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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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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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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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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주변인정전 6

DUMMY

왠지 돌아가셨을 거라 난 생각했다.

니미 씨부랄 난 뭔가. 노도와 같이 집안과 환경에 분노하며 살았다. 사실 난 평범하다. 입으로 자기 집이 고통스럽다는 놈들 대부분 평범하다. 정말 평범하지 않고 정말 ‘인간 이하로’ 산 사람들은 실제 존재한다. 그 내려다보는 충청도 풍경 속에 내 아집이 무너졌다. 난 뭔가. 저 놈은 뭔가. 한 가지는 알았다. 녀석은 북한사람 죽여도 불쌍하지 않다. 불쌍함을 유발하는 북한사람들의 비참한 감동이 녀석에겐 없다.


멀어져간다. 동이 터 온다. 정경과 사물이 원래 색채를 회복하려 한다. 더 이상 트럭은 눈에 안 보인다. 길에서 계속 생각에 잠겨있을 수 없다. 동이 트면 교통량이 늘어난다. 동 트고 아군 조종사들이 아침 먹고 전폭기 타고 하늘에 나타나기 전까지 교통량이 빡세다. 둘 중 하나, 녀석이 성공하는가 기다리며 보는 것과 수풀에 쓰러진 중사를 돌보는 것.


수풀로 가서 내가 응급처리한 상태를 본다. 압박붕대 세 개를 연결해서 묶은 것으로 출혈은 멈췄으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기대가 바보였다. 그렇게 복부에 심하게 맞은 사람이 무슨 예수님처럼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나?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모르겠고, 정신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움직일 수도 없다. 이동시키면 출혈이 강해져 곧바로 모든 게 정지할 것 같다.


중사가 등에 진 땅바닥은 밤새 차가웠을 것이다. 눅눅하고 차갑고 다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119로 실려가 따뜻한 병상에서 전문의 치료를 받아야 산다. 하지만 난 이대로 있다가 적어도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될 걸 상상한다 희망한다 바란다 기도한다.


그 누구보다 최고였던 사람. 김중사님은 최고였다. 대대 그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다. 어쩌면 여단 안에서도 그렇다. 백호에서 여단 정찰대로 그리고 우리 대대로. 지역대가 아직 나자 우리 지역대로.


이 사람은 죽으려고 싸우는 사람 같다. 겁이 없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우리를 엄호하다 맞았다. 옆에 널린 놈들은 이 양반이 다 죽인 거다. 그 덕에 진호와 내가 살았다. 산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목표에 가장 가깝게 도달한 것이 우리 셋이다. 짖어대는 엄청난 개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력을 뚫고 지역대 1/5이 생존하는 처참신비로운 성과를 낳았다. 돌파에 성공한 우리 단 세 명. 이제 지역대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남쪽 사령부는 아무 것도 모른다. 저 공장이 부서지나 안 부서지나 항공촬영만 기다릴 것이다.


동 트면 위험해진다. 그러나 내가 떠날 수 없다. 종종 정신이 깨어 내 눈을 바라본다. 눈에서 뭘 읽을 수 없다. 자기 생과 사의 사투를 벌이기도 힘겨워 보인다. 여기 오래 있다가 적에게 발견되면 둘 다 죽은 목숨이다. 포로? 흐흐. 자폭하고 말지 씨벌. 난 약한 놈이라 놈들에게 굴복해 줄줄 불어버릴 거다. 사실 불어봤자 피해를 입을 지역대원도 이젠 없지. 노래 가사처럼... 생각하니 기분 좆같네.


다른 지역대는 목표가 뭔지도 몰라. 난 약해. 못 버텨. 포로로 잡히느니 내 대가리에 압철 당기고 말지. 어차피 결과는 같은데 고문 받으면서 줄줄이 불고 뒈져? 아냐. 나약한 내가 그 상황에 가지 않도록 내가 막아야 돼. 무섭기도 하지만, 그렇게 쪽팔리게 죽기도 싫어!


