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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3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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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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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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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3쪽

민족해방전선 2

DUMMY

죽일 테면 죽이라는 말에, 보위부 군관이 다시 걸어 나오고 주민들 숨이 멎는다. 총살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부대장 뒤의 전사들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서 있는 위치도 전과 다르다. 다른 경비대원들은 뵈지 않는다. 뒤에 선 전사들은 부대장을 결국 총살하거나 압송할 군인들이 분명했다.


땅땅한 보위부 군관이 다시 나오더니, 까먹었다는 듯이 경비대장 군모를 벗겨 땅에 놓고 짓밟아버린다. 그리고 전사들에게 지시해 손을 뒤로 묶고는 무릎을 꿇렸다. 군중을 바라본다.


“그럼, 사민들이 비판하라~~!!!”


주민들이 웅성거림.


“가차 없이 비판하라~~!! 이 반동은 리제, 군관이 아이다!!!”


그러나 보위부 군관도 알고 있다. 주민들이 그러지 못 하리라는 것을. 이들은 남으 듣는 데서 정치총화적인 말 외에 절대로 하지 않는다. 말실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냥 말 안 하는 게 꼬투리 안 잡힌다. 찬양 문구도 책에서 배운 정확한 문장을 써야 하고, 위대한 지도자 지도문을 외우다시피해서 토해야 한다.


거기 자기감정이나 생각이 들어가서 자칫 문장 하나 이상한 어투로 뉘앙스가 변질되면, 단어 하나로 정말 큰일 난다. 거침없이 다 말을 잘하는 것 같지만, 사실 다 똑같은 말이다. 찬양도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하다간 실수한다. 뱉은 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


예상했던 대로 주민들이 행동하자, 보위부 군관이 웃었는지 어쨌는지 하얀 치아가 어둠 속에 빛난다. 군관은 등에 있던 보총을 돌려 잡았다. 총살? 바로 총살? 군관이 부대장을 잡아 건물 쪽으로 밀어버리고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총을 공중으로 들면서 아주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동무들! 이런 총 본 적 있소!!!”


주민들은 무슨 소린가 한다. 기본적인 AK 보총을 수도 없이 보고 심지어 장난감까지 있기에, 총 같기는 하나 보총이 아닌 건 확실했다.


“이거 남조선 총이오!!!”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라는데 남조선이란 금기어까지 듣고, 남조선에서 온 총이라는 말에 주민을 귀가 솔깃한다. 그러나 다음 말은 더더욱 듣기 어려웠다.


“동무들... 나, 남조선 사람이오!”


함경남도 요덕군 요덕읍 계곡의 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했다. 이해한다 해도 사고 범위가 갑자기 좁혀지기 힘들다. ‘그럼, 북조선으로 입북한 해방인인데 인민군에 입대해서 군관까지 되어 경비대장을 벌하러 왔다는 거이네?...’ 이렇게 된다.


단상에 총을 든 사람 입장에서, 이들 사고는 일반인보다 밑으로 떨어져 있다. 눈은 떠 위를 보지만 굳어진 입은 열리지 않는다. 보위군관은 상의 단추를 열기 시작했다. 이어 팔을 빼서 군복 상의를 벗어 던졌고 군관모도 벗어 땅바닥에 던졌다. 그 안에 다른 복장이 있었다. 이상한 옷. 말로만 인민군을 호랑이 가죽이라 했지만, 군관이 속에 입은 옷은 표범 가죽 같았다.


“남조선 사람이오! 남조선 군인! 남조선 항공륙전부대요!”


이때 긴장한 것은 주민들이 아니라, 뒤에 총 든 나머지 넷이었다. 단단히 총구를 수평으로 놓고 개머리판을 옆구리에 밀착해 사격준비를 취했다. 주민들이 동시에 달려들면 그냥 학살처럼 쏴야 한다. 군인 다섯은 상당히 긴장했다. 설마 총 앞에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나라가 원래 제정신이 아니라서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뒤 하전사들은 앞에 나온 보위군관의 부하들이 분명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달려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네, 네, 대답할 것 같은 오래된 구부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남조선 군인이란 말을 이해 못 했는지... 요동이 없다. 이래도 저래도 겁을 먹고 있다. 전두엽이 제거된 사람들 같이 무감각하다.


이들의 마음과 뇌는 단 1-2년에 굳은 게 아니다. 여기는 간단한 것으로 끌려와 7년 10년 아무 것도 아니다. 단상에 서 있는, 이제 남조선 군인들로 드러난 사람들은 주민들 의중도 읽을 수 없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군관이 더 강하게 나갔다.


