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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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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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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2

DUMMY

몸은 굳고 숨이 턱에 차다 못해 복식호흡 저 밑바닥에서 한 줌이라도 짜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물이 마시고 싶다. 물에서 헤엄치지만 물이 간절하다. 그렇다고 바닷물 마셨다간 정신착란까지 올 수 있다.


훈련 받으면서 엄청나게 바닷물을 먹었지만 그거와는 다르다. 첫 모금의 바닷물을 먹으면 갈증을 푸는 행복감은 단 몇 초, 그 다음 소금기가 내 식도를 찌르듯이 파열하고 매운기가 코로 터지고 뒷골이 망치로 맞은 것처럼 띵해진다. 이어 눈물이 터지고 그 다음 정신 멍해진다. 빨리 오바이트 해야 한다. 정신이 멍해지면 몸은 꼴리는 대로 엇박 간다. 최루탄 가스 체험과 비슷하다. 정신 못 차려 내장이 완전히 바닷물로 침수되고 골로 가는 건 순간이다. 물 계속 먹어 익사하는 걸 알면서 막지 못하고 가게 된다.


홀수선이 내 입가와 스노클까지 올라오며 출렁거리고, 내 발버둥과 비례로 계속 낮아진다. 컨디션 좋을 때 오리발은, 기분 상으로 그냥 흔든다 꼬리를 친다 정도로 부드럽게 나간다. 하체만 차는 게 아니라 온몸이 춤을 추듯이 리듬을 타며 나간다.


이제 오리발이 무거워지고 다리가 천근만근. 가랑이 사이에서 뻑뻑함이 나타나고 점차 굳는 부위가 넓어진다. 쥐까지 나면 익사다. 오리발은 ‘차는 게’ 아니라 골반부터 허벅지 장딴지 발끝 오리발까지 부드럽게 곡선으로 흔들려야 정상이다. 힘으로 하다가는 곧 가랑이 뭉치거나 장딴지에 쥐나고, 발등이 꺾인 상태로 계속 가다보면 발에서 쥐도 난다. 이 부드러운 요동이 상체 어깨까지 여자가 애교부리는 동작처럼 이어지면 최고다. 오리발은 차는 게 아니라 추워서 허벅지를 가볍게 부비듯이 하는 듯 마는 듯 율동을 타야 한다.


오리발 차기 역시 강하게 전진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 양발을 지속적으로 차고, 긴 장거리를 갈 때는 하나 둘 템포의 하나에서 강조점처럼 오른발 한 번, 왼발 한번 이렇게 체력을 아낀다. 민간 자유형 장거리 경기에서도 양발을 그렇게 교대로 찬다.


이놈의 스노클에서 내 거친 밑바닥 숨소리를 증폭시켜 들려준다. 그 소리가 내 거지만 듣기 싫다. 나 아닌 다른 짐승이 헉헉거리는 것 같다. 어떤 귀신이 해소천식으로 나를 겁준다. 커다란 원통에 들어가 스피커로 내 소리를 듣는 것 같다. 그 통을 입으로 물었지만, 거꾸로 그 통이 날 그 안에 집어넣고 고문하는 것 같다. 어떤 날, 오늘 별로 안 힘들다고 생각해도, 입수하면 스노클 통소리가 내 진짜 상태를 바로 알려준다.


다시 횡영으로 돌리면서 머리를 물에 담갔다가 푸 내뿜고 - 치솟으면서 머리를 돌려 얼굴을 하늘로 향하면서 최대한 들여 마시지만 자꾸 내려가는 것 같다. 정신이 몽롱해지는데... 손이 날 잡는다.

“잠시 뒤집자. 해바라기. 허, 니미. 죽는다.”


우린 등을 물에 대고 뒤집어 숨을 몰아쉰다. 스노클 끝을 부유물 위에 얹어 세웠다. 말도 큰 기운이 필요하다. 몇 분이나 저은 건가, 얼마나 온 건가? 여기 위치가 어디야? 최상사도 거친 숨 몰아쉬며 날 친다. 손가락으로 뭍을 지시하고, 손가락 둘을 편다. 뭍은 저 쪽이고... 그러니 뭍을 왼쪽에 끼고 아래가 남쪽, 손가락 둘이 20분인지, 200미터인지 몰랐지만, 2백 미터는 아닌 것 같다.