생각 잘못했네. 내가 트럭을 몰아야 했어. 진호를 개머리판으로 갈겨 기절시키고 내가 가야 했어. 운전대 잡고 깡통모자 쓰고. 짧았지만 그래도 난 행복한 거였어. 부모와 형제들. 윤택하진 않았지만 잘 먹고 잘 살았어. 너절한 걸 먹었지만 굶지는 않았어. 세상에 불만 없어. 나름 재미있었어. 살만 했어. 그럭저럭 재미있는 인생이었어. 뭐 돌아갈 방법도 없잖아.


천리행군으로 퇴출해서 이쪽 전연과 우리 쪽 최전선을 돌파해서 복귀해? 살아서? 아니, 한번 해볼까? 흐흐. 그게 가능해? 전선이 여기서 아주 멀지 않으니까? 천리행군까지도 필요 없네 사실. 남하 돌파가 아주 나쁜 건 아니지. 어차피 죽을 거면 그래도 개(dog)들은 더 죽이고 가는 거야. 뽀대 나게 말하지 않아도 나 군인이야. 틀린 말 아냐. 아, 까먹었군. 퇴각은 사령부 명령에 없었어.


김중사임도 버리고 혼자... 다시 산에 올라가 나 혼자 명을 부지해? 숨어서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물과 먹을 걸 찾으면서? 정말 그렇게 하고 싶지 되고 싶지 않아. 산에 숨는 것도 이제 질렸어. 피 묻은 손으로 살아 돌아가서 훈장 달고 생글생글 사는 것도 좀 그렇네. 내가 싸이코냐?... 내 가짜 욕망의 결핍은 싸이코 버금가지.


중사가 깨어 있다면 분명 나에게 가라고 할 거야.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우리 안에서 여러 차례 일어났던 일이야. 새삼스럽지도 않고 그렇게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무섭지도 않아.


다시 저 멀리 진호가 사라진 방향을 본다.


“너...”


고개를 돌렸다. 눈을 뜬 김중사... 내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 상황을 만들려는 것 같다. 듣고 싶지 않다. 귀를 막고 싶다.


“넌 날 두고 가도 돼.”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안 통한다는 걸 예상 못하나보다.


“날 버리고 가도 된다니까.”


난 중사의 논리를 이미 내다보고 있다. 어떤 말을 해도 자신 있다. 난 이 수풀 속에서 최대한 버티면 기회가 올 거라고 내심 작은 승부수에 걸었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느낀 것. 날씨와 사건과 생과 사는 논리적이지 않다. 거의 짓고땡 수준이다. 내가 살아 있는 게 그 증거다. 애써 여길 놈들이 뒤질 것도 아니고, 도로와 너무 가깝지만 버텨보는 거야.


“나도 다친 사람을 버렸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귀를 가까이 댄다.


“입대 전에요?”

“아니, 여기서...”

“거짓말 마십쇼. 그런 일 없어요.”


“난 대대장을 버렸어.”

“전사하신 거 아닙니까.”

“내가 떠날 때 살아 계셨어.”

“이러지 마십시오. 지어내지 마세요.”


김중사의 말은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가늘고 작고 낮은 음성이었다. 허파에 구멍 난 것처럼 쇳소리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섞였다. 분명히 난 이걸 봤다. 가까운 할머니가 시골 방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쉬던 숨소리. 본 거야 이거... 최대한 깊이 많이 들여마시지만 내뱉는 호흡이 점차 짧아지는, 호흡이 멀어지는 숨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더 벌어지는 사투....


“안 가면 같이 죽어. 난 지휘관을 죽음에 방치했어. 날 떠나지 않으면, 죽으면서까지 죄책감 시달리며 나 고통스러워봐라 그거야. 출혈로 곧 죽어... 나 원래 의무야. 너 어차피 떠나야 돼.”