“여러분! 사민 여러분! 평양은 남조선에게 점령되었소. 정신 차리시오. 이제 북조선 인민군은 퇴각하고 있고 다시는 여기 안 들어오오. 안 믿기시지요? 정말입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나를 믿으시오! 이 산골은 이제 북한군도 남조선 군대도 안 들어옵니다. 남조선 아마도 경찰이 얼마 뒤에 들어올 겁니다. 북조선은 우리 남조선 관리 하에 들어갑니다. 남한 경찰, 남조선 보위부는 사람을 함부로 때리거나 굶기지 않습니다!”


군관은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북조선은 졌다, 장군은 항복했다, 이런 표현은 자제했다. 김정은은 몰라도, 김일성과 김정일은 절대로 언급해서 안 되는 단어다. 그 단어는 이 사람들을 순간 굴복시킨다. 그 두 단어는 최면술에서 말하는 앵커와 트리거의 무서운 세뇌기능을 가졌다. 그 단어를 들으면 여기 사람이 헤까닥한다. 지금은 일어난 사실을 받아들여 자기들 살길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산골은 아무도 안 들어와요! 우리도 돌아가면 다시 안 봐요. 해꼬지 안 해요! 우리가 당신들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시오??? 전혀! 우린 잠시 후 그냥 떠날 겁니다. 당신들 이대로 있으면 여기서 굶어 죽어요! 피양은 이제 보급 배급 못 합니다. 압록강으로 다 도망갔어요!”


술렁이기 시작했다. 보위부 군관이 총을 공중으로 들었다.


K-7 무성 기관단총.


“근처에! 이 부대장 빼고! 경비대 다 죽었소! 우리가 인민을 괴롭히는 반혁명 분자들을 자 처리했소! 당신들을 지도(통제)할 사람이 없소! 물론 저 윗동네는 모르나, 이 2915부대 막사 안에는 인민경비대나 인민군 내무국 아무도 없소! 우리가 다 처리했소! 그럼~~~!! 내가 지금 이 말을 왜 하느냐!...... 각자, 각자 알아서 살라는 말이오. 여기 강제로 끌려와 살고 있지요??? 자기 고향으로 가도 된다는 말이오. 지금 부대 식량창고를 열어놓겠소! 가져가든 말든 난 모르오!”


소란. 출렁임. 순간 분위기가 변한다. 먹을 거란 소리에 짐승처럼 격하게 반응한다. 동물이 아닌가 싶은 반응. 찢어진 옷에 지저분한 머리와 소가죽처럼 말라버린 피부와 살. 야성처럼 빛나는 눈과 거기 함께 서린 포기, 귀에 들린 ‘식량’이란 단어에 눈빛이 절실하게 빛난다.


“우리 남조선 군대는 이미 위도! 위도 아시오? 수평선으로 이 일대를 넘어서 북진하고 있소! 이 함경남도는 이미 넘어섰단 말이오! 평양은 점령되었소! 믿으시오! 절대로 믿으시오! 이미 넘어왔소! 우리는 상황을 알리러 왔을 뿐이오! 당신들을 때리지도 죽이지도 않고 그냥 가오 가! 대신 이 부대장은 당신들에게 맡기고, 식량창고를 열어놓고 가겠소! 여기 남성동무들 중에서 군사복무한 사람 있소! 손을 들어 보시오!”


천천히 20여 명 손을 들었다. 군관은 말을 잇는다.


“불안할 것이오! 저 윗동네에 아직 경비대가 남아 있다는 거 아오! 그러나 숫자가 별로 되지 않소! 그래서 저기 보총과 총알이 있는 곳도 열어놓고 가겠소. 당신들이 여기 식량을 가져가서 위험에 처한다고 생각하면 저 총으로 무장하시오!”


군관이 경비대장을 끌고 나와 무릎을 꿇려 목덜미를 움켜쥐고, 다른 전사 한 명이 따라 나와 등에 총구를 들이민다. 군관이 부대장에게 소리친다.


“자! 말해! 사실대로 말해! 평양이 점령되었어, 안 되었어!”


부대장은 입술을 꽉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너도 피양의 배부른 놈, 죽고 싶은 거구나! 그런 거야? 그럼 죽여줄게! 말하거나 죽어! 둘 중 하나다. 평양이 점령되었어, 아니야!!!”


처음으로 군중이 앞으로 밀착되면서 다가와 귀를 기울인다.


보위군관이 포효한다.


“진실을 말해! 너도 인간이면 진실을 말해! 니가 여기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우리도 알고 이 사민들도 안다! 어서 진실을 말해!!!”


그러나 부대장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넘긴다는 말에 이러나저러나 죽는다 싶었나 보다. 그 말이 문제였던 것 같다. 보위군관은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심리전 기본을 떠올렸다. 물증 심증이 있어야 한다. 다시 입을 연다.


