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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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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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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tain Call

DUMMY

[투항하기 직전 홀로 떨어진 무장공비 김신조 씨. MBC]


“지쳤어. 그냥 지쳐서 아무 생각이 없어. 그저

난 숨만 쉬고 있는 거였어. 끝이었던 거야. 거기

그냥 그렇게 죽치고 있는데, 그때 순간에 내가,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내가 여기서 끝나는

거냐. 그런 생각이 들어. 나라는 사람의 목숨,

내 인생 내 삶에 대한 애착이 순간 왔어.

살고 싶단 애착!”



Curtain Call



해상훈련 무동력 야간침투훈련 때 흐리면 딱 그랬다. 저 먹구름 때문에 비와 함께 바다가 무섭게 넘실거리고 출렁이면 어쩌나... 저 컴컴하고 막막한 바다에서 강풍에 보트가 밀리고 꺾이고 나침반에 빗방울이 떨어져 안 보이고. 훈련 취소 안 돼?... 반쯤 물이 들어찬 보트가 결국 모래에 닿았을 때 긴 한 숨... 운이다 운. 죽을 뻔했네 젠장.


수풀 속에 선 세 명은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먼 하늘을 본다. 처량하게 마음을 산란시키는 저 하늘가. 먹구름들이 불규칙하게 여기저기 얼룩을 만들고 강풍은 이리저리 방향을 바꾼다. 이슬비가 어디선가 촉촉하게 떨어질 것 같은 오후. 쉬려했던 대원들이 ‘이런 날은 내려가야지.’ 생각하기 마련인 기상. 암울한 날씨와 인간의 행복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때가 왔다. 기다리면서도 언제 올 거라 예측하지 못했던...


세 명은 도로로 나서기 전에 복장을 정리했다. 북한군 모자를 버리고, 한동안 쓰지 않다가 땅에서 파낸 K1 K2를 앞에 잘 보이도록 걸고, 너덜거리는 장갑도 벗고 군복 천을 찢어 만든 목도리도 역방향으로 훌훌 돌려 땅에 던졌다.


AK 탄입대를 벗어버리고 실탄과 탄창은 포켓에 넣었다. 여전히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총에서 실탄을 빼는 게 내키지가 않는다. 이것이 꿈이고, 또 다시 총질하면서 산으로 뛰어야 할 것 같다. 대리팀장 김중위는 아직도 남아 있는 관급 위장모를 쓰고 다 뜯어진 특전조끼도 입었다. 조끼 측면 줄이 끊어져 철사로 묶었다.


김중위는 살기 위해 썼던 북한모를 사정없이 또한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렸다. 적성물품이 내심 싫었던 거다. 그래도 AK는 병기라 버릴 수 없어 등에 각개로 멨고, 길게 자란 머리를 자꾸 쓸어 넘긴다.


산발인 머리가 정상적인 군인처럼 눌려 보이를 바란다. 머리가 가려워 나이프로 한번 북북 잘랐던 게 전부다. 부모에게 듣던 머리칼 속 이를 잡았고, 변을 보면 하얗고 기다란 회충이 나왔다. 파묻었던 낙하산 천을 잘라 침구처럼 사용했던 표현상 카나피 모포. 특전조끼 등낭에 있는 그걸 버리기도 그렇고 어디 꺼내놓자니 남 보기에 초라하기 그지없다.


‘아군’이 아군을 이상하게 보는 건 아닌지. 이렇게 머리가 길고 수염도 자랐는데 과연 아군으로 보는 건지, 북한군으로 보일까 어색하고 불안하다. 군침이 자꾸 넘어간다. 윤중사는 북한 군모를 버렸다가 다시 주어 호주머니에 꽉 접어 넣었다. 오랫동안 함께 해서 버리기가 힘들다. 뒤에 쫓아오던 상대를 지향으로 갈겨 쓰러트렸는데, 비가 오고 있었고 머리에 아무 것도 없던 중사는 문득 죽은 자의 군모를 잡아 머리에 썼고, 지금까지 그 모자와 함께 했다. 머리에 잘 맞았다.


3분 전, 지나가는 보병을 향해 김중위가 소리를 질렀다.


“대한민국 국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상기된 길가 병사들은 거총하고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대한민국 국군! 특수전사령부! 0공수특전여단!”



