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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7.01 12:00
연재수 :
3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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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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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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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블랙홀 속으로 3

DUMMY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힘이 부친다. 기력을 너무 썼다. 손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고 헬멧을 벗어 옆에 놓았다. 총? 총! 어딨지? 더듬는다. 내 총! 기내가 완전히 아수라장이다. 특히 군장 외에 추가로 실은 물건들이 헝클어져 있다. 니미 이런저런 좆같은 거는 왜 기내에 던져 넣었는지. 바삐 더듬던 손이 찌릿하다. 예비로 실은 탄통 걸리는 부분을 손톱이 때려 찔리면서 찡하다. 그러면서 생각이 든다.


‘나 안 맞았네?!’


다시 더듬는다. 드디어 총이 하나 걸린다. 덮개 쪽 액세서리를 만져본다. 내 총이다. 내 총! 끌어내 품으로 안는다. 담당관은 중대장에게 말하고 있었다.


“인동이... 인동이는 안 돼. 착륙하면 그대로 놔두고 헬기가 데려가야 되요. 후송이야.”


중대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중대장이 나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너! 괜찮냐!’ 나는 엄지를 들었다. 엄지만 들었을 뿐이다. 난 쓰러져 눕고 싶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 앞은 어디인가. 아... 난 어디로 가는가!


주여 내가 죽음의 어두운 계곡을 갈 지라도

나를 보살피소서. 주여, 주께서 가라는 죽음의

길을 갈 지언정. 가는 길에 저를 옆에서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소서. 다만 외롭지 않게 하소서.

동이 터 새벽 닭이 울기 전까지만 나를 살려 주소서.


피양.

적의 심장부.

그러나 우리는 안다. 단지 상징적일 뿐이라는 것을. 적의 대가리는 미군 콘크리트 관통폭탄을 피해 이미 거기서 떴다는 것을. 그러나 상징적이다. 북한의 가장 큰 도시. 수도. 북한 안에서 어디 비교를 할 수 없는 도시이자 빈껍데기. 그래도 공격한다. 우리의 작전자 목표는 평양을 친다는 것 그 자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평양 안에 아직도 남은 각 기관과 잔존 수뇌부가 우리의 대상이다.


도시에서 반항하는 그 모든 것이 우리 목표다. 그들이 우리 수도 서울에 했던 지나치다고 할 정도의 민간인 대상 파괴. 민간인 대상이 아니라 민간인을 염두에 눈꼽 만큼도 두지 않는 비열한 공격. 우리는 평양을 불태우고 점령하러 왔다. 접수하러 왔다. 우리 병력으로 택도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공격해야 한다. 자신들의 심장이 난동의 중심부가 되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그들에게 평양을 평양답지 못하게 만드는 게 우리 의지다.


우리 군장은 다른 여단 군장과 다르다. 텐트 판초 며칠 치 식량 그런 거 없다. 식량은 특전식량 서너 개가 전부. 개인적으로 챙긴 초콜릿 바 정도. 그 외에 실탄 수류탄 폭약 성형장약 소이탄 야시장비 배터리 무전기 신호탄. 그리고 일부 대원이 휴대한 문을 여는 금속 빠루와 도끼. 그리고 내 걸 대형 태극기 여러 개.


대형 목표타격 여단의 군장 반 정도 부피지만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개중에는 아예 군장을 쓰지 않고 대형 백팩으로 통일한 중대들도 많다. 관급이 아니지만 누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특전군장은 자체 부피가 커서 침낭 같을 것을 빼면 억지로 모양 이상하게 졸라매야 한다. 특히나 실탄은, 다른 여단에 비해 세 배는 넘게 백팩에 담았다.


우리는 산과 들을 뛰는 게 아니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질주해야 한다. 전투강하를 하지 않기에 가볍고 바닥이 인공구조물에 착착 달라붙는 전술화들을 신었다. 장거리 무전기는 대대와 지역대 본부만 휴대하고 모두 단거리 FM 무전기와 소형 작전무전기만 휴대하고 걸었다. 우리는 단기 승부다. 평양을 비워야 한다. 그들이 포기하게 해야 한다.