그럼 20분? 지랄, 나 죽는다. 춥다. 군복이 물을 먹어서 달라붙고 무거워 죽겠다. 그래도 살기 위한 습관으로 몸에 힘을 빼고 하늘의 별을 본다. 가슴이 물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힘을 빼고, 들여 마신 상태 흡기를 오래 유지한다. 해바라기 자세에서 힘을 빼면 입은 충분히 물 위에 있지만, 힘이 들어가면 내려가면서 물이 입으로 온다.


최상사가 내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술이라도 한잔 넘겨서 체온을 높이고 싶다. 소주도 좋고 말걸리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말리부 한 병 불고 싶다. 점차 가라앉는다고 생각하자 몸을 세웠고, 나도 모르게 스칼링도 아닌 평영 개구리차기를 내 몸이 한다. 군대 수영에서 역시 가장 많이 한 건 평영. 오리발을 차도 평영 발차기가 습관처럼 나올 때가 있다. 오리발 신은 걸 순간순간 까먹는다.


“칙-칙-칙.”

무전기 소리가 들리나 응신 할 수 없다.


최상사도 해바라기에서 몸을 세워 스칼링하면서 스노클 배기로 물 한번 푸욱 뿜어내고 사방을 돌아본다. 기지 경계선에서 벗어났나? 얼마나 벗어났나 모른다. 내 숨은 꺼억꺼억 넘어간다. 너무 춥다. 몸이 물로 빨려 들어가는 거 같다. 차던 다리가 점차 둔해지면서 멈추려고 한다.


‘왔어... 왔어.’

하늘을 본다. 별. 이게 내 마지막 보는 모습이다. 더 못 간다. 팔 하나 저을 수 없고 다리 한 번 못 찬다. 드디어 왔다. 막으려 했지만 왔다. 다시 힘 빼고 해바라기로 전환했지만 더 이상은 못 한다. 굳는다. 굳어. 오, 하느님...


최상사가 날 움켜쥔다. 상사는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수경 속 자기 눈에 맞춘다. 나는 용기를 내, 스노클 마우스피스를 퇘! 뱉고 입을 열었다.

“풀어... 풀어... 해체해.”


말을 하고 나니 이빨이 다다다닥 떨리는 걸 알았다. 최상사가 마우스피스를 악물고 날 응시한다. 최상사 눈빛이 수경을 뚫고 나올 것 같다. 마우스피스 문 입술이 아래위로 들린다. ‘씨이발’


난 이미 최상사를 용서한다. 날 버려도 괜찮다. 둘 다 죽을 거면 내 순서가 맞다. 차가운 물과 컴컴한 하늘과 둘만 느끼는 눈물 나도록 구슬픈 고요. 상황도 모르고 앙증맞게 찰랑이는 물소리. 반짝이는 최상사의 눈. 별보다 더 빛나는 눈. 사람 눈이 저리 또렷한가... 눈이 무서울 정도다. 시커먼 바다 괴물을 보는 것 같다. 갑자기 최상사가 입에서 스노클을 뱉었다.


“안 돼. 못 풀어.”

“다... 죽어...”

“안되겠다. 그냥 해안으로 가자. 방법 없어.”

최상사 목소리는 만취자가 잔뜩 토하고 난 목소리 같다. 저음으로 힘겨운 목소리를 끌어낸다. 음성변조한 거 같은 저음은 단호했다.

“담당과임. 둘 다... 총 맞아.”

“새끼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가요... 안 돼...”

“야 새꺄. 나도 죽겄어. 너 근육경직 아니면 저체온야.”


내가 거부의사를 밝히고, 스냅링을 풀려고 하는 찰라, 최상사가 해안을 향해 맹렬히 발을 차기 시작했다. 별로 나가지 않는다. 난 스냅링을 잡아 풀려고 시도하지만 팔도 손도 얼어 제대로 안 움직인다. 난 물에서 가라앉는 빵꾸 난 고무보트. 인명구조 교보재처럼 해바라기로 끌려간다.


