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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24 12:00
연재수 :
3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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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3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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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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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Jumping Jack Flash 3

DUMMY

지금 비행장에 있는 두 대대 중에서 저 멀리 웃고 있는 5대대장만이 우리 임무를 개략적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3일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5대대 섹터로 이동 혹은 도피탈출해 합류하기로 되어 있고, 우리 합류 사실은 5대대장만이 알고 있다가,


우리 작전이 종료되는 3일이 지난 시점에 부하나 참모들에게 알려 합류를 협력하기로 되어 있다. 대대가 우리를 얼마나 신경 쓸지는 모르나. 합류되면 우린 5대대와 함께 해야 한다. 그걸 아는 건 이 비행장에 총 여덟 명. 5대대장은 일부러 우리 근처에 오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난 그게 마음에 들었다.


저 멀리 수송기들에서 시동이 걸리고, 완전군장의 얼굴 시커먼 5대대 작전장교가 소리친다.


“표식 없다! 좌로부터 1번기!”


대원들이 어그적 보행을 시작한다. 일어서기도 힘들어 빨간모자들이 손을 잡아 당겨주고, 일어서면 한 손에 산악헬멧을 쥐고 몸을 후방으로 들어 군장을 끌며 다리를 오다리로 벌려 군장이 덜렁거리며 수송기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군장 덜렁거림도 훈련이나 그런 거다. 너무 무거워서 천 근 짜리 성기가 달린 듯 기다 싶이 각 비행기 별 2열종대로 가기 시작한다. 우리도 서서 군장을 하네스에 걸 준비를 하며 2번기 대열을 쳐다본다. 어디서 많이 본 예지몽처럼 낯설지가 않다. 인생은 정해진 걸까?


저 수송기 광풍과 굉음은 항상 편안하던 마음을 뒤집어 놓고, 너 이제 좆뺑이 까봐. 무섭지? 두렵지? 협박한다. 그러면서도 이 굉음은 군대생활의 어떤 증명과도 같은 고유, 타 부대와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자부심 상징. 프로펠러 굉음은 목공소의 톱 도는 소리와 기계적으로는 비슷하나, ‘청명’하다. 맑고 순도 높은 항공연료를 태워서 그런가? 그 청명한 굉음은 시간의 현재를 망각시키는 매력이 있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수송기가 무생물이나 그냥 기계로 보이지 않는다. 나름 그 녀석이다.


사방은 이제 컴컴하지만 그 어둠 속에 열린 수송기 내부 사각형은 밝게 빛난다. 난 이 그림이 무척 좋다. 야간강하가 마음에 쫄려도.


“군장 걸어. 우리도 가자!”

최상사가 입을 열었다.


2번기 대열 후미가 우리 곁을 점차 떠나고, 우린 무릎 꿇고 군장에 걸린 고리를 하네스에 걸고 내림줄을 묶는다. 용을 쓰며 몸을 위로 당겨 일어서려 한다.


와, 무거운 정도가 아니다! ATT 최고 군장보다 훨씬 무겁네. 대체 이게 몇 킬로냐? 몸까지 완빵 특전조끼 때문에 숨 가뿐데 군장은 한참 더 용을 쓰라고 한다. 빨간모자들이 달려와 일으켜준다.


빨간모자 중 캡틴인 원사가 마지막으로 여섯 명 점검을 시작한다. 이 굉음 속 최종점검은 강하자를 안심시킨다. 사람들이 까먹어서 그렇지 낙하산 믿고 인간이 저 높은 공중에서 뛰어내린다는 게 사실 멀쩡한가. 점검자가 고장 난 자산기가 고도계가 툭툭 친다고 갑자기 되살아나나?


그러나 심리에는 위안을 받는다. 사고는 원인이 존재한다. 고공의 경우 그 원인을 자신이 찾지 못하면 큰일 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강하 순직사고의 조사내용은 이거다.


[이유 불명].


