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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7.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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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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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블랙홀 속으로 2

DUMMY

탄통에 든 향긋한 새것 기관총 실탄이 다채롭다. 그리고 실탄벨트 중간 중간 대가리 예쁘게 자기가 예광탄임을 알리는 것.


풀밭 어전회의가 끝나고 각 해당 번기에 군장을 실었다. 그리고 다시 물러나 대기를 시작한다. 지역대장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쉬라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쉴 수 없는 것이 군인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또... 또... 기다리는 시간이 왔다. 비행장에서 기다리고, 항구와 해변에서 기다리고, 막사에서 위장하고 해 지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오면 얼마 뒤에 피똥을 싼다는 건 누구나 안다. 이제는 널부러진 자세에서 포성까지 들린다. 해가 지기 전에 했던 지역대장의 최종 브리핑을 되씹는다.


[대대 모든 지역대가 각자 다른 곳에서 동시에 이륙한다. 각자 다른 루트를 따라 날아가다가 TOT 10분 전에 상공에서 만나고, 우리는 우리 지역대 목표만 기억하면 된다. 다른 대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우리 좌우측 섹터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의 다 간다는 것만 알면 됐지 뭐. 도착할 때까지는 우리 책임이 아니다. 맘 편안히 먹고 똥을 싸라고 할 때 싸면 되는 거다. 도착하면 15분 안에 목표로 진입해야 한다. 목표들은 공격대상이고 또한 상황에 따라서 방어점이 된다. 역사가 될 거다. 우리는.]


어둠. 저 멀리 산등선이 앞에서 번쩍이며 후광을 만드는 포 섬광의 번쩍임을 본다. 박중사님이 눈을 감았나 살펴본다. 누워서 멀뚱멀뚱하고 계신다.

“안 떨리십니까?”

“구라 까냐? 안 떨리게...”

“박중사님. 지금 죽갔네요.”

“무서워서?”

“무서운 건지 아닌지는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이거 안 좋은 얘긴데.”

“악몽 꿨냐?”

“아니오. 좀 다른 겁니다.”

“그럼 뭐... 분위기 잡고 지랄이냐.”

“2주 전에 발송한 편지를 받았어요.”


“누구한테? 그래서...”

“마음이 아주 안 좋습니다.”

“그니까 누가 보낸 거냐고.”

“여자친구요.”

“....”

“여자친구.”

“뭐야 , 워커 꺼꾸로 돌아갔냐?”

“... 네.”

“작전 전날 아주 지랄 쌈밥을 하는구나. 그래서 뭐 탈영할려구?”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야, 어린 놈. 내가 너 무시하는 거 결코 아니고. 가슴 존나 아리겠구나. 그거 뭔지 알지. 다른 놈 만나서 헤어진다고 쓴 건 아니지?”

“대놓고는 못하는데. 모르겠습니다.”

“고민하지 마라. 너한테 막말할 생각 없고 말야. 진심으로 말하는데, 누가 올라탔으면 현실적으로 끝난 거다. 지금 위에 탄 놈만 본다. 그러니까. 속으로 어떻게 다시 되지 않을까... 아닐 거야 다른 진짜 이유가 있을 거야..."

"상상하지 마. 진짜 힘들어진다 너. 너 그 전에도 그런 징후가 있다고 두 번이나 말한 거 모르지? 남들 편하게 말해도, 군발이 여자친구 문제 당해보면 정말 다 죽이고 싶지. 속 완전히 타고 미치고 싶을 거다. 안다. 알아. 악의 품지도 말고 미치지도 말고 상상 그만하고 낭만적인 재회 꿈꾸지도 마. 감정을 잊으려고 하지도 마. 그거 막으면 막을수록 더 커진다."