내가 준비한 논리 밖이었다.


“가... 이런 거 감당할 줄 알아야 돼.”


난 중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중사가 웃었다.


“하사 놈이...”


다시 일갈한다.


“전우 실탄 수류탄 챙겨야지 병신아... 기본이 없어...”


“진짜 가요?”


“남은 시간은 내 인생 돌아보는 사색으로 쓰고 싶다. 가, 이제.”


김중사가 자기 특전조끼 큰 주머니를 눈으로 자꾸 지시한다. 꺼내 보니 특전 쌍안경이라 불리던 소형 망원경이다. 알았다. 김중사는 누워서 우리가 하는 걸,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다 본 거 같다. “경례하지 말고... 꺼져.”


실탄 수류탄 망원경 챙기고, 경례했다! 단결.


뭐가 이렇게 허무하냐. 뭐 이리 허무해. 우린 똑같아. 뭐가 달라. 이 서커스매직유랑단 씨발새끼야.


적어도 군인으로는 똑같다고. 누군 고귀하고 누군 천하냐? 이 일말의 전우애도 없는 새끼. 인생의 기회는 많아. 그 기회를 포기한 니가 미친 것이고, 너도 고정관념 쩔어. 넌 답답한 놈이야. 이 멍청아.


누가 널 버렸으면 넌 그걸 주워서 완성해야 될 거 아냐 이 바보 같은 자식아... 왜 인생이 거기 머물러 있다고 생각해. 왜 그게 인생의 다라고 생각해. 왜 신기루만화경으로 모든 세상을 보려 해. 나에겐 아무런 전우애가 없냐? 응? 이 새끼야! 평생으로 못 질 짐을 두고 가네 그지 같은 새끼가...


능선을 향해 쏜살같이 달린다. 높은 곳에 오르고 싶었다. 간절히. 놈을 느끼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흔적을. 좀 높다 싶은 곳에 섰다. 망원경을 든다. 안 보인다. 가린다. 다시 높은 곳으로 뛴다. 그렇게 계속 높은 곳을 뛰었다. 계속...


못 봤다 결국. 하지만 사건은 용해되지 않고 일어났다. 소리만 들었다.


핵폭발이냐 니미. 허허허. 아디오스 씨발 개새꺄. 푸하하하하... 돌겠네.


나는 방방 뛰며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나... 잠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육체적 반응을 경험했다. 다리가 풀린다. 나도 모르게 푹 주저앉았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시야가 푹 밑으로 떨어진다. 녀석은 얼마나 많이 이렇게 주저앉았을까. 이제 원자 분자로 나뉜 놈. 중성자와 양성자와 커크로 나뉜 놈.


그렇게 가만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다. 소나무 하나만 영원토록 쳐다봤다. 내 몸에 액체가 아직 남아 있었다. 몸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곳이 있긴 있었다. 그게 육체적 반응인지 정신적 반응인지는 모르겠으나 잠시 정신적인 공황상태가 왔다. 세상이 내려앉아 내가 깔려죽을 것 같고, 죽음이 뭔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몸이 떨리다가 심한 경련이 나더니 시야가 블랙아웃되었다. 난 쓰러진 줄도 몰랐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는 모든 공포를 극복했다. 용기도 공포도 무의미하고 낯선 단어였다. 진호가 주고 간 선물. 김석환 중사가 마련해 준 선물. 나는 순교자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건 다름 아닌 백지였다. 육신의 욕망은 웃긴 거였다. 인간이 인간 될 만하면 올라가는 거야? 씨바 다채롭고 오묘하거라.


저 멀리 새벽 첫 트럭이 다가온다.


노리쇠 반 후퇴. 약실에 걸린 주황색 총알 확인. 다시 철커덕 힘차게 앞으로 전진.저 첫 트럭을 바라보는 나는 진짜로, 추상이 아닌 진짜로, 화가 났다.