헬기 안은 조종석 전투 계기등 외에 암흑. 우리들 눈에 핏발이 서 있고, 승무원들의 눈도 공포와 기대, 초유의 경험이라는 그 모든 걸 담고 있다. 내 눈이 승무원 한 명과 정면으로 눈동자를 마주쳤는데 우리 서로 아무 말 없이 괴물 같은 추상적 공포를 주고받았다. 승무원의 입은 반 쯤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는다. 염병. 피양이라니... 우린 뭐 다른 줄 아냐. 우리에게도 입이 벌어질 피양이다.

조종석 바로 뒤에 붙은 중대장이 우리를 본다.

“TOT 15분 전!”


연습한 대로 모두 총을 잡아 자물쇠를 안전에 건 상태로 노리쇠를 후퇴전진해 실탄을 삽탄했고, 휴대 탄창을 하나씩 손으로 터치하면서 속으로 탄창 번호를 부르고 수류탄도 터치하면서 번호를 먹인다. 나는 평범하게 가졌다. 특전조끼에 탄창 8개, 수류탄 여섯 발. 내부소탕용 CS탄 세 개. 억지로 주어 넣기는 한 스턴탄 두 발. 소이탄 하나, 지하로 들어갈 경우 쓸 야간투시경은 백팩에 넣었다. 내가 짊어지던 부피의 형태가 아니다.


삽탄하고 다시 자물쇠 엄지로 확인. 승무원은 일어서 양쪽 기체문을 열 준비를 한다. 다친 승무원 쪽은 박중사님이 앉아서 문고리를 잡고 열 준비를 한다.


아직 어둠이라 야간투시경을 쓴 중사님이 밖을 주시하다 나를 보지도 않고 툭 친다. 저 밖을 지시하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반응이 없자 중사님이 나를 돌아본다. 오른손 검지를 수직으로 들더니 원을 계속 그린다. 헬기. 무슨 뜻인가. 아, 다른 지역대 헬기. 우리 헬기 대열은 현재 대형으로는 측면에 없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우리 헬기가 날고 있다면 그건 다른 지역대다. 아마도 우리 대대. 다른 지역대도 거길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적의 심장부를 향한 각 대대 지역대의 레이스. 난 갑자기 기가 막혔다.

‘쩐다.’


드디어 승무원이 문을 확 열어젖히고 기관총을 잡고는, 노리쇠를 철커덕 후퇴전진해 장전한다. 갑자기 솟구쳐 들어오는 차가운 광풍. 밖에 불빛이 없다. 젖은 몸이 얼얼하다. 이제 다 온 건가? 종말은 이제 다 온 건가? 도시 근처의 대공포는 우리 언급도 안 했다. 없을 리가 없잖아?! 또 쏘는 거야?


차가운 광풍 속에 대형 폭발음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뭐가 터지는 거지? 폭격인가? 아니 우리가 들어가는데 폭탄을 때리면 어떻게 해! 미친 거 아냐? 아니면 뭐야? 적 대공포야? 모르겠다. 일단 백팩을 등에 짊어지고 백팩 복부 벨트를 조인다. 그리고 내가 추가로 손에 들고 갈 탄통 하나. 중대장이 소리친다.


“위치로!!!”


우리는 각자 정해진 문으로 기어가 다리를 밖으로 내놓고 앉기 시작했다. 억지로 자세를 잡아 앉았을 때, 저 멀리 저 앞에, 주황색 화염과 회색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이어 폭발음이 울린다.


측문 사이드에 앉은 사람은 뭐 잡을 거라도 있는데, 나는 중간이라 잡을 것도 없고 총만 움켜쥐었다. 기체가 기울이지면 어 컴컴한 땅으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가 온다. 왠만한 각으로 돌아도 안 떨어진다는 건 알지만 몸이 느끼는 걸 어떻게 하랴. 기체가 비틀 할 때마다 발끝이 간질간질 추락의 공포.