“여기서 말하는 나! 이 남조선 동무는. 남조선 육군 항공륙전부대 한지훈 소령이오! 여기 말로 하면 소좌! 한소좌요! 나는 내 인생을 걸고 양심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고 있소! 북조선은 무너졌소! 북조선 인민은 해방되었소!"


목청은 더욱 높아진다.


"미안하지만 우리 항공륙전은 이런 동네에 관심도 없소! 지나가다 들린 거요! 여기 인민들을 가엽게 여기고 나중에 혼란을 피하고자 정보를 주고 가는 것이오! 피양은 점령되었고 북조선 군대는 압록강으로 패퇴 중이오! 여기 이 사실을 알려주고 말고 전쟁에 아무런 영향 없소! 하지만! 단 하루라도 빨리 알리고, 저 아이들에게 먹을 걸 나눠주기 위해 일부러 들른 것이오! 아이들이 무슨 죄란 말이오!”


이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우리도 대충은 아오! 도망친 전사가 귀뜸 하고 달아났소!!!”


한소령은 탄력을 받아 계속 고함친다.


“식량창고는 이제 여러분들 것이오! 안정되면 곧 남조선 경찰이 들어올 것이고, 이어 쌀이 올 것이오! 흰쌀! 당신들이 먹을 거 우리가 줍니다! 남조선은 누구가 모두 흰 쌀을 먹는단 말이오. 충분히 믿으시오! 진실이오! 이것이 거짓말이면 내가 자총해서 죽겠소! 믿어달라고 부탁해도 내 마음 창피하지 않소! 우리는 여러분들을 개돼지처럼 취급하지 않소! 이곳에는 남조선 방송 잡지 영화 드라마 보다 끌려온 사람 있지요?”


군중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이제 요덕수용소는 해방되었소! 여러분들은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여기 끌려왔고, 당신들 자녀를 보니 마음이 찢어지오! 그래서 일부러 왔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보름 동안이라도 당신들 아이들이 굶어 죽을까 봐 걱정되어 왔소! 우리는 당신들이 갑자기 남조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소! 그것은 당신들이 피부로 느낄 것이오! 경찰이 오건 행정부대가 오건 당신들은 단 한 명도 죽지도 않고, 더 이상 여기 수용되지도 않을 것이오! 나를 믿냐고, 북조선식으로 억지로 답을 요구하지도 않겠소!”


대열에 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다수는, 내용은 이해하더라도 피부로 그게 와 닿지가 않는 것 같다.


“군사복무했던 동무들 앞으로 나오시오! 괜찮소! 총을 주려고 하오!”


사람들 숨이 거칠어졌다. 남성 10여 명이 앞으로 나왔다.


“자, 이제 마지막 말을 하겠소! 머지 않아 남조선 행정부대나 경찰이 들어올 것이오! 이 조선인민군경비대가 했던 것보다 천 배는 정의롭고 순리에 맞게 행동할 것이오! 남조선 드라마 본 사람 여기 있을 것이오! 남조선은 사람 한 대만 때려도 경찰, 다시 말해 내무요원에 끌려갑니다. 그런 일 절대 없소! 그럼, 내가 걱정하는 것을 말하겠소!"


이들에게 총을 주면... 의심도 든다.


"질서요! 만약 여기서 당신들이 식량창고부터 질서 없이 규율이 와해될 경우 당신들 안에서 큰 일이 날 거요. 당신들은 쥐도 잡아먹었소! 기어 다니는 모든 걸 잡아먹고 - 날아다니는 모든 걸 잡아먹고 - 땅에 돋는 모든 풀을 뜯어 먹는다는 요덕수용소 사람들이오! 당신들에게 힘이 생기면 안 좋은 폭력이 일어날 수 있소! 남조선 행정부대가 올 때까지만 질서를 유지해 주기 바라오! 여기 믿을만한 읍장이나 그런 한 명을 중심으로 질서를 유지하시오!“


앞에 나온 남성이 소리쳤다.


“걱덩 말고 총을 주시오! 저 윗동네 경비대 놈들을 처리해야갔소!”


“그건 알아서 하시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어도 이 창고에 있는 식량으로 남조선 행정부대가 들어올 때까지 충분한 자양분과 안정을 취하고 있길 바라는 것이오! 또한! 고향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가도 되오! 다만, 큰 도시와 읍은 피하시오! 전장에 끼어들지 마시오! 인민해방이 왔는데 당신들 귀중한 생명이 전쟁에 끼어들어 죽으면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그러니 질서를 유지하고, 일단 영양분을 취하고 차후를 대비하시오! 저 윗동네 경비대 인원, 군사복무한 동지들이면 제압할 수 있소! 총을 줄 것이오! 북조선인민군대는 이제 여기 안 들어오오! 나 한지훈 소령을 믿고 하시오! 절대로 그들은 돌아오지 않소! 내 할아버지도 함경도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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