어이 트럭! 밤은 지나갔어. 이제 니코틴 반딧불은 보이지 않아.


담배갑을 연다. 돗대! 하... 씨발 타이밍은 죽여. 가슴으로 총을 품고 성냥을 파열한다. 그 지긋하고 자극적인 황 냄새! 첫 모금에 나도 모르게 하늘로 들리는 내 턱주가리.


후...... 후......


던진다. 내 벙거지. 잘 가. 건빵주머니에서 땅크병 깡통모를 꺼내 푹 눌러쓴다. 그래. 뽀대는 이거지. 북한모에 남한 담배. 난 무장공비란 말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단 말야.


하~~ 이상해. 신나... 그 말이... 난 지금 쓰라리다. 그러나 너무 쓰라려서 내 인생이 더욱 절실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저 자식이 비행장에서 말했던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나에게 덧칠 된 것은 모두 용해되어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본연의 나만. 뭐 어쩌란 말이냐. 난 지금 행복한 걸.


홀가분하다. 패를 다 잃고 나니. 그래 나도 따라지다. 눈물 짜는 새끼들은 모두 갈겨버리겠다.


담배를 빠는 동안 소염기 끝을 본다.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별 게 다 새롭네.


다시 트럭을 본다.


“해 뜨니 좋냐?”






Crucify Your Mind

(네 가슴에 못을 박다)


난 항상 너에게 값을 치르게 하지

네가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아플 때 나는 기쁨을 느껴


나는 나 자신에게만 불쌍함을 가져

그래서 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려


내가 떠날 걸 넌 곧 알게 돼

결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나는 네 가슴에 못을 박기 위해 태어났어

전처럼, 거울을 보고 난 나를 납득시킬 것이고,

네가 내 그림자의 존재를 깨달을 때, 난 없어


넌 우리만의 비밀을 갖고 싶어 하지만

어차피 일은 되풀이 될 뿐이야

그러니 나에게 속삭일 필요 없어


- RODRIGUEZ.




해 뜨니 좋냐.... 바로 여기,

바로 여기까지만 기억이 나고

그 뒤로 내가 뭘 어쨌는지 기억이 없다.

총 쏘고 뭐가 쾅! 쾅! 터진 것도 같고.


나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내가 느끼는 건 현실이야 가상이야.

지금 분명 내 생각은 존재하는데...


어쨌거나 내가 다시 눈을 떠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쯤은 이제 안다.


하고 싶었던 말을 끝내니 후련하다.

세상은 왜 무가 아니고 유인 거야 젠장.

무건 유건 현실이건 영혼이건 상관없어.


군복이란 수의를 입고 고립무원에서 왔다.

저세상이란 게 정말 존재한다면 이제

제육볶음에 막걸리 한 사발 올려라.


안 마시고는, 지금 못 배기겠다.

그 자식을 술상 앞에 앉혀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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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민족해방전선 3 +2 21.05.19 415 14 15쪽
221 민족해방전선 2 21.05.17 374 13 13쪽
220 민족해방전선 1 21.05.12 486 13 13쪽
219 성냥개비 3 21.05.10 376 14 12쪽
218 성냥개비 2 21.05.07 364 13 14쪽
217 성냥개비 1 21.05.03 442 14 12쪽
» 주변인정전 6 21.04.30 340 14 13쪽
215 주변인정전 5 21.04.28 368 11 12쪽
214 주변인정전 4 21.04.26 986 13 14쪽
213 주변인정전 3 21.04.23 404 13 12쪽
212 주변인정전 2 21.04.21 449 15 12쪽
211 주변인정전 1 21.04.19 539 12 10쪽
210 CSAR 18 +1 21.04.16 530 14 11쪽
209 CSAR 17 +8 21.04.14 557 16 15쪽
208 CSAR 16 21.04.12 539 18 14쪽
207 CSAR 15 21.04.09 501 15 14쪽
206 CSAR 14 21.04.07 441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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