경력자도 순간 쇼크가 올 수도 있다는데, 몇몇 건을 보면 할로 나온 사람으로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랬을까. 왜 조치하지 못했나. 이해가 안 되니 사람 돌게 한다. 사람이란 그날 컨디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본능)이 있다. 본능을 통제 못하면 거기서 오류가 나오고 오류는 사고로 유도한다. 나는 주낙하산 기능고장(cut away)을 겪고 나서 그걸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자가당착에 빠진 고정관념과 순간적인 착각이 날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주낙 기능고장 한 번도 안 겪고 제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최상사는 종종 그랬었다.


“진정한 할로는 ‘확실한’ 기능고장 겪고 나서지.”


기능고장 안 겪으면 내 낙하산 포장 하면서도 경각심이 점차 떨어진다. 고공기본에서 어떨 때 정말 바빠서, 뭐랄까 대충 포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개방손잡이 당기니 여지없이 잘 펴진다. 이런 게 사람을 대충 하게 만든다. LALO는 특정대에서 다 알아서 해주지만 우린 다르다. HALO는 그 무난함과 나태함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HALO 낙하산 포장할 때 말조차 걸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LALO - 저고도 이탈 저고도 개방.

HALO - 고고도 이탈 저고도 개방

HAHO - 고고도 이탈 고고도 개방.


나를 점검하는 원사의 눈이 마주쳤다. 특정대도 본부대다. 적어도 1년에 한번 우린 하나가 된다. 우린 여단 체육대회의 본부대 국가대표. 얼굴은 서로 안다.


“너 입식 종목에서 팔굽으로 때리던 놈 아냐?”

“맞습니다.”

안전검사는 계속 한다.

“너 원래 사회 종목이 뭐야?”

“킥복싱인데, 나중에 무에타이도 했습니다.”

“하사 때 복싱으로 나왔지?”

“네, 그때는 종목이 없어서.”

“작년 체육대회 때 니가 KO 시킨 대대 애가 내 외조카야.”

“누구죠?”

“2대대 키 작고 땅땅했던 놈. 팔굽으로 정확히 면상 세 번 갈겼어.”

“그렇다고 개방핀 빼고 그러시는 겁니까?”

“야 니미 공수부대에서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

“외조카도 가죠?”

“내일 넘어가.”

“......”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마.”

“감사합니다.”

“아저씨 안전검사 끝!”

“단결!”

"접어."


점검 끝나고 여섯은 동그랗게 모였다.


“자, 마지막으로 기억하자. 네비(독도법) 때문에, 개방은 4천에서 최상사 수기로 동시 개방. 일찍 당기거나 늦게 하면 낙오된다. 강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팀 (공중)결집과 네비가 더 중요하다. 만약 기능고장이나 낙오가 나면 백지시험 암기한 대로 1차 집결지로 와야 한다. 30분 기다린다. 손 모아.”


“우리는 할로맨이다. 레디, 셋, 고!”

장대위 말끝에 여섯 명이 동시에 구호한다.

“물! 하늘! 선견! 정찰! 할로. 할로. 할로!”


우리도 수송기를 향해 간다.


나는야 HALO MAN이다

내 이름은 HALO MAN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높고 푸른 창공에서

오늘도 내일도

신(좆)나게 점프를 한다

일만 이만 삼만 사만


- HALO 교육 사가



모든 준비가 끝나고, 승무원들의 분주함도 사라지고, 대원들도 승무원들도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이제 끝난 거야? 가는 거야? 니미 북으로? 허허허.


승무원장이 인터컴 소리를 듣고 주변 모든 걸 훑기 시작한다. 대대원들은 짬마스터와 5대대장 빼고 다 앉았고, 우리 여섯은 서 있다. 이제 후미 문을 닫을 것 같다. 미소가 나온다. 내가 미쳤나? 뭐가 웃겨? 아니, 웃긴 게 아닌 것 같다. 어이가 없는 것 같다. 북적북적 대더니 이제 북으로 가는 수송기에 탔다. 현실이다. 어이가 없다. 흐흐흐 니미. 인생 이런 거냐? 흐흐흐. 뭐 어째...