최상사는 앞손으로 자기 도하물을 잡고 뒷손으로 내 도하물을 잡고 죽을힘을 다해 해안을 향해 차고 있다. 스노클을 뱉었기에 안간힘 쓰는 소리가 들린다. 최상사 허억~~푸우우우 소리와 함게 물에서는 고르륵 휘르륵~ 푸요~ 고르륵 휘르륵~ 푸요~ 물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 죽는다. 이러다 다 죽어.


들어올 때 물살 보고, 나갈 때는 타고 넘어가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아니었다. 자연은 그렇게 쉽사리 안 준다. 물살은 바뀌었고, 우린 밀리고 돌았으며 물에서 30분이 넘어갔다. 드라이슈트 아닌 바에야, 슈트를 입어도 얼어 죽기 딱 좋은 물. 마비가 온다. 무뎌진다. 그렇게 내 정신이 나가고 있었다. 조용히 아주 평화롭게 내 머리 속 스위치가 페이드아웃처럼 천천히 꺼진다. 마지막 꼬르륵 휘르륵~~~을 들었다.


‘간단한 거구나... 뭐 대단한 건 줄 알았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꿈을 꾼다. 차가운 게 사라지고 따뜻해진다. 공기가 다정하고 온화하다. 한기가 사라지고 피로가 풀려 기지개를 펴고 싶어진다. 아, 뭔가... 중국 시인 말마따나 내가 꿈속에 나비가 된 건지 나비가 인간 꿈을 꾼 것인지. 난 뭐지? 이제 난 뭐지? 글쎄. 솔직히 말해서 난 뭐지? 나 자신을 설명하려니 존나 허무하네. 뭐가 없어 씨. 이걸 어떻게 표현해? 어디로 가? 순서가 있어?


아, 수박 먹고 싶다. 수박화채 같은 거 한 사발만... 어? 진짜로 주는 거야? 어, 어? 진짜 화채! 감사합니다. 목이 너무 말랐어요. 침도 안 삼켜져요. 어 한 사발. 꿀꺽꿀꺽 허. 너무 좋아. 그래... 사발 채로 좀 들고 먹을게요. 어... 시원하다. 꺼~~~억. 어 시원하다. 잠깐, 아닌데? 시원하긴 한데, 이건 시원한 게 아니라 너무 차다. 내 입이 언 거야? 화채가 너무 차가운 거야? 너무 시려. 차갑다고. 이빨이 시리고 차가워 못 먹겠어.... 못 먹어... 입이 너무 차가워. 얼음장 같이 시려. 살려줘. 내 입이 얼어... 얼어. 얼어.


조용히 떠나려는 날 다시 깨운 것, 내 입을 덮는 최상사의 차디찬 손이었다. 로돌포가 미미의 찬 손을 잡은 게 아니라 최상사가 내 입을 찬 손으로 덮었다. 숨이 꺼져가는 내 입과 코의 숨을 막으니, 갑자기 난 정신이 불연듯 반항하며 깨어났다. 깨어났지만 몸은 없었다. 정신과 생각만 있다. 몸 감각이 없다. 누운 상태에서 내 등이 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물을 휘젓는 소리가 아니라 조용하다가 뭐가 밀려오면서 찰랑거린다. 해안이다. 최상사가 좌로 90도 꺾어 해안으로 끌고 온 거다.


눈을 떴다. 입을 불려고 하니 최상사가 손가락을 약간 벌려준다. 감각은 없으나 머리가 오슬오슬 떨리고 있고, 최상사 옆모습이 보인다. 무릎앉아 자세에서 오른손에 총을 들고 저 멀리 보고 있다. 최상사 머리에서 모인 물방울이 주르륵 떨어진다. 하여간 이 부대 상사들은 좀 이상하다. 죄다 못하는 거 없고 죄다 또라이다. 공수부대 상사를 조심하라.


“보초.” 최상사가 내 귀에 속삭였다.

내가 저 멀리 어떤 강을 거의 건너갔다가 돌아온 걸 모르는 모양이다. 난 금방 다시 그리로 떠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난 분명 선을 넘었었고, 그냥 잠시 전 그 따뜻한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당긴다.

“어때. 몸 많이 굳었어?”

