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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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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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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거기 판문점 3

DUMMY

사람이 사흘을 못 자면 정상이 아니다. 오감이 제 감각을 잃어 가벼운 것도 실수하고, 기억력도 떨어져서 방금을 기억 못 한다. 마약을 한 중독자들은 며칠을 안 자도 졸리지 않다. 마약 아드레날린으로 버티며 안 자도 멀쩡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는 엄청난 수면 부족으로 이상한 소리가 귀에 들리고 환영도 본다. 그렇게 못 자면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


사람 오감이 멀쩡하려면 잠이 필요하다. 뇌는 수면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상’을 유지하는 단순한 방법이다. 하지만 ‘정상’이란,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일 뿐 표준은 없다. 그때그때 다르다.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회사원 일상과 같은 정상을 바랄 수 없다.


경험자 누구나 [전장에서 3일]을 말하는 이유는 항상 그렇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고 전우의 몸이 찢기는 충격과 별개로, 3일 정도는 잠을 못 자고 싸우거나 전술 행동하거나 걸어야 한다. 전장은 일상의 정상을 파괴한다. 일상이 될 틈이 없다. 전장은 무조건 수면 부족이다. 탱크병도 3일 무 수면으로 나가야 할 때가 있고, 자기도 모르게 자면, 다른 탱크나 적 대-전차화기에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일본은 마약 각성제를 보급하기도 했다. 히로뽕은 잠을 안 자도 싸울 수 있게 태평양전쟁 때 일본 기관이 만들어낸 화학 혼합물이다.


자지 않아도 사람이 기능하는 것이 전투에 중요했다. 무척 중요했다.


남자. 남자와 전우들.


실제로 침투가 끝나고 첫 작전이 시작될 때, 대부분 대원은 3일을 못 잔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충혈된 눈으로 적지에서 잘 시간도 없었고, 무거운 군장과 기동에도 할 건 했다. 움직이는 게 생존이었다.


비행기 헬기 침투함을 타기 며칠 전부터 수면 부족은 시작되었다. 준비할 것도 많고 불안감도 한몫한다. 침투부터 첫 타격작전 퇴출까지 계속 손실이 일어났고, 옆 사람이 빈다. 숫자가 줄어든다. 2차 작전이 시작될 때는 숫자도 그렇고, 사흘 무수면 이상을 넘어섰다. 경험이 있던 대원들은 뭐가 위험하단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 왜 이러지?’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상하다...

안 졸리다...

정신이 멀쩡하다...


[극한 상황 3일 무수면 상태에 도달하면 인체가 버티려고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미친 듯이 분출한다. 멈추면 죽는다는 사실을 본능이 직감하기 때문이다. 그때 몸은 사실 쓰러져야 정상인데,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자면 목숨이 위험하단 걸 병사는 안다. 그러나 그게 너무 오래 지속되면 인체도 우회로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그때 부대를 교대시켜야 한다. 부대 교대 시점은 지휘관이 병사들 눈을 보면 안다. 나를 보고 있지만 또한 나를 안 보고 있다. 바로 닥치는 것 외에 아무 생각 없는 것이다.]


‘왜 이러지? 왜 안 졸리지?’


3일에서 일주일로 접어들자 자고 싶어 미치던 마음이 사라졌다. 극도의 피곤은 안 풀렸다. 죽을 듯이 피곤한 건 똑같다. 그런데 쓰러져 자고 싶은 생각이 없다. 2차 작전 때부터 정신이 맑아졌다. 약간의 쪽잠으로 버틸 수 있었다. 잠시 조는 게 전부다.


내가 지금 어떤가 생각할 틈도 없이 계속 움직인다. 계속 걷는다. 총구를 내리고 편하게 걸을 수가 없다. 24시간 사방이 날 옥죄인다. 뭔가 팍 터질 것 같은 불안함이 지속한다. 30초 뒤에 뭐가 터질 것 같다. 상대는 계속 추격한다. 그리고 작계 스케줄이 너무 벅차다. 인원도 비어 할 것이 늘어났다.