투시경 벗은 박중사가 다시 저 멀리 손가락을 뻗으며 씨익 웃는다. 작은 점들이 얼핏얼핏 보인다. 우리 대열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날아드는 헬기들. 다리가 허공에서 논다. 부들부들 노는 다리가 땅에 뻗어 서지도 못할 거 같다. 공중에서 우리가 느끼는 또 다른 공포.


‘니미 낙하산이 없어...’


문을 열고 나니 질주하는 속도가 피부로 온다. 귓전을 스치는 강한 바람소리와 폭음들, 퍼퍼퍼퍼 쏘는 적 대공포. 그리고 멀리 분명한 타다다다다다 기관총 총소리. 어느 헬기에서 쏘는 건가? 밑에서 쏘는 건가? 그리고 어느 순간 무거운 것들이 나타난다. 행성에 외계 흔적이 나타났다. 거대한, 괴물 같은 사각형들. 등화관제 속 화성의 외계 구조물들. 오! 도시. 도시. 괴물의 도시. 뉴스에서나 보던 그 도시. 매우 크고 기다란 것이 저 멀리 수직으로 지나간다. 무슨 무슨 탑인가 보다.


“1분! TOT 1분!”

그리고 중대장은 마지막으로 조종석을 향해 소리쳤다.

“시간이 없어. 안전하게 돌아가시고 우리 하사 좀 잘 부탁합니다! 파일럿과 승무원 수고하셨습니다! 안전하게 돌아가시오, 단결!”

중대장은 거수경례해 두 조종사를 번갈아 봤다.

그러자 부조종사가 좁고 짧은 거수를 올리면서 외쳤다.

“우리가 다시 데리러 오는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중대장은 측문 창으로 붙었다.


폭발. 거세다. 헬기가 빨리 착륙하려 기수를 들었고 우리 몸이 뒤로 밀리면서 착륙. 우리 것인지 미국 것인지 전폭기들이 폭격하고 있다. 우르르 쾅! 꽈릉! 쾅 쾅 쾅! 무섭다. 상당하다. 온 몸이 쩌렁쩌렁 울린다. 여러 곳에서 공중을 향해 올라가는 예광탄과 대공포 발포음 퍼퍼퍼퍼퍼퍼.


저 멀리 회색으로 터오는 여명. 우리는 폭약 1파운드의 위력을 아는 사람들. 전기식 뇌관 하나의 폭발력을 눈으로 본 사람들. 폭격은 우리들 목표를 제외한 곳을 때리고 있었다. 회색이 터오면서 건물 윤곽이 점차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폭음과 먼지 파편들이 휙휙.

“먼저 장비 밖으로 던져!”


우리 모두 안의 장비를 밖으로 던지기 시작했고, 승무원들도 같이 최대한 빨리 던진다.

“GO! GO! GO!"

중대장이 먼저 뛰어내렸다. 난 나가기 전에 김인동을 보고 손을 뻗었다. 그때, 무기력했던 몸에서 갑자기 동력이 나를 치고 올라 감싼다. 김인동 가슴에 댄 내 손가락에서 심장의 고동이 손으로 왔다. 승무원이 인동이를 부여잡고 뭐라 소리쳤지만 못 들었다. 미세한 여명으로 헬기 바닥에 뿌려진 피와 검게 물든 붕대 조각들.


오른손을 거두어 다시 총 권총손잡이를 잡고, 안전에서 단발로 풀었다... 그리고 점프.

“뛰어!”


난 뛰어내렸다. 그리고 순간 내 백팩을 찾아 등에 메고 왼손으로 탄통을 들었다. 오른손으로 든 총구와 내 시선이 사방을 둘러본다. 저 바로 앞에 백팩을 멘 중대장이 우리 헬기와 앞 헬기의 팀원들에게 우리가 뛸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다.


