수류탄을 까 던졌지. 난 또 쓰러졌고. 이게 꿈일 거야. 이 AK가 있으니 내가 상상해서 만든 스토리야. 이 총은 뭐야. 이제 AK 정들라 그러네. 실감은 없어. 다 꿈 같아. 모두 꿈이야. 아멘.


뭐가 또 이래 시끄러.

또 뭐가 쏘네. 기관총 같은데...

눈 뜨기도 힘이 드네.


뭐지?

이 감각은.

정신을 잃은 거야?

쓰러졌었나?

잠들었었나?

얼마나?

무엇이 끊어졌다 다시 이어져.

자꾸 이게 뭐지?


광풍. 먼지.

땅을 울리는 두두두두 소리.

누가 기관총을 갈긴다.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누가 날 자꾸 흔들어. 일어나란 것 같아. 생각은 있으나 힘들다. 오늘 자꾸 끊어졌다 붙는다.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눈이 안 떠져. 생각은 있으나 몸이 말을 안 들어. 일어나! 적이 공격하고 있어. 어차피 당해도 가만히 당하는 건 아니지 않아? 몸이 떨려. 누가 기관총을 쏴서 달 달 달 달 떨리는 게 아냐. 아까부터 그랬어. 계속 오실 오실 덜덜덜. 태양이 뜨거워도 떨리고 있었어. 하나, 둘, 셋.

‘떠!’


눈.

내가 쏠 사람은 아니야.

왜 날 쳐다봐?


“일어나! 어서!”


손. 나를 향해 뻗은 손. 움켜쥔다.

휙. 시야가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뀐다.


“안 일어나! 정신 안 차려?”

“총. 내 총!”


알았어. 내가 가서 또 엄호할게. 내가 잡아줄게. 100m 이상 벌어지지 않게 막다가 돌아오지. 아직 할 수 있어. 삼세번은 한다는데 할게.


“이게 진짜. 아 빨리!”


그런데 날 왜 잡아? 지금까지 해왔고 난 무섭지 않아. 피곤할 뿐, 괜찮아. 당신이 갈 순 없잖아. 내가 가겠어. 비켜. 날 놔. 왜 날 막는 거야. 왜 날 잡고 흔들어! 내가 아직 애로 보여? 그만해. 내가 화나면 알아서 해!


”가도 돼!“


무슨 소리야.


”넌 가!“


마른 침이 꾸울꺽`~~ 아이고 목 아파.

목구멍에 딱딱한 복숭아 씨가 하나.

아직도 뇌가 충격에서 못 벗어났나.

그림이 왜 이렇게 느리게 보이지.

뭐래는 거야. 가다니.


”무슨 소리야.“

”뭐라고?“

”뭔 소리냐고.“

”이게 미쳤나. 돌았어? 정신 안 들어? 사람 못 알아봐? 이 자식이 아까부터 반말 찍찍하면서 아주 쌕을 쓰네.“


어. 어. 이게 무슨 일이야?

천천히 움직인다.

기다란 버터 칼 같은 것이 돈다.

시커먼 30cm 자들이 원을 그리고 돈다.

로터. 로터가 천천히 돈다.

지금 눈으로 보는 것이 헬기 맞아?

저게 헬기가 아니면 세상 아무것도 헬기가 아니잖아!

헬기가 왔어. 정말로 왔어.


”내가 대대본부야! 가!“


저 헬기의 후미.

검은 구멍.

기내.


가라고? 내가 가려고 우기는 것도 아니고, 나더러 가라고? 저기 저 검은 터널로 들어가면 이 모든 고난과 지옥에서 벗어나 우리가 알던 정상적인 세상으로 돌아가나. 저 ramp door가 삶과 죽음의 경계야? 저것이 떠서 날아가기만 하면 난 항공모함이나 수송함으로 간다고? 남조선으로 돌아가? 저걸 타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근데 다 어디 갔어? 안에 탄 거야? 뭐야 이거. 이상해. 아까 올라올 때부터 미군과 저 사람밖에 못 봤어.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살았지?

누가 남았지?

모두 외곽에서 경계를 서는 거야?

어디 가고 왜 안 보여?

저기서 총 쏘고 있나?


우리 지역대는?

우린 재집결지를 말하지도 않았어!

저것이 떠나면 우린 어디로 가?

몇 명이야. 우린 또 그 공장을 공격하러 가?


”밀지 마!“

”빨리 타라고 자식아. 이게 지금 개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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