어쩌면 저 비행장 아스팔트가 우리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보는 대한민국 땅이 될 것이다. 아니, 통일이 되면 우리가 가는 곳도 우리 땅이 되겠지. 우린 이긴다.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다.


지나온 우리의 추억과 과거, 주마등처럼 스친다. 정말 어이없게 내 고향 산천과 놀던 기억나네 진짜. 부모님. 형님들과 여동생.... 순간 내가 지금 뭐하는 사람인지 까먹을 정도로 강력하게 파르르 훅훅 지나간다.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참으로 어이없다. 뭐 어떻게 해. 길은 그쪽으로 가라고 나 있는 걸. 길은 길을 벗어나라고 닦여진 게 아니니까. 인생은 희극이야. 골로 가는 희극.


끼이잉~~~! 소리를 내며 수송기 후미 문이 올라와 닫치기 시작한다. 그때 같이 서 있던 검은 얼굴의 대대 점프마스터가 후미문 쪽을 산악헬멧 든 손으로 지시했다. 나는 눈을 돌린다. 보였다. 비행기 안의 이목이 모두 그쪽으로 집중된다.


빨간모자 열 명이 1열 횡대로 수송기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오른쪽 끝에 아까 나를 봐주며 대화를 나눴던 원사와 정찰대 행정담당관이 서 있다. 행정담당관의 검은색 베레모가 유독 눈에 띤다.


차렷. 빨간모자부터 원사까지 부동자세였다. 허벅지를 붙이고, 군화 끝을 45도 각도 벌리고, 몸에 밀착한 양팔, 양손 엄지는 하의 재봉선에 수직으로 맞춰 대고, 가슴을 펴고 시선은 상방 15도. 수송기 안을 보고 있다. 문이 중간 쯤 닫혔을 때, 빨간 모자들이 구령에 맞춰 단체로 손을 올려 거수경례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공군 지상요원들도 동작 그만, 차렷자세로 수송기를 향해 경례한다.


마음의 끈. 수송기 안쪽과 바깥쪽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5대대장이 소리쳤다.

“환송하는 전우들에게 경례!

경례를 못하는 사람들은 장비 이상무! 엄지를 들어라!”


짬마가 거수경례를 했고,

우리 여섯 명도 경례했다.

승무원들도 몸을 부동자세로 모으며 같이 응례했다.


뒤는 볼 수 없었으나, 제식 상 앉은 자세에서는 경례할 수 없다. 병력은 일어날 수 없는 상태고. 보지 않았지만 뒤에서 모두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장비와 장비를 착용한 인간 이상 무!...는 특정대-안전요원들에게 보내는 감사함의 답례.


굉음 속에 서로가 거수경례한 시간은 영원처럼 흐른다.

어쩌면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짧고도 영원 같은 시간에 생각했다.


‘아름답다...’


묘하다. 기분 묘하다. 절차나 형식이 아니라

감정의 파도가 사정 없이 내리치는 흔들림 없는 고요.

역사를 향해 나아가라 무겁게 침묵하는 사방.

적막한데, 선풍기 강풍 소리 같은 프로펠러 굉음만.


수송기 문이 차폐벽처럼 완전히 닫혔을 때,

우린 서서히 팔을 내렸고, 나머지는 엄지를 내렸다.


우리 여섯 명은 지정석이 되어버린,

닫힌 꼬리문 쪽 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군악대 없냐? 술이나 한잔 줘.


수송기가 측면으로 돌면서 다채로운 비행장 등들이

원형 창을 따라서 서서히 이동한다. 이륙대기선으로!

내 양손이 합장으로 모이고 턱이 내려간다.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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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1 20.09.25 604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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