"그냥 할 일을 해. 돌아가서 형이 올라탄 놈 아주 씹창을 내줄게. 감옥 같은 곳에서 사는 군발이 여자 뺏는 놈들은 아주 대검으로... 에이 양심 없는 놈. 그 놈이가 군대 안 갔다 온 놈이면 똑같이 당할 거고. 갔다 온 자식이면 돌아가서 우리 아주 20등분으로 잘라서 회를 쳐서 존나 초고추장에 발라서 니미 옆집 개를 주자고...”


난 박중사님이 작전 전날 안 좋은 생각한다고 엄청 야단칠 줄 알았다. 항상 나를 어린애로 생각하니까. 턱걸이 30개 넘어도 내가 어린애 같은가보다. 형이란 게 이런 간가. 난 형이 없으니까. 언제나 내 편이 되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목숨을 건 작전 전날, 박중사님 말에 웃다가 눈물이 나고 지랄이냐. 창피해 죽겠다. 박중사님 말대로 내가 어린애는 어린앤가 보다.


예상했던 대로 헬기는 입력된 루트의 일정한 표고를 따라 간다. 산이 삼각형이면 일정한 높이로 삼각형 모양을 따라 넘어간다. 그렇게 가면, 적이 보기에 아주 갑자기 헬기 소리가 들리고 순간 시커먼 것이 훅 지나간다. 적이 반응해서 총을 잡아 자동으로 갈기기 전에 통과해야 한다. 이 육군항공 조종사들이 해내는 몫이다. 사실 우리보다 더 살벌한 긴장이 올 것 같다. 돌아올 때는 그래도 가볍기라도 하지, 갈 때는 우리와 군장 때문에 무겁다. 군장과 백팩 외에도 우리가 손으로 들고 뛰어야하는 추가 실탄과 장비들을 헬기 이륙중량 한계점까지만 맞춰 실었다.


위험하다고 헬기가 서해바다로 나갔다가 들어갔다간 너무나 멀고, 가장 무서운 것은 적과 아군이 붙은 최전선 상공이다. 아군 쪽에는 대공사격 절대로 하지 말라고 통보가 가겠지만, 북한군에게 낯선 헬기는 소리만 들려도 엄청 쏠 것 같다. 그리고... 두려운 것. 아홉 대라는 거다. 대열이 하나로 가든 둘로 가든 뒤쪽에 따라오는 헬기는 맞을 확률이 높다.


그 다음 무서운 것은 최전선 직후방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적 대공포다. 공중에서 터지는 거 말고 맞춰서 뚫는 중기관총 대공포. 제트기는 껌 씹으며 웃겠지만, 헬기나 수송기는 제 아무리 구형 수동포라고 해도 한 열 방 맞으면 골로 간다. 특히 로터에 맞으면 추락하거나 어디 불시착이다. 전선 직후방에서 불시착하면 우린 작전이고 뭣이고 거기서 빠져나올 확률이 없으며,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이다 승천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시점에 그 전선과 대공포를 통과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걸 조종사들이 팀원들에게 굳이 알려줘 봤자 뭐하겠는가. 측문 열고 우리가 저 아래다 총을 쏘면서 날아갈 것도 아니고. 쏴도 우리가 쏘느니 양 옆에 달린 헬기 기관총이 쏴야 뭐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소총까지 포함한 살벌한 대공사격을 통과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가장 겁난다. 이러다 아무 것도 못하고 공중에서 조각하는 건 아닌지.


헬기는 어둠을 뚫고 계속 날아간다. 헬기 안은 조립식 의자를 제거한 상태에서 그냥 퍼질러 앉았다. 씨껍할 정도로 위로 치솟았다가 밑으로 내리 깔았다가 완전히 지랄이다. 푹 꺼졌다가 훅 올라가면 순간 숨이 멎는다.