“소대장님~~~!!!”


걷다가 멈춘 병사들은 자신들이 대처할 종류가 아니라고 생각해 소대장을 소리쳐 불렀고. 김중위는 이어서 계속 소리쳤다.


“X3대대 7지역대 2중대!”


그러나 애써 중대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보병 병사들에게 작살난 중대라도 한 50명이 나올 거라 상상한다. 보병소대는 정지해 사주경계에 들어갔다. 소대장이 달려왔고, 병사들이 셋이 있는 수풀을 지시하자, 그곳을 향해 소리쳤다.


“0공수???”


김중위는 계속 소리쳤다.


“0공수! 중위 김두현. 육사 00기!”


“중사 윤수길!”


소대장이 귀를 의심하며 소리친다.


“미안합니다만... 우리도 이런 상황 처음이라 천천히 조심해서 손들고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김중위, 윤중사, 정하사는 아군으로 복귀했다.


두 손을 든 채로 수풀에서 윤중사를 선두로 천천히 나왔다. 윤중사가 첨병 김중위가 본대 정하사가 후미처럼 자연적으로 섰다. 이들이 두려움을 가진 이유는 착용하고 있는 북한군복 때문이다. 보병소대는 총을 반쯤 들고 그들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가장 놀란 것은 소대장이었다. 셋이 나오자 놀란 눈으로 셋을 훑어보며 물었다.


“누가 육사 00기라는 겁니까? 누가 중위시죠?”


김중위가 나섰다.


“나요. 00기.”


“맞다면, 저 2년 후배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이름은 낯이 익은데 얼굴은 못 알아보겠습니다. 총 좀 모두 풀어주시겠습니까?”


“미안한데, 나도 기억이 안 나.”


투항 비슷하게 한 사람이 소대장에게 반말을 했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았다. 거짓이 아님을 직감했다. 소대장은 불과 몇 년 전의 생도시절을 떠올린다. 어떻게 해서라도 선배를 기억하려 애쓴다.


"2년 후배면..."


“그러니까 말입니다.”


“... 무락 베니 비디 비키?”


소대장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굳었다.


셋이 다섯 정의 총을 내려놓았다. 아니 여섯 정이다. 김중위는 특전조끼에 있던 백두산권총을 깜빡했다가 맨 마지막에 천천히 손을 보이면서 공중에 보이고 내려놓았다. 탄창도 모두 땅에 놓았다. 천천히 총들 노리쇠를 후퇴해 걸고 약실이 비었음을 보여주었다.


총들이 장전된 상태에서 병사들이 옮기다 오발이 날까 염려한 것이다. 북한제 수류탄도 한 발, 남조선 수류탄은 언제 썼는지 기억이 없다. 특전조끼에 밥을 꽉꽉 눌러 만든 주먹밥은 차마 수색당하지 않길 빌었다. 정하사 주머니의 도토리도. 윤중사 특전조끼 등낭의 한 줌 쌀도... 그리고 새카맣게 탄 반합. 피아가 섞인 대검도 네 정 나왔다. 모두 길가에 내려놓고 소대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소대장은 몸수색을 하려다 중단시켰다. 김중위와 얘기를 잠시 나누고 바로 선배라는 걸 인지했다. 학교 구호를 들었을 때 직감했다.


“잠시 쉬십쇼.”


셋은 손을 내리고 땅에 앉았다. 김중위는 소대장에게 부탁했다. 실탄은 휴대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군 총과 관급 대검은 돌려줄 수 없냐고. 아무리 그래도 그 K1 K2 대검은 특전여단 등재 병기라고.


“실탄 빼고 그냥 휴대하시면 됩니다.”


“우리 총 실탄 떨어진지 한 달도 넘었어...”


무장해제 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셋은 총과 대검이 수중에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안도의 숨을 쉬었다. 몇 달 간 이어진 긴장이 병기를 내려놓자 부지불식 극도의 불안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중위와 소대장은 금방 관계가 형성되었다.


대검을 돌려받을 때, 병사들이 보기에 다 같아 보였는데, 돌려주려 걸어가자 멀리서


‘아니, 내 건 저거.’


‘저 밑에 거.’


