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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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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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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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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9.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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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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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체육관 깨기 2

DUMMY

최상사는 내 군화 끈을 강하게 조이고, 최상사는 K-7 난 K-2를 들었다. 일어설 힘도 없다. 버릴 건 버리고 총 들고 일어서자 몸이 휘청거린다. 어 씨바 다리가 풀린다. 최상사가 위로 끌어 당겼다. 허리가 따로 논다. 하지만 경험은 있다. 몸이 퍼지는 경험, 여러 번 해봤다. 어떻게 버텨서 컨디션 유지하는지 방법은 안다. 섰으나 몸이 지탱하질 못한다. 무릎이 구부러진다. 몸이 밑으로 다시 흘러내린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몸이 공중에 떴다. 난 최상사 어깨에 올라가 있었다. 총을 안 놓치려고 안간힘 썼다. 다시 저 멀리서 총소리가 따앙~!! 조은솔이 왼편 초소를 쏘고 있다. 분명 외마디 비명소리를 들었다. 와 미놈. 어린 자식이 정말 잘하네. 맨날 조울증 편집증이라고 놀렸는데, 이 미친, 정말 잘 쏴. 애새끼가 좀 이상하다 했어. 쳐맞기 전이나 후나 동일하게 차분한 얼굴 저 놈. 조은솔이 저거 느낌이, 지금 웃으면서 쏠 거 같다. 저놈도 눈빛이 정상은 아니지. 또라이 왕국이야. 아니 또라이들의 원천적인 천국. 난 정상인가?


헐떡이는 최상사 숨소리가 사방에 가득 찬다. 빠르게 걷는 것보다 느리다. 그러나 가고는 있다. 해안 보초 경계선을 넘어 일단 거리를 벌려야 한다.

탕! 탕! 탕! 타다당! 적도 쏘기 시작한다. 어디다 쏘는 거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찢겨 날아가고...


나는 가시인가 찢긴 새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속엔 내가 모를 것이 많긴 많아.

꼭 알아서 뭣하겠어. 길은 열어주는데.



“너 5대대 섹터 다 암기하지?”

“하이.”

“너 진짜 올 수 있겠어?”

“네. 걱정 마시고.”

“너 정말... 혼자 가능해?”

“빨리 팀 꾸려서 튀어요. 다 죽어!”

“간다. 안 오면 너 각오해 개새꺄.”

“빨리 빨리...”

“으이 증말 돌겠네...”


글쎄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내 안에서 올라오는 걸 어떻게 설명하지? 솔직하게 말하겠다. 더 하고 싶었다. ‘더’가 무엇인지 묻지 마라. 그건 남들이 듣기 괴로운 거다. 말로 하면 잔인한 거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난 자유롭고 싶었다. 항상 링에서 혼자 뛰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난 최상사를 속였다. 5대대 구역으로 가는데 성공만 하면 되지 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다음에 꼭 5대대 섹터로 향해 합류하려 노력하겠다.


내 몸은 언젠가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이기 힘들다고 최상사 앞에서 연기 아닌 연기를 한 거다. 더 이상 속에서 가래침이 나오지 않고, 속에서 역겨움이 더 올라오지 않는다. 혼자 남으니 모든 게 상쾌하고 가볍다. 휘파람을 불 지경이다. 몸은 여전히 오슬오슬 떨리나 괜찮다.


천천히 일어나 걷는다. 그냥 길가로 나갔다. 전과 진의 총소리가 울렸던 저 아래로 걷는다. 은솔이가 보내드린 보초가 쓰러져 있다. 아무 감정 없다. 정리를 안 하는 걸 보니 지금 정신이 없나보다. 기지 폭격에 경계병 다수 사망. 놀랍지? 이럴 때 평시 군대가 도는 거지. 아래부터 위까지. 니들은 전쟁 해봤냐? 맨날 주둥이만 살아서. 보초가 딱 한 방으로 죽었다.

‘야, 은솔이 이... 허.’


무전기에 장대위 목소리가 울린다.

[해파리 퇴출. 해파리 퇴출. 한산도에서 합류!]


그래 난 링에서 사람과 싸웠어. 그러나 입식도 무에타이도 MMA도 어떤 의미에서 점수 게임이야. 점수 아니면 넉아웃이지. 난 거기 만족을 못했던 거야. 글러브를 벗고 누가 칼 들면 싸움은 전혀 달라. 물어뜯고 불알을 조지고 눈을 파지도 않아. 내가 경험한 게 진짜 승부는 아니었어. 오늘 진짜를 봤어. 내가 왜 도장 다니기 시작한 줄 알아? 아주 사소했지. 누굴 패고 싶었어. 한 명이 아니었지. 아주 쉽게 설명해줄게.