몸을 기내 측면으로 밀어 붙이는 게 가장 낫다. 정면 방향으로 보고 있으면 위로 치솟을 때 몸이 뒤로 밀리고, 밑으로 내리깔 때는 앞으로 밀린다. 그러니 수평으로 갈 때는 대충 하다가, 오르거나 내리면 발과 손바닥으로 밀어 등을 밀착시키는 거다. 그렇게 밀어도 기체가 상승하면 머리와 상체가 뒤로 쏠리고 내려가면 앞으로 쏠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계속 날아간다. 언제냐... 최전선 통과는... 언제... 혹시 이렇게 대충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나?... 휴... 제발.


승무원. 얼굴도 자세히 안 보이지만 갑자기 진지해지는 게 보인다. 측문에 완전히 밀착해 등을 대고 붙어 있고, 자꾸 자세를 교정하고 심호흡을 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밑에서 뚫고 올라오는 총알인가보다. 갑자기 등을 완전히 문에 밀착하고 가뿐 숨을 내쉰다. 승무원이 몸에 잔뜩 힘을 주는 걸 보니 인터컴으로 분명 무언가 들었다! 상체를 빼서 앞쪽 조종석을 본다.


... 허. 죽었다. 갑자기 탑승 전 공포가 패드백한다. 원래 3번이었다가 지역대장이 우리에게 4번을 타라고 했다. 타당한 이유가 있었으나 우리에게는 죽을 사...자.


조금 평평한 지역을 달리는 지금, 조종석 창문 저 앞에서 예광탄들이 올라온다. 우리 헬기는 이미 간파되었다. 장면이 그림이 믿기지 않고 꿈을 꾸는 것 같다. 안에서는 엔진 굉음 덕분에 잘 안 들리지만 살벌하게 쏘고 있다. 그걸 느낀 순간 나도 몸을 웅크렸다. 생각보다 앞서 몸이 웅크리기 시작했다.


기관총 예광탄만 올라오겠는가 소총도 엄청 쏠 거다. 죽었다. 이제 죽었다 니기미. 저 앞의 저런 공간을 통과해야 한다. 선도 헬기들이 지나가면서 그들을 깨웠는지 레이더로 잡았는지 모른다. 무릎을 모으고 팔로 얼굴을 감싸고 조금이라도 부피를 줄이려고 온 몸에 힘을 준다. 기다린다. 올 거면 빨리 와라. 오 하느님, 저게 정말 어떤 것이들...


드디어... 딱. 따닥. 따다다다 닥!


헉,

아.... 온다.

다 죽었다.

니미 추락한다.

이런 민감한 항공기 어디 유압이나 연료라인 맞으면 그냥 비틀어지면 떨어진다. 메인이든 테일이든 로터 맞으면 그대로 끝이다. 그때 처음으로 탄두가 밑을 뚫고 들어와 기내 공중으로 올라가는 소리를 들었다. 딱~퓽. 위까지 뚫었는지는 모르나 아무 것도 할 수도 생각할 수도...


아. 제대로 못해보고 여기서 끝나나. 딱. 따닥. 미세하지만 저 밑에서 전기톱 소리가 나고, 굵은 철판에 소금 뿌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도가 얼마야? 어떻게 이렇지? 딱딱. 제발 빨리... 제발 빨리... 여기서 빨리... 야 이 새끼들아 그만해. 빨리 가.... 어둠 속에서 비명이 들린다.

“악! 이런 씨...”

“오, 하느님... 제발.”

“빨리 가 빨리 가.”

“어. 어. 니미 어.”

“하느님... 하느님... 제발.”


난, 나도 맞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나를 살피니 온 몸에 안간힘을 쓰면서 자꾸 몸을 고쳐 더욱 웅크린다. 손가락 하나라도 구부리고 발을 1cm라도 웅크린다. 맞았을 거야. 맞았어. 내가 지금 못 느끼는 거야. 모르는 거야. 난 아무 것도 아니야. 뭔가 발을 쳤어. 다리에 맞은 거야! 죽었어... 엔진 굉음에 얼이 반 쯤 나가고, 언제 어디서 뚫고 올라올지 몰라 그 신경이 사람을 마비시키고. 그렇게 헬기는 어둠속을 날아간다.


