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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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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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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1

DUMMY

한 모금 삼키면 목이 타버리며 정신착란까지 일어나는, 그러면서 낭만의 시간이 오면 마치 오랫동안 사랑했다는 듯이 떠벌이는 대상 바다. 사람 생명에 가장 위험한 지역을 낭만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발상은 땅이 답답해서일지도 모른다. 바다 저 너머에는 뭐 여기보다 나은 게 있겠지. 허나, 바다 저쪽도 서로 죽이고 서민은 손가락이나 빨고 다 똑같다. 지구에서 지구의 모호함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중 우리 이 반도라는 지정학적 애매함. 고구려가 없었으면 우리도 일본놈들이나 똑같았을 거다. 침입도 당했지만 대륙의 영향과 교류가 생겨났고, 역사라는 성기가 물에 젖지 않고 북으로 발기할 수 있었다.


인간은 그 물가에 휴양지와 해수욕장도 만들지만 필요에 따라 잠수함기지도 짓고, 지구 담수량으로 치면 풀장 먼지보다 작은 배와 잠수함으로, 억지로 떠 있거나 억지로 가라앉지 않는 쇳덩어리들을 이용해 먼저 물을 장악하려 했다. 전쟁 발발로 당연히 이곳은 부각되었다. 아마도 이빨을 악문 총폭탄정신으로 잠수함이 비파곶에서 나갔고, 나가다 그 로메오 급은 기다리던 아군의 철퇴를 맞았다.


잊을 수 없는 특수작전 성공. 아군 잠수함의 침몰은 비극이지만 적 잠수함의 침몰은 물고기들의 축제이자, 우리에겐 복수였다. 삼거리로 유명한 아군 함에 대한 복수. 그걸 누가 가라앉혔는지 논리적으로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게 따지면 역사책 내용 과반수는 ‘사실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는 거짓말들이다. 믿는 사람은 믿고, 안 믿는 사람은 북한놈들 고문해서 강제 자백이라도 시킨 다음 그때부터 믿어라. 그게 역사다 씨이발. 북조선에선 낙엽만 떨어져도 남조선 탓이다. 갑자기 욕해서 미안하다. 이때를 생각하면 속에서 뭐가 훅 올라온다. 하여간 물에 들어간 다음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도망쳐 구석에서 벌벌 떨며 울었지

내 손에 피가 묻고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허나 난 다시 하게 되었네. 것도 삶이니까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미친놈처럼 칼질하고 물에 들어갔을 때, 최상사도 그렇지만 나 역시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고, 3일 동안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어서 몸도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난 칼 쓰고 나서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입수했다. 3일 동안 먹은 건 특전식량 세 봉지. 문제 중 하나였다. 원래 그런 상태로 물에 들어가면 안 되지만 살려면 나가야 했다. 보초 네 명을 처리한 게 발각될까 시간이 촉박했고, 목적만 바라보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물은 여름에 들어가도 기본적으로 ‘찬’ 것이고, 늦여름이었던 그날 밤도 결코 물이 낭만적이지 않았다. 우린 슈트를 입은 것도 아니고, 평범한 특전복에 오리발과 수경 스노클을 착용했을 뿐이다. 급조도하 부유물로 만든 휴대장비는 그렇게 무겁지도 아주 가볍지도 않았으나, 살려면 절대로 버릴 수 없었다. 핀수영이라고 해도 맨 몸과 군장은 많이 다르다. 부유물은 평시 해상훈련이나 독수리훈련 때보다 확실한 방법을 썼다. 판초로 결속한 위를 그냥 대형 플라스틱 철끈으로 당겨 빈틈없이 조였고, 도착해서 대검으로 자르면 그뿐으로, 아주 편리했다. 그 철끈은 포로를 잡았을 때도 유용한 물건이다. 다만, 부유물 만들 때 동서남북 내용물 균형이 맞지 않으면 가다가 기울어져 진행이 힘들다. 공기 안 들어가게 묶는 것보다 그 균형 잡는 게 더 중요하다.


물에 들어가고, 나나 최상사님이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무리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엎질러졌지만, 잘못하다 잣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은 겪고 나면 훨씬 더 무섭고, 알면 알수록 두렵다. 그래서 물질하는 스쿠버는 할로 팀 은근히 무시한다. 교육도 서너 배는 힘들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하늘만 봐도 오늘 힘들겠구나 느낌이 온다. 특히 바다에 파고가 높으면 간이 쪼그라든다. 기본적으로 바다는 어마어마한 상대이고 거기 떠 있는 인간 하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걸 우린 안다. 인간의 스쿠버란 저 밑의 깊은 물과 전혀 상관없는 물 표면의 몸부림일 뿐이다. 저 깊은 아래는 그 사소한 것에 관심도 없다.