내가 좋아하던 여자를 먹었어. 여러 명이 강제로. 난 약했고 운동을 시작했어. 그 중 몇 놈을 나중에 패기는 했지만 곧 내 관심은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 체육관은 날 내가 모르던 타인으로 만들었어. 경기에서 더 나가 체육관 깨기도 했어. 보통 게임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죄다 규칙 규칙 규칙. 이걸 어기면 안 돼 룰 룰 룰.


체육관 깨기가 가장 재미있었어. 3대 3. 4대 4. 이런 식으로 붙었지. 졸라 겁나. 서울엔 그런 거 없는데, 지방에서는 아직도 그런 거 종종 해. 체육관끼리 감정싸움이지. 관객 없이 하는 거야. 결과도 함구하기로 하고. 함구해도 그때부터 지는 체육관은 기 못 펴. 결국 어디가 이겼는지 안 봐도 알게 되지. 체육관 문 닫거나 떠나는 경우도 있었고.


3대 3으로 붙어봤는데, 가운데 나가면 집중공격 받아 그냥 반 죽어. 갈비뼈 몇 대 나가는 건 일도 아냐. 호구 없어. 도복과 빤스만 입고 올라가. 없어 졌어 그 놈의 규칙 규칙 규칙 좆같은. 맞다이로 붙으면 내가 이길 놈한테도 규칙과 룰로는 지는 거야.


첫 3대 3 했을 때, 링 로프 잡고 벌벌 떨었어. 글러브 그런 거 없어. 손 안 다치려고 압박붕대 약간 감고 맨발로 까는 거야. 피는 100%. 골절도 일어나. 가장 심각한 건 운동한 놈들이 MMA처럼 까서 두상골절. 잘못하면 잡혀서 링 중간에 끌려 나가. 세 명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때부터 개맞는 거야. 기회가 와서 패기 시작하면 진짜 개싸움 주먹질로 가. 기절이나 탭을 쳐야 그 사람은 빠지는 거야.


중간에 안 끌려 나가려고 양팔로 로프 둘둘 말아서 버티고 난리지. 한 손으로 로프 잡은 상태에서 가운데 나온 놈 발로 막 까. 게임은 5분도 길고 길고 길어. 순간이야. 균형이 무너지면 거의 집단 다구린데, 운동하는 애들이 살벌하게 맨주먹으로 까는 거 봤어? 나한테는 그거였지. 그것도 다는 아냐. 나도 싸우다 몽둥이로 뒤통수 맞아서 콘크리트에 1자로 앞으로 쓰러졌었지. 언제 맞았는지 기억도 없어.


그런 거야. 그러나 난 규칙 룰 존나게 엄격한 그런 게 싫어. 길거리 싸움이 더 진짜였어. 잠깐 넋 놓으면 한 방에 가는 거야. 운동은 진짜 센 놈과 붙었을 때 체력으로 이기는 경우에 필요해. 운동 안 한 쌈 잘하는 놈이 잘 하다가 허억 숨 터지면 그때부터는 조지는 거지. 운동 효과는 그때야.


군대 왔더니 여기도 또 규칙 규칙 규칙. 참어 참어 참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진짜를 만났어. 칼로 찔렀을 때 정말 더럽고 마음 처참했어. 그런데 말야. 물에 들어가 물질을 시작하면서 내가 이상하더라고. 10년 묵은 체증 같은 게 밑으로 쑥 사라진 거야. 그건 진짜니까. 이제 여기서 하는 건 모두 진짜니까. 그래. 내 목숨 걸면 되지. 그럼 된 거 아냐. 그리고 산으로 올라가기 직전 ‘더’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병신처럼 너무 간당간당 놀았다. 쪽팔리게.


‘여긴 진짜야.’

전과 진이 내던 총소리는 이제 저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오! 전술적으로 올바르다. 정당성까지 나에게 주었어.

‘진, 전, 빨리 올라가. 도와줄게.’


그 다음 초소가 보인다. 두 명이 딸딸이 돌리고 난리다. 다가간다. 날 본다. 난 웃으며 손을 들어 흔든다. 초소에 다가서서 웃으며 초소 창에 총구를 댔다.

‘애들이 벙쪘네. 병신, 사쿠라냐?’


연달아 번쩍이는 내 총구와 귀를 파는 총성. 박살이 나면서 조각이 사방으로 튀는 유리창. 유리조각 때문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총알이 나갈 때 몸이 떨리고 초소가 떨리고 세상이 떨리고 오감이 모두 격렬하게 진동한다. 내 마음이 광란의 사육제처럼 자유롭다. 난 깃털이다. 안의 산 것들이 무너진다. 자지러진다. 자세 쥐기게 널부러진다. 리얼하다. 이런 거 찍어둬야 되는데 말야.