난 살짝 끄덕였다.

“입도 안 열리냐?”

‘그래, 사람 칼질이나 하게 만들고...’


그래도 우직한 이 양반은 믿음직하다. 그나저나 여길 어떻게 뚫고 간다는 거지? 이틀 전에 내려올 때도 엄청 힘들었는데 말야. 해안이라 막힌 곳 없고 초소 간격은 함부로 행동하기 힘들어, 내려올 때도 막상 도착해서 두 시간이나 걸렸다. 보초들 틈을 노리려고 야투경으로 보면서 대기하다 간신히 돌파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내 몸이 완전 먹통인데, 해안에 오면 뭘 해. 이 상태로 날 끌고 가겠다고? 불가능해. 전중사와 진하사도 당연히 없어. 둘은 저 아래 남쪽에 있어. 하, 어쩌냐. 막상 이렇게 되니 두고 가라 소리도 못하겠다.

이 양반 또 올라가서 쏘는 거 아냐?


불안해. 어떻게 실전도 처음인데 초소 애들 죽여야겠구나~~~ 하고 올라가서 따닥 따다다다 쏘고 내려오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사이코패시냐. 하긴.... 아마도 이제 여기서 사는 방법은... 사이코패시 밖에 없는 거 같다. 아니면 내가 죽는 걸 어째. 이러다 또 정신 나가는 거 아냐? 휴. 그나저나 너무 목이 마르다. 추워 죽겠는데 찬물이라도 마시고 싶다. 혀로 입술을 핥게 된다.


“목 말러?”

‘자정에 마지막 물 마셨고, 사람도 찔러 죽였는데. 상사님은 안 말러?’


최상사가 수통을 꺼내 열더니 아주 조심해서 내 입가에 흘리기 시작한다. 혀로 핥으니 의외로 미지근하다. 좀 따뜻하다. 그리고 세상 니미 씨, 개, 모든 거 저리가라 달콤하다. 군대 와서 물이 참 얼마나 단 건지 참 많이 느꼈었지. 큰산 하나 넘으면 물 존나 달달하니 사이다 같지. 맹방의 뜨거운 보리차가 그립다.


계속 받아 마신다. 나름 괜찮다. 그리고... 이 돌쇠 양반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내 입에 무얼 넣어준다.


오 하느님. 특전식량 초콜릿. 최상사가 머리를 짜낸 결과물로 보인다. 이분도 뇌가 있었구나. 작은 조각으로 부셔 내 입에 넣어준다. 턱이 얼어 씹지 못하고 녹여서 넘기기 시작한다. 그 검은 칼로리 액이 입을 넘어 식도로 타고 내려가는 게 정말 느껴진다.


내 몸이 스캔하듯이 보인다. 그게 위장에 도달하는 것까지 허, 느껴진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몸 중앙에서 따스한 온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물 몇 방울. 허... 허... 까무러쳐 고무뽀드에 얹히던 생각나네. 그 존나 따듯한 거. 뻔데기처럼 오무라들었던 거시기가 녹으면서 정상 소세지 부피를 회복하고, 등짝을 행복한 다리미로 지지는 듯한 쾌감. 그리고 조교들이 맥 나간 내 몸을 또 자반구이로 돌려주던 기억.

‘41번 이거 이거...’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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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체육관 깨기 2 20.09.26 538 22 13쪽
89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체육관 깨기 1 20.09.26 553 22 12쪽
»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2 20.09.26 550 24 14쪽
87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1 20.09.25 604 24 12쪽
86 도요새 사냥꾼 5 +2 20.09.25 592 23 11쪽
85 도요새 사냥꾼 4 20.09.25 575 21 11쪽
84 도요새 사냥꾼 3 20.09.24 545 23 13쪽
83 도요새 사냥꾼 2 +2 20.09.24 609 26 15쪽
82 도요새 사냥꾼 1 20.09.24 645 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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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Jumping Jack Flash 4 +2 20.09.22 596 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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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Jumping Jack Flash 2 20.09.21 655 23 15쪽
75 Jumping Jack Flash 1 20.09.18 712 24 16쪽
74 어떤 이의 꿈 6 +2 20.09.17 660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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