‘내가 이렇게 가벼워졌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단잠 꿀잠 깊은 잠이 없다. 해봤자 가면이다. 총을 잡고 쪼그리거나 기대다가 톡 건드리면 훅 일어날 정도로 - 자는 것인지 멀쩡한 정신 상태로 눈만 붙인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내가 날 객관적으로 보는 건 여유나 있을 때다. 지금 생각하는 게 그저 나다. 그 이상의 나도 없고 이하의 나도 없다. 몸과 생각이 하나로 뭉친 것 같은 기분이다. 생각하면 벌써 몸이 하고 있다. 사실상 머리가 복잡하지 않다. 단순해졌다. 똥이나 먹을 과거와 미래가 증발했다. 고민이 없다. 일단 하면 하는 거다.


‘Go. Go,’


절대로 안 잔다. 사지 펴고 푹 자려들지 않는다. 총 던져놓고 좋은 잠자리 마련해 자려고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해가 뜨면 힘들었다. 특히 눈이 힘들었다. 눈이 부시니 더 졸리고 더 고통스럽다. 주린 배보다 고통스럽다. 내가 본 시신이 꿈 같고, 조금 지나면 생각 안 난다. 총질 폭약질 칼질만이 고통이 아니다. 몸이 힘들어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몸 상위에 취침이 있었다. 분노가 치민다. 단지 내가 불편해서 부들부들 화가 난다. 날 괴롭히는 것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다. 확 자폭해버리고 싶다. 도망만 쳐야 하는 신세에 짜증 난다. 그러면서 살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이때부터 다른 공포가 왔다.


‘자면 죽는다. 잠들면 죽는다...’


3일, 일주일, 열흘, 이 상태가 지속한다. 약간의 쪽잠이면 버틴다. 바위와 나무와 풀에 기대 맘 놓고 조는 건 밤이 아니라 낮이다. 코를 골아도 공포스럽지 않은 낮이 더 좋다. 밤은 너무 조용해서 촉각이 곤두선다. 새소리, 바람 소리, 전폭기 굉음, 폭격 소리가 들리면 쪽잠이라도 무척 잠이 잘 온다. 비 오면 또 편하게 쪽잠 잔다. 조용한 낮이 가장 괴롭다. 졸고 일어나도 개운한 감은 없다. 졸기 전과 후가 거의 비슷하다.


‘눈 감으면 죽어!’


속에서 자꾸 말한다.


‘잠들면 죽는다.’


이게 더 무섭다. 이 생각이 더 무섭다. 눈 감고 정신을 잃은 상태로 난도질당할 것 같다. 자면 반드시 병신같이 죽을 것이다! 제대로 자면 적이 와서 날 죽인다!


먹는 것은 그 아래 부수적이다. 힘이 조금 벅찬 것 빼고는 잠이다. 손목이 가늘어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전의 비슷한 경험이라면 천리행군이다. 처음 3일이 가장 힘들고 가장 졸리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게 중반부터는 ‘그냥’ 간다. 더 힘들지도 덜 힘들지도 않다. 서너 시간만 자도 다시 밤새 걸을 수 있다. 분명 수면 부족인데 한밤중에 걸으며 정신이 또렷하다. 그때부턴 배고프거나 물집 때문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가 힘들 뿐이었다. 시간이 죽어라 안 간다. 군대에서 지옥주 같은 거 불필요한 무식한 훈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무식한 거다. 그거 해봐야 거를 놈도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양쪽 다 못 잔다. 자면 죽는다.


한 병사가 있다. 항상 골아떨어질 사건을 경계한다. 잠들면 죽는다... 이제, 눈을 감고 쉬어도 오히려 사방이 영화처럼 또렷하게 보고 있고, 작은 소리도 무엇인지 눈감은 상태에서 판단할 수 있다. 이상 징후를 본능이 안다. 눈을 감으면 장소가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발자국 소리 같은 건 자면서 멀리 금방 듣는다.