아, 담배 피우고 싶다. 저녁들은 먹고 나왔냐 이 새끼들아. 보초들 맞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시체 방치하고 어리바리하게 이게 뭐야. 인간 통조림 침몰하니까 털에 불났냐? 3일 전부터 생각한건데, 얘들은 뭐랄까 좀 순진한 건지 착한 건지 하여간 그래. 이래가지고 남조선 자본주의 군대에 대항할 수 있갔어? 어이 그로테스크 친구들, 어느 쪽이 더 잔인할 거 같애? 얘들 남조선을 몰라도 너무 몰라.


발로 고깃덩어리들을 밀면서 들어가 본다.

“아이 새끼들 좀 치우고 살아야지. 이게 초소가 뭐야 이거.”


수류탄 회수하는데 어디서 옹알옹알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잉? 선 살아 있네. 야전전화기를 들어보니, 뭐락 뭐락 떠들고 있다. 하여간 동네 별로 군발이 말은 뭐라는 건지 니미. 응신은 해야지. 뭐라고 해?

“남조선..... 민주주의공화국...... 만쉐이......”


왜 이러지?

웃으면 안 되는데...


역사라고? 진실이라고? 어서 빨리 통일해 잘 먹고 잘 살자는 다소 건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전쟁은 전투는 가장 비열한 방법과 뒤통수와 잔인한 그 모든 걸 동원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거다. 전쟁하는 두 나라만 피해 먹고 옆 나라들은 둘 다 망하라고 박수를 치지. 상대가 약점을 보였을 때, 바로 북한이 하듯이 온갖 걸 꼬투리잡고 집요하게 비난하고 협박하고 물고 늘어져 내가 유리할 때 쳐야 한다. 바로 북한처럼.


이게 특이하고 저급한가? 정치에서 매일 보는 흔한 것. 나는 개성을 안 내놓으면 쳐들어간다고 협박하고 싶었다. 이제 그런 생각대로 여기서 내가 할 바를 하면 된다. 명확해졌다. 맨날 당하면서 우리가 할 건 정당해야 돼? 모든 전쟁은 억지에서 시작됐어. 통일을 원하면 이기적으로 악랄해야 한다. 목적을 이룬 다음 착하게 인도적으로 하면 된다.


나도 북한 애들 보면 귀엽고 불쌍해. 그 누가 평화를 사랑하지 않아? 그 누가 이 풍요로운 세상을 억지로 파괴하고 싶겠어. 나도 진보 쪽 찍는 놈이야.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있어. 여러 나라가 가지고 노는데 짜증이 날 뿐이야.


나도 주변국이 두려워하는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 맨날 말도 안 되는 구라 협박 꼬투리에 당하다가 우리가 해야 할 건 이것이 진실이라고 질질 짠다. 이 진실만은 믿어달라고 선비들이 홍수를 이룬다. 그래서 당해도 싼 거다. 그래서 우릴 우습게 보는 거다. 배추장사도 그렇게는 안 한다. 중국속담. [조선사람들 제삿상은 항상 시끄럽다.] 밥술이나 뜨니 비굴해도 참고 살아야 한다. 언제까지...


내가 링에서 뛰어난 선수였다고 해도 뒷골목에서 각구목에 뒤통수 맞아 뻗는 게 역사적인 결과다. 그게 역사라면, 역사는 뒷골목에 병신 같이 쓰러진 모습만 남길 것이고, 역사라는 과목이 사라질 때까지 후대는 날 병신으로 안다.


다 그럴듯한 인물들이 역사에서 병신 되는 거다. 일단 기록되고 나면 그걸 누가 바꿔줘? 우린 현실에서 초라한 거짓말을 하며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변명하지. 역사가 우리 일상과 달라? 역사와 전쟁 기록이 모두 진실? 강한 놈이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계속 죽이고 살아남는 놈이 강한 거다. 영혼은 자기 죽인 놈을 용서해? 사실 그러기를 바라지. 어차피 나도 죽을 것이고, 내 죽음을 포함한 이 사건들에서 개인적인 앙심은 없으니까. 아직까지 내가 아는 한, 용서하는 놈은 죽기 전에 용서하는 놈뿐이다. 나는 죽어 저승에서 나에게 죽은 놈들을 깔보리라. 여전히 날 용서하지 않았다면...


이런 게 세상에서 제일 웃긴 거야.

착한아이 콤플렉스. 밥술 뜨겠어 이거?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착하던가,

아니면 전쟁터에서 드러내야지 그거.

어? 그거! 죽이는 거, 진짜 죽이는 거.


오늘 밤, 아직 일당을 못한 거 같다.

양푼의 사골 좀 더 우려냈으면 한단 말야...


Kill the son of bitch.

I'm the ONE.

You Sal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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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1 20.09.25 604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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