물에 들어가려면 몸과 뼈다귀 정말 꼼꼼하게 풀어야 한다. 몸풀기로 파김치가 되어야 물에서 쥐도 안 나고 몸이 끝까지 칼로리를 짜낼 수 있다. 몸이 중간에 멈추면 조조할인된다. 흐르는 통로처럼 몸을 풀어주는 것이다. 어디서 뭔가 막히면 큰일난다.


여러 부대 물질 훈련에서 하는 내한훈련.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냥 물의 한기를 오래 버티는 거다. 사람은 정해진 체온이 있고 물은 그보다 훨씬 기온이 낮다. 그러므로 몸의 열은 당연히 넓고 차가운 물로 전도된다. 계속 빼앗긴다. 빼앗기다 빼앗기다 자기 체온까지 위험하게 낮아지는 건 먹은 것, 버티는 능력, 칼로리 소모, 운동량의 한계가 왔다는 말이다.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손사래 칠 비계찌개를 먹는 부대는 어디일까? 바다와 싸우기 위해서는 그렇게 먹어야 한다.


그 방대한 바닷물에게 체온을 빼앗기는 건 바다와 싸워서 될 문제가 아니고 인간이 전적으로 약자다. 해상훈련이든 스쿠버든 모두 여름이지만 물에 오래 있으면 저체온증은 무섭게 다가온다. 뭐랄까, 누구나 다 그렇지는 않지만 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몸은 앞서 대비해야 대처가 가능하지,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늦은 거다. 땅이면 증상이 나타나는 순간 쉬거나 보온을 하면 되지만, 물에 들어간 군인은 나오기 전까지 물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15분이 지나자 우리 몸이 굳기 시작했다. 우리가 나왔던 해안 포인트로 가려면 적어도 40분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들어올 때는 30분이었지만 더 힘들 거라 생각했다. 애초부터 이딴 식으로 작전을 짠 것이 무리였다. 하여간 성공했으니 할 말은 없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3미터 로프를 서로 스냅링으로 걸 때 눈을 마주쳤는데, 우리 둘 다 이거 좀 무리다 싶었다. 칼질하고 총질하고 이제 방법이 없다. 우리가 북한 정찰국도 아니고, 매일 물질하는 부대도 아니고, 우린 물질이 아니라 주로 산에서 논다. 요즘 들어 도심지 훈련도 많이 했다. 들어올 때, 잠은 좀 부족했지만 여전히 남쪽에서 먹고 관리한 체력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이 허접한 장비로 슈트도 없이 작전하란 거였고, 그렇다고 슈트까지 군장에 넣고 지랄하다 보면 화물낙하산으로 장비 받아야 할 거다. 슈트는 거의 반 구명의지만 그걸 군장 어디다 쑤셔 넣나. 작계군장도 더 넣을 곳이 없이 빡신데.


물은 침투할 때보다 훨씬 차가웠고, 몸이 굳기 시작하자 부유물을 한 손으로 밀면서 횡영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손. 스쿠버 장갑만 있었어도 좀 나았을지 모른다. 내가 자꾸 쳐지자 최상사가 어둠 속에서 날 뒤돌아보았는데, 자꾸 3미터 로프가 팽팽해지는 까닭에 걸구치는 거다. 몸은 계속 굳어갔고 최상사가 나보다 상태는 낫지만 힘겨운 건 많이 다르지 않았다. 난 입수 직전 너무 급격하게 몸을 썼다. 총검 걸게가 없는 사제 칼이었으면 그렇게 찌르다 분명히 손 다쳤다. 먹은 것도 별로인데 흥분해서 급하게 행동하고 물에 들어간 거다.