자는 개다. 자는 개를 건드렸다간 안 잔 것처럼 달려든다. 자는 개는 자다가 당하지 않는다. 1초면 살아난다. 개가 눈을 뜨기도 전에 적을 본다. 야생의 짐승은 기본적으로 가면이다. 침대에서 아무 걱정 없이 푹 자는 건 인간뿐이다. 인간처럼 자는 짐승은 곧 죽는다. 뜯어 먹힌다.


‘완전히 잠들면 분명히 당한다.’


날짜 모르겠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대략 계산하려면 2차 작전과 규합이 언제였는지 역산해야 기억이 어슴프레... 가면의 끝이 없다. 끝이 안 나니 끝이 없다. 이런 시간이 얼마나 지속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현재 인생이 되었다. 이런 고민 자체가 없다. 현재의 삶, 일상이 되었다. 남자는 멀쩡하다. 충분히 멀쩡하다. 멀쩡하게 수행하고 있다.


전장의 쉬는 것 같은 병사는 잠시 조는 개다.


이것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조차 없다.


그런 건 생각 범위 밖이다.


“쉬. 쉬. 말하지 마.”


남자는 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 손가락으로 막으려 한다.


“조용히 해. 조용! 야망 없는 사람이 인간다운 거야. 야망은 거래와 장사야. 장사치야. 이 비극 속에서 살려니 자꾸 행복할 거다, 행복할 거다, 나에게 주술을 걸었어. 왜 걸었겠어. 없으니까! 오지 않을 거니까! 그런 건 없으니까! 평생 무식하게 희망과 행복할 거라고 세뇌해 봐! 다가온 건 총 칼 찌르고 베고 쏘고 깨부수고 스테이크 조각들이 사방에 널리고 내장 가로지르고 옆구리가 터져...”


“고무풍선처럼 터져서 죽죽 흘러... 결론은 하나야. 다 죽여버리면 돼. 적 군대를 마지막 한 명까지 다 죽여버리는 거야. 그 죽임에서 정치 철학 권력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거야. 평시에는 살인이 범죄지만 전시에는 승리야, 승리! 살인에도 양면이 있어!”


남자의 얼굴이 모처럼 웃는다.


“인간의 형상! 얼굴 눈코 귀! 목으로 이어지는 몸통과 팔다리 손가락 10개. 눈과 콧구멍은 반드시 둘이어야 해! 우린 그 형상에 부담을 느껴. 그래서 죄책감을 가져. 나와 비슷한 형상을 쏘고 베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왜? 나처럼 생각한다는 존재가 가볍지 않거든. 만약 돌덩어리처럼 생긴 생명체라면 죽여도 우린 가책을 모를걸?”


“개돼지 바퀴벌레보다 나은 생명체라고 그 형상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은 거야. 하지만 우린 개돼지 소 양 모두 도살해. 먹어. 동물들이 무슨 죄를 지었어. 해를 끼쳤나? 바퀴벌레나 쥐가 우릴 공격해 잡아먹나? 공격은 우리가 해. 너나 나나 그거 그런 인간이란 거 이제 몰라?”


“내 칼에 목을 내주는 인간도 별 거 없는 거야. 너나 나나 여기로 내몬 놈들의 잘못이야. 그 인간들만 죽으면 된 거였지. 얄팍하게, 얼굴에 뭉개지고 큰 흉터만 나도 우린 그 사람 무서워하지. 내 얼굴의 칼자국처럼... 우린 알게 됐지. 양심의 판문점 따윈 없어. 양심은 우리가 거룩하길 바래서 만든 가공의 공간이야. 난 이제 선과 악을 넘어섰어! 지혜의 홍수! 샤크라! 무덤 위에 핀 꽃! 언덕 위에 독야청청하는 소나무는 베어버려! 킬링필드! 병사들아 코에서 독가스를 뿜어라!... 그나저나 아군은 어느 천 년에 오나...”