뭔가 잠잠해지는 기분이 들고 정신을 차렸을 때, 엔진 굉음 속에서 누군가 소리치고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느낌 끈적거리는 상태로 고개를 들었다. 딱 따다다닥 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고함소리가 기내에 가득 찼다. 누군가 같은 말을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중대장이었다.

“맞았냐고! 누구 맞았냐고!”

그때 말도 못하고 손을 든 것은, 우리가 아니라, 내가 보고 있던 반대 뱡향 좌측문 승무원이었다. 간신히 손을 들고 있었다. 중대장이 기어온다.

“어디! 어디!”

승무원이 왼팔을 오른팔로 지시한다. 담당관이 갑자기 백팩을 풀었다. 부조종사가 소리쳤다.

“뒤에서 어떻게 좀 해줘!”

담당관은 의무낭을 꺼냈고, 승무원 옆에 있던 박중사님이 비행복 자크를 열고 팔을 노출시키려고 노력했다. 잘 안 된다. 나도 달려들었다. 나도 맞았는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움직였다.

피. 검게 물들고 흐르는 피. 쿨럭쿨럭 토하는 피. 어디 정맥 맞았나? 담당관은 거즈와 붕대를 꺼내면서 다친 승무원에게 소리쳤다. 중요한 것은 진정이었다.

“너 안 죽어! 안 죽어! 큰 거 아냐!”

그런데 이때, 앉은 열 끝에 있던 김하사가 앉은 자세에서 옆으로 푹 고꾸라졌다. 중대장이 다시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친다.

“인동이 맞았어! 인동이 맞았다고!”

“김인동!”

그러자 박중사가 “그거 줘!” 담당관에게 소리쳤다. 거즈와 붕대를 받은 박중사는 거즈를 승무원 팔에 대고 지혈하면서 붕대를 감기 시작했고, 담당관은 김인동 하사에게 달려들었다.

“정신 차려. 날 봐. 나 보라구 자식아.”

담당관은 뺨을 몇 대 때리더니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도 다이빙처럼 몸을 던져 김하사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리부터 더듬어 올라가는데 복부가 축축하다. 내 손바닥을 보니 뭔가 시커먼 물이 물컹.

“담당관님. 여기! 여기 여기!”

“특전조끼 풀어봐!”

나는 풀기 시작했다. 김하사 얼굴은 안 보이지만 근육에 힘이 없다. 몸에 힘이 풀어져 있다.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다. 내가 특전조끼를 풀자 담당관이 군복 상의를 열었다. 뭐가 이렇게 걸치고 걸리는 것이 많은지.


그때 나는 봤다. 어떻게 어떤 각도로 맞았는지 모르나, 거의 명치라고 생각하는 곳에 검은 점이 보였다. 그 검은 점에서는 불타는 이라크 유전처럼 검은 물이 흘러나와 퍼진다. 담당관은 일단 붕대로 막고 손을 김하사 등으로 집어넣어 더듬어 관통 여부를 본다. 관통 아닌 것 같다. 피탄이 어디 때리고 들어간 것 같다. 헬기는 전율하며 저 앞 어디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그 안의 우리들도 미친 듯이 두 명을 치료하려 애썼다. 잠깐 앞을 보니 계기판 등만 보이고 그 앞에 예광탄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어둠의 지옥에서 중대장 소리를 들었다.

“20분 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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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체육관 깨기 1 20.09.26 554 22 12쪽
88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2 20.09.26 551 24 14쪽
87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1 20.09.25 606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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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도요새 사냥꾼 2 +2 20.09.24 612 26 15쪽
82 도요새 사냥꾼 1 20.09.24 646 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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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Jumping Jack Flash 6 20.09.23 626 20 15쪽
79 Jumping Jack Flash 5 20.09.23 644 23 15쪽
78 Jumping Jack Flash 4 +2 20.09.22 597 24 15쪽
77 Jumping Jack Flash 3 20.09.22 641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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