우린 선을 알고 있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 물에서 훈련 받다 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가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물이 안 맞는 사람은 군 생활 내내 힘겨워하고, 심지어 물에 가기 싫어서 제대하는 사람도 봤다. 농담 같지만 절반은 농담 아니다. 중사 달고 나서 인명구조도 없이 가면 쪽팔려서 해상훈련 죽인다. 4년 6개월 기본 만기를 넘지 않은 중사는 여기서 남들이 상상하는 계급 중사가 아니다. 지역대 인원 대비, 월급 많이 타는 보병소대 상병 정도 된다. 어쩔 수 없이 가면 부상으로 빠져서라도 해상훈련의 쪽팔림을 회피하려는 잔머리도 쓴다. 빨간모자 후배들이 가지고 논다.


횡영으로 온 몸을 움직여도 열이 오르지 않아 결국 다시 엎드려차기로 돌아갔고, 급조도하물 미는 것이 힘들어진다. 이러다 보면 몸 홀수선이 점차 낮아지고, 그러다 홀수선이 아가리로 오면 물을 먹기 시작하고, 뱉다 뱉다 결국 마시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고는 익사까지 급하게 진행된다. 물론 스킨스쿠버의 홀수선은 스노클의 끝이지만, 스노클과 마우스피스는 억지로 기도를 개방하는 것처럼 체력을 쉽게 소모시킨다. 초보자는 특히 그렇다. 렁의 공기를 먹는 것과는 다르다.


평영 횡영에서 흡기는 짧고 강하지만 배기는 입술을 약간만 열고 부드럽게 내뱉으며 체력관리를 하는데, 스노클은 특히 힘들 때 기도가 너무 열려 호흡조절이 힘들어진다. 너무 스노클을 믿고 머리와 몸이 물 아래로 내려가면 속도도 느려지고, 머리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면 스노클 홀수선을 경계해야 한다. 스노클로 바닷물 먹으면 그냥 수영하다 먹는 것보다 마음 편하게 있다가 순간 혹! 억! 골 때린다. 힘들어 거친 호흡이 스노클로 빨아들인 바닷물이 순간 폐까지 펌핑해 들어간다.


결국 난 속도도 느려지고 스노클 홀수선까지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마우스피스를 뱉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지독해졌다. 더욱 위험해지겠지만 숨이 날 너무 빼앗는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가 아는 두려운 그 세상이 다가왔다. 공포와 긴장은 핀수영을 엄청 힘들게 한다. 저 멀리 방파제와 돌산은 이제 옛말이다. 이러다 선을 넘으면 골로 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무서웠다. 여기서 빠져 죽어봤자 아무도 모른다. 장대위는 실종이라고 보고할 거다. 파고가 높을 때, 타이밍 잘 못 맞춰서 파도를 타지 못하고, 파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아가리 가득히 바닷물이 몰려와 한번 꽉 차 그대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숨이 턱 막히면서 입부터 기도 식도까지 완전히 물이 들어차면서 순간 먹통이 되면, 정말 저승 간다. 뱉으면 될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 모든 걸 대처할 수 있다면 뭘 해도 다 성공할 거다. 불났을 때 그 시커먼 연기가 아가리에 한번 꽉 차는 순간 정상적인 두뇌회전은 끝난다. 비슷하다.


우린 삼엄한 기지 경계선을 일단 벗어나려 남향으로 차고 있었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우리가 들어왔던 해안이 헛갈리기 시작한다. 이틀 전보다 더 컴컴하고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서양 어디는 뭐 스쿠버용 야투경 있나? 모르겠다. 하여간 가만히 있어도 무섭다.


암흑의 공포. 광대한 바다에 꼴깝 떠는 개구락지. 수경까지 끼고 가다 보면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뭍인지 구분이 안 간다. 달도 없는 깊은 밤 바다수영. 최상사가 스쿠버 시계에 달린 나침반을 보고 가지만, 정말 이 컴컴한 데서 들어온 위치를 찾아낼까 의문이다. 힘이 점차 빠지고 호흡은 거칠어지지만, 버릇대로 같은 동작을 최대한 힘 빼고 반복하려 애쓴다. 참으면서 회수를 늘이다 보면 거리가 늘어나고, 그렇게 그것만 반복하다 보면 도착한다.


우리가 믿는 건 훈련에서 얻은 그 참고 무리 없는 동일한 동작의 반복으로 계속 가는 법칙 뿐. 언젠가는 온다. 거리를 보지 말고 똑같은 힘으로 같은 동작을 초연하게 반복만 하라. 물살을 탔다고 기뻐하지 말고 물살에 밀리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참고 계속 반복하라.


작가의말

이 에피소드 

연재일은 아니지만, 

내일(토요일) 3편 연참으로 붙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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