남자는 일어서 북한모를 쓰고 소총을 든다.


“어휴, 비에 젖어서 총이 차가워. 이 녀석은 항상 냉정해. 사람은 뜨거웠다 식었다 종잡을 수 없지. 그게 문제야. 사람은 누구나 무섭고 누구나에게 위험해, 안 그래?”


일어선 사람 아래, 한 남자가 누워 있다.


“그 냄새야 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그 냄새 피우지 말라고.”


딛고 선 남자는 물끄러미 누운 남자를 내려다보다, 몸을 구부려 그의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살핀다. 몸을 더 구부려, 누운 남자 손에 권총을 쥐어준다.


“자물쇠 돌렸어. 당기기만 하면 돼.”



그러나 남자는 쥘 힘이 없어 보인다.


“난 여기 와서 바보였지. 먹통이었어. 좋게 말하면 전투 쇼크. 옴짝달싹도 못 했어. 팀원들이 정말로 나에게 실망했어. 뭘 제대로 못 하고 공포로 얼어붙었으니까. 풀리지가 않아. 그게. 부상자만도 못한 거야. 나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훈련은 훈련이었어. 나 자신이 창피하단 걸 느끼겠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차라리 미쳐버리자. 미치는 게 낫다.”


“이대로 병신처럼 살다 죽을 거면. 생각했지. 어떻게 하면 미치지? 어떻게 해야 제정신이 나갈 수 있어? 억지로 잔인하게 했지. 사람들은 보통 칼로 배를 찔러. 이상하게 그래. 폐를 찌르는 놈은 해본 놈이고. 난 미친 척 하고 얼굴을 찔러버렸어. 면상에도 칼 들어가. 그렇게 시작된 거야. 헌데, 정말로 미치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미쳐지지가 않아. 너무나도 정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단 말야. 좀 미칠 수있는 방법 없나? 니가 날 좀 어떻게 해봐! 당겨. 쏴. 날 쏴.”


선 자가 디지털 픽셀 상의를 들춰 옆구리를 보인다.


“여기야 여기. 내가 말한 데가. 여기가 아파. 보여? 니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여긴 지금 터져서 내장이 다 빠져나갔어. 그래서 배가 안 고파. 여기가 아파서 자꾸 허리가 굽어져. 사람은 가슴이 아픈 게 아니라 눈으로 본 것이 아파. 날 쏴도 여기는 조준할 필요 없어. 여긴 쏴봤자 총알이 허공을 통과해. 해봐. 날 쏴. 해보라고!”


남자는 양팔을 크게 벌리고 오라! 액션으로 멈췄다.


그대로 10초 굳어 있다가 서서히 몸을 푼다.


“안 쏴봤구나. 사람을.”


남자는 누운 사람에게 AK로


펑! 펑!


두 방 사격했다.


젖은 총열에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누운 사람을 내려다보는 졸린 눈...

바닥에 탄피 두 개를 남기고 돌아선다.


“난 벌써 이승을 떴어. 선과 악을 넘어섰지.”


나뭇잎이 우수수...

총성이 산울림의 반복 속에 서서히 물러가고,

돌아선 입에서 미세하게 들린다.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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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피양의 숙취 1 +1 24.03.25 150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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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K-7 Deuce 4 24.03.11 1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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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K-7 Deuce 1 24.02.19 20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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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1 24.01.29 190 6 16쪽
352 Curtain Call 9 24.01.22 201 9 16쪽
351 Curtain Call 8 24.01.15 201 4 13쪽
350 Curtain Call 7 +2 24.01.08 206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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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Curtain Call 5 23.12.11 232 10 12쪽
347 Curtain Call 4 23.12.04 249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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