벌써, 1번 헬기는 다시 공중으로 뜨고 있었다. 사방에 지역대원들이 뛰고 있었고 그 주류 방향을 보고 중대장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어떤 동료는 아예 총을 각개로 걸어 가슴에 내리고 군장 위에 가장 무거운 것들을 올리고 뛴다. 장비 예비실탄 두고 가면 언젠가 후회한다.


숨 가쁘게 질주. 백팩이 출렁거린다. 염병 밝아 있을 때 완전히 밝아서 조일 걸. 무장구보처럼 페이스를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데 모두 아가지 벌리고 전력질주에 가깝다. 처음부터 구보 골인점 근처에서 하는 행동으로 전력질주한다.


넓다. 조악한 콘크리트들이 사방을 덮고 또한 무척 넓다. 자금성도 아니고, 지구상에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저 멀리 우리의 목표. 사진으로 수백 번도 더 보고 꿈에도 나온 그 건물이 보인다. 뛰다 보니 박중사님이 바로 옆에 붙어 같이 뛰기 시작했다. 박중사는 그 건물을 향해 손짓하며 웃었다. 그렇게 활짝 웃는 건 1년 동안 처음 본다.

“내 인생 최고로 쌈빡한 날이야! 이겼어. 우리가 이겼어!”



밍기뉴. 내 라임 오렌지 나무!

난 이제 너와 헤어지게 될 것 같애. 이제 한 학년이 올라가서 더 어려운 걸 배우게 될 거야. 그러나 니가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달려올게. 아마도 어른들은 너와 나의 대화를 이해 못 할 거야. 그걸 모르는 어른들은 차암 불쌍해. 그래서 사랑이 메마르는 거야. 밍기뉴!


오늘은 소년 예수가 태어난 날이야. 그런데 가난한 친구들 양말에는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은 불공평해. 그래도 난 이 동화책을 받았어. 이 동화책 정말 웃겨. 아주 유치해. 동화책을 쓰는 사람들은 애들이 뭐든지 다 믿는다고 생각하나봐. 오늘 뽀루뚜까 아저씨가 그러는데 내가 철이 들어간데. 왜 애들은 철이 들어야 하지? 안녕. 내 친구. 내 라임 오렌지 나무.


위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박중사님, 맞은 거야?”

“네, 맞았습니다.”

“뭐라고? 귀 먹어서 잘 안 들려!”

“맞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해. 맥박 대 봐.”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른손 장갑을 벗고 목에 댔다.

고동. 고동. 와라. 와라. 없다.... 없다. 맥박이.


“말하라고!”

“......”

“뭐하는 거야 새끼야. 말해!”

“없습니다. 맥박.”


그러자 소리치던 자가 급하게 뛰어내려와 나를 밀치더니 박중사 목에 손가락을 댔다.

“...... 올라가셨네... 제기랄.”


난 아무 생각 없이 고쳐 앉았다. 총도 놓고.


갑자기 별이 보인다. 주먹. 자지러지듯이 앉은 나에게 중사님이 주먹을 몇 방 날렸다. 안 아프다. 하나도 안 아프다. 맞는다는 건 알아도, 만취한 듯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폭격 끝나고 지금 적이 여기로 몰려들고 있어! 어서 실탄 장비 챙겨서 1층으로 뛰어! 포위되었다고! 몰려든다고! 어서! 창현아, 정신 차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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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체육관 깨기 1 20.09.26 554 22 12쪽
88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2 20.09.26 551 24 14쪽
87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1 20.09.25 606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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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도요새 사냥꾼 4 20.09.25 576 21 11쪽
84 도요새 사냥꾼 3 20.09.24 546 23 13쪽
83 도요새 사냥꾼 2 +2 20.09.24 612 26 15쪽
82 도요새 사냥꾼 1 20.09.24 646 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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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Jumping Jack Flash 6 20.09.23 626 20 15쪽
79 Jumping Jack Flash 5 20.09.23 644 23 15쪽
78 Jumping Jack Flash 4 +2 20.09.22 597 24 15쪽
77 Jumping Jack Flash 3 20.09.22 641 21 11쪽
76 Jumping Jack Flash 2 20.09.21 658 2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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