한다. 총과 대검을 돌려주러 갔던 병사가 대검집에 묻은 검은색 핏자국을 봤고, 병사들끼리 쳐다본다. 입고 있는 복장에 때와 함께 분명 핏자국 같은 모양들이 얼룩져 있었다.


“미안한데 물하고 담배 좀...”


“어이, 물하고, 담배 누가 피우지? 여기...”


소대장은 담배 피우는 선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담배를 받아 무는 피골이 상접한 셋을 보고 소대장은 미안했다.


“배도 고프실 텐데, 먹을 건 안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먹을 걸 생각한 틈이 없어.”


“괜찮아요, 소대장님, 감사합니다.”


“혹시 우리 여단 나타났다는 소리 못 들었나? 이 근처에서?”


“저기 어디더라. 초동리 근처에서 몇 명 나왔답니다.”


“....... 8지역대.”


“거기서 중령분이 나타나셨다고 들었어요.”


셋은 담배를 문 채로 시선을 교환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대대장...”


“살았어...”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고 병사들은 곁눈으로 셋을 구경한다. 소대장은 트럭에 올라 무전기로 상부에 보고했다. 무전이 끝나자 소대장이 뛰어내리는데 뭔가 손에 들고 있었다. 다가와 김중위에게 그걸 준다.


줄을 당기면 따뜻한 밥이 되는 야전식량 세 개. 김중위는 받아들고 훑어본다. 소대장은 셋이 허겁지겁 줄을 당겨 따뜻해지기도 전에 먹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소대장이 그걸 가져올 때, 김중위는 고개를 숙인 채 옆의 윤중사에게 조용히 읊조렸다.


“우리, 남들 앞에서 초라한 모습 보이지 맙시다.”


“완료.”


“완료.”




“선배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충성!”


야전에서 각을 잡아 경례를 한 소대장이 멀어지고, 트럭은 연대본부로 향했다. 원래 대대본부로 가 대대장을 만나고 연대로 올라가려 했으나, 대대는 그럴 여유가 없어 곧바로 연대본부로 셋을 보내라고 했다. 덜컹거리는 트럭. 받은 야전식량이 있으나, 셋은 물만 마시면서 담배만 피웠다. 셋의 여섯 개 눈은 트럭 뒤로 전환되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즐거운 날인데 날씨 때문인가 마음이 가볍지 않다.


‘이 풍경... 낮에, 밑에서 보는 산이, 도로를 타고 가면서 보는 게 이런 모습이었구나. 북한군은 여기서 저 높은 곳을 보며 앙심을 품었겠지?’


새 풍경이 바뀌자 셋이 굳는다. 지형을 다 외운 상태에서 넘어왔고, 일대를 돌아다니며 손바닥 보듯이 암기했다. [마을 끝에 가옥 세 개모인 곳에서부터] 같은 표현. 저지대는 밤에만 내려왔기에 낮 풍경이 익숙하지 않으나, 일련으로 나타나는 지형들을 보면 트럭이 가는 방향과 현 위치를 바로 알 수 있다.


몇 달 간 뛰든 걷든 항상 방향을 생각했다. 정하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능선을 손가락을 들어 지시했다. 지역대가 은거지 내습을 받아 혼전 속에서 분산탈출하던 곳으로, 그날 피해는 매우 커서... 이후로 나타나지 않은 실종자들이 생겼다. 정하사는 오른손을 들려고 했고 윤중사는 팔을 뻗어 하사의 팔을 잡았다.


“경례하지 마. 아직 확인된 거 아냐. 시신 보기 전까지 믿지 말자, 상황 허락되면 수색하러 같이 올라가.”


정하사는 적재칸 안쪽으로 가 운전석 바로 뒤에 몸을 웅크려 고개를 숙였다. 트럭이 비포장도로에서 흔들려 정하사의 몸이 떨리는 걸 누가 볼 수 없었다. 정하사가 트럭 앞쪽으로 갔고, 트럭 뒤 둘은 익숙한 풍경들을 계속 바라본다. 도로 옆에 치워진 시커멓게 불탄 트럭. 조금 더 지나니 때렸던 열차역이 저 멀리 있다. 김중위와 윤중사는 서로 시선을 맞췄다가 새로운 담배를 문다.


“동무, 남조선 담배 너무 약하지 않우?”


“그러니까요. 너무 독헌 놈에 맛 들였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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